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 상영작...Secret Life Of Wars...
나는 시간약속을 잘 못 지키는 편이다. 특히 영화를 볼때는 이상하게 10분 20분 늦게..영화상영시간을 못 맞추는 편이다.
이건 꼭 여럿이서 영화를 볼때만이 아니고 혼자 영화를 볼때도 그렇다. 특히 영화의 줄거리를 대충 사전에 알고 영화를 보러 갈때는 더하다...
오늘도 가로늦게 정모 참석을 결심하고 영화를 보러갔지만....영화 줄거리를 대충 보고 갔기에 초반 20분 정도 못 본거에 대해서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시추선에서 일하다 큰 부상을 입은 한 남자와 그를 간호하는 여자(간호사라기 보다는 간병인일터이다...)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줄거리와 "Secret Life Of Wars"라는 제목이 매치가 안되는 듯해서 좀 의문점은 들었다.
팀 로빈스가 시추선에 일하기 전에 참전용사였나? 뭐 이런 의문을 가질법도 했다. 근데 영화를 보면 초반, 중후반까지 팀 로빈스의 시덥잖은 농짓꺼리와 여자 꼬시기 위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로 하는 대화와는 달리 후반으로 흘러 가면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팀 로빈스가 아니라 여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는 초반의 이삽십분을 놓쳤기 때문에 오해를 한 것이다. 영화를 처음부터 본 울 카페 회원 단무지복님의 얘기를 나중에 들어보니 극의 초반부터 여주인공의 '또다른 자아'(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나온다는데...내가 생각하기에 그 목소리를 상처받은 자아의 독백일거라는 개인적 가정하에...)가 등장했다는걸 알았다면 이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암튼....극이 흘러가면서 극의 초점은....전쟁의 상처를 지닌 한나의 눈물어린 고백을 통해...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처를 '몸(극중에서 실제 그녀의 상처를 보여준다)과 마음'에 지닌 한나에게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상처는 아니지만 일반사람이 겪지 못할 극심한 고통을(눈이 멀고 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몸소 체험해 본 팀 로빈슨은 영혼에 까지 뼈저리게 상처입은 한나의 고백을 들으며...자신의 고통은 배부른 고통임을 자각하며 그녀에게 동정을 넘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시서껄렁하게 들릴 수 있는 대화를 주의깊게 들은 사람이라면 죠셉(팀 로빈스)이 한나에게 프로포즈 겸 한 고백...."수영을 배울께요..."란 말에 적잖은 감동과 임팩트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을 이룬 한나는 내면 깊숙한 곳에 속삭이는 상처받은 자아의 목소리와 결별하는 것으로(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ㅎ...) 영화는 끝난다.
참 재밌게 본 영화이다. 팀 로빈스가 스페니쉬 계통의 아빠 혹은 엄마를 가졌나 싶을 정도로 유창하게 스페인어를 구사하고(더빙인 듯한 부분도 있지만...대체적으로 팀 로빈스가 대사를 소화한 것 같고...그리고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뱉어내는 대사들은 멋졌다...) 시시껄렁하게 내뱉은 농담들도 꽤 재밌었다.
무엇보다 최근에 내가 방콕하면서 '전쟁의 희생자'들은 다룬 영화들을 많이 접했었기에(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프리덤 라이터스 등) 더욱 와닿았다.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의 영화는 2차대전 당시의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들인데....극중에서 언급한 발칸반도에서 행해졌던 만행은 솔직히 역사책에서나 어떤 매체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극중에서도 그렇게 얘기했었고...) => 이에 대해서 찾아보니 아마 보스니아, 세르비아 내전 시 인종청소(!)를 한 사건을 얘기하는 거 같네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쟁의 희생자들이 더 얼마나 많을까....그들이 겪은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 고문의 고통,...등
그러나 형태와 후유증은 다르지만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그래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들을때 어느정도 동감하고 동병상련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올해...삼재(三災), 사재, 오재,...를 넘어 병원입원과 응급실 출입을 숱하게 했다. 내과질환, 신경질환, 교통사고,...등. 기억나는것만 족히 열번은 된다. 거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해도 하룻밤은 족히 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나보고 베프하자고 했던 한살어린 동생에게서....나의 끝없이 연속되는 고통에 대해 토로했더니....나 스스로 병을 만들고 키우는 거 같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많이 속상했다. 그 말도 일면 맞다. 너무너무 계속 아프니까...자꾸 외부출입도 안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면이 있다는 건 동의한다.
하지만...내가 겪은 고통의 반의 반도 안겪어본 사람이 너무 쉽게 그런 말을 냉정하게 내뱉으니(그것도 문자로...) 속이 좀 상했다. 그 친구가 자살까지 하고자 하는 어리석은(내가 듣기에 그런 선택을 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는데..) 생각을 할 때에도 나는 몇시간이고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려고 했었는데....그런 섭섭한 맘도 들고ㅎ...
암튼....그 친구의 냉정한 말이 나를 깨우치게 해서(깨우쳐준건 아니지만...) 고통스런 현실과 나약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됨으로...더불어 아무도 나의 고통을 알아주고 위로해 줄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면서....몸과 마음이 많이 호전되었지만...그 친구의 냉정한 말은 아직도 차갑게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사실 말이 쉽지...남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다는건 어렵다. 나 역시도 울 엄니가 몇년전 한 쪽 귀가 안들리는 신경성 질환(돌발성 난청)을 앓았을때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근데 막상 내가 그런 질환을 얻어서 한쪽 귀가 안들릴 뿐 아니라 모든 소리가 금속성 소리로 귀에 울릴때...정말 고통스러웠다. 엄마가 받았을 고통을 절감하며 눈물이 찔끔 나더라,,,
음...글이 너무 길어졌넹....암튼 고통받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보며...한번쯤은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아픈것 처럼 일부러 아플 순 없고, 그들이 어리석은 것처럼 똑같이 어리석어질 순 없겠지만...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노력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한번쯤은 애써보는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 P.S : 야구를 좋아하는 나이기에....야구 관련된 영화를 찾아보다가 <불 더램(Bull Durham)-국내 번역 제목(19번째 남자ㅋ)>를 보게 됐는데('Durham Bulls'는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중 하나인 템파베이 레이스 산하의 트리플 에이 마이너 구단의 이름임)....야구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케빈 코스트너와 팀 로빈스, 수잔 서랜든 등이 출연하는 영화이다. 시속 160km에 달하는 강속구를 갖고 있지만 제구와 마인드컨트롤이 안 되는 신출내기(루키) 투수로 팀 로빈슨이 나오고 그를 조련하는 한물간 포수로 케빈 코스트너가 나오는데...정말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풋풋한 모습의 팀 로빈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주름살이 덜 진 수잔 서랜든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고(이 영화를 통해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됐죠)....야구를 좋아한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겠지만 야구를 잘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데니스 퀘이드 주연의 디즈니 영화 <루키>를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리얼하게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희노애락을 잘 재현해 낸 이 영화는 더 재미있을 듯...).
![](https://t1.daumcdn.net/cfile/cafe/126565234AB555F21A)
위에 언급한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나찌 독인인에게 공공의 적, 악의 축으로 규정되어 아우슈비치로 대표되는 민족말살정책을 수행하던 시절....그런 유대인말살을 실행하는 골수 나찌 사령관의 아들이 파자마를 입고 생활하는 유대인 소년과 친구가 된다면?이란 가정으로 쓰여진 소설을 영화화 한 영국 영화입니다. 두 소년이 친구가 되는 과정은 풋풋한데...결말은 좀 많이 안타깝습니다. 나치사령관이 만약...자신의 아들을 파자마 입혀서 유대인 무리속에 두거나 파자마 입고 있던 유대인 소년을 자신의 아들과 똑같은 옷을 입혀서 자신의 가족사이에 두어본다면 과연 그런 야만적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직접 보시길,,,
![](https://t1.daumcdn.net/cfile/cafe/114F7A1F4AB556E02E)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ghters)>는 전쟁같은 삶을 살던 LA의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초짜배기 선생(로스쿨을 지망하려다 선생이 된)과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과 사실들을 접하면서 변해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실화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기에 더욱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미국의 학교 통합정책으로 인해 다양한 인종으로 클래스가 구성되게 되어 다툼과 반목을 일삼다 못해 서로에게 총질까지 하던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잃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하지만 열과 성을 다해 아이들의 변화를 돕는 교사의 역을 열연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히로인 힐러리 스웽크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3E79204AB5592643)
원래 올빼미 체질이지만...오늘은 '색깔'있는 동성아트홀릭 식구 여러분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집에 와서 이것저것 하다가 글 하나 쓰고 보고 동창이 벌써 밝았네요ㅎ...이젠 슬슬 잠이 오네요...즐건 주말 되시고 담에 또 '색깔'있는 얘기 더 많이 나눠요~~~...오늘 즐거웠습니다...또 뵈어요~^^
첫댓글 아,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직 못 본 분들도 있는데 스포일러 될만한 글이 있군요. 글 서두에 스포일러 주의 같은 문구를 달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이 영화 봤는 데 아주 좋았어요. <19번째 남자> 저도 예전에 본 적 있어요. 그 땐 비디오로 봤었죠. <프리덤 라이터스>, <파자마를 입은 소년> dvd가 있는 지 찾아봐야겠네요..그리고 제가 본 것 중에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브라이언 드팔마의 <전쟁의 사상자>입니다.^^ 이번 스페인영화제 상영기간이 너무 짧아서요, 하나 더 추천해드리자면 <나를 잊지말아요>입니다. 이 영화를 좋게 보셨다면 아마 이 영화도 괜찮으실 겁니다.^^
아...스포일러주의문구ㅎ...주의문구 하나 추가해야겠네요^^...글고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아니라 정확한 제목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네요ㅎ...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도 좋죠. <스카페이스>는 잊을 수 없는 영화죠. <전쟁의 사상자>라...꼭 찾아서 봐야겠어요...공공의 벗 님 글도 잘 쓰시고 영화취향이 저랑 비슷한 면도 있는 거 같아서 <나를 잊지말아요>도 꼭 찾아봐야겠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