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만에 시흥한울공원 해수체험장에 도착했다. 지난 10월에 다섯째 주가 있다보니 그리 되었다. 서해안 길을 빨리 걷고 싶은 마음이 열리고 있다. 이것은 트레킹 신드롬이 생긴다는 방증이다. 마라톤이나 등산을 시작했을 때도 찾아온 현상이다. 그땐 비가 내리더라도 우산 쓰고 산행을 했다. 지금이야 비가 내릴 때는 굳이 산에 가지는 않지만 트레킹은 웬만하면 우산쓰고 충분히 걷을 수 있으니 예전으로 돌아간 듯 트레킹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지난 차수에서 시간에 쫓겨 해수체험장을 그냥 지나쳤기에 코스 안내판에 가면서 잠시 둘러본다. 여름이 한참 전에 지나갔으니 지금은 야외에서 체험하는 사람들은 없다. 해수풀장은 바다가 바로 보이고 인피니티풀 방식으로 되어 있으며 공간은 작지만 파라솔도 설치했으니 해외에 있는 듯한 근사한 느낌을 받는다. 93 코스 안내판을 반갑게 만나보고 돌아서는데 해안가에 하얀 계단이 보인다. 푯말은 천국의 계단으로 알려준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인생삿을 남길 수는 없었지만 천국의 계단하면 2003년도에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세트장이 생각난다. 당시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 인근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계단은 기억이 없고 하얀 파아노가 야외 언덕에 놓여 있었던게 떠오른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비슷한 모양의 무수한 계단을 설치하여 천국의 계단으로 부르면서 인생샷을 원하는 청춘들을 끌어 당기고 있다.
한울공원을 벗어나면 바닷가로 돌출한 덕섬을 지난다. 간척사업으로 내륙과 연결되어 있고 사유지이지만 그래도 출입은 자유롭다고 한다. 섬 안의 나무들은 모두 울긋불굿 단풍으로 갈아 입었다. 올 가을에는 트레킹을 하느라 산에 가질 않았고 그렇다고 단풍의 명소도 찾지 않았으니 지금 보는 일상의 모습이 전부다. 걷지 않고서는 사실 이곳에 작은 섬이 있는 지를 알 수가 없다. 혼자 걷는다면 들어가겠지만 일행들은 그냥 지나친다. 여기서부터 오이도박물관까지 해안제방길을 걷게 되고 다시 방아머리선착장 입구까지는 계속 시화방조제를 걷는다. 아마도 여름 한 철 맑은 날에 걷는다면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구간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11월 중순임에도 날은 따스하고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까지 있어서 하늘은 약간 탁한 흰구름이 떠 있다. 직접적인 햇빛은 차단되어 있고 바람도 거의 없어서 춥지 않으니 걷는데 지장이 없다. 특히 11Km의 시화방조제를 트레킹하는데 최적의 조건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오이도항에 들어가기 전에 선사유적공원 입구가 있는 배다리선착장을 지난다. 오이도 황새바위길을 알리는 표시목이 있다. 여기에는 부잔교를 설치해서 갯벌 탐방로를 조성했다. 썰물 때는 갯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밑물 때는 파도의 움직임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잔교 끝에 가면 바다 너머로 조그만 바위섬인 황새바위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왜 황새바위일까? 황새모양과 비슷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황새의 서식지와 관련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9월 하순에 초딩친구들 모임이 오이도 빨간등대 앞의 횟집에서 있었기에 오이도항을 다녀간지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시간상 여유가 있어서 오이도박물관까지 친구들과 걸었기에 그 곳까지는 생소하지가 않다. 오이도하면 아무래도 오이도항 방조제 위에 설치된 붉은 등대가 눈에 띤다. 이 등대는 당초 어촌체험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으나 방조제 위에 붉은색의 등탑이 우뚝 솟아 있고 드라마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게되니 오이도항 1번지로서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등대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나서 전망대를 오를려고 했으나 문이 닫혀 있다. 부대시설의 리모델링공사가 내년 1월까지 시행 중에 있다고 부착된 현수막은 전한다. 전망대의 조망은 매우 좋은데 아쉽게 되었다.
제방길을 계속 걷는다. 노을의노래 전망대는 아직 오전 중이라서 그냥 지나치고 퇴역경비함을 활용한 함상전망대도 일행들 모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통과한다. 시화방조제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면 2019년도에 개관한 시화오이도 박물관이 보인다. 친구들과 여기서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들어 갔으나 10시부터 영업을 한다고 하여 친구가 가져온 따스한 원두커피로 대신한다. 오이도항부터 약한 햇빛이 비추고 구름도 한쪽 방향으로 서서히 열리더니 시화방조제를 트레킹을 할 즈음에는 구름은 좀 더 엹어지고 푸른 하늘이 많이 열린다. 바다 건너 송도국제도시도 뿌엿게 보이다가 이제는 다소 깨끗하게 나타난다.
박물관 앞은 오이도역에서 시내 도로를 타고 들어오는 차량들이 합쳐지는 곳이라 안전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들은 제방 우측 길을 따른다. 시화방조제는 새만금방조제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길다. 경기만 시화갯벌의 드넓은 지역을 간척사업을 통하여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시화방조제이고 발전 가능한 간석지를 개발하여 농지와 용지를 만들었다. 내항의 넓은 간척지는 이제 아파트와 산업 단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기계유통단지가 들어서 있고 아쿠아펫랜드에서는 2022 한국관상어산업박람회가 진행되고 있다.
간조 시간이 대략 12시 쯤이라서 제방 아래 외항쪽에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고 먼 바다에서 흘러 들어온 잔물결은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갯벌에 여러 갈래의 다채로운 선을 만들고 있어서 바라보는 눈에 그림 한 점을 나눠주고 있다. 조금 전에 지나온 오이도항과 박물관은 차츰 멀어진다. 걷는 내내 유일하게 존재감을 뽐낸 모래톱 건너 편으로 송도국제도시가 가까워졌다. 고층 건물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으니 동북아무역센터 빌딩이다. 잠실에 있는 롯데타워가 완공 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다. 68층에 305m. 이 건축물은 다면체 빌딩이라서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지금은 송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멀리 희미하게 시화달전망대 탑이 보인다. 지금은 한참을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한 발 두 발 걷다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도착하는 것이 트레킹의 묘미다. 방조제 편도 2차 도로에는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고 특별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방조제와 바다 그리고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좌측으로는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시작한 송전탑이 수없이 이어지고 바다 건너편으로는 송도만 보인다. 햇빛이 좀 더 강하게 내리쬐므로 머플러를 머리에 올리고 친구는 아예 작은 양산을 펼쳐든다.
중간선착장에 왔다. 주변을 둘러 본다. 선착장 아래까지는 차량들이 가득 차 있으나 도로 갓길에 주차한 차량들은 별로 없다. 유람선을 즐기기 위한 것 보다는 배를 타고 출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선박 홍보물에는 대부분 선상낚시를 알리고 있다. 거기다가 이곳은 썰물 때라 수심이 낮아서 방파제에서 낚시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그래서 방파제에서 낚시줄을 던지는 꾼들이 적은가 보다.
방조제 한쪽에서 일행들이 모여 간식을 들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조민행 선배님으로부터 소주 한잔씩 받아 마신다. 현재 시간이 10시 40분. 12시가 되기 전에 마시는 소주는 금방 취기가 오르지만 그래도 선배님으로부터 한 잔을 더 받는다. 막걸리만 마시다가 모처럼 소주가 들어가니 알딸딸하다. 일행분들과 인사를 나누기는 하지만 대간을 함께했던 몇 분의 선배들 외에는 이름을 알기가 너무 어렵다. 출석부를 보고 성함을 외울려고 하나 실물을 보면 매칭이 잘 안되어 이름도 금방 잊는다. 지난 코스에서 우리들의 사진을 찍어줘서 알게된 김명자 선배님같이 어떤 기회가 있어야 자연스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시 방파제를 걷는다. 시호나래휴게소에 있는 달전망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 옆으로 섬이 하나 보인다. 예전에 휴게소에 들렸을 때 본 기억이 없어서 무슨 섬인지 궁금하다. 외항 바다 건너편으로는 송도신도시 보다는 인천신항이 마주 보인다. 인천항은 서해안에서 규모가 가장 크지만 수심이 낮아 큰 선박의 통행이 불편하였다. 컨테이너 물동량이 계속 증가하므로 이곳 송도에 인천신항을 건설하여 컨테이너 전용 항만으로 만들어서 대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해 졌다. 눈에 띄는 붉은색의 물체가 컨테이너 크래인이다. 부두 안벽에서 선박에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하역장비다. 대략 14대 정도가 보인다. 그중 좌측에 있는 4개는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나머지는 바다를 향해 있다. 바다를 보고 있는 크래인이 현재 작업 중임을 알려주고 있고 그래서 3대의 선박이 접안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로등이 갈매기 모양으로 바뀌면서 시흥시를 뒤로하고 안산시로 집입한다. 흐리다는 예보가 무색하게 하늘은 맑다. 그래서 달전망대도 보이고 인천신항도 잘 보인다. 모처럼 보이는 이정표를 바라본다. 시작 지점인 해수체함장으로 부터 10Km가 지나고 있고 종점까지는 6Km가 남았다. 이제 1시간 30분이면 끝난다는 의미다. 조력발전소를 지나는데 배수구가 개방중이다. 시화호의 물은 흰 거품을 내면서 바다로 빠져 나가고 그 멀리에는 인천신항 옆으로 인천LNG기지가 보인다. 마침 LNG를 표기한 선박도 접안 중에 있다. 요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금수조치되어 LNG 비축에 비상이 걸렸는데 겨울철을 앞두고 100% 확보되었는지 궁금하다.
조력문화관 입구로 들어간다. 먼저 시화달전망대가 반기는데 15층(75m) 높이의 전망대가 엄청 크게 느껴진다. 전망대는 오이도등대처럼 현재 리모델링 중이라서 출입이 금지되었다. 참으로 아까운 순간이다. 75m를 1분만에 올라가서 주변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인증샷을 남기고 쉼터에서 점심을 한다. 조금 전에 궁금해 하던 섬이 바로 옆으로 보인다. 시화호조력발전소 안내판에 의하면 큰가리섬이다. 그렇다면 작은 가리섬도 있는 것일까. 그 섬은 시화방조제를 건설할 때 현재의 휴식공간으로 변모해서 보이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12시 20분에 출발한다.
시화나래 표지석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휴게소 앞의 광장에서 안산시 텍스트 포토존을 만나 사진을 남긴다. 원뿔 형태의 조형물이 보여서 다가간다. 빛을 테마로 하여 조성된 오벨리스크라고 한다. 이것의 원조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제작된 돌기둥이다. 이집트의 매우 단단한 붉은 화강암을 원하는 크기로 통째로 절단한 후에 사각형의 형태로 다듬으며 위로 가면서 가늘어지는데 맨끝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들었다. 기둥면에는 상형문자로 파라오의 업적이 세겨져 있다.
뉴욕, 로마, 이스탄불, 런던 그리고 파리에는 이집트에서 약탈한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워싱턴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170m의 오벨리스크(워싱턴 기념비)가 있으나 이는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고 국회와 관련한 미국 영화에 배경으로 가끔 등장한다. 로마 나보나(Navona) 광장의 성 아그네스 성당 앞에 있는 4대강분수에도 있는데 바로크 시대의 건축을 대변하면서 베드로성당을 건축한 베르니니가 설계하였다. 4대강을 상징하는 4명의 거인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오벨리스크를 세웠으며 맨 꼭대기에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있는 성령의 비둘기 상을 의도적으로 붙였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도굴이나 약탈되어 다른 나라로 반출되었듯이 우리나라도 문화재 약 16만점이 무단으로 해외로 빠져나갔으니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시화나래휴게소를 지나면 다시 방조제가 나온다. 해안의 포구에는 파도로부터 항구를 지키기 위해 방파제를 건설하는데 파도의 힘을 감소시키기 위해 인공구조물을 설치한다. 여기에는 보통 4개의 뿔 형태의 콘크리트 블록인 테트라포드를 쌓는다. 그러나 시화방조제는 도로변 앞에 석축을 쌓고 바닥 가까이에 2단 석축을 만들었다. 수심이 깊고 방조제의 거리가 길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테트라포드 대신 석축을 활용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현상이 보인다. 방파제 석축에 낚시꾼들이 갑자기 많아 졌다. 간조가 조금전에 끝났고 서해로 이미 많이 걸어왔기에 방조제 외항 아래에는 갯벌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간조가 끝났으니 꾼들은 1단 석축에서 낚시를 하겠지만 만조 시간이 아직 멀기 때문에 현재는 수심이 낮아 2단 석축에서 낚시대를 드리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시화호에서 잡은 고기는 방생하고 방조제에서 잡은 고기는 먹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방조제 외항의 오염원이 더 적기 때문일 것이다. 낚시꾼들은 앉아서 시간을 낚고 도보꾼들은 걸으며 시간과 함께하지만 이들은 취미생활만 다를 뿐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차이가 없다.
낚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걷다보면 어느덧 시화방조제 배수갑문을 지나게 된다. 시화호의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곳이다. 그리고는 대부도로 입성한다. 여기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방아머리선착장이다. 덕적도와 주변에 있는 굴업도, 이작도 그리고 자월도 등을 갈 때 이곳에서 승선한다. 종착지인 대부도관광안내소로 가기 위해 좌측으로 돌아가는데 드디어 몇방울의 비가 흩날린다. 그러나 관광안내소에 금방 도착하여 92코스 안내판에서 스탬프를 획득하고 대기하던 버스로 바로 승차한다.
지금 시간이 오후 1시 30분. 비가 내리는 지금 시간에 귀가하는 것은 너무 이르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팀장이 3시까지 자유시간을 허락한다. 다시 버스에서 하차하여 친구들과 함께 근처에 있는 '대부도 횟집'으로 들어간다. 대부도는 바지락칼국수가 특산품인데 이걸로 술한잔 하기에는 부족하여 조개구이찜으로 주문한다. 바닷가 쪽 창가로 앉는다. 그래야 창문 넘어 들어오는 서해바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11월 중순이고 비가 순간적으로 폭우로 내리고 있으니 해변에 나와 있는 사람이 매우 제한적이다. 좌측으로는 다음 코스에 갈 구봉도와 낙조전망대 방향이 실루엣으로 다가오고 우측으로는 방아머리 선착장이 보인다. 중앙은 모래해변과 아직 바닷물이 유입되지 않은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막걸리 잔을 들고 건배하면서 친구들과 코스 완주를 자축한다.
이번 코스의 거리는 15.7 Km. 약 5시간이 소요되었다. 시화방조제의 거리는 11.2Km. 바닷가를 가로지른 이 길을 걷는 것이 만만치 않다. 보이는 것은 바다와 차량 그리고 우측 멀리 있는 인천 송도와 인천신항뿐이다. 단조로운 이 길을 왜 걷는가하면 코스에 있으니 그렇고 우회해서 가는 방법도 없다. 버스타고 직행하지 않는 이상 걸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길은 경기둘레길을 다시 걷는 것을 감안하면 평생 1~2번 정도 걷게 된다. 오이오역에서 방아머리 선착장으로 갈 때는 늘 버스타고 이 길을 다녔다. 이곳을 언제 걸어보겠는가. 버스타고 다닌 길을 단조롭고 지루하더라도 즐겁고 행복함을 가득담고 주변을 감상하며 유유자적하게 걸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걸었다. 종착지에 와서야 비가 내렸으니 자연도 축복해 준 것이리라. ^(^
첫댓글 너무 멋진 글에 찬사를 보냅니다.
늘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 92코스의 매듭을 마무리하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91코스에서 멋진 모습으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