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노사지현(奴斯只縣) 혹은 노질지(奴叱只縣) 지역으로서 신라의 삼국통일 후 경덕왕 16년(757년) 전국을 재편성할 때 유성(儒城)으로 개명된 이후 오늘날까지 그 지명이 이어지고 있는데, 경덕왕은 이곳을 유성현으로 개칭하면서 종전 공주목 관할에서 지금의 회덕이 치소인 청주목의 관할인 비풍군의 영현으로 삼았지만, 그 후 고려 현종 9년(1018) 전국을 재편성할 때 다시 공주 관할로 하면서 공주의 속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이던 1914년 3월 대덕군 유성면은 1973년 유성읍으로 승격되었는데, 1983년 1월 대전시로 편입되면서 유성출장소가 되었다가 1989년 1월 유성구청으로 승격되었다.
유성이란 지명의 유래는 노사지현 주변에 6개의 성이 산재해 있었는데, 그 6개의 성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육성(六城)이라고 부르던 것이 유성으로 변천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 일찍부터 선비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어서 유성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유성 지역에서 온천이 처음 발견된 것은 백제시대부터라고 하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곳에서 노모와 함께 살던 7대 독자 외아들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온몸에 부상을 입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자, 노모가 아들의 병구완을 위하여 사방을 헤매다가 흰 눈이 세상을 뒤덮은 추운 겨울 어느 날, 무심코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웅덩이에서 날개를 다친 학이 날개깃을 적시며 상처를 치료하다가 날아가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그 물을 떠다가 아들을 목욕시켰더니 상처가 말끔히 낫게 된 것이 시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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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랫동안 ‘좋은 약수터’ 정도로만 알려졌던 유성온천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선초에 펴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으로 태조 이성계가 무학 대사에게 새 도읍지를 물색하도록 명령한 뒤, 계룡산 신도안을 순행할 때 5일 동안 이곳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또, 태종이 전라도 임실에서 열린 군사훈련을 직접 참관하는 강무임어(講武臨御)로 가던 중 이곳에 묵으면서 목욕했으며, 세종 임금도 훈민정음을 연구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다가 안질과 피부병을 앓다가 이곳에 와서 고쳤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 초부터 임금이 묵고 갈 정도로 훌륭한 온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는 유성온천이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04년 6월 경부선 대전역과 1913년 호남선 서대전역이 세워지자, 신도시 한밭대전에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한 이후부터다.
예부터 조선인들은 시원한 샘물을 약수(藥水)로 선호했지만, 온천수(溫泉水)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개항이후 한반도에 대거 이주하면서 유성온천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1907년 유성에 정착한 일본인 스즈키(鈴木松吉)가 유성천 남쪽인 지금의 봉명동에 온천수를 개발한 뒤, 1910년 대전온천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건물을 짓고 1913년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그 후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읍에서 대전으로 이전되면서 교통의 길목에 위치한 유성온천에 찾는 발길이 더욱 늘어났는데, 1932년 공주 갑부 김갑순도 지금의 유성관광호텔 자리에 온천장을 세웠다. 이것은 한국인이 세운 첫 온천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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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관광호텔(왼쪽)과 리베라호텔. |
해방 이후인 1958년 현재의 호텔 리베라의 전신인 만년장이, 1966년에는 최신식 유성관광호텔이 등장했으나, 유성 온천은 일부 특수층의 관광휴양지와 신혼여행 코스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온천욕이 대중화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13개 관광호텔 등 2백여 개의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는데, 부근에 계룡산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대전국립묘지, 유성 컨트리클럽 등이 있어서 유성은 온천욕만이 아닌 보양, 요양, 휴양 등을 위하여 찾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유성온천이 국내의 다른 온천과 다른 점은 평야지대에 위치해서 교통이 편리하고, 지리적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지층인 시생대 말기의 화강암지대 때문이라고 한다. 지하 200m 이상 깊은 화강암 단층의 파쇄대에서 생성된 온천수가 단층의 균열층을 따라서 용출되는데, 1959년 보건복지부 중앙화학연구소가 검사한 온천수의 성분은 라듐(Ra) 약간, 황(SO4) 0.0011ppm, 칼슘(Ca) 0.14ppm, 질소(N) 0.01ppm 등 약60여 종이 함유되어 있다고 했다.
수온은 평균 42~55℃ 정도이고, 중금속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ph 7.5~8.5의 약알칼리성 단순천이어서 각종 피부병· 신경통·관절염·위장병·당뇨병·부인병·소아마비·두풍(頭風)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유성에 굴착된 온천공은 모두 35개이지만 현재는 29개 공에서만 취수한다고 한다.
해가 갈수록 온천수가 줄어들자 정부에서는 온천수의 적절한 보호와 효율적인 이용을 위하여 1981년 유성지역을 온천지구로 지정하고, 또 1994년 8월에는 봉명동을 비롯한 유성온천, 엑스포과학공원 일대를 유성관광특구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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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욕체험중인 시민들의 모습. |
유성구청에서는 구청으로 승격된 1989년 온천을 발견하게 된 기원이 된 전설의 학(鶴)을 형상화한 7m의 대리석으로 만든 온천 탑을 제막하면서 유성온천문화축제를 처음 개최했는데, 올해에도 지난 5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동안 ‘2003 유성온천문화축제’를 벌였다. 특히 올해에는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건강도시연맹 가입을 기념하는 건강도시 선포식으로 축제를 마쳤다.
한편, 유성구청은 2007년 10월 유성 지역 최초의 온천공(溫泉孔)이 보존되어 있는 온천수 공원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 수 있는 야외 온천족욕 체험장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무료 제공함으로서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얻고 있다.
그것은 유성구청이 2012년 3월 주민센터 등을 통해서 추천을 받은 19곳을 대상으로 주민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엑스포다리 야경, 국립대전현충원, 충남대 벚꽃길, 유림공원, 유성온천 족욕체험장, 유성 5일장, 수통골, 국립중앙과학관 등 8곳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선정되었으며, 그중 국군휴양소인 계룡스파텔과 흥인장 호텔 사이의 도로변에 있는 야외 온천 족욕체험장이 가장 인기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족욕체험장은 약500여 평(1742㎡)에 지붕을 갖춘 사각형 탕과 완전 노천 상태인 원형탕 등 2개의 족욕탕에 50여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데, 웰빙시대를 맞이하여 시민들은 물론 계룡산 등 인근을 찾은 관광객들로부터 유성온천의 명성은 더욱 높다.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41°c 100% 천연 온천수에 발을 담글 수 있어서 매일 평균 500여명이, 주말에는 1000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코스다.
그러나 유성 지역은 점점 온천수가 고갈되고 있으며, 온천욕과 숙박 위주의 휴양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대학과 원룸, 주상복합 등 환경변화로 유흥과 숙박 위주의 도시색깔로 바뀌면서 유명한 호텔들도 경영난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휴·폐업하고 있다. 운영 중인 숙박업소들도 연중 세일을 하는 실정이어서 앞으로 숙박업 중심의 호텔 경영에서 세미나, 회의 등을 개최하는 컨벤션기능으로의 변신을 추진하고 있는데, '테마형 종합휴양시설 조성사업'은 수십 년째 진전이 없어서 유성 발전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첫댓글 매년 05월초에 "이팝나무꽃"이 필때이면 축제를 하는데 구경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