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철학이야기
건강과 결혼-칸트(2)
칸트는 키도 작고 몸도 마른 편이었으며, 척추는 구부러졌고, 근력 또한 매우 약했다. 대신 시각이나 청각, 미각 등 감각기관은 예민하였고, 특히 두 눈에서는 깊은 심안(心眼)이 반짝이는 듯 보였다. 안경은 쓰지 않았으나 왼쪽 눈은 일찍부터 시력을 잃었고, 사망 직전에는 두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폐장(肺臟)은 작았지만, 위가 튼튼하여 상당한 대식가(大食家)였다. 하지만 많이 먹는 대가로 변비(便秘)의 고통을 자주 겪었다.
몸에 비해 매우 큰 두뇌를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 칸트는 허약한 신체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규칙적이고도 합리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였고, 되도록 명랑하고 쾌활하게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책을 쓰거나 읽을 때, 운동부족을 염려하여 멀리 떨어진 의자에 수건을 걸어놓았다. 그렇게 되면, 억지로라도 걷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낮잠을 피하려 애를 썼고, 점심 후에는 자리에 앉는 대신 서 있는 쪽을 선택하였다.
칸트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도 건강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여자를 ‘사유에 방해가 되는 존재’라 여겼던 까닭 외에 ‘분비물을 억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산책길에서도 땀을 흘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따라서 섹스 문제에 있어서도 체액(體液)의 낭비를 막으려 했을 수 있다는 것. 그는 땀이나 타액(침), 정액 등 모든 것을 몸속에 가두어두려고만 했다.
칸트는 독신주의자가 아니었다. 모든 인간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인류’라는 종족 자체가 멸망하고 말 터인즉, 합리적인 칸트가 이러한 사태를 받아들였을 리는 만무했다. 또 칸트가 여자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다정다감한 양친의 모습도 보며 자랐거니와 무엇보다 그에게 ‘선의 씨앗’을 심어준 어머니를 깊이 사랑했다. 칸트는 여성을 존경하였고, 귀부인들을 친구로 삼기도 했다. 상류사회의 부인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을 만큼, 기사도(騎士道)에 충실한 사람이기도 했다. 칸트는 제자들에게 결혼할 것을 권유하였고, 스스로 중매를 서기도 했다.
다만 아내를 선택할 때의 기준이 참 재미있는데, 현모양처의 자격 이외에 ‘정열적인 애정보다도 냉철한 이성에 따르며, 미모보다 지참금을 먼저 고려하라!’고 충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은 미모나 매력보다 오래 가며, 생활에 도움을 주고 유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리고 그 유복한 것이 아내의 덕분이라는 생각 때문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46살에 대학교수가 된 칸트는 이제 생활 여건도 안정되었으니 결혼을 해보자 맘을 먹었다. 이 무렵, 철학교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가 둘 있었다. 그러나 한 여자에게는 청혼하는데 너무 뜸을 들이다가 그 여자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고, 다른 또 한 여자는 칸트보다 한 발 앞서 약혼을 요구한, 용감한 남자를 선택하여 떠나갔다. 이에 대해, 칸트는 “결혼한 남자보다 독신자가 더 오랫동안 원기 왕성하다.”라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화를 삭혔다.
이후 칸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그렇다면, 그가 왜 끝내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것은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품는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칸트는 그러한 물음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특히 노년에는 그것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를 피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칸트의 한 친구는 “칸트의 첫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났는지, 혹은 그의 체질과 여러 학문에 대한 탐구로 인하여 결혼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칸트 이야기는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