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文化柳氏)
시조 류차달(柳車達)은 후삼국 통일전쟁 당시 유주(문화의 당시 이름)의 호족이었다. 문화는 황해도 신천군에 있는 지명이다. 왕건이 후백제군을 정벌할 때 류차달이 수레 1천량의 군량을 보급하고 삼한공신이 되었다. 그 뒤 왕건이‘이차위달(以車爲達)’했다고 하여 차달(車達)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류차달 이전의 조상은 고조선 말의 차무일 이다. 차무일의 32대손으로 신라 때 좌상을 지낸 차승색이 위험에 처하자 멀리 도망가서 성을 류씨로 바꾼 것이다.
류차달은 효전과 효금의 두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 큰 아들 효전에게는 본래의 성인 차성을 쓰게 하고 둘째 아들 효금에게는 류성을 그대로 세습하도록 했다.
한편 문화류씨 대종회는 류씨와 차씨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류씨 시조의 상계는 전하는 문헌이 없어 상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승공 류차달의 자녀는 독자인 류효금 한 사람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7세조 류공권에게는 류언침과 류택 두 아들이 있었다. 그 후손을 각각 갑파, 을파라 하며 그 뒤 모두 15개 파로 갈라진다. 풍산류씨, 서산류씨, 선산류씨, 진주류씨 등은 모두 갑파에서 분관됐다. 한편 고흥, 영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류차달의 9대손에서 나누어졌다.
사육신의 한사람인 류성원은 1453년 수양의 협박에 못 이겨 정난공신을 표창하는 교서를 쓰고 통곡했다. 그 후 사육신 사건이 탄로 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거 급제자는 610명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284,083명이다. 주요파는 ▲시랑공파 ▲문숙공파 ▲하정공파 ▲장령공파 ▲곤산군파 ▲문평군파 ▲지후사공파 ▲좌상공파 ▲검한성공파 ▲정숙공파 ▲판사공파 ▲수사공파 ▲부윤공파 ▲충경공파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