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식 1찬"의 추억 - 1970년대의 군대생활
2021/05/23
이준구
요즈음 군대 급식의 질이 형편없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나 역시 군대생활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식당에 가면 일주일 분의 메뉴가 커다란 판에 쓰여져 있지만 그걸 쳐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보나마마 뻔하게 거의 매끼가 "보리밥, 염적무 국"이었으니까요.
일주일 21끼 중 두 세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이런 1식1찬으로 34개월의 군대생활을 보냈습니다.
염적무 국 이외에는 김치조차 제공되는 때가 아주 드물었습니다.
염적무 국이란 된장 국물에 짠무를 숭숭 썰어넣은 것으로 이것 이외에는 들어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처음 염적무 국을 먹었을 때 짜고 쓴 맛만 나는 것 같아 우리 신병 거의 모두가 몇 술 뜨다가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그 광경을 본 고참 병사가 "야 이 자석들아. 나중에는 이 밥도 모자라서 더 달라고 보챌 거다."라는 악담을 하더군요.
정말로 훈련이 계속되고 배가 고파지니까 그런 밥이나마 더 많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국군의 날 행사 같은 데서 병영생활 홍보하는 장면을 보면 반찬이 서너 가지 나온다고 선전하기 일쑤였습니다.
서류상으로는 급식이 그렇게 열악해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의 급식은 크게 달랐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군 조직 내의 부정부패에 있었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는 거구요.
그 당시 우리 사회에는 모든 부분에서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었고, 군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군 간부만 부식 빼돌리기에 가담한 게 아니라 우리 사병들도 거기에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입니다.
내 친구 중 어떤 사정으로 취사반 내무반에 잠깐 가서 생활했던 사람 경험담에 따르면 그 친구들은 먹는 게 일반 사병과 아주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기 빼돌려서 자기네들끼리 요리를 해먹는 일 같은 게 비일비재하더라는 겁니다.
하루는 우리 부대 전 사병에게 뜬금없이 마가린 한 통씩을 나눠 주더군요.
냉장고도 없으니 세수 대야에 물 떠놓고 마가린을 거기다 둥둥 띄웠다가 식사할 때 가져가 밥 비벼먹곤 했습니다.
그나마 마가린을 밥에다 비벼 먹으니 목구멍을 넘기기가 휠씬 더 쉽더군요.
모든 사병에게 마가린 한 통씩을 나눠주게된 사연이 재있었습니다.
급식 관련 감사가 실시되었는데, 감사관이 창고에 이유없이 쌓여 있는 마가린을 발견했답니다.
서류상으로는 마가린을 모두 다 사용하고 재고가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엄청난 양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매뉴얼대로라면 염적무 국을 끓일 때 마가린이라도 넣어서 맛을 부드럽게 해야 하는데, 급식 만드는 친구들이 나중에 팔아먹으려고 빼돌렸다가 발각이 된 것이지요.
아주 가끔 염적무 국에 닭이나 생선을 집어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1주일 21끼 중 두 세 번의 예외가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닭을 넣었다 해도 살코기는 잘 보이지 않고 대가리나 발 같은 것들이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벼슬과 부리가 모두 붙어있는 대가리 말입니다.
이제 내가 전역을 한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지만 그때의 짜고 쓴 염적무 국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을 군대에 끌어갔으면 최소한 먹는 것으로 고생을 시키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부실 급식이 과연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철저히 조사해 시정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나 부정부패가 용납될 수 없지만, 특히 국방과 관련한 부정부패는 철저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일이니까요.
퀴돌이
2021/05/23
군대급식부실은 역사가 참 깊네요..
그래도 요즈음은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져
부정한일이 있으면 외부로 알려 바로잡는게 가능해 다행입니다.
이준구
2021/05/23
그러게요
그땐 그런 비인간적인 대접을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었어요.
long
2021/05/23
진짜 저희세대 군생활 21개월도 길어보이는데, 교수님 세대 3년은 어떻게 버티셨는지..... 모든 군필자분들 존경합니다.
Cer.
2021/05/23
그 정도면 영양실조 걸리셨을 거 같은데.. 거의 PX에 의존하셨겠네요.
이준구
2021/05/23
우리 부대엔 PX도 거의 없다싶이 했어요
물건도 별로 없고 닫을 때도 많아서요
고작 진열된 먹거리가 고래고기 통조림이었어요
아무도 먹지 않는
외출 못 나가고 군대밥만 먹으면 영양실조 딱이지요
그런 기간에 자란 손톱은 변형되기 일쑤였어요
좀 비참했지요
서울에 있는 육본 직속부대였는데요
선은규
2021/05/23
전 80년대(전두환때)에 했는데요
교수님때에 비하면 반찬도 잘나오고
빵( 찐감자 으깬것하고 딸기쨈 넣고 )도 먹고 했습니다.
그렇더라도 군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팟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영양이 부족했기 떄문이겠지요
그때도 군비리는 많았던 것으로 사병들 사이에서 회자 되었는데요
교수님시대에 서울의 육본 직속부대가 그정도라면
후방부대에서는 말도 못했겠네요
파이팅.
2021/05/24
그래도 군대에서는 삼시세끼 꼬박 챙겨먹을 수 있고
나름 이것 저것 반찬도 잘 먹을 수 있는데
오히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는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하루 3끼 꼬박 챙겨먹는 것도 힘들고 부담되고
오히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급식으로 3끼 챙겨 먹을 수 있었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3끼를 본인이 다 해결하려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고
그래도 군대 시절에 3끼 잘 챙겨 먹던 시절이 그립다고 하더군요.
이준구
2021/05/24
그런 경우도 있군요
양종훈
2021/05/24
군대만큼 비리에 관대한곳도 드물겁니다. 툭하면 기밀이라면서 예산내역 공개를 거부하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