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하늘이 감빛으로 물드는 저녁
산새들은 둥지에 들며 지저귀는데
숨차게 기어오른 버스는
먼지만 부려놓고 지나가버린다
문패가 달아난 담장위에
늦게 온 통지문 한통
고딕으로 선명하게 찍힌
복지란 말도 잠시만의 위로였던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허망한 것들
허기를 견디다 지쳐 지붕이 내려앉고
저녁별도 가위눌림으로 일시에 입을 다물어
안부를 물어볼 누구 하나 없다
어쩌면,
나 또한 폐허된 빈집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기다림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고양이 뒤를 쫓아
바람도 발을 들고 지붕위로 지나간다
노송(老松)을 껴안다
와룡(臥龍)선산에 낙락장송 한그루
무성한 가지가 높다란 누마루를 짓고
하늘의 푸름을 층층이 끌어당기는
고목(高木)의 뿌리에 앉으니
누군가 낮은 음성으로 말을 걸어 왔지만
이따금, 바람이, 그 말을, 끊어놓고, 귀를 막아
말길을 잃은 채 선잠에 들었던가,
오래된 뿌리가 가지 끝으로 팔을 내뻗어
머리를 만지며 연신 말을 걸어왔지만
가지 끝까지 오르지 못한 나는
가지에 매달린 속뜻을 읽지 못하고
본시의 가풍마저 벗어난 죄의 미생(未生)으로,
어린 날,
모토(母土)의 흙 한 삽, 햇살 한 뼘
이 언덕을 떠나
개천을 나는 꿈도 아닌 불면의 뒤척임,
와락! 노송을 껴안고 물었네
온 생애가 담긴 침묵을 어떻게 펴내야 할지,
길이 끊긴 중도의 행각에서
쇠뜨기처럼 무릎 꿇린 지난 세월을
숨어 피 닳는 울음을 우느니
진토(塵土)에 묻힌 말씀,
여생의 힘을 모아 꽃향기 맑게 피우리란 다짐에
풍채도 우람한 노송이 몸을 젖히며
푸르른 달을 어깨위로 넌지시 올려준다.
참았던 눈물 같은, 잘 익은 상념 같은 둥근달을,
봄 생각
김장영
봄이라는
거울 속에서
배시시 웃는 꽃이 보인다
봄이라는
거울 속에서
움 트는 새싹도 보인다
봄이라는
거울 속에서
삐약 삐약!
병아리 울음소리도 들린다
봄이라는
거울 속에서는
밤에도 선명하게
무지개가 떠 있다
봄이라는
거울 속에서는
멀리 있는 고향 마을도
훤히 보인다!
꽁초 사랑의 비극
김장영
쪼옥 쪼옥 빠끔 빠끔
그렇게도 좋으냐
좋아서 빨았으면
뒷처리도
신사답게 해야지!
손톱으로 싹둑 잘라
공중으로 핑~
땅바닥에 휙 내던지고
지지 밟다 못해 틈새마다 쑤셔 박아
아직 빨던 침
마르지도 않았는데
그 뜨겁던 사랑
빨리도 식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