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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푸케 <운디네>, 안데르센 <인어공주>, 하우프트만 <물속에 가라앉은 종>
대본 야로슬라브 크바필
초연 1904년 브르노 국립극장
배경 어느 호숫가(1막, 3막)와 왕궁(2막)
<2023 로열 오페라 / 173분 / 한글자막>
로열 오페라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세미온 비치코프 지휘 / 앤 이 & 나탈리 아브라하미 연출
루살카........물의 요정.....아스믹 그리고리안(소프라노)
왕자................................데이빗 버트 필립(테너)
외국의 왕녀....................에마 벨(소프라노)
보드닉........물의 정령.....알렉세이 이사예프(베이스)
예지바바.....마녀............사라 코놀리(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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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드보르작, 오페라 <루살카>, 2023년 로열 오페라 실황
우리 시대 '영혼의 디바' 아스믹 그리고리안, 그녀가 노래한 또 한 번의 루살카
아스믹 그리고리안은 201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살로메>를 통해 가장 주목받는 소프라노로 떠올랐다. 이미 발매된 2020년 테아트로 레알 실황에서 최고의 루살카를 연기한 그녀가 2023년엔 로열 오페라에서 그 감동을 재현했다. <루살카>는 '체코판 인어공주'이야기인데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곤 한다. 크리스토퍼 로이 연출의 테아트로 레알 실황은 숲과 궁전을 오페라하우스의 일부로 해석한 현대적 레지테아터 프로덕션이었지만, 두 젊은 여성(안무가 겸 동작연출가 앤 이, 연극연출가 나탈리 아브라하미)이 공동연출한 로열 오페라의 새 프로덕션은 전통적 연출처럼 보이지만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마법 같은 세미온 비취코프의 지휘, 데이빗 버트 필립(왕자)의 영웅적 음성도 빛을 발한다.
드보르자크는 오페라에 상당한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악곡에 비하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만년의 예외적인 작품이 있으니, 바로 국민주의 계열 오페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에 속하는 <루살카>다. 나무요정들과 물의 요괴가 펼치는 1막 도입부는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 개시부를 연상케 하며, 역시 1막에서 루살카가 부르는 '달에게 부치는 노래'가 가장 유명하다.
줄거리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같은 계열이다. 물의 요정 루살카는 인간 왕자를 사랑해 마녀 예지바바가 준 약을 먹고 인간으로 변신한다. 예지바바는 루살카가 인간이 되면 말을 할 수 없으며, 왕자에게 배신당하면 두 명 모두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왕자는 사냥 도중 루살카를 발견하고 그녀를 궁전으로 데리고 가지만 말을 못할 뿐 아니라 몸까지 차가운 루살카 대신 외국 공주를 택한다. 예지바바가 왕자를 죽이는 것만이 루살카가 원래 자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 알려준 가운데 후회한 왕자는 물가로 루살카를 찾아오는데...
아스믹 그리고리안(1981-)은 조지아(그루지아)와 리투아니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성악가요, 특히 부친은 러시아 키로프 오페라의 간판 테너였던 게감 그리고리안이다. 리투아니아에서 교육 받고 2011년 서구에 진출한 그녀는 차이콥스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에서 절찬을 받았고 현대극에서도 음악성을 발휘했다. 외모도 훌륭하고, 투명한 음색과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력을 지닌 이상적인 소프라노인 그녀는 201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살로메>를 통해 각광을 받고 그해에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드의 여성가수상을 받으며 세계적 소프라노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영혼을 담은 듯한 가창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정이은 글>
루살카 Op.114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1904)
〈루살카〉는 드보르자크가 남긴 가장 유명한 오페라이자, 체코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루살카〉는 카렐 에르벤과 보체나 네므코바가 만든 요정 이야기에 기초하여 야로슬라프 크바필의 대본으로 만들어졌다.
오페라 극장의 비올라 주자였던 드보르자크
드보르자크는 프라하의 여러 오페라 극장을 전전하면서 학생 시절 비올라를 연주했었다. 당시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모차르트, 베버, 로시니, 로르칭, 베르디, 바그너, 스메타나의 작품을 직접 연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이는 다시 드보르자크의 아홉 개의 오페라로 탄생하게 된다. 〈루살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오늘날까지도 자주 상연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토대로
에르벤과 네므코바의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크바필의 대본은 크바필이 드보르자크와 연락이 닿기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한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인어공주》와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é, 1777~1843)의 《물의 요정》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크바필은 1899년 완성된 그의 대본에 음악을 붙여줄 작곡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하는 몇몇 친구들로부터 수소문 끝에 드보르자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연락한다. 드보르자크는 에르벤의 작품에 줄곧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크바필의 대본을 꼼꼼히 살펴본 다음, 〈루살카〉를 작곡하기로 결심한다. 드보르자크는 매우 단시간에 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1900년 4월에 착수된 〈루살카〉의 작곡은 같은 해 11월에 완성되었다. 1896년부터 1897년 사이 에르벤의 네 개의 민속 발라드에서 영감을 받은 교향시들을 완성한 뒤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이 시기 드보르자크가 극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작업에 있어서도 하나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드보르자크 말년의 원숙미
〈루살카〉에서 드보르자크는 루살카, 그녀의 저주, 물의 요정, 숲 등에 대한 모티브를 사용하여 이들이 극에서 등장할 때 이 모티브를 통해 음악적인 통일성을 만들어낸다. 또한 다양한 극적 장치들, 특히 춤곡 섹션과, 희극적 장치들, 자연에 대한 묘사적인 음악들(숲과 호수)을 통해 그의 말년의 원숙한 음악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드보르자크 특유의 선율적 아름다움은 물론, 오페라에 어울리는 극적인 효과들과 뛰어난 오케스트레이션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특히 왕자와 루살카가 부르는 마지막 장면의 2중창은 이 오페라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인간과 요정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루살카〉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그러하듯 아름다우면서 슬프다. 슬라브 신화에서 루살카는 강이나 샘에 사는 물의 정령의 일종이다. 루살카는 슬라브 신화에서 긴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강변을 걸어가는 남자가 있으면 자신의 매력으로 유혹해서 남자를 강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종의 ‘사이렌’이다. 하지만 드보르자크의 〈루살카〉에서 원래의 신화에서 루살카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치명적인 매력’은 보다 ‘인간적인 매력’으로 바뀐다. 오페라 〈루살카〉는 물의 요정인 루살카가 자신의 사랑을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이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는 인간이 되기 위해 루살카가 감내해야 하는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즉, 루살카는 인간이 되면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는다. 또한 그녀가 사랑하는 왕자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면 왕자 역시 죽게 될 운명을 진다. 이러한 운명을 짊어지고 루살카는 인간이 되지만, 인간 세계에서 말 못하는 그녀가 겪는 것은 왕자의 배신이다.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간과 요정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드보르자크의 손을 통해 멋진 드라마로 새롭게 탄생한다.
1막 루살카의 아리아, ‘달에게 부치는 노래’(Song to the Moon)
1막에서 부르는 루살카의 아리아. 사냥을 하러 나온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 루살카는 달을 보면서 왕자님께 자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노래 부른다. 이 아리아의 오케스트라 전주는 극적인 방법으로 밤을 연상시킨다. 반주의 화성적 깊이는 완벽한 서정성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신비스러운 숲의 정경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만들어지는 달빛이 비치는 숲 속의 광경은 이 곡을 듣는 청중들에게 절대적인 고요함과 정적인 풍경을 상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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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3년 7월 26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드보르자크, 루살카
'체코어판 인어공주'로 불리며, 체코어의 풍부한 음악성을 즐길 수 있다
1901년 3월 31일 체코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
물은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원소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변화무쌍한 특성 때문에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정형으로 고정될 수 없으며 언제 자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특성을 지닌 탓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이나 강의 신들은 대개 남성이지만 그들은 모두 딸이나 여조카를 물의 정령으로 거느리고 있죠. 문화권에 따라 이들 물의 정령들은 멜루지네(Melusina), 운디네(Undine), 루살카(Rusalka)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니는데, 특히 유럽 낭만주의 시대 작가들은 이들을 소재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물처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는 [운디네]를 쓴 독일의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és, 1777-1843)가 있답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는 이 푸케의 [운디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물속에 가라앉은 종],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과 보제나 넴초바의 동화 등을 종합해 야로슬라브 크바필이 대본을 쓴 오페라 [루살카]를 작곡했습니다. 보헤미아의 숲과 물안개라는 신비로운 배경이 덧붙여진 이 작품은 1901년 3월 31일 체코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 되었습니다.
체코어 판 인어공주 이야기
1막이 열리면, 물가에서 요정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물의 정령 보드니크(베이스)를 놀려댑니다. 요정들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보드니크는 물의 요정들과 장난을 하다가 그 중 루살카(소프라노)가 우울해 보이자 이유를 묻지요. 루살카는 호숫가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인간세계의 왕자(테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보드니크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지만, 루살카는 ‘인간은 사랑으로 가득하다’라고 응수합니다. 루살카의 간절한 소원을 알고 깊은 시름에 잠긴 보드니크는 루살카를 마녀 예지바바(알토)에게 보냅니다.
루살카는 하늘을 떠도는 달님을 향해, 돌아다니다 혹시 왕자를 보면 자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달님에게'입니다. 마녀 예지바바는 물의 요정이 인간으로 변한 뒤 인간에게 배신당하면, 요정과 인간 둘 다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지요. 그리고 루살카가 인간이 되면 말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일러줍니다. 그런데도 루살카는 인간이 되기를 원하고, 예지바바는 마법의 약으로 그 소원을 들어줍니다.
사냥꾼들과 함께 사슴을 쫓던 왕자는 사슴이 갑자기 사라지자 이상한 예감이 들어 수행원들을 보내버리고 숲에 홀로 남죠. 그때 마치 흰 사슴이 변신한 듯 루살카가 홀연히 왕자 앞에 나타나고, 왕자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루살카를 궁전으로 데려갑니다.
2막은 왕자와 루살카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인 궁전입니다. 성안 사람들은 말도 못하는 이상한 신붓감에게 왕자가 곧 흥미를 잃을 거라고 예측합니다. 실제로 왕자는 루살카가 너무 차가운 여자라고 말하며, 불같은 열정을 표현하는 외국 공주(메조소프라노)에게 새롭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외국 공주는 왕자를 유혹하면서, 루살카가 벙어리라고 조롱합니다. 왕자는 결혼식 무도회에서 입을 의상을 준비하라며 루살카를 들여보내놓고, 그 사이에 외국 공주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고백합니다.
보드니크는 루살카의 서글픈 운명을 슬퍼하며 루살카를 찾아옵니다. 왕자의 배신을 알게 된 루살카는 궁전 밖으로 뛰쳐나오고, 보드니크에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서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이제 인간도 요정도 아닌 루살카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처지의 절망에 빠집니다. 왕자와 외국 공주는 정원에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루살카가 왕자에게 달려가지만 왕자는 그녀를 거부하고 외국공주는 루살카를 비웃어버립니다.
3막에서 루살카는 호수에 가서 마녀 예지바바를 다시 만납니다. 마녀는 단검을 주며, 왕자를 죽이면 다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루살카는 칼을 호수에 던지며, 자신이 불행하더라도 왕자는 행복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루살카의 자매들은 더 이상 루살카를 만날 수 없다며 그녀를 거부합니다.
루살카가 사라진 뒤 왕자는 깊은 병에 걸립니다. 성안 사람들은 모두 왕자가 마법에 걸렸다고 믿지요. 왕자는 숲으로 들어가 사슴을 찾다가 길을 잃고 루살카를 부릅니다. 루살카는 왕자에게 왜 자신을 배신했느냐고 서글프게 묻지요. 왕자는 루살카에게 용서를 빌며 제발 키스해달라고 애원합니다. 루살카는 자신과 키스하면 왕자가 죽게 된다고 대답하지만, 왕자는 죽음의 키스를 간절히 원하죠. 마침내 키스한 다음 왕자는 루살카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루살카는 그의 영혼을 신에게 맡긴 뒤 호수 속으로 내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생태계 보호 메시지를 담은 오페라
18세기에 오스트리아의 지배로 국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체코에서는 공식적으로 독일어를 교육하고 체코어를 홀대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다시 수도원을 중심으로 체코어 교육이 부흥하면서 연극과 오페라 분야에서도 체코어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교향곡 [신세계]로 유명한 드보르자크는 체코어로 쓰인 이 오페라에서 민속음악의 멜로디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루살카가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목관과 현악기로, 물의 정령 보드니크는 금관과 타악기로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살렸고, 바그너적인 라이트모티프(유도동기) 기법도 사용했습니다. 색채감이 돋보이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각별히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오페라들을 보면, 작가이자 작곡가였던 E.T.A. 호프만이 작곡한 [운디네], 알베르트 로르칭의 [운디네], 클로드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알렉산더 다르코미츠스키의 [루살카] 등,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운디네라는 이름은 물 또는 파도를 뜻하는 라틴어의 여성명사 운다(unda)에서 온 것으로, 운디네는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있지만 본질은 자연의 정령인 이중적 존재입니다. 푸케의 이야기 속 운디네는 기사 홀트브란트를 사랑하게 되자 그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홀트브란트가 운디네와의 약속을 깨고 옛 연인과 결혼하자 운디네는 배신한 연인을 키스로 죽입니다. 중세 스위스 자연과학자 파라첼수스는 운디네처럼 ‘자연에 가까운 여성’과의 결혼이 남성에게 이상적인 일이라고 평가했지만, 운디네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의 강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죠. 드보르자크의 여주인공 루살카는 운디네보다 더 여리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체코어 판 인어공주’로 불리는 이 작품은 오페라의 마이너 언어인 체코어의 풍부한 음악성을 즐길 수 있는 걸작인데요, 특히 2010년 뮌헨 오페라극장 실황을 담은 영상물은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연출로 유명한 마틴 쿠셰이의 명 연출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루살카]는 동화적 한계를 뛰어넘어 마치 베리스모 같은 적나라한 현실을 배경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친딸을 지하에 가두어 놓고 24년간 성폭행해 자식들까지 낳게 한 오스트리아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는데요, 물의 요정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보드니크를 바로 이 아버지로, 또 인간세상으로 나가려는 물의 요정 루살카에게서 언어를 빼앗고 그녀를 보내주는 여자 마법사 '예지바바'는 폭력적인 남편 앞에 무력한 어머니로 설정했습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긴 하지만, 대본 가사와 음악과 연기가 매 장면마다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천재적인 연출입니다.
한동안 증기기관차에 열광하기도 했지만 평생 자연과 일치된 고요한 삶을 사랑했다는 드보르자크는 이 오페라의 음악에서도 작품에 깃든 상징성보다는 자연을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물에서 태어난 루살카에게 자연은 어린 시절의 행복을 뜻하는 친밀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물의 정령 보드니크는 루살카의 하소연에 따뜻한 베이스 음색으로 응답해 줍니다. 그러나 인간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으려는 자연의 노력은 인간의 부족한 소통능력과 이기심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죠. 그 때문에 이 오페라는 현대에 와서 '생태계 보호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자연을 거부하고 훼손하면 인간은 죽음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여름이 해마다 더워지는 요즘,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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