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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스트맨> 리뷰 - 완전함을 위한 도약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눈에 보이지만 잡을 수 없는 것들을 손에 넣겠다는 꿈을 꾼다. 머리 위에서 살랑거리는 모빌을 잡기 위해 열심히 손을 뻗는 아기는, 밤하늘에 뜬 달을 보며 언젠가는 달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어린이가 된다. 모험을 꿈꾸는 인간의 본능은 높은 산을 오르게 만들었고, 넓은 바다를 건너게 만들었으며, 달에 닿고자 했다. 이 영화의 배급사인 ‘드림웍스’사의 로고가 초승달에 앉은 아이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달이 인류의 꿈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디딤으로써 언제나 달을 향해 손을 뻗기만 했던 사람들의 손안에 달을 안겨준 사람이었다.
인류의 꿈이라는 가장 큰 꿈을 이뤄준 닐 암스트롱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에게 다른 누구보다 매력적인 인물이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꿈과 사랑 사이의 관계를 그려내는 것에 장기가 있는 감독이다. 셔젤 감독은 꿈과 사랑을 쫓는 남녀를 그린 <라라랜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퍼스트맨>에서도 셔젤 감독은 닐 암스트롱의 꿈과 사랑, 그리고 그의 생애를 동시에 조명한다.
영화는 대기권에서 비행 훈련을 진행하는 닐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는 우주비행사가 되기 전부터 다른 이들보다 높은 곳에서 지구를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마음속은 대기권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를 대기권 밖으로 이끌지 못한 것은 딸 카렌의 건강이었다. 힘들어하는 딸을 안은 두 손은 달로 향하겠다는 그의 꿈까지 담기엔 벅찼다. 모험을 꿈꾸기에는 손에 든 것이 많았고, 달은 그저 바라봐야 하는 먼 곳이었다.
딸을 위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닐의 손은 또다시 다른 무언가를 쥐어야만 했다. 그렇게 새로운 아이가 아내 재닛의 배에서 자라나고 있었고, 달을 향한 여정이 그의 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실패를 경험한 닐에게, 두 프로젝트는 모두 소중했고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된 트레이닝 중에도 딸이 떠오를 때면 다시 힘을 얻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던 중에도 아이와 놀아줄 시간을 냈다. 달을 꿈꾸던 닐과 평범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재닛의 결합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족을 떠나야만 이뤄질 수 있는 닐의 꿈과, 닐이 가족들 곁에 머물러야만 이뤄질 수 있는 재닛의 꿈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달의 노래’를 들으며 한 몸이 되어 춤추던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른 꿈이 자라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럴수록 두 사람의 결합은 위태로워졌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닐의 마음 속 달은 점점 차올랐고 재닛의 마음속에는 걱정과 원망이 쌓여가고 있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상황도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달 탐사 계획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과 계속되는 동료의 죽음과 실패는 닐을 괴롭혔다. 달에 간 첫 번째 사람이 되겠다는 순수한 꿈은 마음속에서 희미해졌다. 그의 꿈은 더 이상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꿈꾸게 만들었던 어린 딸과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것이었다. 죽음에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왔던 제미니 8호 발사 이후에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도 싸워야 했다. 그러나 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달에 가야만 했고, 더 이상의 실수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간절해졌다.
달로 향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닐은 더욱 달만을 떠올렸고 재닛과의 도킹은 불안해져갔다.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닐을 지켜보는 재닛은 힘겹게 가정을 지켜내고 있었다. 미망인이 된 친구를 위로하면서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 아버지가 달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보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더 중요한 철부지 아들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달로 향하는 닐만큼이나 불안했을 재닛이지만 그녀는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고독과 불안을 홀로 견뎌야만 했다.
달에 오르기 전날 밤 닐의 머리는 임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달에 오르면 어떤 기분일까, 우주선에 어떤 물건을 가지고 갈까 하는 순수한 질문에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닐은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겁에 질린 아들들을 안심시키고,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이미 유언장까지 작성되어 있는 그에게 가족들과의 마지막 대화는 또 하나의 기자회견이었다. 집을 떠난 순간부터 그는 가족들을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달로 향하는 우주선에 몸을 맡기고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모듈을 착륙시키기 위해 조종간을 움직이는 순간에도, 고요의 바다를 바라보며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에도 닐의 가족은 그와 함께하지 않았다.
달에 발을 내딛은 직후에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달에 발을 내딛은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기뻐하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기지도 않았다. 아내의 보석을 들고 우주선에 올라 아내에게 자랑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던 버즈 올드린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닐 암스트롱이 고요의 바다에 발을 내딛은 순간은 모든 인류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닐은 언제나 마음 한편에 가족들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노래가 듣고 싶다는 버즈에게 닐이 건넨 노래는 아내와의 기억이 담긴 ‘달의 노래’였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보다, 고요의 바다 한 구석에 조용히 카렌을 묻으며 눈물을 흘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닐의 꿈은 달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에서 죽은 딸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았던 그는 언제나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달에 올라 딸을 손에서 떠나보내고 비어버린 그의 손은 어느 때보다 공허했고 그의 머릿속은 가족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결국 그 모든 여정의 끝에는 돌아가야 할 지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생의 꿈을 이룬 그에게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삶의 터전인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새로운 꿈이 찾아왔다. 재닛과 닐의 사이를 갈라놓은 유리창은 두 사람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닐이 유리창 위에 남긴 손자국은 실패를 넘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약이었다. 그리고 말없이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은 그렇게 또 다른 모험에 나서고 있었다. 꿈과 사랑, 그리고 그것이 합쳐진 삶을 아름답게 그려왔던 셔젤 감독다운 마무리였다.
<퍼스트맨>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첫 실화 소재 영화로 주목을 받았다. 음악 영화만을 만들어왔던 그에게 실화 영화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셔젤 감독은 그의 색을 그대로 입힌 드라마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영화가 아폴로 프로젝트에만 집중했다면,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것은 우주 공간을 생생하게 담아낸 아이맥스 기술과 몇 가지 과학적 사실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라라랜드>를 만들어낸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기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고, 셔젤 감독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셔젤 감독은 일련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전기 영화 대신 인물들의 내면을 체험하고 우주 공간을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닐은 우주 공간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 가면 어떤 기분이겠냐는 질문에 그저 기쁠 것이라고만 답한다. 닐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관객들은 우주 공간에서 닐이 느낀 감정을 체험하는데 문제를 겪지 않는다. 닐을 둘러싼 상황, 인물들과의 갈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된 닐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맥스 기술과 곳곳에 사용된 음악은 그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담아낸 광활한 우주에서는 그래서 화려함이 아닌 고독함이 느껴진다. 달에 올라 마주한 칠흑같은 어둠은 딸을 떠올리는 따뜻한 기억과 더욱 선명하게 대비된다. 영화는 인류의 성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관객이 느끼는 것은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바친 남자의 고독함이다. 아폴로 프로젝트라는 소재로 전기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은 셔젤 감독의 성취가 분명하다.
<퍼스트맨>은 전작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처럼 사랑은 꿈을 이기지 못한다는 그의 생각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퍼스트맨>은 꿈과 사랑이 불완전하지만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불완전함을 말하고 있는 이 영화는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하고 완벽해졌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만은 받지 못했던 셔젤 감독이 트로피를 손에 넣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첫댓글 저는 인류최초라는 타이틀의 영광과 환희보다 오히려 달에다 자식을 묻는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한점이 좋앗어요.한 사람의 닐 암스트롱의 모습을 표현한 샤젤의 연출력에도 감탄햇음.오스카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정확히 그 점이 좋았습니다. 일단 노미네이트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소재의 대한 흥미 + 셔젤 감독의 미친 연출력이 저를 이 영화를 세 번 관람하게 했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