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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23. 05. 27(토)
□ 곳 : 「은티마을」~구왕봉~지름티재~희양산~봉암사~주차장
□ 벚꽃산악회
□ 참여 : 모두 44명(?)
□ 날씨 : 흐림+비
□ 길 : 돌길+밧줄 구간+흙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3. 05. 27(토) 10:30~17:22(6시간 52분, 쉰 시간 포함)
□ 일러두기
1. [ ] 표시는 [ ] 앞에 있는 말은 쉬운 말, 또는 흔히 쓰는 말이 경우가 많다. [ ] 안에 있는 말은 같은 뜻을 가진 또 다른 토박이말이거나 드물게 쓰는 말, 한자말, 어려운 말. 또는 들온말[외래어]인 경우도 있다.
※ 보기 1) : 뚫다[개척(開拓)하다]⇒쉬운 말로는 ‘뚫다, 한자말로는 ‘개척(開拓)’을 뜻하는 말이다.
※ 보기 2) : 지나가다[통과(通過)하다]⇒‘지나가다’는 토박이 말, ‘통과(通過)하다’는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 보기 3) 쇠여물[소여물]⇒‘쇠여물’과 ‘소여물’은 혼용하며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쇠여물’로 썼으나 한글 맞춤법을 고치면서 ‘소여물’도 표준어로 채택된 것으로 안다.
※ 보기 4) 깃[리본]⇒순수한 우리말 ‘깃’과 들온말 ‘리본’은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52 나온 데[출처]
○ 「한국 400산행기 등산길 안내」 김형수 지음, 깊은솔 펴냄⇒‘김형수’ 로 적음
○ 푯돌에 적힌 산 높이⇒‘푯돌’로 적음
○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대사전」⇒‘표준 국어대사전’으로 적음.
□ 간추린 발자취(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10:30 은티마을 나섬.
○ 11:06 뚜렷한 길에서 왼쪽 산으로 접어듦.
○ 12:00~12:13 구왕봉(879m-‘푯돌’)
○ 13:05 지름티재
○ 13:10~13:30 바위 아래에서 점심밥.
○ 13:42(?) 밧줄 구간, 대기
○ 14:15 백두대간 길, 성터 ․ 희양산 갈림길, 턱, 밧줄 구간 끝남.
○ 14:25~14:35 희양산(999m-‘푯돌’, 998m-‘김형수’), 머묾.
○ 16:20 봉암사
○ 17:22 봉암사 주차장, 산행 끝냄.
□ 줄거리(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3. 5. 27(토) 버스는 인제대 역에서 거의 3시간을 달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에 닿았다.(10:23)
길 나설 채비를 한 다음 길을 나서(10:30), 23분쯤 뒤 길 푯말(→구왕봉 3.0km, ←희양산 3.6km, ↓은티마을 0.8km)이 있는, 희양산과 구왕봉 갈림길에 닿았다.(10:53).
여기서 대원 25명쯤은 왼쪽 희양산으로 갔고, 나머지 16명쯤은 ‘부산무지개’ 님이 길잡이가 되어 오른쪽 구왕봉 쪽으로 들어섰다. 가파른 비탈을 조금 올랐더니 거의 길이 없어지고, 마치 등산로를 뚫고[개척] 가는 꼴이 되었다.
희양산 ․ 구왕봉 갈림길에서 1시간 7분쯤 뒤 구왕봉(879m-‘푯돌’)에 닿아(12:00), 사진을 찍으면서 머물렀다. 구왕봉은 거의 편평한 봉우리이고,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둘레가 거의 보이지 않는 봉우리이다.
봉우리가 이런 형국이면 대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매력]이 적다.
13분쯤 머문 뒤 구왕봉을 나서(12:13) 조금 뒤 희양산이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지는 전망대에 닿았다.
희양산은 눈(雪)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또는 흰말[백마(白馬)]를 연상시키는 하얀 화강암으로 된 통 바위산이다. 이렇게 독특한 형상을 가진 덕분으로 “동 ․ 서 ․ 남 세 면”《여기까지 ‘김형수’에서 따옴》을 백두대간이나 주흘산 등 여러 곳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바위 위, 바위 옆에서 희양산을 실컷 눈에 담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곳을 나서 조금 더 내려가면 가파른 내리막과 까다로운 바위 구간이 나오는데 그 구간 가운데 한 곳에서도 한층 가까워진 희양산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번 산행에서 굳이(?) 구왕봉을 오른 것은 희양산 거의 서쪽 면, 미끈한 희양산 속살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두 전망대에 닿았을 때는 이제 막 비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안개도 끼지 않아 희양산을 보고 사진을 찍는 데는 지장을 받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거의 남쪽으로 봉암사가 내려다 보였다.
희양산 구경으로 한껏 눈이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길을 나섰다.
기울기[경사도] 급한 바위 구간을 밧줄을 잡고 내려서야 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밧줄이 있는 구간을 오르내릴 때는 한 사람이 오르거나 내려가고 나서 다음 사람이 밧줄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약한 밧줄에 몇 사람이 한꺼번에 몸을 실으면 밧줄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원들은 그 원칙을 잘 지켜 안전하게 바위 구간을 내려설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늦게 지름티재에 닿았다.(13:05)
지름티재 옆 나무 쉼터[정자]에서 대원들이 비를 피해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지름티재 왼쪽은 은티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봉암사 쪽으로 갈 수 있으나 그쪽은 나무 울타리로 막아놓고, 울타리 아래쪽에는 간이 초소 같은 것을 지어 평소 스님들이 이곳에서 등산객의 출입을 막는다.
지름티재는 내가 열 번도 넘게 오갔던 익숙한 길이다.
우리가 끼어들어 밥을 먹을 틈이 없는 것 같아 조금 더 가기로 했다.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큰 소나무가 서 있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조금 피하면서 밥을 먹을 생각을 했다.
그 소나무에 이르기 전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왼쪽이 비스듬하게 생겨 제법 큰 공간이 있었다. 그 아래 들어가면 비를 맞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에 터를 잡았다.
바위 아래 들어갔더니 비를 완벽하게 피하여 점심을 먹을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 바위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했다. ‘명당 중의 명당’에서 편안하게 점심밥을 먹었다. 그곳은 갑자기(?) 산상 최고의 레스토랑 내지 카페로 탈바꿈했다.
같이한 분이 고맙게도 맛있는 것을 많이 준비해 왔다. 진한 향기를 풍기는 커피를 내렸다. 마치 고급 찻집이나 카페 테라스에서 비 오는 날 바깥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희양산 언저리 바위 아래서 비를 맞고 서있는 나무를 보았다.
비는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운치 있게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잠깐이나마 희양산 정기를 받으며 낭만을 즐긴 시간이었다.
비 오는 날, 조용한 희양산에서 그런 호사를 누리다니... 행복하고 즐거웠다.
점심밥을 먹고 있는데 다른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이 40명쯤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곧 있을 밧줄 구간에서 많이 정체가 될 것 같아 조금 늦게 출발할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밧줄 구간을 지나갔을[통과(通過)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점심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13:30)
그런데 웬걸 몇 걸음 가지 않아 앞에 갔던 사람들이 밧줄 구간에 밀려 대기하고 있었다.
바위 구간은 내린 비에 바위와 밧줄이 모두 젖어 있었다.
전에 백두대간 길을 걸으면서 이 구간을 나는 12~13차례쯤 올랐던 것 같다. 몇 명씩 또는 희양산을 고집하면서 혼자서 오르기도 여러 번을 했다.
내게는 아주 익숙한 구간이다.
평소에 바위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벗은 앞선 사람 몇을 제치고 바위 구간을 가볍게 올랐다. ‘고수의 경지’에 이른 그는 여유만만이었다.
비에 젖은 바위와 밧줄이 미끄러워 내가 조금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의 거침없고 대담한 발걸음은 이내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날렵하게 바위 구간을 오른 벗이 얼마나 고맙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점심밥을 먹고 길을 나서 거의 45분쯤 뒤 바위 구간을 완전히 올랐다. 이 구간은 성터 ․ 희양산 갈림길이다.
구왕봉~지름티재~밧줄 구간~성터 ․ 희양산 갈림길 까지는 백두대간 길이다.
여기서 오른쪽 희양산으로 향했다.
희양산에 닿기 전 바위 구간 두 군데에 섰다. 그 바위는 내게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바위이다. 그 바위에 서면 언제나 구왕봉 쪽, 봉암사 쪽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곤 했다. 돌이켜보면 여러 번 올랐다.
이날은 바위는 짙게 낀 안개로 말미암아 어느 곳에서도 구왕봉과 봉암사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희양산은 날씨가 좋았으면 동북쪽으로 백화산, 주흘산 따위가, 희양산 조금 못 미친 곳에서는 서쪽으로는 장성봉, 악휘봉 따위를 볼 수 있는 곳인데, 이번에는 그 산들을 볼 수 없었다.
희양산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들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산악회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 사람씩, 또는 무리지어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여러 동작을 펼치며 사진을 찍었고, 한 사람이 사진을 찍고 나면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시 푯돌 옆에 돌아와 3~4번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는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평한들 소용이 없으니 그저 기다렸다.
10분쯤 뒤 희양산을 나섰다.(14:35)
봉암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순간 착각하고 몇 발을 옮기다가 네 해 전 걸었던 일을 떠올리고 바른 길을 찾았다. 우리 산악회 깃이 걸려 있었다.
백두대간 길은 여러 번 걸어보았으나 은티마을~희양산~봉암사 구간은 2019년 5월에 이어 4년 만에 두 번째로 걷는 길이라 잠깐 헷갈렸던 것이다.
벗은 바쁜 와중에도 꽃을 찍기에 바빴다. 비마저도 그 부지런함은 말리지 못했다.
철조망이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길은 이날 사람들이 걸으면서 흙이 많이 패어 있어 마음이 아팠다.
희양산을 나서 1시간 45분쯤 뒤 봉암사에 닿았고(16:20), 1시간 쯤 뒤 봉암사 주차장에 닿아(17:22) 산행을 마쳤다.
희양산에서 하산 길. 경북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홍문정 쪽으로 내려올 때 안개가 끼어 끝내 희양산 멋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백운대와 마애석불엔 들르지 않았다. 산 위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한 탓이었다. 아쉬움을 가슴에 담았다.
평안함과 편리함에 젖어든 사람들이 차를 절 바로 앞까지 몰고 오가는 바람에 길은 주차장으로 변했고, 이른바 ‘공회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유독 가스’를 들이마셨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뜻 깊은 부처님 오신 날, 유명한 절을 두 발로 걸어서 오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터인데...
아침부터 마칠 때까지 산행을 이끌어주신 오리온 님과 부산무지개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추억이 서린 주막집
자세한 내용은 『그밖에』 '흘러가는 생각을 붙들고' 란 참조
꽃이 핀 개옻나무
꽃이 진 쪽동백나무
희양산, 구왕봉 갈림길
민백미꽃
참꽃나무겨우살이
흔히 '꼬리진달래'라고 한다
당삽주
'창출' 이라고도 한다
산앵두나무
봉암사가 보인다
정금나무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겁 많았던 소년. 바위 구간을 즐긴다.
나는 어릴 적 겁이 아주 많았다.
넉넉지 않은 가정이었지만 식구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듬뿍 받고 자라서였는지...
의학적으로 말하면 간이 작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고 자란 마을에 고려 시대 절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 절은 신라 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2021년 초 형님이 돌아가시고 49재를 지내려 그 절에 갔다.
그때 기록을 보았더니 창건 연대가 고려 시대로 후퇴해 있었다.
자세한 연유를 불교 조계종이나 군청 등 관계 기관에 확인해 보지 못했다.
그 절은 옛날에 제법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 일제가 군청을 짓기 위해 그 절 몇 채를 헐어내고 아름드리 목재를 반출해 썼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 절에 가면 대웅전과 몇 채의 건물이 있었고, 그 옆에 남새밭이 있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그 남새밭 터가 일제가 건물을 헐기 전에는 절 건물이 서 있었던 곳이라 했다.
악독한 놈들. 종교시설을 허문 것도 그렇지만, 그들이 군청을 멋지게 지은 것도 조선 백성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백성에게서 더 많은 수탈을 자행하고, 우리 민족과 말글을 효과적으로 말살하고, 저들의 통치를 위해서 그런 짓을 했으니 어릴 때 들어도 분하고 괘씸한 일이었다.
그 절에 들어가려면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지나야 했다. 어릴 적 험상궂게 생긴 사천왕이 눈을 부라리며 죄지은 듯한 작은 사람들을 발로 밟고 칼 같은 것을 꼬나들고 있는 모습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내가 괜히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나를 노려보는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
사천왕문을 나서면 곧 종루를 만나는데, 종루 마루 아래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 종루 옆으로도 길이 있기는 했지만 종루 밑을 지나면 대웅전을 바로 맞닥뜨릴 수 있는 구조였다.
종루는 제법 큰 건물이었다. 그 건물 한쪽에 청동 종이 달려 있었고, 넓디넓은 종루에는 굵은 널빤지를 켜서 마루를 깔아놓은 구조였다.
그 마루 몇 군데에는 무슨 연유였는지 모르지만 20~30cm쯤 되는 틈이 있었다. 마치 악어가 먹잇감을 잡아먹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형상이었다.
겁이 많았던 나는 그 종루를 마음 놓고 걸어 다니지 못해 쩔쩔맸다.
혹시라도 내가 발을 헛디뎌 그 아가리 같은 틈에 발이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사촌 형님들, 큰집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5촌 조카, 내 또래조차 그 종루 마루를 겁 없이(?) 잘도 걸어 다녔다. 나는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중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그 종루 마루 틈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다.
종루가 있었던 건물 한 쪽 구석에는 길이 15~20m, 둘레 5~6m쯤 되는 커다란 나무통이 있었다. 그 통은 쇠여물[소여물]을 주는 여물통처럼 한쪽에 깊은 홈을 판 모양이었다.
그 나무통은 옛날에 절에 스님들이 많이 기거할 때 무쇠 솥에 밥을 지어 이 나무통에 퍼 담아 식사에 제공하거나 초파일 같은 때 신도들에게 밥을 나눠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일설에는 자연재해가 잦았던 옛날 큰 홍수가 나면 그 나무통을 배처럼 물에 띄워 사람들이 타고 피신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 나무통은 종루 한쪽에 홈이 파진 쪽이 옆으로 향하도록 눕혀놓았다.
조무래기들이 높이 2m 가까운 나무통 위를 거침없이 오르내리면서 장난을 칠 때도 나는 그 나무통에 잘 올라가지 못했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 때문이었다.
또래둘이나 형뻘 되는 사람들이 산에 나무하러 많이 다닐 때에도 우리 집에는 작으나마 산이 따로 있었고, 나무를 해 올 일이 있으면 아버지께서 직접 가시거나 형님이 했기 때문에 나는 나무하러 많이 다니지는 않았다. 내가 산에 나무하러 가는 것은 아버지께서 시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따라 나도 나섰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무는 제법 겁 없이 타고 오르내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종의 ‘고소 공포증’ 같은 것은 있었다.
그랬던 내가 산에 다니면서 특히 백두대간 같은 길을 여러 번 걸으면서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내리면서 바위나 나무 따위 물체, 물건에 오르는 공포심이 많이 없어졌다.
전문 바위 타기 선수들에게는 먼발치에도 못 미치지만 밧줄 따위를 잡고 바위를 오르내리는 것을 자꾸 하다 보니 요즘은 밧줄을 잡고 바위에 오르는 일이 크게 두렵지는 않고, 그렇다고 아무 겁도 없는 것은 아니고, 적당한 수준으로 겁이 없어진 것은 맞다. 어느 때는 적당히 즐기기도 하고, 밧줄이 내걸린 구간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모르기는 해도 백두대간 대야산 직벽 구간 등읋 여러 번 오르내려서 겁이 줄어든 것 같다.
꾸준한 훈련이 사람을 단련시킴을 터득했다.
2. 희양산
내가 백두대간을 여러 번 하였던 어느 산악회는 하루에 걷는 구간을 짧게 잡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면 버리미기재~이화령 구간을 두 번으로 나누어 ① 버리미기재~장성봉~은
티재~주치봉~구왕봉~지름티재~은티마을 ② 은티마을~희양산~이만봉~곰틀봉~백
화산~황학산~조봉~이화령 구간으로 나눠 진행했다.
버리미기재~이화령 구간을 한 번에 진행하면 희양산을 한 번만 오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희양산은 백두대간 길에서 조금 비켜나 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 구간을 두 번으로 나눠 진행하면 나는 두 번 다 희양산을 갔다 왔다. 대원들이
희양산을 회피하면 나 혼자라도 꼭 오르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희양산을 12~13차례 오른 것 같다.
거기에 더해 2019년 5월 초파일을 기해 백두대간 길이 아닌 은티마을~지름티재~
희양산~봉암사 구간을 걸었고, 이번에 두 번째로 걸었다.
그러므로 희양산은 열댓 번 오른 셈이다.
희양산은 “동북쪽인 백화산, 운달산, 주흘산” 등지를,
서쪽으로 “장성봉, 악휘봉, 민주지산” 등지를 바라볼 수 있다.
《여기가지 ‘김형수’에서 따옴》
물론 남쪽 봉암사 쪽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복리 홍문정에서도 허연 바위 모습을
볼 수 있다.
화강암 통 바위로 된 희양산은 독특한 형상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희양산을 삼면에서 볼 수 있어 아름답다.
그런데 막상 희양산에 오르면 조금 실망하기 십상이다. 봉우리가 거의 편평하고 둘
레가 확연한 편이 아닌 것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희양산은 나를 이끄는 매력을 지닌 산임에는 틀림없다.
3. 은티마을
은티마을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에 속하는 마을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백두대간 길을 걸으면서 은티마을만 10차례 이상 들렀다.
이번에 자세히 보았더니 전에 우리가 막걸리를 마셨던 ‘주막’(酒幕)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당시에 그 집 건물 안팎은 산행 깃[리본]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겨울에 그 건물 안에 들어서면 따뜻한 나무를 때는 난로가 있어 언 몸을 녹힐 수
있었고, 걷는데 지친 등산객들이 막걸리로 속을 데우기도 했다.
술이 약한 나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면 금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했다.
난로 열기는 내 얼굴을 더욱 불콰하게 만들었던 일이 엊그제 같다.
그 주막(?)이 번성하기를 빈다.
4. 봉암사
봉암사는 “불교 조계종 특별 수도 도량(道場)”으로 “초파일을 전후한 약 한 달 가
량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여기까지 ‘김형수’에서
따옴》
이 절에서는 스님들이 하안거(夏安居), 동안거(冬安居)를 하는 수도(修道) 도량이다.
하안거(夏安居)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동안거(冬安居)는 “음력 10
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여기가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따옴》각각 3달
동안 수련을 한다.
자기 아픔과 고통을 동반한 이런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스님들은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 깨달음을 깨달음만으로 그치지 말고 죽비를 들어 세상의 부조리와 정의롭지 못
한 사회 현상을 고치는 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5. 아차 하는 순간 벌어진 일 ... 웃을 수도 없는 일
글을 준비하는 도중에 졸음이 몰려 왔다. 졸릴 때 잠간 눈을 붙이는 것이 좋다. 토
막잠이라도 좋다.
졸린 눈을 치떠 보았으나 눈은 이내 감기고 만다.
그렇게 졸든 나머지 컴퓨터에서 엉뚱한 기능을 두드리는 바람에 써 놓았던 글이 다
날아가고 말았다. 이럴 때 어찌된 셈인지 esc 기능으로도 복구하지 못했다.
중간에 ‘저장’을 한 것은 살아남았고, ‘뒤에 하지’ 하고 미룬 것은 다 날아가 버렸
다.
애고, 아까워라...
내 책상은 언제나 종이와 볼펜 책들을 에넘느레하게 늘어놓기 일쑤여서 아내가 타
박을 하기도 한다. “정신 시끄럽게 늘어놓았다...”느니 하면서...
어수선한 가운데 기억을 더듬어 다시 글을 쓴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가래나뭇과 갈래: 굴피나무[구종나무]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두릅나뭇과 갈래 : 두릅나무[참두릅, 총목(楤木)], 음나무[개두릅나무, 엄나무, 아목(牙木), 해동(海桐)]
○ 때죽나뭇과 갈래 : 때죽나무, 쪽동백[쪽동백나무, 정나무, 옥령화(玉鈴花]
○ 마편초과 갈래 : 누리장나무, 작살나무[자주(紫珠)]
○ 목련과 갈래 : 함박꽃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쥐똥나무
○ 범의귓과 갈래 : 매화말발도리[댕강목, 삼지말발도리, 해남말발도리]산수국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 옻나뭇과 갈래 : 개옻나무, 붉나무
○ 운향과 갈래 : 광대싸리[호자03(楛子)ㆍ황형02(黃荊)], 초피나무[제피나무]]
○ 인동과 갈래 : 병꽃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서어나무
○ 장미과 갈래 : 개복숭아나무, 곰딸기, 국수나무, 산딸기나무[산딸기], 산벚나무, 찔레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산앵두나무, 산철쭉,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참꽃나무겨우살이[꼬리진달래],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굴참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참나무], 신갈나무
○ 층층나뭇과 갈래 : 층층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나무
○ 다랫과 갈래 : 다래나무[다래, 다래너출, 참다래나무, 등리(藤梨), 등천료(藤天蓼)]
○ 으름덩굴과 갈래 : 으름덩굴
○ 포도과 갈래 : 머루[머루나무, 산머루, 목룡(木龍)]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떨기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식물
○ 볏과 갈래 : 조릿대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단풍취, 당삽주[용원삽주, 참삽주, 창출], 씀바귀(?), 우산나물. 은대난초[은대난]
○ 박주가릿과 갈래 : 민백미꽃≒흰아마존
○ 백합과 갈래 : 둥굴레, 원추리
○ 앵초과 갈개 : 까치수염
○ 장미과 갈래 : 돌양지꽃
○ 제비꽃과 갈래 : 노랑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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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구왕봉, 희양산만 15번은 탐방하신거니 이 코스는 눈감고도 다니시는 코스겠습니다.
한길선배님 산행기는 옛날 선배님의 기억과 에피소드, 회원님들에 대한 배려, 식물도감 등이 막라되어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글 쓸때, 저도 한번씩 저장을 제때 못해 날려버리곤 한답니다.
멋진 산행기와 사진들 즐감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을 과대평가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기억을 조각들을 얼기설기 맞추다 보니 빈틈이 많습니다.
문서 작업할 때 자주 저장을 눌러야겠습니다.
발리 더 많이 하려다 보니 시간을 아끼려 하게 되고, 그러다 저장을 못해서 큰 것을 잃고 말 때도 있습니다.
고맙숩니다.
오늘도 산행기에 감동합니다. 수고하셨고 즐감 했습니다👍
잡담 수준의 말들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즐겁고 귀중한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희양산 구왕봉 대간길에 추억이 많이 있어신지 ,상세한 설
명과 추억의 기억이 새록새록생각이 나는 길인것 같습니다 ~~ㅎㅎ
덕분에 숨어있던 에피소드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저도이길에 추억이 하나 있지요~ㅋㅋ
버리기미재에서 넘어오는 무박산행중에 새벽해뜨기전에 구왕봉오는중 어찌나 졸음이 오는지 후미대장님의배려로 평평바위에서 비상용판초우의깔고 대간꾼 다섯명이 모여 10분간 코골며 자면서 이구간을 통과한 기억이 납니다!!!
어찌나 달콤한 산행중 취침인지
아직까지 달콤한 추억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길선배님의 추억의 희양산~봉암사 산행기 잘보고갑니다 ~~
로프잘타는 벚꽃님!!
누구인지 잘알겠습니다 ~~ㅎㅎ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잘한 얘기를 늘어 놓아 부끄럼이 앞섭니다. 힘들었던 길도 기뻤던 길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얻어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느낍니다. 장황한 넋두리 이해해 주세요. 백두대간 길 집단 노숙은 극히 드문 일이고 듣도 보도 못힐 진풍경이었을 것 같습니다. 백두대간 역사에 기록될 일인 것 같은 낭만적인 풍경. 손뼉을 칩니다. 쉽지 않고 많은이들이 공포를 느끼는 빗줄 구간을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소화해낸 전문가에 못지 읺은 분을 눈 앞에서 보면서 기분 좋았습니다. 산행 이끄느라 수고 하셨고, 고맙습니다.
한길님 ! 한길님 산행기는 언제보아도 배울점이 많습니다 우중산행에 절벽사이로 로프구간 와중에 산우님들 사진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 부끄럽지요.
비가 내리기는 했어도 많이 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길 선배님 굿은 날씨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촬영까지.편히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월출산에서 애장품을 잃고 상심하셨을 텐데 잘 극복하였으리라 믿습니다.
산에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한길(박종래) 경포대삼거리에서 배낭이 발견되어 경포대탐방센터에서 택배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5.29 12:20
@힘들어도 헐~~
배낭이 경포대에서 힘들어도님 품으로 돌아오는 갑네요!!ㅎㅎ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낭소중히 아끼고,더욱더애착이 가겠네요~~
반달곰돌이가 안가져가서 다행입니다 ~~!!!ㅋㅋ
@오리온 오리온님 ^^넘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겐 소중치 않고 또 누구에겐 소중한 물건 이지만 이 배낭 으로 인해 주위에서 안타까워 해 주시는 님들이 많으셔서 설령 찾지 못했더라도 그리 서운하지 않았을 꺼예요 앞으로 더 열씨미 산행 하라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과대평가가 아니고
있는그대로의 평이 아닐까요?
개인생각이 때론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는다고 전 봐요
우중산행 수고하셨구요
듣는것보다
전 글로 보는게 좋아요
벌씨로 들어면 잊어버리네요
이일을 어쩌지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5.29 12:27
선배님 덕분에 걱정 내려 놓고 편안하게 걸으면서 선배님이 후미 그룹을 챙기시고 있어서 빗물에 젖은 밧줄에 암름까지 벗꽃님들 모두 안전하게 마무리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선배님의 섬세한 배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야 뭐 한 게 있습니까?
모두 대장님이 앞장서서 길을 열고, 대원들을 안전하게 인도하고, 대원들 움직임 하나까지 사진에 담은 열정과 열성 덕분입니다.
늘 밝고 부지런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한길(박종래) 선배님 칭찬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부산 무지개 지금 하고 있는 대간 길 잘 마무리하고 산에서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카페에 들어오면 습관처럼 늘 그림에 먼저 눈이가는데 언제부터인가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산행기에 푹빠져 시간가는줄모르고 즐감하고 있어요 !
여러가지로 바쁘고 귀챤을법도 한데 덕분에. 많이배우고
마음힐링잘하고갑니다.
선배님 항상고맙습니다.
못난 아우 사진도 잘찍어주셨네요 ! 고맙게 잘담아가요. 꾸벅 !
내용이 너무 부실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 투성이라 늘 망설이게 됩니다.
부실한 내용을 과하게 칭찬하니 부끄럽고, 좀 더 객관성을 띤 내용이 되도록 노력은 하겠습니다마는 쉽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진도 선명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건강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글과 사진, 열공모드로 잘 보았습니다.
전 아무래도 공부머리가 없는가 봅니다.
나무 얘기는 봐도 봐도 잘 모르겠어요ㅠ
그러나 후미 스토리 부분에서는
눈이 반짝 떠집니다.
학창시절, 선생님 수업시간엔 졸다가
옆길로 새는 얘기들을 땐 절로 잠이 깨던 때랑 같네요.😅
산행 때마다 이 것 저 것 일러주시며
공부시켜주시는데 익히는 노력이 부족하여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래도 부족하다 버리지 마시고
델꼬 다니시며 반복시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비오는 데
무거운 카메라 메고
신통찮은 모델 사진 찍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누구나 뱃속에서 세상의 이치와 사물을 알고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란선 님은 충분히 명석하고 기억력이 좋습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나 천재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라 할지라도 한 번 들은 것을 곧바로 기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몇 번의 반복된 학습이 기억으로 지식으로 저장되고 남을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의 두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겠지요. 한 번 들은 모든 이야기를 뇌가 다 저장한다면 저장 용량을 초과하여 정작 필요하고 귀중한 사물이나 사실을 저장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가르침을 줄 만큼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정된 분야라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남들보다 조금 먼저 정보를 접한 것 뿐으로, 같이 공부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사진기야 많이 무겁지 않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훌륭한 모델 분을 모셔 놓고 사진 찍는 사람 기술이 뛰어나지 못해 멋진 사진을 찍지 못함입니다.
고맙습니다.
대단한 열정과 박식함은 능히 글을 몇 번 읽기만 하면 다 알게 되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희양산을 열 번이 넘게 다녀오신 걸 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좋아하는 산은 수시로 간다고도 하지만 집에서 먼 산은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대단하다고 할 만한 게 차고도 넘치시네요. 멋지십니다.
늘 안산즐산하십시오~
백두대간 길을 몇 번 걷다 보니 우연히 횟수가 불어난 것입니다. 제가 다닌 산악회에서 버리미기재~이화령 구간을 한 번에 주파할 거리인데 (1) 버리미기재~구왕봉~지름티재~은티마을을 한 구간으로, (2) 이화령~백화산~은티마을을 (거꾸로) 또 다른 한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다 보니 남들은 지나치는 희양산을 꼭 들렀던 것이 횟수가 10번을 넘기게 된 것입니다.
등산 전문가는 전혀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남들보다 발품을 조금 더 팔아 쌓은 횟수 일 뿐입니다.
괜한 이야기를 적어 대단한 실적이 있는 것처럼 과시하는 꼴이 되어 죄송합니다.
저는 아는 것도 별로 없는 그저 평범한, 아니 평범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 뿐으로 과찬의 말씀이 부담스럽습니다.
'맨발의 등산인' 들장미 님! 해박한 식물 지식과 산에 대한 열정 존경합니다.
이번에 벗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바위+밧줄 구간을 포기한 용기,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길(박종래) 저야말로 과찬이십니다. 아는 것이건 다녀온 것이건 뽐낸다고 해서 받아들여지진 않더라고예. 그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지예. 한길님의 해박한 지식에 비하면 초보수준임을 저도 알고 있답니다. 식물에 대해 관심은 있어 찾아보곤 하는 수준입니다.
한 번뿐인 기회였다면 아쉬웠겠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예. 산이 주는 기쁨만큼 벗에게서 얻는 위안도 크기에 함께할 수 있으면 그리하는 것이랍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들장미 들장미 님 처럼 넓은 마음을 갖지 못하고 전에는 제 위주로 행동한 일이 많았습니다.
제법 오래 된 일인데, 마라톤을 했다는 벗과 우연한 기회에 지리산 이어걷기[종주]를 했습니다. 벗이 마라톤을 했다는 그의 말만 믿었습니다.
마라톤을 제법 했다고 하는 사람도 마라톤과 장거리 등산은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는 있었는데 그 때는 벗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자꾸만 발걸음이 쳐지는 벗을 기다리기 여러 번. 연하천 대피소에서 그를 기다려 "세석대피소에서 내대리 거림 쪽으로 하산하라"고 당부하고 저는 계획된 구간을 다 걸었습니다.
비난 받아 마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가 했다는 마라톤은 '10.5km'인가 하는 '단축 마라톤' 몇 번이 고작이었다 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지리산 종주에 참여시킨 것이나, 중간에 그를 혼자 내려보낸 나의 매정함. 지금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때는 지독한 '산 욕심'으로 제 욕심을 정당화(?) 했지만..
지금 같았으면 내 욕심은 버리고 '벗 우선주의'를 택했을 것인데, 제 행동과 들잗미 님의 행동이 달라, 제 지난 행동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