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天下)……
그대는 아는가?
눈(雪)이 내리는 이유를…….
그대는 알고 있는가?
왜 눈이 내리고, 산(山)은 또 왜 눈에 묻혀야 하는지를…….
세월이라는 이름 아래 탐욕을 청산(靑山)에 버리라.
아아, 눈은 내리고 있는가?
이 겨울 쓰라린 바람에 쓸리는 변황에도……?
겨울이 깊어 감에 따라 중원 강호계가 시끄러워졌다.
말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까지 했고, 변황 일대에서 인구의 대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풍문이 떠돌기도 했다.
천하오풍(天下五風)!
격한 바람은 다섯 군데에서 불기 시작했다.
천년강호사에 일대 분수령을 이룩한 다섯 줄기의 회오리바람이 돌연, 천하를 휩쓸고 지나갔다.
우우, 천지돌풍(天地突風)이여!
첫번째 바람은 대의풍(大義風)이었다.
바람의 주역은 의풍성(義風城)의 태두(泰斗)들.
그들은 백도의 결사조직인 정법회와 더불어 대강남북(大江南北)에서 격렬한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바람의 기세는 가히 경세적, 벌써 십만 고수가 그 바람에 휩싸였다. 대개가 구파일방의 명숙(名宿)들이 길러낸 영웅호걸들로, 의리라는 나무 아래 목을 매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천하열사(天下烈士)들이었다.
꾸역꾸역 봉황산(鳳凰山)의 정법회로 모이는 사람들, 이들은 척마멸사(拓魔滅邪)의 새로운 기치를 올린 정법태상오장로(正法太上五長老)를 찬양하며 모여들었다.
돌아온 기인(奇人)들, 이들이야말로 당세의 백도를 지탱하는 다섯 기둥이었다.
소림사(少林寺) 철목성승(鐵木聖僧),
아미복호사(峨嵋伏虎寺) 강룡사태(降龍師太),
개방(蓋幇) 풍진취개(風塵醉蓋)…….
이미 죽었다고 소문난 지 오래인 다섯 기인, 이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폭풍의 눈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일이었다.
봉황산(鳳凰山) 위였다. 미친 듯이 설풍이 군룡무(群龍舞)를 추기 시작한 곳은.
콰르르르- 릉- 쾅-!
격풍이 산정을 휘감고 있을 때, 그리고 모진 눈보라가 들이닥쳐 흑벽을 회색 장막처럼 칭칭 휘감고 광란을 시작할 때였다.
언제부터일까? 산상(山上)에는 여섯 사람이 서 있었다.
어깨 위, 머리카락 위에 눈을 이고 있는 여섯 사람.
이들 중 한 사람은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의자에 앉아 몸을 가늘게 떨고 있고, 다른 다섯 사람은 석상인 양 움직이지 않고 눈보라가 치솟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악마의 차가운 숨결 같은 혹독한 바람이 불어닥칠 때, 파리한 얼굴의 미인이 기침 소리를 낸다.
"쿨룩… 소녀의 죄를 꾸짖어 주십시오. 다섯 기인의 아호(雅號)를 소문낸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소녀를 죽여 주십시오!"
쿨룩쿨룩… 기침을 하며 토혈(吐血)을 하는 아름다운 여인.
수정(水晶)같이 영롱(玲瓏)한 눈망울에 우수를 띠고, 암사슴을 닮아 길고 가늘게 뽑혀진 흰 목덜미에 고독한 그늘을 드리운 여인!
살결이 파랗게 질린데다가 소름이 돋아나 있어 어딘지 모르게 처량해 보이고, 동정심을 일으키는 여인이었다.
"제발… 한 마디라도 좋으니, 꾸짖어 주십시오!"
여인은 더 애처롭게 말했다.
바람이 분다. 폭설은 눈의 용이 되어 허공 가득 제 그림자를 흘리며 춤을 추고, 석상이라도 된 듯 근엄히 서 있는 다섯 사람은 한숨을 가볍게 내쉰다.
"아아, 소용없는 일이네!"
"죄지은 사람은 여기 없네!"
"우리들의 이름을 이용해 사람을 모으지 않기로 맹세한 것을 깨었다고 해서, 단리회주(段里會主)를 원망하지는 않네!"
"나무관세음보살… 모두 부처의 뜻일 거예요.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큿큿… 백무엽! 그 놈 때문에 우리가 이리도 궁상떨게 된 것이지, 단리가주이자 정법회주이신 단리음 낭자 때문은 아니네!"
다섯 고인(高人), 이들은 바로 정법회의 신풍(新風)을 이끄는 사람들이었다.
일컬어 중원오존(中原五尊).
이들이야말로 당세의 의풍을 이끌고 있는 주역이었다.
본시 이들 다섯은 자신들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단리음에게 부탁했었다.
하지만 단리음은 눈물을 머금고 이들의 이름을 달포 전에 천하에 공개했으며 지금 이들과 함께 산상에 올라 그것을 참회하는 것이다.
수정옥녀(水晶玉女) 단리음(段里音).
정의의 길에 청춘을 바친 여인, 단리음은 현재 죽어 가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에는 생기(生氣)가 없었다. 그녀는 잔기침을 자주 했고, 그 때마다 피를 토했다.
그녀는 극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혈시고혈마분(血屍膏血魔粉) 중의 혈분(血粉).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독에 중독되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여인.
단리음은 바람만 강하게 불어도 쓰러질 정도로 약했다.
보라! 차디찬 손이 가늘게 떨리고, 유난히 큰 눈망울에서 물기가 흐르는 것을…….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애처로워 보이는 단리음.
그녀는 다섯 기인의 자상한 말에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세월이 밉습니다. 이런 날에는……."
단리음은 눈앞이 뿌여짐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체질이 된 단리음은 지혜로운 여인이기에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안다.
기적은 있을 수 없다. 천년공력(千年功力)을 가진 사람이 추궁과혈(推宮過穴)을 해 주기 전에는 대라신선이라도 단리음을 살릴 수 없다.
시한부 생명(時限付生命)이 된 단리음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하나, 눈이 얼굴 쪽으로 부딪쳐 오는 통에 눈물은 감춰졌다.
단리음은 눈물 때문에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바람만 세게 불어도 꺾여질 여인일까?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는 나약한 여인일까?
지금, 그녀의 뇌리로 떠오르는 얼굴을 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단정하지 못하리라!
'그분은… 항상 내 곁에 있다.'
단리음은 얼굴 하나를 품고 있었다.
밤바람처럼 신비로웠던 사람, 차디찬 가운데 뜨거운 정열을 품고 있었던 밤의 신룡.
<언제고, 그대 곁에 돌아오겠소!>
간단한 쪽지 한 장을 써 놓고 사라졌던 사람.
자객(刺客)으로 왔다가 의원 노릇을 하고 사라졌던 사람.
'그의 이름은 백무엽이다. 한순간 나의 영혼을 훔친 대도(大盜)이며, 나의 영웅. 나는… 이 다섯 분을 통해 그의 내력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었다.'
단리음은 백무엽을 기억한다.
신비하게 실종된 정파 제일고수 겸 인문 제일고수.
그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 주고 떠나갔다.
인문의 다섯 사람은 지금도 늘 백무엽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백무엽이 돌아온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백무엽은 그들의 제자이자, 벗이며, 화신(化身)이다. 그리고 백무엽에게는 전 백도의 마지막 모든 것이 있다.
인문의 사람들은 백무엽을 마지막 희망으로 삼고 백무엽에게 내공과 내공구결을 모두 전수했다.
백무엽은 백도인 오천(五千)에게 나누어질 것을 한몸에 전수 받았다.
그는 그 가치를 해야만 한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백도의 장래는 불투명하다.
단리음은 다섯 고수를 통해 인문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일은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정법회의 다른 사람은 그 일을 알지 못한다.
이 날도, 이들 여섯 사람은 백무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화령(無花令), 그는 돌아와 정법회의 태상회주(太上會主)가 되어야 한다!"
"그가 없다면… 의풍(義風)은 조만간 꺼지고 만다. 마가의 대반격 아래!"
"그는 일당백만(一當百萬)! 아아, 꼭 그가 있어야 한다!"
바람 소리, 가늘게 이어지는 목소리들.
눈(雪), 온통 눈이다.
"제게… 두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단리음은 새벽에 웃음을 찾고 말했다. 병마가 골수를 좀먹고 있으나, 미색은 여전했다.
"아미타불… 단리회주의 청은 무엇인가?"
철목성승이 합장하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전과 마찬가지로 그윽하기만 했다.
"저의 소원은 너무도 맹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반년도 더 못 살고 죽을 여인의 입가에 이렇게 화사한 미소가 떠오르다니…….
아아, 아름답다. 죽어 가는 꽃이기에 아름다움은 더욱 찬란히 피어났다.
눈빛보다 흰 손, 그 손이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가운데 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첫째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저의 후계자 하나를 안배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후, 후계자?"
"예, 후계자가 필요합니다. 제게는……!"
"……."
"물론, 백무엽이라는 분이 돌아와 정법회의 수좌(首座)를 맡고 대의풍의 선봉장이 되어 주신다면 별 탈이 없겠으나……!"
단리음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녀의 입술은 전과 같이 도톰하고 선정적이지 못했고, 파리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선(線)의 아름다움만은 여전했다.
"그분이 돌아오신다는 것은 불확실하니……!"
"으음……!"
철목성승은 쓰디쓴 숨소리를 토했다.
그리고 단리음은 뱃속의 말을 용기 있게 토해 냈다.
"제가 죽는다 해도 정법회의 지휘부가 균열이 되지 않도록 저의 후계자 하나를 미리 정해 두었으면 합니다!"
"아니 되네, 단리회주!"
철목성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눈에서는 무서운 신광이 폭사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천리를 거역하는 일이며… 신의 있기로 고금제일(古今第一)인 우리의 백무엽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시네, 단리회주!"
철목성승이 엄격히 말하자, 단리음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넘겼다.
"모두… 백무엽 그분을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녀는 애써 환하게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분이 돌아오실 때 정법회가 건재한 상태로 그분을 마중하기 위해서는… 지휘부가 안정되어야 합니다!"
"으음……."
"저는 이미 한 사람을 생각해 두었습니다. 저를 대신해 정법회를 이끌고, 얼마간 제 곁에 머물며 제게서 회주의 일을 배울 기녀(奇女)를 하나 봐 두었습니다. 장차 제가 없다 해도 저를 대신해서 백무엽 그분을 마중할 사람을……!"
"……!"
"바로 청청(靑靑)!"
"아아, 청청이를?"
다섯 사람 모두 놀랐다. 그리고 단리음의 미소는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 아이나 저나 형제자매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이를 청청검대장(靑靑劍隊長)에서 회주의 비위대장으로 발탁해 수 개월 속성 훈련시킨다면, 훗날 제가 쓰러진다 하더라도 정법회의 틀은 계속 유지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으음……!"
"아아, 그… 그것은……!"
"어르신네들, 마가는 정법회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수는 많으나 머리가 없습니다. 머리가 작은 거인(巨人)이라며, 저들은 본회를 비웃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여자이고, 그들이 벽안아랑(碧眼啞娘)을 통해 쓴 독에 당한 상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
"저는 이 기회에 정법회의 틀을 다시 다지고 싶습니다. 청청을 저의 후계자로 교육시키는 동시에, 이제부터 백무엽 그분을 정법회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만천하에 소문내어 정파열사들이 늘 그를 기억하게끔 한다면… 만에 하나 이 자리에 있는 여섯 사람이 다 죽는다 해도 정법회는 유지될 것이고… 백무엽 그분이 돌아오시는 날, 정법회는 그분의 지휘 아래 진짜 거대무쌍한 대의풍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도 가식 없는 마음이고, 사랑이었다.
단리음은 백무엽을 사랑하고 있었다. 죽음을 바로 곁에 두고 있기에 그녀의 사랑은 오히려 절실해졌다.
"저는 그분의 별호도 생각해 두었습니다. 마가 무리들이 공포감을 느끼게끔 한 가지 아호를 생각해 두었습니다. 그것은……!"
단리음은 화사히 웃었다.
그녀는 어떠한 별호를 생각해 둔 것일까?
"바로… 십천무후(十天武侯)라는 것입니다!"
"아아, 십천무후!"
"위대한 이름이네!"
"열 하늘을 지배한다는 위대한 이름이로군."
"백무엽, 그는 행운아야. 차가운 곳을 달리는 바람이나, 늘 사랑을 일으키니까!"
"좋아, 십천무후라……!"
십천무후(十天武侯), 이제 그 이름은 하나의 존재가 되리라!
백도인들은 그 이름을 경배하게 될 것이다.
의풍성주(義風城主)로, 중원제일인(中原第一人)으로, 정법회의 태상회주(太上會主)로!
구파일방의 공동 속가장문인(共同俗家掌門人)으로…….
눈(雪)이 모질어질 때였다.
"저의 두 번째 소원은… 소녀를 인문십일좌(忍門十一座)로 받아들여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단리음은 방긋 웃었다.
"화명(花名)은 어르신네들이 지어 주십시오!"
"회주가 인문에……?"
"아아, 회주! 그대는 정녕 백도의 대모(代母)시네!"
"어찌해서건 회주를 살려야 하는데, 우리들은 이름만 드높고 쓸모는 없는 폐인들이니… 크으, 어이해야 하는가?"
"인문십일좌(忍門十一座)."
"화명(花名), 단장화(斷腸花)!"
"인문십계(忍門十戒)를 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두 번째 바람, 북황풍(北皇風)!
그 바람은 가장 가공스러운 바람이었다.
만리장성을 넘어 수많은 무리들이 중토(中土)로 들어섰다.
수십 가지 병기를 지니고 야음을 틈타 장성을 넘은 자들, 흑풍(黑風)이 중토를 휘감듯 중원으로 들이닥친 괴고수들의 수는 십만이었다.
이들은 중원마도(中原魔道)와 손을 잡은 북황(北皇)의 휘하세력으로, 하나하나 정예고수로 단련을 받았다.
십만(十萬) 북천위검대(北天衛劍隊)!
이들은 마화삼 휘하에 들기 위해 중토로 들어섰다. 이들은 혈갑십정마왕(血甲十丁魔王)이라는 십대마왕과 오백(五百) 수라잔풍대(修羅殘風隊)라는 소두목들의 지휘하에 들 예정이었다.
마화삼은 이들을 외인검대(外人劍隊)로 들이기 위해 황금 오천만 냥(兩)을 북방부족에게 전했다고 한다.
거금(巨金) 오천만 냥(兩).
마화삼이 십가를 통해 천하 각지에서 끌어모은 고혈 같은 자금. 그 자금이 외인검대들을 사기 위한 군자금으로 쓰인 것이다.
우우, 죽음의 바람(死風).
황금 오천만 냥과 바꾸어진 십만 명의 고수들이 마화삼 휘하에 들어갔다는 것은 가공할 변수(變數)였다.
마화삼, 그는 드디어 야망의 칼을 뽑은 것일까?
천 년에 걸쳐 악마의 터전을 이룩할 마가는 드디어 공식적인 활약을 개시할 것인가?
세 번째 바람, 열사풍(熱砂風)!
그 바람은 천축국(天竺國)에서 불었다.
사천황궁(死天皇宮)이 주도하는 바람으로, 부는 속도는 느리나 그 기세만은 가장 거대했다.
-사천황궁에 삼십삼만(三十三萬)이 모이고 있다.
-중원무림계가 천축을 업신여기기만 한다면 삼십삼만 고수들이 열사풍으로 중원을 침공하리라!
변황무림계 역시 힘이 넘치는 상태였다. 그 힘이 억제되지 못한다면 결국은 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 번째 바람, 황풍(皇風)!
그 바람은 자금성(紫禁城)에서 시작되었다.
정변을 일으켜 제위를 지지하는데 성공한 영락제는 동창(東廠) 조직을 혁신시켰고, 황군(皇軍)의 수를 늘렸다.
관부의 일은 보통 강호계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하나, 영락제가 일으키는 바람은 너무도 엄청나기에 강호인들도 모이기만 하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바람, 그것은 한 줄기 마풍(魔風)이었다.
바람은 깨어난 성(城)에서 불고, 바람의 기세는 가히 천년제일이라!
아아, 바람 앞의 꽃(花)인가?
중원의 운명은……?
마화성(魔花城), 그 이름은 나타난 지 달포도 되지 않아 구만 리(九萬里)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마화성주(魔花城主)!
그는 가장 강하고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그의 수하들은 예의바르고, 무공이 강하고 거금을 물같이 써서 마화성이라는 이름을 일약 천하에 천명시켰다.
돌연, 천하 삼대세력의 하나로 나타난 마화성!
그 이름이야말로 당세무림에 있어 가장 유혹스럽고, 공포스러운 이름이 되어 갔다.
마화성에는 누가 있고,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 * *
고도(古都) 낙양(洛陽).
중원의 젖줄이라는 낙수(洛水) 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대시진(大市鎭)이다.
사통팔달(四通八達)한 거리에는 늘 인파로 북적거리고, 길을 따라 발달한 상가에서는 늘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모두 모이는 낙양, 수백만 호가 모여 사는 낙양에서 풍류(風流)를 아는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은 북천관(北天關) 일대였다. 그 곳에는 유곽이 밀집되어 있다. 밤이면 그 곳은 별세계로 화한다.
나이 어린 자제를 둔 사람들은 그 곳을 악마의 굴이라 하고 침을 뱉으나,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 장소야말로 사람이 사는 이유인 것이다.
기녀(妓女)들의 수준이 높아 어떠한 기녀든 세 가지 악기를 타고, 일곱 가지 춤을 추며, 시를 백 수 이상 줄줄 외운다고 소문이 나서 공자대부(公子大夫)가 즐겨 찾는 운비화잔(雲賓花殘).
문자는 모르나 계집을 아는 파락호(破落戶)들이 즐겨 가는 술값이 저렴한 낙양천리루(洛陽千里樓)와 열래기방(悅來妓房).
자죽림(紫竹林) 안에 세워졌기에 자운선축(紫雲仙築)이라 불리는 칠층 기루…….
거리를 따라 수백 개의 기루가 있다.
불야성을 이루는 낙양의 창굴(娼窟)은 두 가지 조직에 따라 설치된다.
하나는 낙양부사가 하리(下吏)를 통해 주관하는 공창(公娼)이고, 또 하나는 자연스레 발달된 사창(私娼)이다.
그 중 크고 번성한 쪽은 사창가였다.
낙양의 사창가는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끼인다.
하룻밤에 낙양의 기녀들에게 쥐어지는 돈이 황금으로 쳐서 팔두마차로 열 대에 달한다던가?
낙양에는 전 금군(全禁軍)을 포위할 만한 수의 화류여인들이 있다던가?
몸이 돈에 팔리고, 노랫가락 속에 세월이 잊혀지고, 환락 가운데 밤이 묻혀지는 곳.
"이봐요, 미서생들! 어찌해서 놀고 가지 않아요?"
"한 분은 용(龍)이고, 한 분은 봉(鳳)이십니다요. 화대는 거의 받지 않겠으니, 제발 머무십시오. 몸을 거저 드리지요. 호호……!"
"호호… 저분은 수염도 나지 않았네. 여자처럼……."
"흐흥! 귀여운 낭군님들!"
"돼지를 인물 보고 잡아 먹나요? 흐흥! 비록 용모는 못났으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즐기는 솜씨만은 낙양제일입니다."
초경(初更), 북천관 어귀에서 파란이 일었다.
수십 명의 기녀들이 모여들며 아우성이 벌어지는 것이다.
두 청년(靑年), 한 사람은 회삼(灰衫)을 걸쳤고 한 사람은 흑삼(黑衫) 차림이었다.
회삼청년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고, 몸집이 아담한 흑삼청년은 지분을 덕지덕지 바른 기녀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자 양 볼이 새빨개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용모 역시 매우 아름다웠다. 회삼청년의 아름다움이 강한 아름다움이라면, 흑삼청년의 아름다움은 부드러운 아름다움이었다.
"어때, 재미있지 않아? 사내들의 세계가?"
회삼인이 빙그레 웃자, 흑삼청년은 가히 몸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속이 뒤집힙니다요. 더 이상 성주(城主)를 따르기 힘들 정도 입니다. 백 명의 포위를 펴 내공이 탈진해도 이보다 지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자(女子)니까요."
기녀들은 그의 손을 잡아끌어 풍만한 젖가슴을 일부러 주무르게 했고, 어떤 짓궂은 기녀는 보란 듯이 치맛자락을 뒤집어 농익은 허벅지를 드러낸다.
"이봐, 좋아?"
"호호… 계집처럼 수줍어하기는."
"까르르르… 잡아 먹어도 비린내가 안 날 숫총각들!"
웃는 거리의 여인들, 그리고 회삼인도 웃고 있었다.
"하하… 기왕이면 잔풍(殘風), 자네도 끼지 않겠는가?"
그가 웃을 때, 저 높은 곳에서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주인, 끔찍스럽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낙양의 하늘가, 처마를 맞대고 세워진 기루들의 지붕 위로 수백 명의 흑의인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가슴에는 검을 한 자루씩 안고, 석고상같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검사들. 그들의 수는 정확히 오백(五百)이었다.
대체 그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기루 지붕 위에 벽처럼 늘어선 오백 명의 흑의인들은 두 명의 남자를 중심으로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었다.
기녀들은 까르르 웃다가 돌연 나타난 오백 고수의 기세에 질려 오줌을 치마에 싸 대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 아무것도 아니 봤습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기녀들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으, 자칫하다가는 목이 달아난다.'
기녀들은 겁을 먹고 도망치는데, 회삼청년은 넉살좋게 웃고 있었다.
"이상하군, 낭자들이 왜 가지? 흥정도 하지 않았는데?"
'왜 가냐고? 너는 눈도 없느냐?'
'으으, 미친 세상이다… 미친 세상.'
기녀들은 겁먹어 도망가는데, 대체 누가 먼저 보았을까?
"아, 아니? 모두 어디 갔지?"
"어엇, 분명 수만 명이 왔었는데? 하나도 없다니?"
"수천만 마리의 악귀들이 검을 뽑아들고 나타났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니……!"
기녀들은 돌연, 발을 멈춰 세웠다.
지붕 위는 텅 비어 있었다. 조금 전 나타났던 오백 검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그리고 두 청년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녀들의 주의가 흐려진 틈을 타서 슬쩍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새벽녘.
"다 뒤져 보았으나, 그 이름은 그것 하나였습니다."
제일위검대의 수석검사인 잔풍은 천뢰전룡검을 신주단지처럼 안고 있었다.
"화야(花爺)라는 이름은…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잔풍 앞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마무정(魔無情),
백수란(白水蘭).
둘 모두 서생 차림을 하고 있었다.
백수란에게는 낙양 구경이 처음이었다.
마무정도 낙양에는 처음 온 것인데, 이상하게도 거리며 지세가 눈에 익었다. 마치 자신이 여러 번 들렸던 장소인 양.
"그리고 마박사가 비응전서(飛鷹傳書)를 보내시었습니다. 그분은 성주가 성을 나선 직후, 성으로 오시었다 합니다."
잔풍은 허리를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쇠통 하나가 들려 있었다.
"후백 노인(侯伯老人)이 내가 기다리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훗훗, 사실은 그가 따라다닐까 봐 일찍 성을 나선 것이지만!"
마무정은 손을 내밀어 쇠통을 받았다.
쇠통 안에는 돌돌 말린 쪽지가 들어 있고, 쪽지를 폈나 펴지 않았나 확인하기 위해 봉인(封印) 하나가 붙어 있었다.
봉인에는 마박사가 직접 새긴 인장이 찍혀 있었다.
마박사는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는 형식을 지극히 숭상하는 사람으로, 마무정이 너무 자유분방하다고 늘 투덜거리는 마도의 노장로였다.
<속하를 대동하시지 않고 가시다니, 섭섭합니다.
속하, 마박사 후백은 대총수를 위해 지혜의 칼을 갈고 닦았거늘… 어이해 속하를 두고 강호로 나가시었습니까?
속하, 대총수의 명에 따라 강호를 돌며 정세를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결과, 네 가지 중대하고 심각한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강호에서 가장 큰 조직은 두 개로 정법회와 마혼십가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중대한 이유는 백도의 척후세력인 정법회의 힘이 의외로 크다는 것을 속하의 눈으로 직접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는 여러 인물이 있는데, 그 중 주의할 사람은 여덟.
그 중에서도 주의할 사람은 십천무후(十天武侯)와 수정옥녀(水晶玉女)!
기회를 보아 두 사람을 암살(暗殺)해야 할 것입니다. 포섭치 못할 경우에는… 속하, 그 일을 이제 심각히 생각할 예정입니다.
둘째, 마가조직이 새롭게 꾸며져서 복수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시 점조직이던 마가의 조직이 얼마 전 새롭게 변화되어, 속하로서도 마혼십가의 거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장차 복수를 하는 데에는 보다 치밀한 사전탐색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마화삼에게 두 종류의 비밀조직이 있음을 알아 냈습니다.
사막(死幕), 북황(北皇).
두 세력이 마화삼의 천하일통을 돕는다는 것을 알아 냈습니다.
마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두 세력을 장악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조직이 어느 조직인지 알아냈습니다. 마혼십가도 아니고, 변황의 사천황궁도 아니고, 아주 작은 조직으로 강호인들은 그들을 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외자로 인(忍)!
장차 그들을 얻는다면 정말로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부연해 말한다면, 반년 안에 대격전이 벌어질 듯하니 늘 조심하시라는 것입니다.
가짜 마화삼은 지난 수 년 사이 마가조직을 완전 재정비해서 자신의 사병(私兵)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을 꺾는다는 것은 예상보다 세 배는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마박사의 글은 꽤 길었다.
마무정은 글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마박사가 가장 걱정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고집쟁이이고 병서(兵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는 망나니라는 사실일 것이오!"
마무정은 웃다가 밀지를 재로 만들었다.
'강자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싸우는 가운데 더욱 강해질 수 있으니, 탐색보다는 실전이 중요하다. 나의 무기는 세력이 아니라, 나의 투혼(鬪魂)일 뿐이다.'
마무정은 속으로 말하다가 뜨거운 눈길을 느꼈다.
백수란은 야릇한 눈길을 쉬지 않고 그에게 던지고 있었다.
남장을 한 백수란, 그녀의 머리에는 이미 마무정의 그림자가 와락 들어선 상태였다.
그 그림자를 지우는 데에는 일생(一生)이 걸리리라.
'귀여운 나의 여인. 언제고… 그대와 밤을 새울 여유가 생길 것이오.'
마무정은 말 대신 미소를 보내 준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백수란은 그의 미소를 알아보고 볼을 뜨겁게 붉혔다.
얼마 후, 그 곳은 공지가 되었다.
세 사람, 아니 오백이 인(人)은 떠나 버린 것이다.
화야(花爺)!
그 이름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이름은 낙양의 대모(代母)라 불리는 여인문(女人門) 화야문(花爺門)의 주인이기 때문에.
화야문은 낙양의 사창가를 장악한 문파였다.
그 뿌리는 수백 년에 걸쳐 이룩되었기에, 낙양에서 새로운 창기 세력을 꾸미려 하는 사람은 번번이 화야문에 밀려 자금만 탕진하고 물러나야 했다.
화야문주 소몽몽(蘇夢夢).
그녀는 나이 스물하나의 절세미인이었다. 하지만 늘 흑사(黑紗)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목덜미뿐이었다.
칠 년 전, 열네 살의 나이로 화야문주 지위를 승계받은 소몽몽.
그녀는 서시(西施)와 비연(飛燕)을 능가하는 미색과, 전국시대의 웅변가라는 소진 장의를 능가하는 화술로 여인천하(女人天下)를 이룩한 일대여걸(一代女傑)이었다.
그녀의 거처는 뜻밖에도 화원(花園)이었다.
화야문의 중심지는 천향축(天香築)이라 불리는 곳이다,
홍운교(虹雲橋)라는 구름다리 아래에는 얼어붙은 유리계(琉璃溪)가, 그 너머에는 운우평(雲雨坪)이라는 말라붙은 화원이, 그 가에는 오악가산(五嶽假山)이 있고, 천향축은 백설(白雪)을 이고 선 푸른 옷의 여인으로 있었다.
청와(靑瓦) 하나만 해도 정성이 담겨 있는 화야문의 천향축.
이 곳은 바로 마가대총수의 별궁(別宮) 구실을 하기 위해 백여 년 전 세워졌다.
돌연, 일진 회오리가 불며 수천 명의 고수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대총수가 오시다니… 아아, 이제 드디어 때가 된 것인가?"
"제오나찰대(第五羅刹隊) 소속 삼만 고수 중 뽑히고 뽑힌 우리 나찰화왕대에게 드디어… 비천(飛天)의 날이 온 것이다."
휘휙- 휙-!
천향축을 뒤덮는 일단의 고수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현재 기루주(妓樓主)거나 교방에서 이름난 명기(名妓)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모두 여자(女子)라는 것!
제오화왕대(第五花王隊).
이들은 대총수의 내전(內殿)을 지키고 대총수의 은밀한 일을 돌보기 위해 꾸며졌다.
대총수란 지위는 가히 신의 지위였다.
명하면 무엇이든 가능한 지위, 마화삼이 누리고 있는 절대적 지위보다도 오히려 존귀한 고금절대의 지위.
아아, 육향(肉香)이 흐르고 향풍이 흐른다.
여고수들의 몸에 발린 지분 내음이 한기를 타고 흐를 때, 돌연 팔방(八方)에서 차디찬 호통 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 다가서면 안 된다!"
"제오화왕대의 여인들! 우리는 바로 제일위검대 소속의 고수들이다!"
"천향축 안에는 대총수가 계시다. 그러니, 이제는 멈춰라!"
"하나하나 신원을 확인한 후에야 대총수의 인증을 받고 화왕검대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마가의 법을 모르는가?"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며 얼어붙은 개울 속에서, 가산 뒤에서, 화원 속에서 흑의인들이 대거 나타났다.
냉기(冷氣)조차 흘리지 않는 무색인간(無色人間)들의 수는 정확히 오백(五百).
바로 잔풍이 이끄는 위검대 고수들이었다.
쓰으으… 쓰으으…….
위검대는 찰나적으로 천향축을 겹겹이 포위했다.
위검대는 백 가지의 기문진을 펼칠 줄 안다.
둘이 펼치는 양의진, 셋이 모이면 삼재마형, 넷이 일심동체로 변하는 마마사천왕진… 그리고 오백이 동시에 대진을 형성하는 오백천마익(五百天魔翼)!
하나하나 일기당천(一騎當天)의 고수들, 이들이 출현함과 동시에 화왕대 소속 여마두들은 섬뜩한 한기를 느끼며 멈춰야 했다.
"대… 대단하군?"
"맥박 소리마저 감추고 잠신해 있었기에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아아, 저들을 보니 대총수의 신위를 알겠군!"
기녀 행세를 하며 세월을 기다리던 여고수들은 위검대의 기세에 눌려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냉동되어 대총수를 기다린 절대자의 그림자들!
스으으… 스으으…….
검은 바람이 되어 천향축을 빙빙 돌며 천라지망을 펼친 오백고수, 이들이 있는 한 아무도 대총수를 노릴 수 없을 것이다.
정실(靜室).
흑사(黑紗)로 얼굴을 가린 여인 하나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그대가 정녕… 대총수이십니까?"
조금 풍만해 보이는 몸을 지닌 여인, 가슴이 풍만하게 발달되어 있고 둔부가 몹시 탐스러운 여인.
천하제일의 방중학(房中學)에 미염공(美艶功)을 지닌 대마가(大魔家)의 나찰장로(羅刹長老)로 안배된 여인 소몽몽(蘇夢夢)이 바로 그녀였다.
나이 스물한 살, 오랫동안 대총수를 기다리며 아성(牙城)을 키워 온 여인. 그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임풍옥수 마냥 늠름한 헌헌대장부(軒軒大丈夫) 하나, 조금 수줍게 행동하는 미소년 하나, 그리고 패(牌)가 하나 있었다.
'믿지 못할 일이다. 대총수는 마인(魔人)으로 아는데, 신인(神人)보다도 아름다운 미공자시라니……?'
소몽몽의 손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훗훗… 결정을 내릴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찰장로일세!"
마무정은 팔짱을 끼고 웃는다. 그는 늘 웃음을 흘렸다.
이 순간도 그는 웃고 있었다.
"나찰대를 나의 휘하에 넣느냐? 아니면 나의 권위를 부정하고 떠나느냐? 모든 것은 나찰장로의 의사에 달렸네!"
"으음……!"
"나는 힘으로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네! 왜냐하면… 힘으로 얻은 굴복은 결국 부정되는 것이니까! 나의 어머니가 그랬고, 선대 혈화삼들이 그랬기에. 나는 힘이 아니라, 화(和)로 나찰장로를 받아들이려 하네!"
마무정은 눈빛조차 강하게 흘리지 않았다.
신패가 없고, 제일위검대가 대동하지 않았다면 그는 일개 문약한 서생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설마… 반노환동(返老換童)한 노거마가 아니라, 진짜 청년이란 말인가?'
소몽몽은 마음을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바로 그 때, 귓전을 파고드는 은밀한 목소리가 있었다.
"어서 절해요. 그러면 내가 다 말해 주겠어요. 대총수의 모든 것을!"
전음으로 전해지는 아주 상냥한 여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백수란의 목소리였다.
"꼭 한 가지만 말한다면 대총수는… 단 십 초로 그대 나찰장로의 전 세력을 살해할 수 있는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으으… 음!"
소몽몽은 그제야 백수란이 여자라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그녀가 번뇌를 거듭할 때였다.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네, 나찰장로! 이 잔(盞)을 비우기 전, 그대가 결정해 주기를 바라네!"
마무정은 팔선탁(八仙卓) 위에서 잔을 쳐들었다.
잔 안에는 핏빛 술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술은 소몽몽이 따른 술이었다.
마무정이 금잔을 입가로 갖고 갈 때, 소몽몽이 돌연 손을 들어 흑사(黑紗)를 찢어냈다.
"대, 대총수! 술에는 독이 들었습니다. 마시지 마십시오!"
흑사가 떨어지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다.
오똑한 콧날에 흑진주의 눈망울, 잘 익은 딸기의 입술… 미인도에서 살포시 빠져 나온 듯 너무나도 아름다운 용모였다.
백수란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농염한 그 얼굴에는 순종의 빛이 역력했다.
"독을 탄 이유는 대총수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흑사를 떼 내는 것은 저의 복종을 하늘에 천명하는 것이고……!"
소몽몽이 흐느끼듯 말할 때.
"좋아, 나찰장로! 그리고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기분이 좋기 때문이야!"
마무정은 금잔을 기울였다. 잔 속의 술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의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독, 독(毒)이 들었는데……?"
소몽몽이 자지러질 때였다.
"술이란… 독할수록 좋아. 그런 의미에서 한 잔 더 할까? 술 속의 백사파천황독(百死破天荒毒) 맛이 유난히 혀를 쏘는군!"
마무정은 다시 잔을 내밀었다. 그는 극독으로 빚은 술을 들고도 전혀 중독현상을 보이지 않았다.
'아아, 부드러움 뒤에는 절대자의 풍모를 갖고 계심을 이제야 알았다. 이분이야말로… 진짜 대총수시다.'
소몽몽은 마무정이 독주를 마신 후에야 진정으로 감복하는 눈치였다.
-나찰장로는 아마도 대총수의 매력에 끌린 듯합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대총수가 단 하루도 머물지 않고 제육해검대(第六海劍隊)를 찾아 떠나신다 하셨을 때, 나찰장로의 상체가 약간 휘청였습니다!
-나보다 눈매가 매섭군?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호호… 저는 여자(女子)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