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특별한 것은 눈이 있기 때문이다. 눈 쌓인 야외 환경은 다른 계절과 차이가 매우 크다. 평소와 달리 눈 쌓인 부드럽고 미끄러운 바닥은 활동에 많은 제약을 준다. 이런 곳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스키와 썰매, 스노슈즈 등을 사용해 눈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해 왔다. 지금은 이런 설상 운행 장비를 이용한 아웃도어 스포츠가 발달하며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
산악스키는 눈 쌓인 겨울 산을 오르기 위한 일종의 등산장비다. 두 발로 걸어서 가기 어려운 깊은 눈도 쉽게 지나갈 수 있어서 체력 소모를 덜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뿐만 아니라 설사면을 활강해 하산할 수 있어 산행 시간 단축도 가능하다. 여러 모로 산악 지대에서 유리한 장비다.
대한산악스키협회가 주최한 산악스키 일반강습회 교육 모습.
산악스키는 겨울이 길고 만년설이 있는 서구 사회에서 발전했다. 아무래도 눈 많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이들에게 요긴한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악스키를 활용해 등산을 즐기는 것이 쉽지 않다. 넓은 개활지가 있는 산이 드물고 숲도 울창해 산악스키가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산악스키에 적합한 설원이 형성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특히 수목한계선이 없는 남한 땅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넓은 눈밭은 드물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대관령 일대의 목장과 고랭지채소밭의 개활지가 겨울이면 많은 눈이 쌓이며 설원으로 변한다. 이 지역은 국내에서 산악스키를 즐기기 가장 좋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산악스키협회가 주최한 산악스키 일반강습회 교육 모습.
불행하게도 올해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며 대관령의 적설량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기상 이변은 이번 겨울 전 세계적으로 겪는 일이다. 유럽에서도 날씨가 따뜻해 여러 건의 알파인스키대회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올해 겨울은 산악스키를 배우고 즐길 만한 환경이 조성되기 힘들다. 그러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듯이 찾으면 길은 있다.
지난 1월 9일과 10일 이틀 동안 강원도 정선 하이원스키장에서 산악스키 일반강습회가 열렸다. 대한산악스키협회(수석부회장 이철주)가 주최하는 이 강좌는 산악스키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획된 것으로 기초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행사에는 교육생 24명과 강사 등 총 42명이 참가해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슬로프를 오르고 있는 김시현, 김윤선씨(뒤).
이틀 동안 계속된 강습회는 모두 하이원리조트의 스키슬로프에서 진행됐다. 적설량이 적어 자연설이 쌓인 설원에서 실습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리프트 시설이 있고 바닥을 단단하게 다진 스키장이 오히려 기초 교육장소로 더 유리하다. 둘째 날 새벽 업힐 강의 때는 리조트의 협조로 슬로프에 조명을 밝혀 교육이 원활하게 진행됐다. 초보 산악스키 동호인 교육을 위한 배려다. 협회는 향후 이런 강습회 등을 통해 산악스키 종목의 저변 확대를 꾀할 계획이다.
Up Hill 한겨울 추위를 이기는 오름짓의 예술
1 스틱을 이용해 바인딩의 힐 리프트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2 분리형 바인딩은 신발에 맞춰 사이즈가 고정되어 있다. 3 업힐을 위해서는 뒤축 바인딩을 풀어야 한다.
한겨울 새벽 5시는 완벽한 밤이다.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은 시간. 바람에 흔들리는 별빛은 여전히 초롱초롱하다. 하지만 산악스키를 배우려는 이들의 열정은 꺾을 수 없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재킷으로 중무장한 이들이 스키를 신고 슬로프를 걷는다. 묵언수행 중인 수도승처럼 조용히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이 경건해 보일 정도다.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슬로프를 올라 산꼭대기를 밟는 경험은 특별합니다. 힘은 들지만 마음속까지 정화되는 해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밖으로 나섰지만,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차가운 공기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이 아무리 추워도 등줄기가 땀에 젖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경사가 조금씩 가팔라지자 숨이 차오르며 몸이 뜨거워졌다. 조명등에 비친 옆 사람의 이마에서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겨울산은 남다른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추운 산정에서 보는 장엄한 설경과 상고대의 감동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산악스키의 세련된 몸짓까지 더해지면 산을 오르는 행위가 하나의 예술이 된다. 호흡을 조절하며 자신만의 템포로 비탈진 눈밭을 꾸준히 오르다보면 무아지경을 경험하기도 한다. 산악스키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업힐’의 중독성이다.
“산악스키가 산비탈을 오를 수 있는 것은 특별히 고안된 장비 덕분입니다. 알파인 스키와 달리 바인딩 뒤축이 떨어져 보행하기 쉽게 만들었고, 바닥판에 스킨을 붙여 전진은 가능하지만 뒤로 밀리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동킥턴 업힐 중에 킥턴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연속동작).
대한산악스키협회 강정국 교육이사와 강사들은 이른 새벽부터 교육생을 이끌고 하이원리조트 정상을 오르며 산악스키 업힐 교육을 진행했다. 이동 중에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세와 보폭 등을 알려 주며 슬로프를 올랐다.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바인딩의 힐 리프트(Heel Lift)를 사용해 발목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매우 중요한 산악스키 기술인 킥턴(Kick Turn) 실습도 함께 진행했다.
김시현씨가 다운힐 직전 스킨을 떼어내고 있다.
“킥턴은 다운힐과 업힐 시에 방향을 전환하는 데 쓰이는 기술입니다. 급경사에서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며 올라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벼운 경사면에서는 스키를 조금씩 옮겨 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는 라운드턴(Round Turn) 기술을 사용하면 됩니다.”
다운힐 기술은 알파인스키와 동일하다.
한 시간이 넘게 비탈진 슬로프에서 땀을 흘리고 나니 하이원스키장 꼭대기인 ‘마운틴 탑’에 도착했다. 슬로프를 밝히던 조명등이 꺼지고 하늘도 훤하게 밝아졌다. 곤돌라나 리프트를 타면 손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지만 스키를 타고 걸어서 오른 느낌은 남달랐다. 가슴 가득 차오르는 커다란 성취감과 함께 온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바로 이런 맛에 산악스키로 산을 오르는 것이다.
Down Hill 변수 많은 자연 설원은 안전이 제일
스키장 슬로프에서 활강을 즐기는 스키어의 모습.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스키로 산을 올라왔으면 낮은 곳으로 하산하기 위한 활강이 기다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산악스키 다운힐 기술은 알파인스키의 회전 기술과 동일하다. 기초가 되는 초급 기술인 플루그화렌(Pflug Fahren)과 플루그보겐(Pflug Bogen), 중상급 방향전환 기술인 슈템턴(Stemn Turn), 패러럴턴(Parallel Turn) 등도 똑같이 구사한다.
모든 이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는 멋진 활강을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스키 회전 기술은 요령을 듣고 잠시 배우는 것만으로 절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몸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 훈련을 해야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온다. 특히 산악스키로 자연의 설원에서 활강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스키장의 슬로프와 달리 눈 상태가 일정치 않고 나무와 바위 등 장애물도 많기 때문이다.
일어서기 두 개의 폴을 이용해 경사진 곳에서 일어서고 있다(연속동작).
강정국 이사는 “자연 그대로의 숲 속을 달리려면 스키 실력이 좋아야 해서, 초기에는 패러럴턴을 구사할 수 있는 스키어를 대상으로 교육생을 모집했다”면서 “하지만 참가자가 너무 적어서 지금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도록 바꿨다”고 했다.
평지킥턴 180도로 방향을 전환하는 킥턴 시범을 보이는 강인 강사(연속동작).
다운힐 교육은 팀을 나눠 진행했다. 강습회 참가 자격의 문턱이 낮아지며 강습생의 스키 실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요령부터 플루그보겐과 같은 기초기술을 배우는 팀이 있는가 하면, 상급 슬로프에서 패러럴턴을 예리하게 갈고 닦는 그룹도 있었다. 비록 반나절에 불과한 짧은 강습이었지만 참가자들 모두 한 가지라도 더 배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강습회를 주최한 대한산악스키협회의 이철주 수석부회장은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산악스키를 널리 보급하는 것이 협회의 목표”라면서, “이번 강습회와 같이 일반인들이 산악스키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산산악스키협회는 산악스키 활성화를 목표로 매년 겨울 시즌 막바지에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2월 19, 20일 이틀 동안 산림청장배 산악스키대회가 예정되어 있고,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아시안컵 겸 강원도지사배 산악스키대회가 하이원스키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협회가 주최하는 강습회를 통해 산악스키에 입문해 대회에 출전하는 동호인들도 적지 않다.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 대회들은 이제 우리나라 산악스키 마니아들의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산악스키 어디서 배우나? 일반강습회 이용하면 초보자도 입문 가능
대한산악스키협회에서 매년 겨울시즌 일반강습회를 개최하고 있다. 보통 두 차례 정도 실시하는데, 이번 겨울에는 12월 용평스키장(2박3일)과 1월 하이원스키장(1박2일)에서 각각 강습회를 진행했다. 일반강습회는 스키 초보자도 참여해서 산악스키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산악스키가 없는 사람에게는 장비 대여(유료)도 해준다. 이론교육과 함께 스키 실력에 맞춰 팀을 나눠 실전 교육을 실시한다. 숙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산악스키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일반강습회와 대회 관련 공지가 올라오는 협회 홈페이지(www.kafsma.or.kr/)를 참고하면 된다.
[산악스키 장비]
알파인 스키와 비슷해도 기능에 큰 차이
산악스키는 깊은 눈에서 설피 역할을 하고, 내리막에서는 속도를 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설상운행 장비다. 구성상으로 알파인 스키 장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각 장비의 면면이 알파인 스키 장비와 많은 차이가 있다.
1 플레이트 무게가 가벼운 것이 휴대가 편하고 다루기도 쉽다. 다운힐 때는 알파인 스키에 버금가는 안정성도 갖춰야 한다. 약간 넓은 플레이트가 눈에 잘 빠지지 않고, 설질에서 타려면 팁(스키 앞부분)이 높은 것이 좋다. 등반하는 곳의 설질과 강설량에 따라 무게와 길이를 적절히 선택해야 한다. 길이는 알파인 스키와 달리 키보다 10~15cm 정도 작은 것을 선택한다.
2 바인딩 산악스키용 바인딩은 보행이 편하게 뒤축이 필요에 따라 탈착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활강할 때는 부츠 뒷부분을 고정할 수 있다. 바인딩은 일체형과 분리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체형은 부츠 착용이 쉽고 사이즈 조절이 가능하지만 무거운 것이 단점이다. 경기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분리형은 가볍지만 부츠 탈부착에 숙련을 요하며 사이즈 조절이 어렵다.
3 산악스키용 부츠 가볍고, 튼튼하며, 방한성이 뛰어나야 한다. 산을 오를 때와 활강 시 발목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달려 있다. 산악스키용 부츠는 장시간 워킹으로 발이 붓거나 불편할 수 있다. 혹한 등반 시 두꺼운 양말 신을 것을 생각해 자신의 발 사이즈보다 5~10mm 이상 큰 사이즈를 선택한다. 요즘 출시되는 분리형 바인딩과 일체형 바인딩을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4 폴 등산용과 다르지 않지만 급사면 등반과 점프턴을 하려면 강도가 높아야 한다. 3단짜리보다는 2단 제품이 강하다. 눈에 깊이 빠지는 것을 대비해 넓은 바스켓을 부착한 것이 유리하다.
5 스킨 플레이트 바닥에 붙이는 천으로 산악스키에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스킨에 붙어 있는 털이 한쪽 방향으로 누워 있어 미끄러지지 않고 경사면을 오를 수 있도록 해준다. 동물털로 만든 스킨은 가볍고 눈에 잘 미끄러지지만 비싸고 수명이 짧다. 나일론으로 만든 스킨은 저렴하고 제동력이 뛰어나지만 무겁다. 두 스킨의 장단점을 반반씩 섞은 제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