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선과 하나의 세계
‘민자유치’ 성공신화 노화욱 교수 진도 특강
7월 15일 진도문화원 초청 강연 ‘화제’
“전통문화 훌륭하게 보존...문화적 정체성 지켜야”
진도는 아직도 제 궤도를 찾지 못한 행성인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진도를 보고 감탄을 한다. 누군가는 ‘원형의 섬’이라고도 했다.
‘진도문화전도사’ 노화욱 교수가 모처럼 진도를 찾아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지난 7월 15일 오후 6시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의 초청으로 문화원 2층 강당에서 문화원 이사, 지역문화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특강이 열렸다.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상 최초로 ‘14조2000억원’에 달하는 민자를 유치하면서 성공 신화를 남긴 노화욱(68) 전 충청북도 부지사가 전남 진도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푹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도 대사’로 활약해 주목을 받고 있는 분이다.
이미 박주언 원장이 친분을 통해 오래 전부터 전통고가에서 열리는 진도학당에서 강사로 초청, 해박하고 뛰어난 식견으로 지역발전의 노하우를 설파하면서 많은 파장과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인식디고 있다.
지난 2008년 5월말 충북부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뒤 현재 극동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노 교수는 지난해 진도군 임회면 세방마을에 6개월간 거주하면서 진도의 역사와 전통문화 등을 홀로 독학했다. 그는 현재 서울 등 전국을 돌면서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사로 활발히 활동하며, 꾸준히 진도를 방문하고 있다.
진도군 진도읍 북상리에 위치한 향토사학가 박주언씨의 고택에서 열린 명사초청특강에 강사로 초청돼 ‘밖에서 보는 진도문화’를 주제로 지역문화예술 인사들과 만나 사심 없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당시 노 교수는 인사말을 통해서 “여기서기서 평소 1000~2000명씩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가 전통 고택의 사랑방에서 토론을 하듯이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도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타지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진도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며 “특히 타 지역에 비해서 전통문화가 대단히 훌륭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노 교수는 특히 “해남 등 인근과 차별성을 갖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며 “공장 등 제조업을 통한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전통민속을 바탕으로 문화산업을 발전시켜야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벽파진에 세워진 이충무공 전첩비에 대해, “이은상 시인이 글을 짓고, 소전 손재형 선생의 창조적인 한글서체가 새겨져 근세의 어떤 기념비보다도 탁월하다”며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것은 타 지역은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낼 수 없는 대견한 사건으로 이른 시간 내에 국보급 문화재가 돼야 한다”고 극찬했다.
또 운림산방에 대해서는 “소치기념관은 빼어난 조형미와 계산이 잘 된 비례미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현대 건축물의 모범”이라며 “그러나 운림산방에 건축된 진도역사관은 명백한 실패작이다. 국적과 주제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천박한 현대건축물”이라고 지적했다.
노 교수가 진도와 첫 인연을 맺게된 계기는 2005년말 경남 하동에 위치한 쌍계사에서다. 당시 노 교수는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영정상화를 이끈 경영지원본부장에서 사퇴한 뒤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3개월간 독학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진도초등학교 교사인 천병태씨를 만나 진도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진도에 매료됐다. 노 교수는 이와 관련, “당시 천병태 선생을 만난건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후 진도의 풍광들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가 않았고, 충북부지사에서 퇴임한 뒤 무작정 진도로 내려와야 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느 지역의 모임이나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항상 진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함께 대안을 고민한다”며 “진도발전에 도움이 되고, 불러주신다면 자주 오겠다”고 말했다.
이날 초청강연에는 박주언 원장을 비롯, 이문교 군의원, 이재각 전 충북병무청장, 김현숙 교수(목포대. 진도군림예술단), 허산 문화원부원장, 김병철 소포걸군농악보존회원, 한현일 전 진진도농협조합장, 윤홍기 이사, 정명돈 한국화가, 오판주 전 진도문인협회장.
주제는 ‘진도의 경제와 예술’로 소주제로는 -예술은 경제와 어떻게 만나는가-로 이 시대의 지자체가 당면한, 절실한 화두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해법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는 평이다.
◇노화욱 교수는= 경남 마산이 고향으로 1999년 현대전자 임원과 하이닉스반도체 전무를 맡는 등 현대가(家)를 대표하는 기업인 출신이다. 2006년에 충청북도 정무부지사로 공직에 몸담은 뒤 현재는 극동대학교에서 총장 자문겸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박종호 정리)
인재를 기르고 하드웨어를 변화시켜라!
진도는 '아리랑'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곳입니다. 한반도에 3대 아리랑이 있지마는 그 음악적 흥과 멋은 진도아리랑이 단연 으뜸이지요. 아리랑이 무엇입니까. 단순한 민요인가요? 아니지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얼이요 삶이요 예술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전통 인문학에서 시서화 즉 시와 글씨와 그림을 말합니다만 서화의 전통과 뿌리에서야 진도 만한 곳이 또 어디 있습니까?
남종화의 본산인 소치 허련의 화맥은 의제 허백련 때문에 무등산의 광주로 뻗어 나갔고 또 한 맥이 남농 허건으로 인해서 유달산의 목포로 뻗어 나갔으니 종가 운림산방이 있는 첨찰산은 육지를 아우르는 조선 화맥의 태조산이자 문인화의 종산이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사 김정희 이후에 한국 서예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소전 손재형입니다. 예술적인 국한문 혼용체와 한글 서예의 시원을 연 이 분의 문화적 업적은 더 언급지 않겠습니다.(노화욱)
다시 공공성을 논한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바지타령’ ‘혜경궁 김씨’ ‘처가집 일은 남의 일’ ‘퍼주기식 사회복지’시행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사이다까지 등장한다. 87년 체제처럼 후계자 선정은 통하지 않는다. 진도는 전대미문의 12년 3선체제가 마무리되고 있다.
이동진 군수는 11년 지금까지 늘 행정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한 안전한 변화를 추구하였다. 여러 잡음도 없지 않았으나 특히 인사에 대해서는 뒷거래 소문이나 의심을 잠재우며 진도행정의 새로운 미래모델을 제시했다는 평이 높다.
어쨌든 진도군민들은 또 다른 선택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더 어려운 시련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농어촌 지자체의 공통된 과제가 집중되어 있으며 그 해법에도 가까이 다가서는 자각과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진도를 방문, 특강을 펼친 노화욱(전 충북정무부지사) 석좌교수는 진도문화원에서 수강생들에게 무엇보다 ‘ 인재를 기르고 하드웨어를 변화시켜라!’고 외쳤다. 우연히도 최근에 책을 낸 나경수 진도학회장은 진도의 민속문화적 대응을 강조했다. 이는 진도지역의 지저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노 교수는 특히 “해남 등 인근과 차별성을 갖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며 “공장 등 제조업을 통한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전통민속을 바탕으로 문화산업을 발전시켜야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경수 교수는 “민속은 일견 전승문화라는 점에서 ‘어깨너머’나 ‘귀동냥’일 수 있지만, 민속학은 다르다‘고 구분을 짓는다. 또한 민속학자 던데스의 논문 「민중이란 무어신가?」에서 ”나는 이러한 민속이나 민중에 대한 정의가 잘못된 것이며, 더 나아가서 민속 연구의 본질적인 한 분야로서 과학도 민속에 포함되아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는 만용으로 치부했던 거시 큰 실책이었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나교수는 무등산의 지란향에 더 끌리는 것일까.
정도전은 당대의 국민영웅 이성계를 앞세워 조선을 건국할 때 ‘정치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과 아울러 정치권력을 철저하게 공공성의 영역 안에 두고자 하는 의지와 제도적 정치의 마련‘에 수미일관 고민하였다. 결국 이방원세력의 왕도정치의 왕권중심 강화 추진과 대립하여 그 뜻을 다 세우지 못하였다.
유교적 도의 이상향은 민본주의였다.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국가통치의 중심키워드도 거기에 있었다. 정암 조광조가, 퇴계가, 정여립이나 허균까지 민중심 체제였다.
하여 천인합일적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천명사상(天命思想)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관념은 권력위임잘서, 정치책임론으로서, 위정자는 물론 군주까지 공공의 원리 앞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공공‘은 현실보다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어떤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공공의 의식에 대해 고려 이전 홍익인간 제세이화 고조선까지 끌어내는 학자들도 있다. 이제 우리 삶의 목표는 ’공공하는 철학‘을 강조한다. 사람을 위한 것에 앞서 사람이 하는 ’삶의 철학‘이다.
조선시대 장현광은 ’우주가 우주다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 의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라는데 까지 끌어올린다. 또한 공공이란 자연에 속한 물(物)들을 사사로이 취하지 않는 태도라고 한다. 그는 놀랍게도 무정(無情)의 자연속에서 공공성의 원형을 찾고자 한다. 즉 천만 사람의 것은 천만 사람들에게 돌려줄 때 ’공공‘의 의미가 명료해지고, 즐거움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
과연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떤 공공성으로 정치철학을 실행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여기저기서 ’자유‘의 가치를 앞세운다. 언뜻 민, 서민들이 현 체제에 억압받고 피해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마치 큰 결심을 갖고 새로운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가연 그들은 그 마음속에 어떤 공공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 실행의 흔들리지 않는 정의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현 체제는 무조건 버려야 할 잘못된 유산인가. 문재인 정부는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전세계적인 제앙, 남북분단과 갈등, 중미관계속에서의 입장 등에 현 정부만을 탓해서는 아무런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지긋지긋해 다시 진도로 눈을 옮긴다. 여기라고 눈이 환해지는 것은 아니다. 팽목항의 갈등, 해수면 온난화, 기업형 축사의 무분별한 도입은 단기적인 수익성만을 쫓는 퇴락한 자본주의 욕망의 덫에 걸린 탓이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봄풀은 푸르지만 입지자들의 뜰에는 벌써 오동나무 잎이 물들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비엔날레의 수묵 속에서만 우리시대의 그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도는 결코 작은 지역이 아니다.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욱 크다. 문제는 인구의 유통에 있다. 사람은 움직일 때 문화와 재화가 뒤따른다. 즉 가치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말뚝만 박아놓으면 그 말뚝에서 잠시 순이 나겠지만 장마철 지나면 마른 막대기로 돌아간다. 어느 선사의 지팡이처럼 500년 수령의 향나무 은행나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도에는 향그러운 천년의 나무들이 즐비하다.
바로 문화다. 민속이다. 전쟁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켜온 낙천성이다. 죽음마저도 단순한 의례를 뛰어넘어 지역 공동체문화의 공공성이라는 신학적 의식이 자연스럽게 감도는 이상향을 이룬다. 정치와 행정은 따로국밥이 아니다. 물론 진도의 행정을 19세기라고 비하하는 경우도 있다. 21세기를 이끄는 것은 ’오래된 미래‘ 문화예술, 민속이다. 문형문화재 예능ㅂ유자가 되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 분들이 많다. ’진도군민의 상‘보다 읍면장보다도 더 큰 권위를 갖는다. 송가인의 어머니가 유명세를 타는 밑바탕에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조교라는 명함이 있기 때문이다. 신청이 사라진지도 100년이 넘고 단골판 딘골집도 없어진지 오래다.
진도지역에는 많은 미술관들이 들어서 있다. 앞으로 더 많이 들어설 것이 분명하다. 지난 달에도 임회면 죽림지역에 시화박물관이 설립 개관되었다. 작품기증 진도출신 기증자들도 자기순번을 기다릴 정도다.
이번에 노화욱 교수를 초청, 시의적절한 강좌를 연 박주언 진도문화원장님께 지역문화 간계자로서 축하와 고마움을 보낸다. 이게 문화의 공공성 실현이 아니겠는가.
이제 진도의 공공성이 담긴 담론을 활성화할 때이다. 진도군민들의 염원인 국립현대미술관 또는 아시아 수묵전수전시관 유치설립부터 시작하자. 이미 이웃 장흥군은 국립문학관 설립에 집중하고 있다. 유배문학관은 경남 남해군에 들어서 있다.
진도의 미래천년 트랜드는 ’청정‘이 되어야 한다. 집단사육장은 진돗개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옥주고을까지 식육동물의 왕국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바다의 양식장도 포화상태다. 해마다 전복폐사량이 늘어난다. 줄어드는 것은 학교와 상주인구다. 청춘이다. 섬의 신 공도화다.
내년 다음 군수가 될 입후보자들은 진도의 현안 공공담론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박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