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없지만 내용이 좀 잔인해요.
비위가 많이 약하신 분들은 그냥 큰 제목만 읽으시면서 내려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반일 감정 조성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 조상들이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똑똑히 아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 생각해서
제 미니홈피에만 올려놓았던 것을 옮겨옵니다.
혹시 문제 되는 거 있으면 쪽지 보내주세요.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드실테니 빨간 글씨만 읽으셔도 상관없어요~~
● 인간을 통나무 '마루타'로...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 의해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였던 '생체실험(生體實驗)'은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우리와는 무관한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생체실험의 잔혹상이 속속 드러나도
적잖은 조선인들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음이 밝혀지고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생체실험', '마루타', '일본군 731부대', '이시이 중장의 만행' 등으로 불리는
인간말종적인 범죄행위의 실상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소련 하바로프스크 군사재판소는 1949년 12월 25일부터 30일까지
일본 관동군 제731부대 총무부장과 제1부대장(세균연구 담당), 제4부장(세균제조 담당)을 지낸
가와지마 소장에 대한 범죄행위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의 공판 기록인 '세균 전용 병기의 준비 및 사용의 혐의로 기소된 전
일본군의 사건에 대한 공개재판서류(1950년 모스크바 외국어 도서출판소 발행)'는
스미르노프 연방 검사의 가와지마 소장 심문 내용을 담고 있다.
가와지마 소장은 종전 후 소련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스미르노프 검사 "세균전 준비가 일본이 아닌 만주에서 시행된 것은 무슨 내용인가?"
가와지마 소장 "만주는 소비에트 연방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므로 전쟁을 개시할 경우 만주에서 세균전 병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주는 세균전 병기의 연구에 관한 실험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편리하다."
스미르노프 검사 "만주에서의 실험 실시의 '편의성'이란 무엇인가?"
가와지마 소장 "만주가 대단히 편리했던 것은 '피실험 재료'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스미르노프 검사 "'피실험 재료'란 무엇을 말하는가? 실험용으로 부대로 보내진 인간인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스미르노프 검사 "실험의 희생자를 호칭함에 잇어 부대에서는 어떤 은어가 사용되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것은 '마루타'라고 불렀다.'
스미르노프 검사 "그 사람들은 부대내 감옥에서 각자의 성명을 그대로 가진 채 감금되어 있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아니다. 그들은 성명 대신 번호로 불리고 있었다."
스미르노프 검사 "그 사람들은 결국은 누구나 죽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스미르노프 검사 "세균 전문학자인 당신은 전쟁의 방법으로서 살인적인 전염병을 만연시키는 일이 가공할 재난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난 이해하고 있었다."
스미르노프 검사 "페스트 및 기타 전염병의 만연으로 초래되는 가공할 재난이 중립국까지도 엄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해하고 있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난 이해하고 있었다."
가와지마 소장의 심문조서는 제731부대에서는 '생체실험'한 희생자들을 '마루타'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마루타'는 '껍데기만 벗긴 통나무'란 뜻으로 한자어 '환태(丸太)'인 일본식 단어이다.
인간을 생체실험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인간이 아닌 통나무처럼 대한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 정권의 악마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731부대의 특설 감옥에 갇힌 포로들은 단순히 '마루타'로만 불리고,
각종의 실험을 기록할 경우 성별에 따라 '암컷 마루타', '수컷 마루타'라고만 서류에 적었다.
이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은 없고 실험재료인 '마루타'만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 국가 권력 차원의 '인간도살' 프로젝트를 실시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생체실험 대상은 주로 중국인, 몽고족, 조선인, 소련인이었다.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 최강의 부대라던 관동군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
관동군 산하 731부대가 각국의 반일 인사들을 체포하여
산 채로 실험재료로 삼아 죽인 숫자는 대체로 3천여명에 달한다.
만주 하얼빈시 남방 20km지점에 악독한 세균전 비밀연구소,
뒷날 관동군 방역 급수부 본부가 창설된 것은 1933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부대의 성격을 은닉하기 위해 '가모 부대'라고 부르다가 '도쿄 부대'로 이름을 바꾸고
1941년 8월 비익명을 '만주 제731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곳이 731부대의 본부이고 소련과 만주의 국경지대인 하이달, 쑨우, 린커우, 하이린에 각각 지부가 설치되었다.
731부대를 통칭 이시이 부대[石井部隊]라고 부르게 된 것은
조직의 대부분이 부대장인 이시이[石井四郞] 중장의 창안과 관리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부대는 6km3의 광대한 특별군사지역에 비행장, 3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막사, 발전소, 철도 진입선, 학교 교육시설,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감옥,
각종 연구실과 교련용 조마장, 대강당, 운동장, 심지어 신사까지 설치되었다.
전율할 인간도살의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악마의 소굴'인 731부대는
당시 극비 중의 극비사항으로서
"설사 우군기라 할지라도 그곳 상공을 무단 비행하는 항공기는 무조건 격추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고,
이 부대는 전용전투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731부대에는 17개의 반으로 짜여진 가공할 '연구', '작업반'이 구성되었다.
2600여명 정도의 요원들은 주로 탄저균, 페스트균, 콜레라균 등
20여 종류의 병원체를 중심으로 세균병기의 연구 개발에 종사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의 의과대학이나 민간연구소에서 차출한 학자, 연구원들로 신분은 군속, 기사였다.
이 '731 악마부대는 관동군의 헌병대, 특무기관, 여기에 소속된 하얼빈 보호원에서 체포해온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 반일지사와 그 가족들을 부대 안의 특별감옥에 수감하고,
생체실험의 '재료'로 이용하였다.
●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린 '실험재료'
제731부대에는 항상 2백명에서 3백명 정도의 '마루타'가 '비축'되어 있었다.
이들은 생체실험 목적에 따라 각기 독방에 수용되거나 3~10명 정도가 같은 방에 수용되었다.
'마루타'들은 바이러스, 곤충, 동상, 페스트, 적리, 비장, 탈저, 콜레라, 병리, 혈청, 티푸스,
결핵, 약리, 세균제조, 리케차, 식물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팀의 연구 필요에 따라 분류, 수감되었다.
수감되면서 이미 국적이나 성명이 사라지고 그 대신 번호에 따라 호칭되었다.
많은 한국인에게는 강력하고 살상력이 빠른 세균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무려 31종류의 '실험'이 자행되었다.
예컨대 고속원심분리기를 사용해 사람의 생피를 짜는 착혈실험,
인간의 피와 말의 피를 서로 교환해 보는 인마혈(人馬血) 교환실험,
각종 병원체가 어떻게 인간의 체내에 스며들어 질병을 일으키는가,
어떤 경로로 인간은 동상에 걸리는가 등이 '실험'되었다.
또 각종 독가스를 살포하여 어떤 상황에서 숨지는가를 실험하고
살아있는 인체를 해부하여 질병이나 충격을 가하는 등 그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아무 것도 안 주고 물만 먹여도 60~70일이나 버티는 '마루타'를 관찰하고,
전혀 물을 안 주고 빵만 먹이면 6~7일째 가서 퉁퉁 부은 채 피를 토한다는 것을 실험했다.
또 인체의 70% 이상이 수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루타를 한증막에 넣고 쪄 수분을 빼는 실험도 감행했다.
그때 체중이 20~30% 줄어든다는 체중기 눈금도 확인했다. 70kg 마루타가 15kg으로 되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살아 숨쉬는 인체에다 페스트, 콜레라, 파상풍균을 주입시켜 관찰하고,
탄저균을 피부, 음식물, 호홉기관 등 3개의 감염경로로 나눠 인체에 침투시킨 뒤
이 세균이 인체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다른 잡균이 들어오기 전에 생체해부를 했다.
표본번호 '403'으로 기록되어 있는 34세 남자의 경우, 코로 균을 침투시킨 뒤 3일 후 해부됐으며
폐, 췌장, 비장, 간장 등 각종 장기들에 대한 조사를 했다.
구체적인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요시무라반의 동상 실험은 대개 동절기(11월~3월)에 실시되었다.
겨울의 밤은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것이 예사였다.
요시무라반은 밤 11시나 12시 무렵 '마루타'를 특별처치실로 끌어내서 냉수로 채운 통에다 마루타의 손발을 적셨다.
인공적으로 동상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손발이 젖은 마루타를 건물 밖으로 끌어내서 혹독한 영하의 추위에 일정시간 세워놓으면 동상은 틀림없이 일어났다.
동상이 발생하면 마루타를 다시 실내로 끌어들였는데 이번엔 치료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 동북부를 침략한 관동군의 병사들 가운데는 극한 속의 작전근무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자가 적지 않았다.
제731부대에서는 동상의 원리와 치료법의 연구, 개선을 서둘렀고
극한 상황 아래서도 세균 감염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자료도 수집하고 있었다.
임신 중에 체포, 연행돼 감옥에서 아들을 낳은 여자 마루타 한사람은 갓난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떤 '실험'에도 응했다.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매일처럼 간수에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731은 어미 마루타가 낳은 자식은 결국 '새 끼' 마루타일 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731에서는 마루타가 재료이므로 그 자식도 모르모트와 마찬가지로 '사육'되는 것이었으니
물론 어미와 자식은 함께 죽음을 당했다.
대원들의 죽음에는 영안실이 준비돼 있었으나 마루타 모자에게는 번호가 기록된 카드와 소각로가 있을 뿐이었다.
어떤 때는 10여명의 마루타를 엉덩이만을 노출시켜 가스 회저균의 강제 감염 실험이 자행되었는데
가스 회저란 전장에서 청상이나 폭렬상을 입은 병사가 걸리는 지독한 병이다.
손발의 조그만 상처라도 불결한 채로 방치해 두면 흙속에 있는 가스 회저균이 침입하여 6~8시간내에 발병한다.
매우 높은 고열과 동시에 균독으로 인해 곳곳에 근육의 회저가 시작된다.
심한 악취와 부패로 인한 근육의 변색, 가스의 발생과 격동 끝에 환자는 몸부림치다 죽어가고 만다.
당시 이 병을 막으려면 손발의 절단 외엔 방법이 없었다.
노출된 마루타의 엉덩이를 향해 가까운 거리에서 가스 회저균으로 오염된 유사 폭탄이 폭발했다.
무수한 파편이 마루타의 엉덩이에 파고들었다. 마루타에 명중했는가를 확인하려고 대원들은 낱낱이 '점검'했다.
그후 마루타들을 '특설감옥'으로 돌려보내어 발병부터 사망하기까지를 상세히 관찰하여 기록되었다.
아무런 응급조치도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에 응급치료 같은 것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731부대가 원했던 것은 가스 회저균이 탐욕스럽게 마루타의 엉덩이를 좀먹고 파헤치는 과정이었다.
며칠 후 마루타는 살이 썪는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사망했다.
소년의 나이는 12세, 13세 정도로 판단되었다.
전신에 마취가 퍼졌을 무렵 소년의 신체는 알코올로 깨끗이 닦여졌다.
해부대를 둘러싼 다베반 반원 중에서 K요원이 손에 메스를 쥐고 한 걸음 소년 앞으로 다가섰고
흉곽을 따라 Y자형으로 메스가 들어갔다.
코헬감지로 지혈된 피부에 핏방울이 하나 둘씩 맺히며 하얀 지방이 드러났다.
생체 해부가 시작됐다.
마취된 소년의 몸 안에서 장, 췌장, 신장, 위 등 각종 장기가 차례로 꺼내져 양동이 속에 따로따로 던져 넣어졌다.
다른 대원이 그 장기들을 곧바로 양동이에서 집어내 포르말린액이 든 용기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소년의 체액이 묻은 메스가 번들거렸다.
피거품이 쏟아지는 속에서 K요원은 능란하게 메스를 놀리면서 소년의 하반신에서 장기들을 드러냈다.
소년의 하반신은 텅 비었다.
그 장기들은 포르말린액 속에서 여전히 꿈틀꿈틀 수축운동을 되풀이했다.
위를 떼어내고 폐까지 절제하자 소년은 머리만이 남았다.
그것을 미나또반의 한 사람이 해부대 위에 고정시켜 놓은 뒤에 귀와 코 사이에 메스를 가했다.
두피를 벗겨낸 뒤에 톱으로 두개골을 8각형으로 잘랐다.
뇌가 드러나자 한 대원이 포르말린 용기 속에 넣었다.
해부대 위엔 소년의 사지와 공동이 된 신체의 형태만이 남았다.
이틀에 세명꼴로 죽인 마루타의 시체는 '시체소각로'에서 소각되었다.
제731부대는 모든 전쟁 범죄의 흔적을 말소하기 위해 시체를 항상 소각로에서 태웠으며
거기서 나오는 뼈 조각은 '골총'이라 불리는 구덩이에 버렸다.
소각로의 굴뚝은 높았으나 역시 풍향에 따라 악취가 맴돌았다.
마루타의 시체는 똑같이 처리됐으나 한가지 예외의 사태가 있었으니
그것은 1945년 8월 9일 시작된 제731부대의 철수에 따른 마루타 처리의 실수였다.
부대에서 실시된 생체해부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표본 채집이다.
인간이 전염병에 걸린 때에 심장은 어떻게 되는가?
간장의 변색은 어떻게 되는가?
감염의 진행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가 등
각 '장기'의 변화를 똑똑하게 파악하는 데는 생체해부가 제일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질병 감염의 표본 채집만이 아니었다.
한 가지 약물을 투입했을 때 시간 경과나 내장의 많은 변화와의 관련을 조사하는 것도 생체 해부의 장점이었다.
그 때문에 마루타에는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물질이 주입되었으며
마루타의 정맥에 공기를 주사하면 신체의 각 기관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기능을 잃게 되는가?
공기 주사는 죽음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보다 상세한 경과에 대원들도 흥미를 가졌다.
또 마루타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경우 몇 시간 몇 분만에 죽게 되며,
신체의 각 부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도 실험했다.
마루타를 커다란 원심분리기에 넣고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실험은 마루타가 죽을 때까지 되풀이해서 실시했다.
해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오줌이나 말의 혈액을 신장에 주입하면 인간의 신체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원숭이나 말의 혈액과 인간의 혈액을 섞는 실험도 추진됐다.
마루타 하나로부터는 얼마만큼의 혈액을 짜낼 수 있는가?
펌프를 사용한 착혈 실험이 나날이 실시됐다.
연기를 다량 폐 속에 불어넣으면 어떻게 되는가?
또 연기 대신 독가스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독가스나 미란성 물질이 위에 들어갈 경우는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가?
이런 것을 제731부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실행에 옮겨졌다.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誠一] 저술 '악마의 731부대'」
● 반일운동가들 대부분 마루타로 희생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야만적인 생체실험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희생 숫자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 하얼빈시 평방구에 있는 '침화일군 731부대 죄증진열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균전 부대로 특별수송된 피해자 1203명 중에는
중국인 1173명, 소련인 16명, 조선인 7명, 몽골인 7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에는 조선인 심득룡(沈得龍)과 이청천(李淸泉)도 끼어 있다.
반일첩보활동을 해온 심득룡은 1943년 10월 중국 동북지구의 일본군 제86부대 소속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 부대는 대련 지방에서 반일지사들을 체포하는 것이 주임무인 특수부대였다.
심득룡은 부인, 중국인 사진사 2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 국제반제정정보부 소속 조직원들이었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을 받고 대부분 731부대로 수송돼 세균 실험 재료로 쓰여진 후 살해되었다.
중국 중앙문서관과 대련시 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일본 헌병대 관련 기록문서에는 피해자 명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청천(李淸泉)은 중국인들과 손을 잡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44년 7월 해납미시에서 일본군 헌병대원에게 체포되어 731부대에 넘겨져 희생되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마루타의 희생물이 되었다.
소련 극동재판소는 피해자의 숫자가 약 3천여명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군의 생체실험은 제731부대나 제100부대에서만 자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지바현 카시와시에 사는 재일 한국인 정정모씨는
"만주의 731부대가 주로 중국인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한데 비해
일본 국내에서는 제국대학의 의학부가 중심이 돼 조선인들을 실험대상으로 썼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가나가와대학의 쓰네이시 게이이치 교수는
"당시 일본의 학계를 주도하던 동경제국대학과 경도제국대학 의학부 교수들이
731부대 배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전후에도 생체실험에서 얻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일본 의학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행세해 왔다."고 주장한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정정모씨는 1940년 강제 징용돼 일본에 끌려온 지 한달만에 탈출,
반일지하운동을 하다가 동지들과 함께 모리오카에서 체포되었다.
정씨는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났지만 선배 두명은 풀려나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의과대학에 끌려가 생체실험을 당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일본에서 지하운동을 하던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조선인이 체포돼 형무소에 끌려가면 생체실험 대상이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한다.
정씨는 특히 그들이 생체실험 대상자가 됐을 뚜렷한 증거로
1948년 요코하마에서 열린 전범재판의 구주대학 생체해부사건의 공판정에서 직접 들은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1945년 구주지방에 불시착한 미국인 B29 전투기 조종사 8명을 구주대학에서 생체해부하고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군이 진주한 후 본격 수사가 이루어져 관계자 전원이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 재판정에는 소련인 검사가 배석했는데 그가 미국인 검사에게 한 진술이 인상에 깊이 남았다.
"일본 국내에서 미국인뿐 아니라 조선 사람들도 생체해부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 문제도 같이 조사하자."는 제의였다.
그러나 이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는 모리오카의 보은사라는 절에 6백여개 정도가 있었다는 무연고 조선인들의 위령비가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조선인의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무연고자비가 있는 일대의 땅은 모리오카 시내에 잇는 이와테대학 소유로 의과대학에서
생체실습한 동물과 사람의 뼈를 묻는 곳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정씨가 갔을 당시 그곳에는 나무 푯말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조선인과 동물의 뼈가 묻혀 있다.'라고 씌여 있었다고 한다.
이 푯말은 나중에 없어졌다.
● 윤동주(尹東柱)도 생체실험 대상이 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노래했던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도 생체실험에 희생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동지사대학에 유학중이던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한 혐의로
1943년 7월 체포되어 1945년 2월 26일 27세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했다.
윤동주가 생체실험에 희생됐을지 모른다는 의혹은
그의 시체를 인수하러 갔던 숙부 윤영춘에게 송몽규가 했다는 증언에서 비롯된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송몽규는
"저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렇게 됐다. 윤동주도 이 주사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또 숙부 윤영춘은
"당시 형무소 내의 시약실 앞에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약 50여명의 조선 청년들이 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일본인 고노에 에이지는
"윤동주의 죽음과 그 3개월 뒤에 일어난 구주대학 해부사건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윤동주의 죽음을 구주대 생체해부사건과 관련지어 문제를 제기했다.
● 마루타 자료 미국에 넘겨 처벌 모면
전후 일본 도쿄에서 2년 6개월 동안 총 818회에 걸쳐 진행된 전범재판에서 731부대원은 단 한명도 처벌되지 않았다.
이유는 종전 후 미국이 생체실험 표본 및 실험 데이터 등 731부대의 실험자료를 넘겨받는 대가로
전범재판에서 생체실험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은 731부대의 인체실험을 조직적으로 은폐시킨 반면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731부대 요원들이 의학계 등에 진출해 생체실험에서 얻은 결과들을 활용해왔다.
종전 50년만에 풀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기밀문서 '페스트균 실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새의 깃털과 벼룩을 이용한 세균전이 수행됐는데,
그 방법이 731부대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담은 '한국전쟁에서의 세균전 보고서'가 말해주듯이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천인공노할 만행인 '인간 마루타'의 실험결과가 한국전쟁에서 다시 사용되었음을 알려준다.
“731부대, 자식 앞에서 위안부 생체해부”
아........읽다가 토할뻔...............우 ..........ㅠㅠㅠㅠㅠㅠ진짜 사람이 할짓이 아니다 이건;;
이 모든일은 과거로 잊어버리라고? 제정신인거니? 도대체 과거는 과거다 라고 지껄이는 인간들보면 정말 답이 안나옴 ..
일본은 진짜 사람의 종족이 아닌 것 같아요
쓰레기들... 숨쉬지마라 산소아깝다
역겹다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갖고 노는구나. 과연 과거의 만행을 미국의 국민에게 저질렀었다면 너넨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제가 이해가 안가는건 왜 우리는 이런글들을 읽고난후 "그래 일본은 만행을 저질렀군." 하고 마는거죠? 이걸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외국사람들에게 퍼트려야 되지 않나요? 이런글을 읽고난 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가 오히려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