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김성문
친구들을 만났다. 어제까지 때아닌 황사 예보로 외출에 신경이 쓰였다. 오늘 오후부터는 그나마 집 나서는 일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날씨가 맑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4명이 앞산 근처 식당에서 오찬 모임을 마치고 고산골 약수탕까지 약 2km를 산행했다.
약수탕까지는 내가 가끔 체력 단련 겸 드나드는 곳이기에 반가웠다. 고산골 입구에 있는 높다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줄을 지어 쫙 뻗어 있는 모습이 의장대처럼 기상이 늠름해 보인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나뭇가지에는 곧 새로운 잎을 트기 위해 나오는 연두색의 실눈이 웃음을 띠고 있는 듯하다. 바닥에는 메타세쿼이아 낙엽이 그의 뿌리를 보호라도 하는 듯이 감싸고 있는 모습은 침대에서 이불을 덮은 듯하다.
우리는 보행에 약간 어려움이 있는 친구 2명이 한 팀이 되고, 그나마 건강이 조금 좋은 친구와 내가 한 팀이 되었다. 나의 팀은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을, 다른 팀은 거리가 조금 멀어도 약간 평탄한 길을 택해 목적지까지 가기로 했다. 나는 약 30분을 올랐는데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한다. 외투는 두껍고 기온이 유난히 높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나의 팀이 오르는 길과 다른 팀이 오르는 길이 시야에 보였다가 숨기를 반복한다. 2주 전만 하더라도 고산골 산행길 옆에 있는 계곡은 메마른 모습으로 하늘만 쳐다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그동안 계곡에 물이 흐르는 경우는 한참을 못 봤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봄비가 자주 오더니 계곡의 물소리가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흐르는 물은 워낙 맑아서 그대로 식수로 사용해도 될 정도다. 여름이면 산행객이 손 씻고 발 담그고 정담 나누는 속삭임을 들을 텐데, 계곡물은 아랑곳 없이 묵묵히 제 갈 길만 가고 있다.
목적지가 약수탕까지였는데 보통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오늘따라 시간이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천천히 오르다가 잠시 주위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만개(滿開)한 분홍 진달래가 푸른 산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1주일 후면 꽃의 아름다움을 자연에 바치고 새로운 싹이 나와 제 갈 길을 간다고 생각하니 자기의 삶을 충실히 산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도 진달래처럼 봄이면 꽃피우고, 새로운 잎이 돋고, 여름 내내 싱그러움을 뽐내다가 가을이면 단풍으로 산행객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삶이고 싶다. 이듬해는 또 새로운 꽃을 피우는 삶이라면 늙음이 없는 길일 것 같다.
얼마 후 우리는 약수탕에서 만났다. 나만 땀이 나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 모두가 얼굴이 불그스름하고 땀에 젖었다. 약수탕 주위로 체력단련 시설들이 여러 개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나 자기의 수준에 알맞게 운동할 수 있다. 나와 같이 올라온 친구가 자랑이라도 하는 듯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 10번을 쉽게 해낸다. 나는 겨우 6개다. 청년 시절에는 20개를 거뜬히 했는데 지금은 체력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었다. 운동은 규칙적으로 계속하면 목표한 바를 달성할 수 있을 텐데 그동안 게으름을 피운 탓일까? 나도 10번의 목표를 두고 계속 연습하기로 다짐해 본다.
약수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하산하는 길은 다른 친구들이 올라 온 길과 우리가 온 길을 서로 바꾸어 내려가기로 했다. 출발 지점에서 서로가 만나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가벼운 걸음이다. 요즈음은 산행길에 야자 매트를 깔아서 산행하는 데 불편함 없이 오르고 내려갈 수 있도록 지자체(地自體)에서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출발 지점까지 내려가는 데 중간쯤 내려가니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같이 간 친구는 저쪽 길로 가면 어디에 도착 되느냐고 묻는다. 도착지는 같은 데 그쪽 길로 가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매번 다니는 길이 아니라서 조금 내려가니 또 갈림길이 나타난다. 친구는 왼쪽으로 가자고 하는데 나는 오른쪽으로 안내했다. 왼쪽 길은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산행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무조건 산 아래로 가는 길을 택하면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내려왔다. 무작정 선택한 길이 조금 길게 느껴졌다.
다른 친구 두 사람은 벌써 출발 지점에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한 생각에 내가 저녁을 사기로 하고, 산행하면 매번 애용하는 식당에 갔다. 돼지고기찌개에 막걸리 한 잔이 각자가 살아온 길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했다. 나는 가끔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나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하는 힘이 생기며 삶의 낙을 찾을 수 있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서로가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도 들을 수 있고, 산행은 신체적인 건강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었다.
나는 생활하면서 어떤 목적지에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음을 알았으나 가까운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은 가까운 길을 피해 다른 길로 하산하면서 여러 가지를 더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알았다.
지나온 길이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앞산 고산골 산행길, 촬영: 2024.3.31.(일)
첫댓글 길 제목을 보면서 최인호의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이 생각났습니다.
"하산길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알았다''
우리네 인생의 하산길도 각기 다른 길이 있듯이 많은 생각이 나게하는 표현, 철학입니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백태화)
긴 글 읽어 주시고 아름다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일상이 비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산골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그 길을 저도 한 때 매일 다녔지요.
그 때도 아름답고 지금도 아름다운 곳인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에헤이. 저의 나와바리에 오셨으면 신고를 하셔야지요. 저는 매일 능선 한바퀴 돌아요. 오늘 새벽 산행에서는 붓꽃도 만났지요
에구! 미처 신고를 못 드려서 송구해요.
다음에는 꼭 ~~
매일 능선을 한바퀴 돌아오시는 조 선생님!
존중합니다.^^
김성문 선생님도 저 길 다니십니까?
저도 저 길 자주 갑니다.
특히 혼자 있고 싶을 때 가는 길이랍니다.^*^
같이 가고 싶을 때 콜 하셔요!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