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천적 뇌병변 1급 장애아로 태어났다.
우리 집 옆에는 일로초등학교가 있는데 1990년 당시에는 통합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나를 데리고 전라도 지체장애학생들의 배움터인 광주은혜학교 초등부 1학년에 코스모스 입학하였다.
후천적 시각장애를 입은 김갑주 삼촌이 지방에 사는 지체장애학생들이 은혜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꿈동산’ 그룹 홈을 기증해 주었다. 그래서 나도 ‘꿈동산’ 그룹 홈에 들어가서 시설에서 생활했던 보모 그리고 글라라 이모와 지체장애선배들과 무척 반갑게 만났다. 그래서 나는 이모에게 일상생활(양치질과 옷을 갈아입기)를 배웠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나는 장이 약해 이모가 나에게 언제 대변을 봤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일주일동안 대변을 보지 않았다고 하니 이모가 나에게 관장을 시켜주어서 대변을 보았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색연필로 국어와 수학을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해바라기’ 그룹 홈에서 지내던 조장현이 ‘꿈동산’ 으로 옮겨왔고 이영훈도 은혜학교 초등부 1학년에 입학하고 그룹 홈에 왔다. 그리고 내가 받아쓰기를 하였는데 백점을 맞고 일기쓰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 장현이 그리고 영훈도 저녁에 숙제와 일기장도 쓰고 미사를 드리고 21시에 취침하였다.
그러나 이모가 나에게 수녀가 되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이모가 수녀원에 들어가고 전라남도 진도에서 온 보모와 교체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부모님이 일로초등학교와 무안중학교도 졸업 장사를 하고 나를 늦게 데리러 오셔서 시설에 생활한 보모 그리고 진도에서 온 보모와 돈가스를 시켜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3학년에 올라가서 나, 지원이 그리고 은미와 은희도 3학년 1학기 국어 특수교과서로 열심히 배웠다. 재활시간에 내가 보행기에서 워커로 교체하였을 때 정말 뿌듯하였다.
그리고 장현이의 생일이 7월 15일이고 나도 25일이니 보모들이 합동생일파티를 해 주었을 때 정말 행복하였다.
그리고 연말에 시설에서 생활한 보모가 나에게 따뜻하게 입으라고 옷을 사 주었을 때 아주 행복하였다.
그러나 1997년 2월에 시설에서 생활한 보모가 나 그리고 장현이에게 3월 3일 14시에 그룹 홈에 도착하라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그 때가 신학기여서 부모님이 화분 장사를 하였다. 그리고 아빠가 나를 그룹 홈에 데려다주니 17시가 되었다. 시설에서 생활한 보모가 늦게 왔다고 혼을 냈다.
나는 밥을 먹을 때 보모가 바닥에 흘린 밥풀 개수만큼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내가 등교를 할 때 워커로 걸어가다가 실수로 땅에 무릎을 꿇으면 보모가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받고 활발하게 지냈다가 하교를 하였을 때 실수하면 보모에게 내 허벅지를 꼬집혀 가시방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1학기를 지내고 여름방학에 부모님에게 실수하면 보모들이 꼬집었다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보모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부모님이 건강을 챙기라고 보약을 해 주어서 복용을 해도 대변 신호가 없어서 6월에 엄마가 보모에게 대변을 봤는지 물어보았지만 보모가 엄마에게 성인이 되어도 보살펴 줄거냐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엄마가 보모에게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보살펴 주어야 된다고 말을 하고 6월 17일 저녁에 엄마가 관장약을 가지고 그룹 홈에 와서 나에게 관장을 시켜주어서 내가 대변을 개운하게 보았다. 그리고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이에 시설에서 생활한 보모가 나에게 무엇하고 있냐고 말을 하였다. 엄마가 보모와 의견차이로 대판 싸웠다. 보모가 엄마에게 나를 데리고 가라고 하였다. 엄마가 보모에게 은혜학교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그룹 홈에서 지낸다고 말을 하였다.
그러나 19일에 하교하였을 때 나를 데려 온 부모님에게 은혜학교 교사들이 그룹 홈에서 힘들게 생활한다고 하면서 나를 시골로 데려가서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와 장현이도 억지로 헤어지고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다.
11월 10일 오전에 장현이의 이모가 엄마에게 친척들의 잔치에 참석하여 숙제를 하지 않아서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보모에게 허벅지를 꼬집혀 멍이 들었다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목포시에 사는 작은 부모님이 기홍이를 데리고 외식을 하였을 때 내가 엄마에게 실수하면 보모가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고 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