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경전 전환과 범패
1.보살의 대승상 자문다라니(字門陀羅尼)
고대인도로부터 불교교단을 거치며 구전으로 전하던 성명범패(聲明梵唄)의 법음 수련은 중국에 이르러 문자경으로 전환됨으로서 자문(字門)수행을 통한 다양한 현상이 도출되었다. 《대반야경강요》 권2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대승상(大乘相)이라는 것은 모든 제자다라니문(諸文字陀羅尼門)을 말하는 것이니라. 선현(善現)이 부처님께 여쭙기를 어찌하여 문자다라니문이라 하오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자평등성(字平等性)이며 어평등성(語平等性)이며 언설이취평등성(言說理趣平等性)으로 제자문(諸字門)에 들어가므로 문자다라니문이라고 하느니라 하셨다. 어떻게 제자문에 들어가는가? 선현이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얻을 수 없음으로 방편을 삼아서 아자문(字門)에 들어가면 일체법이 본래 생함이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중략)...택자문(擇字門)에 들어가면 일체법이 필경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선현이여 이와 같은 자문으로 능히 법의 공함을 사무치게 깨달으니 이 자문을 없애더라도 모든 법의 공함이 드러나서 다시 얻을 것이 없게 되나니 어찌한 연고인가. 이와 같은 자의는 널리 말할 수 없으며 나타낼 수 없으며 잡아 취할 수 없으며 글로서 지닐 수 없으며 관찰할 수 없으니 모든 상을 여윈 까닭이니라. 만약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은 제자문의 인상(印相)과 인구(印句)를 듣고 수지하고 독송하고 남을 위해 설하면 20종의 수승한 공덕을 성취할 것이니 마땅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대승상이라는 것을 알지어다.
2.부처님의 언어와 자모(字母)
부처님의 언어와 자모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 혜림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서문을 소개한다.
혜림법사의 속성은 배씨이며 소륵국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학과 기술에 뛰어났다. 약관에 불문에 귀의하여 불공삼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경론과 자문(字門)의 이치를 배워서 건중 말년(德宗; 780〜783)에 대반야경에서 소승경론에 이르는 경음의일백권(經音義一百卷)을 지었는데 전체 육십만자에 달했다...(중략)...문자에는 소리와 뜻이 있어서 마치 방향을 잃었다가 길을 얻음과 같고 지혜의 등불이 무명을 타파함과 같으니 마치 땅 밑을 흐르고 있는 물과 같은 이치임을 알 수 있다. 그런고로 소리로서 그 음을 분별해보면 목, 턱, 잇몸, 이빨, 입술의 소리로서 궁, 상, 각, 치, 우의 음이다. 밝게 살피면 무겁고 가벼우며 구분하면 맑고 탁한 소리로서 사성으로 정리하면 다섯 가지 음이 생기는데 그 가운데 모음과 자음의 소리가 겹친 소리가 반복적으로 순환되어 서로 머리와 꼬리를 이루어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원리를 밝게 알아서 그 음을 얻으면 곧 뜻을 통하며 뜻에 통한 즉 이치가 밝아지고 이치가 밝아진 즉 문장에 막힘이 없으며 문장에 막힘이 없으면 천경만론의 이치가 통하는 것이 마치 다섯 손가락이 손 안에 있음과 같음이니 범부가 성인이 되는 것이 조석지간이거늘 굳이 일생을 다 쓸 것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문자를 여의지 않고 해탈하는 것이며 스승이 없이도 제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막혔던 의혹이 어둠 속에서 등불을 얻은 것처럼 사라질 것이며 참됨이 드러나고 이치가 명확해질 것이니 범어와 한어가 자연히 명백해질 것이다. 소리에는 비록 남북이 있으나 그 이치는 같은 것이니 진나라 사람은 거성(擧聲)을 상성(上聲)처럼 내고 오나라 사람은 상성을 거성처럼 낸다고는 하나 그 사이에서 가볍고 빠름을 잃고 무겁고 탁함을 모르는 것은 잡은 물고기를 놓침과 같고 시자(豕字)와 해자(亥字)를 잘못 아는 것과도 같나니 이러한 이치로 말미암아 42자모와 12자음은 비로자나불의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유가사지론약찬』에서도 자모를 해석했다. 자모의 수는 경론의 분야마다 다른데 여기서는 33자로 설명하고 있다. 그 외 장경의 폭넓은 분야에서 자모(字母)를 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모(字母)라는 것은 33자와 14음을 이르는 것이다. 14음은 謂.阿.噫.伊.鄔烏.仡.侶.紇.閭呂.盧.醫.愛.污.奧.闇.惡에서 뒤의 둘을 제하는 고로 14음을 이루며 迦佉 등 다섯, 遮車 등 다섯, 吒 등 다섯, 多他 등 다섯, 彼坡 등 다섯, 夜.邏.羅.縛.賒.娑.婆.訶.叉에서 叉(多)를 취하지 않는 고로 33자이다. 앞의 14음이 뒤의 33자를 따라 일체 자를 생성한다. 33자가 일체 자를 생성하므로 일체의 뜻을 포함하는 까닭에 이름을 자모라고 하니 모든 자의 근본이며 모든 뜻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본행집경』과 『방광대장엄경』에는 부처님께서 7세의 태자시절에 학당에서 석가족 아동들에게 자모를 연설하시는 장면을 전한다. 이 때 석가족 아동들이 공통적으로 자모(字母)를 공부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러한 서술은 자모가 부처님의 언어 및 불교교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의미하며 석가족 언어와의 연관성도 시사하는 것이다.
마가다어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언어이다. 또, 서기 5세기 마가다국의 불교 대덕 각명(覺明)은 "어떠한 언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가 저절로 자연스럽게 마가다어를 말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기원전 5세기 전후 인도 동부의 마가다어가 주요한 통용 언어임을 반영하였다. 또한 인도의 유력 종파인 자이나 교설이 이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존중의 요인이기도 하다. 마가다어는 같은 프라크리트 계통의 언어로서 불교경전을 적은 팔리어와도 유사하지만 고유의 문자가 없이 산스크리트나 타밀문자를 사용했으므로 사실 파악은 어렵다.
불교는 인도본토 사문문화(沙門文化)의 바탕에서 시작된 종교로서 부처님께서 설립하신 불교는 당시 통치계급 바라문교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였으며 그들의 사상관념에 대한 일종의 부정이었다. 당시의 바라문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범천의 입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선전하였으며 제사기 복, 바라문지상, 베다천계의 삼대강령을 선전하였는데 이러한 강령을 실현하는 수단이 언어였다.
바라문의 전용 언어는 '산스크리트'였고 그 뜻은 '조합'이다. 당시 인도에서 이러한 산스크리트는 고귀함과 통치자를 상징했으며 바라문 통치자에게는 막강한 무기였다. 또한 바라문 계층의 전용 언어이며 일반백성과 비천한 출신의 사람은 신성한 산스크리트 범문을 말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불교는 바라문의 4성제도와 통치를 반대하여 먼저 바라문의 언어를 반대했고 동시대의 자이나교도 바라문의 통치와 범문을 반대하였다. 따라서 불교가 교의를 전파하는데 사용한 언어는 모두 마가다어이고 부처님은 제자들이 범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사분율』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때 비구 중 용맹이 있었는데 바라문 출가자로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숙여 예를 취하고 한 쪽에 앉아서 세존께 청하였다. "대덕이시여, 이 여러 비구들은 출가하여 이름자 또한 다르고 경전의 뜻을 파괴합니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이 세간이 좋아하는 범문으로 경전을 수행토록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것이 바로 불법을 훼손하는 것이며 저 외도의 언어로써 경전을 더럽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재차 말씀하셨다." 나라의 풍속과 말로 듣고 이해하는 대로 경전을 익히고 암송하라."
『오분율』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바라문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베다서를 암송해 오다가 출가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경전 암송이 바르지 않은 것을 듣고 조소하며 말하였다. 여러 대덕(大德)이 출가한 지 오래되었는데 남녀 언어, 한 언어 많은 언어, 현재 과거 미래어, 장단음, 경중음을 알지 못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있다. 비구가 듣기에 부끄럽다 "그리하여 두 비구가 부처님께 가서 자세히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각 나라의 말대로 독송하면 나의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범어를 사용하는 비구는 투란차(偷蘭遮)를 범하는 것이다."
이상의 두 가지 사례는 서로 다른 언어로부터 나온 부처님의 말씀이지만 취지는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불교의 언어관과 사상은 불교제자는 범문을 사용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방언과 속어는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부처님이 강력히 바라문교의 범문을 반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가 초기에 흥했을 때 범어를 사용하여 불교를 선전하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비 구들에게 각자의 방언으로 경전을 암송하고 전법하도록 하였다. 부처님이 불교를 창건하실 때 그 교의는 곧 중생의 평등을 강조하고 신분의 구분이 없었으며 자애와 관용과 바른 견해의 품행을 중요시하였다.
부처님의 이러한 사상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바라문의 통치자는 소수이고 일반 대중은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교의 신봉자들은 갖가지 다른 계층과 다른 직업, 다른 지방,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만약 불교가 하나의 표준 언어가 있었거나 혹은 부처님 자신의 언어가 있었다면 불문에 귀의한 대중들은 곧 다양한 곤란에 봉착했을 것이고 불교의 전파에 제약이 따랐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각국의 풍속과 언어를 따라 이해하여 경전을 암송하라"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3.불교의 상징부호 다라니
구마라즙이 번역하고 용수보살이 지은 『대지도론』은 『마하반야경』을 주석한 논서이다. 그 가운데 42자모 독음의 공능에 대하여 해석한 것이 있는데 서술한 방식대로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면 장차 20종의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자등(字等) 어등(語等)은 제자평등(諸字平等)하여 증애(憎愛)가 없는 다라니이다. 또 이 제자(諸字)들은 인연이 모이지 않으면 역시 존재하지 않아서 필경의 없음으로 돌아가니 현재에도 역시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마음 속에서 분별을 일으켜서 심설(心說)을 각관(覺觀)하므로 인해 산란하게 되는 것일 뿐 (제자나 제법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바람이 물살을 일으키나 물의 본성은 고요한 것과 같이 여러 글자들도 모두 필경의 공(空)이어서 열반과 동등한 것이다. 보살이 이 다라니로서 일체제법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게 되므로 이름하여 자등 어등이라고 하는 것이다. 묻노니 요약하면 오백다라니문이며 펼치면 무량다라니문이라 하는데 지금 어떤 연고로 자등다라니문(字等陀羅尼門)을 제다라니문(諸陀羅尼門)이라 하는가? 답하여 가로되 큰 근본을 말하면 나머지를 다 설하는 것이니 이것이 제다라니의 초문(初門)이다. 처음을 설하면 나머지도 설하는 것이 되니 이로서 제다라니 법이 다 최초의 자어(字語)를 분별한 자어로 생하여 42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체자의 근본이니 자(字)에 의해 말(言)이 있고 말에 의해 이름이 있고 이름에 의해 뜻이 있어서 만약 보살이 자문을 들으면 그로 말미암아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자의 최초는 아자(阿字)이며 끝은 다자(茶字)이며 중간에 40자가 있으니 이 42자를 얻으면 자다라니보살(字陀羅尼菩薩)이 된다.
『현밀원통성불심요집』을 보면 다라니는 밀교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대승의 경율론 중에서도 최상의 법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대반야경 600권 중에서 458경권에서 다라니(陀羅尼)라는 용어가 쓰일 정도로 비중이 높은 것은 반야부의 교리행과(敎理行果)에 있어서 자모와 다라니의 원리가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추한다면 반야부의 가르침은 공성(空性)의 이해와 증득이 중요한데 이러한 논리와 방법론에 자모⋅다라니의 원리와 함축성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모수행의 원리는 불교교단의 수행전통이기도 하지만 그 문화적 원류는 불교발생 이전인 인도전통의 수행철학에서 전해진 것임을 『불본행집경』과 『방광대장엄경』에 전하는 부처님의 전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라니는 경전에서 여래의 금구성언을 통한 무수한 현밀의 시현으로 설해지면서 공성(空性), 연기(緣起), 중도(中道)를 증득하는 수행의 첩경으로 제시되고 있어 수행철학의 고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모⋅다라니는 반야사상의 구경으로 표현되고 있고 일찍부터 반야, 밀교사상의 형성에 깊이 관여해 왔으므로 불교사상의 상징부호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현ㆍ밀(顯ㆍ密)의 폭넓은 경론에 자모와 다라니가 수록되는 것은 저 『불설아사세왕경』에 설해진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자모 다라니는 도(道)의 으뜸, 그치지 않는 불(佛)의 으뜸, 법을 재계하는 으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자모는 수많은 불전 중에서 총지문, 다라니문, 아자문, 제문자다라니문, 해탈근본자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자모에서 파생된 '다라니' 역시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모와 다라니는 인도대승불교를 통해서 중국에 전해졌다. 동한(東漢) 환제(桓帝) 말년에 월씨인(月氏人) 지루가참(支婁迦讖)은 서기 178년~189년 사이에서 역어로 된 『반야도행품경』, 『수능엄경』, 『반야삼매경』, 『아사세왕경』, 『보적경』 등을 한역(漢譯)하였다. 이후에 월씨인(月氏人) 지겸(支謙), 축법호(竺法護), 구자인(龜玆人) 불도징(佛圖澄) 등도 각종의 다라니경을 번역하여 전파하였다. 다라니법은 모두 자모를 기초로 삼은 것이므로 자모는 일체 다라니법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언급된 자모는 대개 반야부, 방등부, 화엄부, 밀교부에 속하는 경전류의 총지를 의미하고 있다.
<범패의 수행원리와 활용방안 연구/ 덕림(이병진)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