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강을 다녀와서
아내는 새벽미사에 독서를 한다고 성당에 갔다. 가스버너에 물을 올려놓고 조용조용 라면을 끊인다. 과제준비를 하느냐고 새벽에 잠든 아들 녀석이 혹시 잠을 깰까 조심조심하며 대충 요기를 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가 출발할 즈음에 파악된 인원은 47명이다. 모두가 서로가 이름도 부르고 욕을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고교 동창생들이다. 평소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을 오를 때는 고작 20여명에 불과하던 인원이 휴일 이른 아침에 모이는 시각에도 갑절을 넘게 인원이 불었다. 행선지가 소금강(小金剛)인 탓이리라!
버스는 진부IC를 나와 진고개에 올라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고 내리막길을 한참을 굴러 청학동 주차장에 멈췄다. 15분쯤 걸으니 포도가 끝나고 자연이 시작된다. 숲은 울창하다. 굴피 집 짓는데 쓰인다는 굴참나무며 갈참나무도 지천이고 드문드문 보이는 금강소나무는 곧게 높이 치솟아 하늘에 닿은 듯하다.
정으로 다듬은 옥소반(玉小盤)처럼 예쁜 십자소(十字沼)에 담긴 물빛은 투명한 옥빛으로 곱다. 급경사의 험준한 산세, 기암괴석, 바위로 층을 이룬 절벽, 폭포가 있는가하면 맑은 소가 그 밑에 이웃하고 있으니 또 다른 금강산이 아닐 수 없다. 일만 이천 봉만 빼고 말이다.
오죽하면 7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갔을까? 작은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물줄기의 일렁임이 연꽃과 같다하고 온갖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가 무궁하니 목욕은 물론이요, 비경 속에서 눈팅도 하고 삼림욕도 하였을 것이다.
넓은 바위가 보인다. 몇 십 명이 앉아도 충분하다. 율곡이 글벗들과 밥을 지어먹었다 해서 ‘식당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그냥 자리를 뜨기가 아쉽다. 밥은 못해먹더라도 좀 마시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일배 일배 또 일배 배낭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갑자기 사나운 물소리를 접한다. 세 구비를 돌아야 전체를 볼 수 있다. 구룡폭포란다. 눈도 가슴도 귀도 시원하다. 수량도 풍부하고 폭포의 길이도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궁금하다. 저 폭포 위에는 소가 몇 개나 있을까? 8개가 있다면 상팔담(上八潭)이라고 불러야 될 텐데.
드디어 오늘 행선의 종착지인 만물상에 도착했다. 바위 하나하나가 다른 형상을 나타낸다. 바위들의 형상이 기기묘묘하다. 그중하나는 007제임스 본드 섬에서 본 파인애플 모양의 형상도 있다. 이것으로도 족한데 사방이 층암절벽에 갇혀있어 이곳을 한층 절경이게 한다. 계속 오르고 싶지만 백운대, 삼폭포, 광폭포, 낙영폭포, 그리고 노인봉은 다음 기회로 미루려고 한다.
화강암이 차별침식 되어 이루어낸 장관, 율곡이 금강산에 견주어 소금강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 도처에 층암절벽이 있어 계곡 위에 구름다리가 놓여 길을 옮기는 이곳, 폭포와 담소가 기암괴석과 잘 어울려 오감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바위를 어루만지며 흐르는 물길은 부드럽던 어머니의 손길을 회상케 한다.
첫댓글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하여주신 산악회 임원님들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보는 눈이 다르고 느낌도 새심한 양명석의 글을 읽으니 내가 멋진 곳을 다녀왔다는 자부감을 느낍니다.
우리 명석 친구 주옥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친구들 다 멋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장시간 버스를 타고 피곤한 몸으로 산을 오르면서 이런 시적인 구상을 한 양명석회원은 지금이라도 문단에 이름을 올려야 할듯. 다녀온 곳이 생생하게 기억되네요.
세세하게 쓴 산행기 잘 봤습니다. 소금강의 내력 설명 잘 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음이 청결하고 깨끗하면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틀리지요. 이글을 통하여 양 명석 동문의 마음이 깨끗하고 청결함을 느끼게 되네요.
교훈, 영송, 그리고 홍주님! 준비하시고 이끌어 주시고 찰깍해주시고 정말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수로 님! 함께 가셨으면 좋은 추억을 만들 번 했는데 참 아쉽게 되었습니다.
기백님! 다 큰 사람을 그렇게 칭찬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감사합니다.
한폭의 수채화 그림을 보는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근홍님! 소금강의 명승은 '書不盡 畵不得'입니다.
역시 명석하신분의 글귀라 좋습니다. 안가봐도 눈에 잡힐듯 선한 장면이 떠오름은 뛰어난 문장력이 아닐까 늘 좋은 글 깊이 감사드립네다.
익균! 본지 3일이 지났군요.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