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거창읍에서 합천댐을 지나 맑은 황강이 남한 제일의 낙동강 품에 안기는 합수점까지 가야하는 80km의 길을
뛰어야 한다.
몇일전 시산제를 잘 지낸 덕분일까 남녘으로는 꽃소식도 있고 몇일동안 포근한 날씨가 이어져 두터운 옷은 모두 벗어두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대구에서 이곳 거창읍까지 버스로 이동한다.
날씨는 조금 쌀쌀하지만 지난번에 내려온 위천과 황강천이 만나는 합수점부터
거창읍-합천-낙동강 합수점 80km 실거리 85km
17년도 2월 17일
황강천으로 오다보니 대구-광주간 고속도로 인근 양향교를 건너가는 외갓집 가는길이라며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다.
다리 건너 심소정이라는 정자가 있지만 시간 관계상 통과하고
날씨는 흐려도 물은 맑은 색이다.
다리건너 거창군 남하면 사무소 방향이라 잠시 라면집을 찾아 가보니 면 사무소만 덩그러니 크고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면 소재지 이다.
남하면과 가야할 남강길
이곳에서 남하면 사무소를 지나 강옆 24번 국도따라 가면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이고
진행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교통량이 많이 없는 남상면 방향으로 가게되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보다 안전한 길을 택해서 잠시 잡풀속으로
남강 길따라 진행하다 보니 바짝 마른 도랑 두번 정도 건너고
잠시 잡풀을 지나가니 공원 조성하는 연못도 나오고 갈대 무성한 대산천을 건너야 할 상황이라
다시 돌아서 길찾아 간다.
앞은 돌아서 진행한 대산천 모습이고 보이는 산은 거창읍 무릉리 양각지맥길의 감투봉 모습
대산천과 황강이 만나는 합수점
거창읍을 뺀다면 황강 주위로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 섬진강 처럼 물이 아주 맑게 흐른다.
멀리 거창읍이 보이고
거창군 남상면의 일원정
1905년 선산 김씨 김 숙자의 후손들과 유림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깅필,정여창 조광조 등 조선시대 성리학의 사림파 칠현을 제향하고 있는 정자
도로 건너 황강 강가에 김숙자 신도비가 있다.
힘 빠지는 밤티재 오르막 구간
완전 멘탈 붕괴 직전이다
차가 다니지 않은 조용한 길이지만 오르막길이 한참 이어진다.
우측은 감악산 전위봉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가 당당해 보이고
한여름 땡칠이 되듯 핵핵 거리며 오르막을 오르니 도로 옆 무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지금은 개구리 짝짓기 철이라 여기저기 개구리가 논바닥을 엉거주춤 돌아 다니며, 보다 이쁘고 큰 암컷 개구리를 찾는
모습이 보여 카메라에 한장 담으려 논가로 내려가니 모두 도망 가거나 흙탕물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숨는다.
밤티재 삼거리 이곳에서 임불 방향으로
밤티재 삼거리의 감악산 등산로 안내판
멀리 감악산이 보이고
삼거리에서 돌고 돌아가는 도로는 버리고 잠시 질러가는 논뚝길로 진행해서 거리를 줄여 본다.
앞의 마을은 거창군 남상면 월포마을
또다시 지루한 산길 오르막길을 오르고 괜히 이쪽 방향으로 와서 생고생이다.
앞은 양각지맥 날머리 가천교 모습
황강과 가조면을 둘러싼 박유산-흰대미산 -양각산-수도산 비계산-미녀산-숙성산 인근에서 흘러온 물이 이곳에서
황강과 합수되어 합천댐 상류가 된다.
거창의 진산들을 모두 돌아가는 수도-가야 환종주길
양각지맥은 기존의 수도지맥(황강지맥) 시코봉 분기봉에서 양각산-흰대미산-보혜산-박유산-감토산을 거쳐
황강과 가천이 만나는곳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1km의 산길이다.
쥐꼬리 부분이 양각지맥 날머리 부분이고
우측으로 숙성산(907m)이 지척이다.
거창은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1천미터 이상의 산이 25개나 되는 물좋고 산깊은 곳 그리고 인심도 좋다
이제 거창군을 지나 합천땅으로 들어서게 되며
본격적인 합천댐을 미친듯이 돌아가야 한다
망일산과 월현산을 이어주는 두번째 멘탈 붕괴의 저울재
합천군 봉계 마을로 가는길에 배수로에 개구리가 요란해서 가보니
두마리 인것처럼 보이지만 두쌍이 한창 짝짓기 중인 모습
부끄러운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쳐다보지 못하고 이러고 있다.
개구리 포획하면 벌금 3천만원에 10년 이하 징역... 아주 비싼 몸값이라고 사람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무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가 지천으로 들려도 누구 하나 선듯 잡으러 나서는 이가 없을것 같다.
한마리 잡아서 몸보신이라도 할 생각을 해보지만 3천만원 라니
짜치서 개구리 대신에 가는길에 자장면이나 사서 먹는게 좋겠다.
봉계리 다락논과 덕산 삼형제(강덕산 -인덕산-논덕산)가 지척이다
강덕산 넘어 인덕산이며 인덕산 넘어 황강지맥길이 있으나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도로따라 가는것 포기하고 논둑옆 경운기가 다니는 시멘트길을 택해서 빠른 지름길로
신원 삼거리
신원면은 거창 양민 학살 한곳으로 유명한곳이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이란? |
1951년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가 '견벽청야(말썽의 소지가 있는 곳은 초토화시킨다) 작전'에 따라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양민 700명을 학살한 사건이며 이사건은 대한민국과 국군에 길이 남을 수치로 남음 게릴라 토벌 과정에서 우리 국민을 지켜야 함에도, 적국 국민으로 취급하는 어처구니 없이 주민을 몽땅 살해한것이 11사단 사단장의 토벌 방침이라 한다. 이후 양민 학살사건 이후 11사단은 전방으로 보내지고 다른부대가 게릴라 작전에 투입된다. 사건의 주모자인 11사단장 최덕신은 86년도에 월북해서 김일성 곁으로 감 내용 사건 1차 1951년 2월 9일 청연 마을에 들어와 빨치산 토벌 명목으로 가옥에 방화 주민 84명 학살 2차 사건 2월10일 중유리, 대현리, 와룡리 주민을 강제로 신원 국민학교에 몰고감 이 과정에서 노약자와 주민 일부 탄량골짜기로 끌고가 100명 학살 3차사건 신원면 신원 초등학교에 모인 주민 천여명중 경찰,공무원 가족을 형식적으로 골라내고 남은 사람들을 박산골 계곡으로 끌고가 517명 집단학살 다시 2시간에 걸쳐 확인사살 하고 시신위에 나무를 올려 놓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름 이때 3명의 젊은 주민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그당시를 증언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됨. |
이곳 박산골에서 희생된 517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박산 합동 묘역 내용을 읽어 보시고
박산골에서 희생된분들중 남자 .여자.
그리고 어린 남자. 어린 여자 무덤이 각각있는 곳이다.
아래는 여자 위에는 남자.
그리고 쓰러진 위령비
女子合同之墓
여자분들만 화장해서 묘지를 만듬
男子合同之墓
남자분들만 화장해서 묘를 만듬
여자묘뒤에 작은 봉분 어린 여자애들만 한꺼번에 만든 무덤
남자 무덤옆 작은 봉분은 어린 남자애들 무덤
행여나 거창을 찾으신다면 신원면의 거창 양민 학살 한곳 꼭 찾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멀리 신원면 박산골이 지척이고 그넘어로 조망 좋은 감악산이 보인다.
감악산-신원면-월여산에서 흘러온 물이 사천이 되어 황강으로 흘러든다.
물은 아주 깨끗하니 보기 좋고
이곳 강가에도 짝을 부르는 개구리 소리가 고요한 마을에 울려 퍼지니 시골고향 논가에 온듯 정겹다.
합천군 봉산면 술곡리의 옥계서원 入道門 (입도문)
그리고 下馬碑 (하마비)
니! 잘나고 못나고 간에 무조건 내리라
그라고 걸어서 올라가라 그런 뜻이다.
이 서원은 1725년 영조때 이곳에서 4km떨어진 향옥동에 율곡 이이 선생이 손수 쓴 격몽요결과 해동 연원록등을
보관하고자 세워졌던 것이다. 이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린것을 1867년에 장소를 옮겨 다시 지었으나
합천댐 수몰로 지금의 장소에서 복원
옥계서원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서원
봄 날씨속에 합천댐이 아주 깨끗해 보이고 멀리 한성질 하는 악견산과 멋진 금성산이 우람한 근육질로 다가온다.
멀리 미녀산과 오도산 그리고 덕산 삼형제 그리고 만대산 방향
대병 삼형제 중에서 가장 성질 고약한 악견산과 금성산
그리고 대병면
좌측은 월여산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일찍이 무학대사가 월여산을 두고 해동 제일의 명당터라 칭한 금계포란형(닭이 알을 품는)의 산세를 갖춘 월여산(852봉)이다
정상에 봉우리가 3개 있다고 하여 삼봉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마고 할미 박랑의 외동딸 월여가 살았다 하여 월여산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달맞이 한다고 해서 월영산이라 불렀고 달맞이 하면서 한해의 풍년과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곳이다.
얼굴이며 몸매가 이뻤는지 모르겠지만 산아래 龍이 사는 연못에서 목욕을 자주하던 월여를
옥황상재의 아들이 이를 지켜 보면서 월여를 짝사랑했지만 이룰수없는 사랑에 눈물을 흘렀다고 한다.
눈물은 비가 되어 내렸고 그때부터 월여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신통방통하게 비가 내렸다니...
좌측으로 황매산 그리고 거창군 신원면의 소룡산
합천댐 전망대에서 본 댐과 악견산
악견산에서 본 합천댐
의룡산에서 본 악견산과 금성산
황매산과 지맥길인 황매 터널 방향 그리고 신원면 소룡산
합천 용주면 소룡산과 우측의 악견산
인근 자장면 집에서 자장면 하나 시켜먹고 천천히 걸어나와 합천댐에서 인증 담아 본다.
갈길이 급하지만 인근에 임진왜란 기념비가 있는 창의사에 들러 보기로 하고
합천군 창의사
조선중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적과 싸워 국란을 극복한 선민들의 忠魂義魄(충혼의백)을 모신 성스러운곳이다.
일본이 대륙 정벌의 허왕된 꿈을 갖고 16만 대군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국토를 유린하자 패퇴만 거듭한 관군을 대신하여
우리선조들은 붓과 호미를 던지고 분연히 일어났다.
정인홍 의병장을 중심으로 의병 4-5천명이 봉기하여 초계면.현풍등,낙동강 연안일대와 고령 ,성주,진주,금산등지로 진출하
여 북상하는 적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호남 의병군과 협동하여 혈전끝에 적을 무찔러 나라를 구하는데 공헌하였을 뿐 아니
라 전국 의병 궐기의 계기가 되었다.
창의사 박물관
현풍 무계전투
합천 초계 마진전투
성주성 전투
창의사
이곳은 민족정기를 발휘하여 나라와 계례를 수호한 義兵將 및 義士 백십위와 이름없이 산화한 수많은 무명의사의 충혼을 모셔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잠시 묵념하고 나와서
합천댐 아래 보조댐
이른아침에 사진 작가분들이 많이 찾는곳
조망좋은 의룡산
합천 영상 테마파크
국내에 어지간한 영화와 역사 드라마는 이곳에서 촬영한다고 봐야할듯
입장료는 있고 시간은 없고 인증만 한장 담고
합천댐 아래 조정댐
이곳에서 좌측 산으로 올라가는 나무 테크길로 오른다.
짜잘한 산으로 기진 맥진해서 올라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잔차길이라 이제부터는 오르막이 없어 속도를 내본다.
거창군 일원정에서 부터 합천댐 오는길에 오르막 지난다고 입에 단내 나도록 올라왔더니 아직도 다리가 후들 거리고
남은 거리는 대략 45km 5시간 반 정도면 합수점에 도달할것 같다.
절벽구간
거리가 멀어서 경치가 좋은지 안 좋은지
멀리 수도지맥길(황강 지맥) 토곡산과 만대산이 지척이고 우측의 바위구간은 뭔가 이름이 있을듯 하여
앞서가는 분께 엿쭈어 보기로 하고
"저기요 어르신 뭐하나 엿쭈어 볼께요
저기 바위 이름은 뭔가요"
어르신께서"요롬바위"라고 하신다
특별한거는 없고 어릴적에는 강가에 버드나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맑고 깨끗한 모래강이었지만
합천댐을 만들고 나서부터 강물은 오염되고 나무가 저렇게 자랐다고 ...그리고
강가 절벽 아래로 용주면 용지리 아이들이 용주면으로 학교 다닐때 다니던 작은 길이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안다녀 길이 있는지 없는지 ...
말씀 감사 하다며 인사 드리고 다시 합천으로 간다.
합천군 용주면과 용주교
시멘트 옹벽따라 하얀 포말을 그리며 흐르는 물이 멋스럽고
어찌보면 섬진강스런 풍경이 연출 되는게 가끔 가다가 보면 여기가 섬진강이 아닌가 생각이 들곤한다.
지금까지 지나온 강 중에서 섬진강과 이곳 황강이 가장 깨끗하다.
어찌보면 두강은 서로 닮아있는듯
그렇게 넓지 않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강가에 갈대가 많이 자라고
멀리 보이는 크고 작은 산들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깨끗한 강은 그래서 서로 닮은듯
새로 만든 자전거 길인듯
회사에서 일 때문에 경남 산청으로 가는길에 이곳 합천 자전거길을 보고
"언놈이 이리로 지나간다고 나라에 돈이 썩었다 썩었어!~~"오만가지 걱정을 하며 욕을 했더니
결국은 이놈이 이렇게 반쓰입고 뛰며 지나게 될줄이야
지나가는 아가씨께 부탁해서 인증 담아 본다.
봄바람은 불고 따사로운 햇살에 다리가 조금 탄것 같은데
합천 일해 공원을 지나서 제2남정교 아래를 지나며
함벽루
고운 모래가 지천으로 흐르는 모래강가에 자리잡은 함벽루
황강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며 조선시대 때부터 시인묵객들이 찾은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신라의 대야성이 있던 자리인데
선덕여왕 11년 642년에 백제군 윤충(성충의 동생)장군이 1만의 군사와 함께 백두대간 아막산성을 지나와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그녀의 남편인 사위 김품석을 죽이자 이에 격분한 김춘추가 무렵 17년간 당나라에 구질구질하게 사진을 보낸다.
이 전투는 김품석이 부하 장수인 검일의 아내를 겁탙하여 검일이 성문을 열어 신라군이 몰살한 전투이다.
1만대 5천의 전투
멋스런 글 하나
함벽루에서 빗자루 하나들고 인증 담고
모래가 흐르는 강가에서
드넓은 모래가 흐르는 강가의 풍경은 한마디로 최고다.
그렇게 깊지 안으며 마른 풀잎하나 안보이는 온통 모래만 가득한곳
우암 송시열이 쓴 글
우암 선생은 조선 후기의 기호학파 성리학의 주류를 형성한 인물이며
宋氏 집안 대대로 족보에 여성을 올렸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때는 여성은 호적에 올리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여성을 존중한 인물
조선시대 여인은 글.그림, 음주, 가무는 절대 안되고 그저 시집가서 아기나 무우 뽑듯 생산하면 되는 존재
신사임당 같은 분도 족보에 이름대신 호만 올려져 있을 정도이다
퇴계선생께서 쓰신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대학자로 성리학의 대가
참고로 청렴한 삶을 살다간 당대 최고의 학자분들
서울에는 이이
충청에는 조식
호남에는 김인후
북쪽에는 이항
영남에는 이황
남명 조식 선생께서 쓰신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며 영남학파의 거두로써 퇴계선생과 쌍벽을 이루셨던분
지리산과 깊은 인연이 있으며,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가 조식선생의 손녀 사위다.
함백루 바로 옆의 연호사
함백루 옆에 자리하는 절인데 절의 규모에 비해서 너무 아름다운 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처가 비구니 스님으로써 잠시 머물다 간곳이라 한다.
잠시 박정희 전처... 김호남이라는 분에 대해서 박정희 첫번째 부인
박정희가 독재 권력을 행사할때 일부러 세상에서 은폐시켜 일생을 눈물속에 남의 눈을 피해 살았으며
어느절에서 비구니 스님으로 살다가 쓸쓸히 죽었다는 여인이다.
먼지 하나없을 정도로 깨알같이 깨끗한 연화사
황강 최고의 경치 그곳에 자리잡은 함벽루 고려시대 1321년에 창건 했으며
누각 처마끝에서 물이 황강으로 바로 떨어지게 배치를 한것이 특징이다
누각안 대들보에는 황룡인듯 청룡인듯 두마리가 금방이라도 登天(등천)할듯 꿈틀대며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처마는 부연 석가래를 하고 있어 더욱 고풍스런 건물인데 황강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황강 전체 구간중에서 다연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강건너 합천군 율곡면 임북리
클럽 회원분 동네라고 해서 한장 담아 왔는데
물이 섬진강처럼 아주 깨끗하다.
사철 푸른 대나무만 군데 군데 서있는 모습이라면 섬진강이라 해도 될듯하다.
초계면의 대암산 방향이나 대암산은 아니고
지나온 강가와 멀리 뽀족하곳은 오도산
멀리 오도산과
가운데 토곡산과 만대산
합천댐 아래부터 이어지는 자전거길이 최근에 새롭게 만들어져 있어 달리기는 좋으나 무릅 아파 미칠지경
이제 3시간이면 끝날듯
멀리 보이는곳의 비닐 하우스는 주인이 직접농사를 짓는게 아니고 세를 준곳인데
평당 4천 700원에 농사를 짓는 분들께 세를 준것이란다.
10평 4만 7천원
100평 4십7만원
1000평(5마지기) 4백 7십만원
논 주인은 농사 짓는것 보다 더 좋다고
갈길이 급하지만 지나는길에 농부님들 만나면 사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유곡면 두사리 기리교에서 본 지나온길과 멀리 대암산 방향
무월산과 작은 대암산
대암산은 합천군 초계면과 적중면의 뒷산이며 조망이 아주 탁월한 산이다.
지난날 대암산에서 본 합천군 초계면과 적중면
멀리 창녕 화왕산이 조망
합천군 초계면과 적중면의 운성공 환종주
드넓은 들판과 주위를 감싸고 도는 산줄기 32km다.
좌측으로 보이는 산줄기는 등로가 별로지만 우측은 몇해전에 등로 작업을 해서 사람 다닐만 하고
우측으로 보이는 곳이 모두 미타 분맥길 미타산까지 2시간정도면 진행
앞은 합천군 초계면
이곳은 이순신장군께서 백의종군 할때 권율 장군을 찾아 왔던곳이다.
최고의 무기라는 조총앞에 어느 누구도 이기지 못한 임진왜란
하지만 홀로 승전에 승전을 거듭해온 이순신장군
그러나 왜군보다 더한 적은 내부에 있었으니 ....
1597년 2월 26일 이순신 장군을 시기한 원균의 질투와 모함,
그리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죄인으로 구속되어 사형직전까지 간다.
우의정 정탁의 도음으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졸병으로 강등 되었고,
그 와중에 어머니 마저 한을 품고 숨을 거둔다.
4월13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이기지 못했지만 서둘러 장례를 치르고
.................
1597년 4월 1일 옥문을 나선 충무공은 백의종군을 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4월 1일부터 8월 3일까지
수원.평택.구례.하동.합천 초계현 모여곡(지금의 초계면 향교근처)에 도착
그곳을 지키고 있던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백의종군함
........................
1597년 7월 15일... 조선수군이 칠전량 해전에서 전멸한 날...
조선수군의 전멸에 놀란 조정은 7월23일, 장군을 복직시켰다.아무것도 없이 ...
선조의 당시 교지...
"그대를 삼도수군 통제사에 임명하노라
하지만 군사가 없으니 육군으로 싸워도 좋다
이후 명량과 노량에서 승리후 불패의 신화 마감
합천 초계면은 단순한 지역이라기 보다 어려웠던 시기에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한곳이라 의미깊은 곳이다.
율곡면 내천리의 전두환 대통령 생가
읽어 보시고
지나온 전두환 대통령 생가마을
율곡면과 쌍책면을 이어주는 새로만든 다리위에서
강가 절벽은 낙동강과 위천이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의 병풍바위 그곳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규모면에서는 많이작다.
이곳은 아름다운 경치를 하고 있으며 강가로는 제방둑을 만들어 자전거길을 조성하고 있다.
이제 해넘이는 시작되고 갈길은 멀고 시간은 얼마없고
저멀리 창녕 화왕산이 보이는걸 보니 이제 다와가는듯
관수정과 바로 위의 황강정
읽어 보시고
합천 쌍책면 성산리 느티나무
15세기 무렵 문화류씨 장령공의 장자인 류맹지 선생이 황강변에 정자를 지을때 옆에 심은 나무
멀리 적중면의 미타산이 보이고
운석공 환종주길의 들,날머리겸 초계면-적중면에서 흘러 나오는 옥두천-유하천 -산내천 물이빠져 나오는곳 이기도 하고
좌측은 옥두봉 우측은 초계면의 단봉산 방향
미타산과 우측은 단봉산
해빠질 무렵의 강물에 비친 일몰이 너무 아름다워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서 구경해본다.
잠시 쉬면 무릅이 뻐근하니
앞은 황강 지맥(수도 지맥)길 날머리 성산
좌측 높은곳은 지맥길의 필봉 가운데 뽀족한 부분은 낙동강으로 바로가는 물줄기라고 지맥길에서 벗어난 다남산
우측은 지맥길의 성산
지맥 날머리 미곡마을의 청덕교
봄날 이라지만 노루 꼬리만한 해는 서산넘어 빠지기 직전이다
라면 하나에 의지해서 이곳까지 왔으니 배는 고프고
이곳에서 택시를 불러 볼까 하다가 버스 시간이 많이 남을것 같아 합천 창녕보로 가본다.
황강이 거창 초점산에서 발원되어 거창 합천을 거치면서 111km의 물길이 거대한 낙동강의 품에 안기는 곳이다.
낙동강은 반변천.내성천.금호강.남강.황강,위천,밀양강등 크고 작은 742개의 강을 거느리는 대하로써
삼국시대때는 황산강, 황산하으로 불리웠고 고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낙동강으로 불리운다.
낙동이란 상주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에서 유래 되었고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이자 문화의 원동력인 강이다.
황강은 전체적으로 물이 아주 깨끗하며 국내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섬진강과 거의 쌍벽을 이룰정도로
맑은 물과 모래를 자랑한다.
합천군을 지날때는 강가에 비닐봉지 하나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하는듯
다만, 비닐 하우스 농사 지으시는 분들 비닐 하우스 주변으로는 폐 비닐이 아주 많이 돌아 다녔다
해빠진 강가 풍경
낙동강과 황강 합수점
멀리 창녕군 이방면 둔지산이 보인다.
지난날 낙동강 강가 돌아 다닐때 가시밭길 헤집고 올라간 기억이 있는 둔지산
다남산에서 물줄기가 낙동강으로 바로 가는 산이라고 지맥길에 포함되지 못한 산이라...
합천 창녕보에서 인증담고
이곳에서 지나가는 차 세워서 이방면까지 가보니 버스 떠난지 2분 되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로 현풍까지 나와서 곧바로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고 대구로 이동
황강은 전체적으로 아주 깨끗한 모습이며 강가에 쓰레기도 별로 없는 강이다.
황강 꼭 가볼곳
1.합천댐 벚꽃길
2.악견산-금성산-허굴산-의룡산
3.합천 영상 테마 파크 앞 산책로
4.함벽루
*4곳중에서 다연 최고는 합천읍의 함백루 이므로 꼭 가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개념도 | 구글지도 |
| |
합천군 적중면.초계면 분지'는 약 1억3500만년 전부터 약 6500만년에 이르는 중생대 백악기에 운석 충돌로 형성됐다고
하는데 동-서 길이 8km 남-북길이 5km
산둘레 32km (지피에스)
조망은 좋은데 그리고 가시밭길 기다리는곳...
다음강은 대구 금호강116km와 위천113km 갑니다.
첫댓글 新新 현대사의 국사편찬위원입니다.새로운 역사를 쓰시는 방장님의 모습에 감탄사만 나오네요.
대동여지도 김정호님을 연상켜 하는 감정은 실례이겠지요.언제나 좋은 모습에 감사합니다.
금 감사드리며
산전은 그런대로 다녔지만 수전은 이제 시작이네요
올 여름이면 19개 강은 모두 끝날것 같습니다.
늘 간심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은길 다리가 뻐근하도록 달리시니, 얼매나 힘이 들까...? 강이 깨끗하다니, 기분은 좋으네요^^*#
가볼만곳도 추천해 주시고, 기온차가 심한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화성이라는 먼 ☆ㅇㅅ 老 松
황강 생각보다 깨끗해서 좋았구여
이제 나른한 봄날이라 강물에 머리도 감으며 진행해야 할것 같습니다.
늘 간심 감사드리구요 한강 할때는 같이 진행 할 수 있길 기원해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강따라 역사와 문화가 자리하니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틈틈히 역사 공부를 하니 그것도 좋구요
글 감사드리고 좋은날 한번 뵙길 바래 봅니다.
건강 하세요
대단하십니다.
글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거창 양민 학살~~
방장님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주모자 사단장 개놈의 자슥이
미친짓을 했군요
그놈의 후손들은 어디에 있는지???
무고한 양민들을 ...
어찌 저런놈의 자슥이 사단장을 했는지요
아군 적군 구분도 못하는 자슥을 ...
수고 많으셨습니다
방장님의 멋진 강행기
잘보고 갑니다~~
최고입니다^^~
방장님의 매끈한 다리가 멋지십니다ㅎㅎ
6,26전쟁 호국산행을 하면서도 만호이 배우게 되었는데
강따라 다니면서도 많이 배우게 됩니다.
늘 한결같은 초심을 가지고 하나의 길을 간다는건 어렵고도 쉬우니...
이번주에는 어디로 갈지
비아님 글 감사드려요
하루 해 안에 도상거리 80km, 실거리85km를 진행하셨다는 것은... 강물 보다 빠르셨다는 것이군요.^^
황강은 합천의 강이며...합천이 가야, 신라, 백제, 통일신라, 고려, 후백제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요충지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합천은 지형적으로 남북은 접근이 힘들고 동서쪽 황강을 따라 들어오는 경로만이 유일하다고 하는군요.
함벽루는 합천의 8경중 하나인데...황강의 아름다움을
남명 조식선생은 "~~ 강물은 아득하여 알 수 없고 뜬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 오히려 높다란 바람이 흩어버리네.." 라고 읊었다는군요.
방장님께서는 강물 보다 빠른 걸음으로 황강의 아름다움을 발로 읊으시고...^^ 수고하셨습니다.
조식 선생과 퇴계선생
함벽루에서 황강을 바라보며 민초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했겠죠
오늘 저녁에는 뭐 먹을까 하고
매주 즐거운 고생하시면서 좋은정보 올려주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강행기 즐겁게 잘 보구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5대강 14지류 올 여름안에 끝내려고 발보둥 치는데 한강을 담은 강줄기가 걱정이네요
4월부터 이어가야 하는데 더워서 어찌될지...
늘 감사한 해피맨님 글이 힘이 됩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재작년인가 도봉산 오봉매표소 옆에 개구리들이 알을 낳아놓고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이제는 개발이 되어 개구리들을 볼 수 없더군요.
깨끗한 황강도 낙동강 과 만나 같은 색의 강물이 되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요즘 개구리 잡다가 걸리면 벌금이 많아서 쉽게 잡을 개구리가 못되죠
4얼부터 한강으로 가니 팔당부터 같이 걸음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장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하는 강따라 걷는길 운치도 있지만 아픔도 가득한 이번길 인것 같습니다.
의병을 일으켜 왜구를 무찌른것도 있지만...
그보다 거창 양민 학살사건 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우리 역사의 큰 실수이고...
감 안되는 우매한 지도자의 위험을 보는듯 합니다.
그러고 훗 날에 월북을 하였다는게 이해가 어렵습니다.
전 대통령 시절 군대에 "황강에서 북악 까지" 라고 하는 군사 교육 도서가 있었었습니다.
뭐.... 날때부터 그리고 클때부터 큰 인물이 될 그런.... 지금에서 보면 코메디 같은 책 였는데 민망 했던지 없어졌지요...
아마 그것을 보신 분들도 계실듯 합니다...
수고하신 발걸음 따라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매일 같이 눈뜨면 생각나는 분
설피 때문에 칼산님이 매일 생각납니다.
장문의 글 감사드리구요 조용한날 클럽산행에도 참석 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근현대와 조선시대를 넘나드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방장님의 해박한 지식에 경탄을 안할 수가 없네요. 정성스런 강행기에도 감동을 먹습니다. 하루에 85Km 입이 돌아갈 것 같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포항 전자여중 학도의용군 전적지 공사는 오늘 확인했더니 말끔히 마무리 되었더군요^-^
지난날 포항시청에 가서 말씀 드렸군요
한츰 더 깨끗해진 모습을 보니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생각이듭니다.
호사님 감사합니다.
요기가 엉망이었는데 새로 조성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합천군 봉산면 술곡리의 옥계서원 入道門 (입도문)
그리고 下馬碑 (하마비)
니! 잘나고 못나고 간에 무조건 내리라
그라고 걸어서 올라가라 그런 뜻이다.
홀로 강행하시느라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강길도 이제 3분의 1정도 진행 한것 같습니다.
올해 여름까지 이어가면 끝날것 같은데 하루정도는 같이 걸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언제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작은 강줄기가 가는 줄기들을 모아
위천(渭川)과 만나고,가천천(加川川).옥계천(玉溪川)을
합치고,청덕면에 이르러 낙동강에 합류하네요~~
江은 모으고,만나고,합쳐야만 큰 강이
만들어 지는 진리이고,깨끗하고 맑게
흘러야만 되고,그 본연에 순응 해야되는데...
현실은 그렇지만 않네요~~
강줄기따라 역사 기행도 거듭 할 수록
뭔가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입니다.
울 조상 "昌寧 曺氏", "南冥 曺植"학자도 다시금 되세기게
되는 소중한 강행문 머리에 담고 맘에 새기게
됩니다.
늘~깊은 수고에 감사드리면서 무사한
발 걸음 되시길 빕니다~~/^ㅇ^/
창녕조씨 맞아요
아우님 만나면 좀 놀려야 할것 같아 벌써 웃음이 나오는데...
이번주 정맥길 창원지부에서 마중 가신다고 해서 저는 강으로 놀러 갑니다.
부지런히 자료 만들어 올려 놓을테니 훗날 자전거 타고 쭉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배병만 창녕조씨 맞구요!맞습니다~~
웃음의 의미가 궁금?하구요!ㅎㅎ
낙남도 이 번 구간 댕겨오면 쪼매 남게
되네요! 잘 다녀오겠슴다.
날씨 포근해졌지만,강 물은 아직
차갑지요 우짜던지 발 걸음 조심하시길요~~
늦게 봐서 죄송합니다.
유명한 방장님께서 저의 초라한 고향을 지나가셧네요.
가천교에서 1km정도 하류로 가면 부자정이란 정각이 있는데...
건너편이 저의 고향입니다.(합천군 봉산면 행정리)
합천댐으로 인하여 수몰민이 되었네요.ㅠㅠ
저도 본이 창녕인데...
요 위에 백구님은 저보다 한항렬위라 생각되는데...
어디사시는지 모르지만 다음에 만나면 막걸리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쓰다 보니 종친회...향후회같은 분위기라 죄송합니다.ㅎㅎ
아하 그렇군요
수몰민이 고향 사랑은 각별하죠
시간되면 차한잔 하러 갈께요
언제나 수고 많으시구요 대간길 무탈한 걸음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