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의 사랑의 노래를 기록한 일종의 연애편지와 같은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사랑해서 생긴 보금자리를 본문은 포도원으로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사랑의 보금자리인 포도원에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것은 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이 생겨 포도원을 망가트리고 있기에 이 여우들을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팔레스타인지역엔 많은 여우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삼손이 여우를 무려 300마리나 잡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우란 놈은 이스라엘 사람이 애써서 만들어 논 포도원을 무너트리는 일을 종종 한다고 합니다. 포도원에 땅을 파기고하고 구덩이를 만들어 포도나무의 뿌리를 갉아먹기도 하고, 줄기를 뜯어냄으로 포도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의 파괴자들이 바로 여우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우들이 맹렬히 극성을 부리는 때가 포도 꽃이 한창 피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우들이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기다리는 포도원을 망쳐 놓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여우들을 잡지 못하면 모든 포도원은 허물어지고 말 듯이 오늘의 우리들의 안식처인 포도원같은 가정들이 현대의 여우들로 인해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안식처가 가정입니다. 가정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고의 안식처요 최후의 피난처입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져도 가정이 무너지지 않으면 어떤 누구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 구석마다 흩어져살고 있는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입니다. 한때 유대 민족은 2000년간이나 나라 없는 민족이 외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국가가 없다면 유대민족은 이 지구안에서 없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여전히 존재해서 결국 2000년후에 이스라엘 국가를 다시 재건하게된 것입니다.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이들에겐 국가는 가정이 있었기에 그 민족은 이 땅에서 살아남는 위대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요란하고 안정이 없어 메말라가고 사회가 어지러워도 가정이 든든하면 그 사회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이 사회 안에 정치도 위기요 경제도 어려운데도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가정이 흔들거리고 그래서 여기저기 무너지는 가정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신문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OECD에 가입한 나라가 30개 나라가 있는데 이 중에서 한국이 18번째로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었습니다. 한국은 1000명당 2,5쌍이 이혼하는데 반해 구라파의 이태리는 0,5쌍 정도 이혼하고 있고 스페인은 0,9쌍, 프랑스는 2쌍, 독일은 2,3쌍이 이혼하고 있고 아시아에서 일본은 1,9쌍이 이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이 프랑스나 독일이나 일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혼하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요, 충격적인 일입니다. 물론 이혼한다고 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청소년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혼한 가정에서 생겨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고 미성년자 성매매까지 성행하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가정이 흔들거리고 가정이 무너지는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의 교회가 가정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합니다. 가정이 흔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더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이혼이 늘어가고 있고,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들은 찾아가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가정으로부터 버려진 노인들이 늘어가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노숙하는 아버지들이 많아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염려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경제가 어려워도 사회나 직장이 흔들려도 가정만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버티어주면 이 나라 이 사회는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저 팔레스타인의 포도원이 여우들 때문에 허물어지고 망가지듯이 지금 우리들의 포도원인 가정도 여러 가지의 여우들로 인해 무너지고 있음을 바로 깨닫고 이 여우들을 그냥 두면 안됩니다. 처치해야합니다. 잡아내야 포도원인 내 가정이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깐 그냥 여우들이 아니라 "작은 여우들"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에도 굉장한 큰 원인으로 무너지기보다 아주 작은 일로 인해서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일로 우리들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작은 원인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미국엔 큰 화재로 인한 재산의 피해보다 아주 작은 개미떼들이 주는 피해로 큰 농장이 망가지고, 집들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100여명의 승객을 태운 미국 비행기가 추락하여 100명 모두 죽은 비행기사고는 나중에 알고 보니 엔진 안에 아주 작은 나사못 하나가 빠졌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가정들이 이혼하는 이유를 조사해보니 큰 사건 보다 평소 부부간에 상대방 인격을 무시하거나 모독하는 작은 말 실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그토록 위하고 아름다운 포도원이 허물어지는 원인을 작은 여우들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문 15절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포도원이 어디입니까? 바로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가정에 든든히 서 있습니까? 조금씩 흔들거리거나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내 가정을 흔들고, 헐어 가는 작은 여우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이 작은 여우들을 잡아냄으로 내 가정을 주안에서 든든히 세워 가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마지막 때에 악한마귀들이 크리스천가정들을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잘한다하더라도 가정이 무너진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가정을 중요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에 에덴낙원에는 교회를 만들기보다 가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저 갈대아 우르에 사는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 복의 근원이 되는 선민 이스라엘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최초의 기적을 일으키신 곳이 결혼한 새 가정인 가나안 잔치집에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생활을 잘해도 가정을 바로 지키지 못하면 믿음 좋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딤전 3:4-5 "자기 집을 잘 다스리고 자녀들을 단정케하고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그러면 내 가정을 파괴하는 작은 여우들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는 세 가지 여우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중 열등감은 부정적 생각이 행복하고 따뜻해야 될 가정이 불행해지고 냉랭한 합숙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술람미 여인의 얼굴이 흑인처럼 검은 얼굴이기에 이 여인은 자기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라고 1:6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이지 않고 싶은 열등감에 빠진 여인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열등감이란 많은 우리들이 흔히 쓰는 자격지심이란 뜻과 같은 것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자기를 볼 때 자신이 못나고 약점이 많다고 자기를 깍아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감추고 사람들 앞에 위장하게 되고 열등감이 강한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향해 공격하고 비방하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열등의식은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누구와 비교해서 자신을 자학하고 비관하고 어느 땐 위선하고 위장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런 열등감으로 살아갈 때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게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열등감도 가져서도 안되고 우월감을 갖고 교만해서도 안됩니다.
본문의 술람미 여인의 열등감을 무엇으로 치료한 줄 아십니까? 신랑의 칭찬과 사랑으로 이 여인의 열등감은 치료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생활은 열등감이 치료되는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부모된 우리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내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해서 "누구는 공부잘 하는데 너는 왜 공부 못하느냐"고 야단칩니다. "누구는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고 도리어 부모들이 열등감을 자식들에게 심어주고 있으니 어찌 그 가정이 기쁨과 행복이 있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까?
청소년들이 가출하게 되는 원인가운데 하나는 학교에서도 공부 못한다고 야단맞지요, 가정에서도 누구보다 못하다고 무시당하니까 이들이 뛰쳐나가 엉뚱한 사고를 내고 마는 것입니다. 왜 실직한 남편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돈도 벌지 못한다고 아내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자식들 앞에서 무능한 아버지로 보이기 싫어서 그들은 자신을 위장하여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어찌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때로 맘이 상하고 열등감을 가졌다하더라도 가정에서는 힘을 주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격려하고 알아주고 칭찬해주는 가정이 복된 가정입니다.
아이에게 한번 칭찬해주면 일주일을 신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가족의 약점을 약점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 주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창조의식으로 부부가 같이 격려하고 자녀를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사회에서도 열등감에 빠져있는데 가정에서도 못난 사람으로 취급받는 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열등감의 여우를 잡아야 포도원이 건재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을 창조신앙으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가정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고독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고독이라는 여우가 내 가정을 냉장고 같은 가정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실 고독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정이란 곳을 주셔서 인간들의 고독을 해결하도록 대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 아담을 처음 만드시고 그가 고독한 것을 아신 후 하와를 만드셔서 서로 돕고 살도록 하신 것이 최초의 가정입니다.
실낙원을 쓴 존 밀턴은 "고독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초로 좋지 못한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군중속에 고독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인은 수 없는 사람을 만나지만 뜨거운 대화
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만남은 있어도 관계는 없다고 어떤 심리학자가 말했습니다. 만났을 땐 친구 같지만 헤어지면 언제나 타인이 되기에 사람들은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향락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취미나 오락에 도취하기도 합니다.
어느 잡지에 보니까, 미국 부부들의 하루 대화시간이 10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혼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같이 잠을 자면서도 10분밖에 가슴을 열고 대화하지 못한다면 그 부부는 진정한 부부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엔 고독의 검은 그림자가 없습니까? 자녀하고 언제 깊은 대화를 하신 적은 몇 번이나 있습니까?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이기에 중요한 것처럼 가정은 솔직한 대화, 따뜻한 대화의 자리가 될 때 고독은 치료되고 그런 가족이 모여 사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지금 고독이란 여우가 행복해야 될 가정을 허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로, 행복한 가정을 허는 여우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관심입니다.
미국 LA의 어느 학교에서 교포학생이 쓴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가정에 부모는 사업하느라 바빠서 자녀에게 필요한 돈만 요구대로 줍니다. 부모노릇 잘못하니까 부모가 미안해서도 용돈을 더 주는데 어느 날 그 자녀가 아버지를 쏘아보면서 "아빠, 내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에요! 내겐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이에요!"하더란 것입니다. 이 일은 미국 교포사회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내 가정에서도 내 자녀들이 부모의 따뜻한 사랑의 관심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먹어야 사는 존재입니다. 어떤 이는 무관심은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부간의 무관심이 부모가 자녀를 향한 무관심이 우리가 사는 행복해야될 가정을 불행한 가정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되고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야할 포도원 같은 내 가정이 지금 열등감이란 여우와 고독이란 여우와 무관심이란 여우가 내 가정을 무너트리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전 "주간조선"에 IMF이후 서울지역에 507명의 주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IMF 때문에 부부간에 애정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 21%, 더나빠졌다는 것이 3%, 남편들이 가정에 충실해진 것이 23%, 더 소홀히 해졌다는 것이 6%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긍정적인 보고내용이었습니다. 가정은 돈이나 본문이나 지식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바로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되려면 내 가정에 중심이 예수님이 되셔야 합니다. 사랑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뤄진 가정이어야 합니다.
찬송가 305장 1절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복되고 즐거운 하루"
옛날의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자녀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옛날보다 모든 면이 나아졌고 편리해졌는데도 자기를 위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도 자주 약해지고 있습니다. 자식들 때문에 참고 견디는 마음이 점점 약해져가고 있기에 자녀가 잘못해도 가정이 깨져도 자기들 위주로 행동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은 가정을 믿음으로 굳게 지켜나가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돈 많이 못 벌어도 세상에서 출세 못해도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바로 키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달들아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 가정은 무엇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내 가정을 굳게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