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2일 이배사 서울지부의 가장 맏형님이신 방진님의 주제 발표를 듣기 위해 강남으로 갔습니다.
신여량님의 절친이신 신입회원 이백록님을 로비에서 만나서 인사나누고, 세미나 장소로 올라갔더니
방진님과 이미 와계신 관찰사님이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진행을 맡고 계신 지용희 교수님께 잠깐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아 주제 발표전 총회를 참관했습니다.
작년에도 하신 이순신 관련 사업을 보고 하시고, 올해도 여러 가지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것들을 알리고
배우는 사업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역시 이 모임에서도 방진님은 아주 중추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셔서
이배사 회원으로서도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날 이사에서 상임이사로 추대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간단히 총회가 끝난 후 드디어 방진님의 주제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9월에 개인적으로 이순신 유적지를 답사하시고 정리하신 자료였습니다.
알고 계신 방대한 지식과 세심한 답사에 감탄을 하며 들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들었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혹시나 제가 아는 게 많이 없고 강의를 하신
내용중에 잘못 메모하여 오류가 있다면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 발표하실 때 직접 찍으신 사진을 함께 넣어 설명해 주셔서 현장에 가본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적지에서 바라본 이순신 리더십 - 방성석>
1. 전라좌수영지 - 여수
- 망해루 : 1592년 5월 3일 첫 출정전 날 작전회의를 했던 역사적인 곳. 이때 녹도만호 정운장군이
이순신 장군에게 더이상 기다리지 말고 출정해야 한다고 간언함.
- 진해루(현재의 진남관) : 원래는 진해루였으나, 1599년 임란이후 이름을 진남관으로 변경.
'바다를 진압한다' '남쪽을 진압한다' 즉 '왜군을 진압한다'는 의미.
원균이 구원요청을 계속했을때 부원론 vs 관할론으로 나누어져 격론이 일어난 곳.
- 거북선 : 임란 전날 시험운행을 하며 총통도 쏘아 보는 절묘한 타이밍
- 전라좌수영
- 충민사 : 이순신장군과 이억기 장군의 사당
- 이충무공 어머님 사시던 곳, 송현마을 : 당시 휘하장수였던 정대수 장수의 집. 당시 79세 고령의 어머님을
전장터로 모신 이유는 돌아가시기 전에 가까이 모시고 싶었던 효심
- 여천 선소 - 거북선 제작했던 곳
여수 지역 답사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유비무환의 리더십을 느낌
2. 옥포해전지 - 거제
- 옥포 유물전시관
- 효충사
- 해전도(제장명교수님 제작하신 해전도 설명) : 5/4 여수에서 출정하여 5/7 새벽 옥포 앞바다 30척
왜선중 26척, 합호 5척, 5/8 적진포 13척 분멸
- 어록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게 태산같이 신중하게 행동하라"
- 옥포해전이 가지는 의미 : 기선제압
3. 합포해전지 - 웅천(진해)
마산 합포 vs 진해 합포 논란이 있었으나, 웅천이 진해의 옛지명이니 만큼 진해 합포가 맞을듯.
적진포해전지는 그 위치가 어딘지 규명이 안됨. 고성이나 통영 어디 부근이 아닌가 추측.
4. 사천해전지 - 사천
- 사천해전 유적지는 없음
- 거북선이 첫 출정한 해전 : 돌격장 이기남이 타고 나감
- 이순신 장군의 첫 부상이 있었던 해전 : 어깨 총탄이 관통되어 오래도록 고생
5. 당포해전지 - 통영
- 별다른 유적지 없음, 표지판 등 아무것도 없어 아쉬움
6. 당항포해전지 - 고성
- 당항포 해전관
- 송충사
- 투구모양의 상영관이 특이했는데 충무공의 어린시절 동영상을 볼 수 있음
- 관리가 참 잘되고 있어서 전적지 관리의 롤모델이라고 보심
7. 율포해전지
- 율포성지인 거제시 장목면 율천리 다녀오심
8. 칠천량해전지 - 거제
- 거제도와 현재 연륙교로 연결된 칠천도는 지금에 와서야 공원을 조성중
- 1597년 7월 16일 이 해전에서 원균 전사, 이억기와 최호 투신하여 전사
9. 명량대첩지 - 해남
- 1597년 9월 16일/13:133의 의미 되새김 -> 작전의 승리, 천행의 승리, 수군의 승리
- 전라우수영지 : 당시의 실제 우수영과는 1~2km 떨어져 있음
- 명량대첩 : 이순신 장군의 모든 리더십이 총망라
유비무환의 리더십 + 긍정의 리더십 + 소통의 리더십 + 신뢰의 리더십 + 솔선의 리더십
- 조선수군의 재건
- 어록 : 必死則生 必生則死
10. 고하도 - 목포
- 명량대첩이후 42일 동안 떠돌아 다니다가 고하도를 통제영으로 정함. 108일간 머물면서 수군을 재건
병력 1천에서 2천으로, 전선 13척에서 53척으로, 군량 다량 확보 등
- 모충각 : 유허비
11. 고금도 - 완도
-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통제영
- 왜장 고니시가 있던 곳으로부터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고하도에서 고금도로 통제영 옮김
- 이순신 장군의 통제영 선정기준 5가지 : 빨리 지나가 미처 필기못함 ㅠㅠ
- 충무사 : 이순신 장군과 이영남의 위패
- 월송대 : 이순신 가묘 안장터, 11/19일 전사하셔서 남해 충렬사에 3일간 안치후 11/21 본영인
고금도에 안장되었다가 한참만에 아산 어라산으로 안장되심
12. 선진리왜성
- 사로병진작전
13. 순천왜성
- 일본으로 빠져 나가려는 왜장 고니시를 잡기 위한 과정
마지막으로 이순신 리더십은
1) 소통경영 리더십
2) 창조경영 리더십
3) 자립경영 리더십
4) 정도경영 리더십
5) 신뢰경영 리더십
이라고 정리 마무리 하셨습니다.
2시간 가까운 열강을 해주셨는데 .. 요약하는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ㅠㅠ
이번 주말 남해, 통영 답사를 앞두고 있는 저에게 참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가르쳐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초대해 주신 방진님께 감사드립니다.
세미나 끝나고 이배사 서울지부 - 방진님, 관찰사님, 신입 이백록님, 저 정운 넷이서
기념촬영을 강의실안에서 했습니다. 관찰사님의 카메라로 발표 당시 방진님을 찍었습니다.
아마도 카페에서 곧 볼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이후 근처 식당에 뒷풀이 모임에도 초대해 주셔서 과메기와 오징어 숙회에 막걸리, 소주 한잔 씩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관찰사님은 차를 가져오신 관계로 맥주 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래셨습니다. *^^*
이상 방진님의 주제 발표를 듣고 간단히 참관기를 올려보았습니다.
첫댓글 아이구..자세히도 기록하셨네요..ㅎㅎ 아주 요약을 잘하셨어요..모쪼록 주말 남해답사 성과 있으시기 바랍니다..전 점심때 영광원자력발전소로 출발해서 일보구 광주가서 저녁먹구 좀전에 집에 도착했네요..
관찰사님도 매일 움직이시는 거리가 정말 상당하십니다.~~ 거의 매일 출장이시네요*^^* 어제는 재미있는 세미나였습니다.
아이구 공부를 열심히 하셨군요. 내용 요약까지 해서 울려주시고... 정말 수고많았구요, 만인의 귀감이 됩니다.
유익한 시간이었겠습니다. 더불어 이백록님을 따뜻하게 환대하고 함께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남해, 잘 다녀오세요.
아주 요점정리와 흐름을 멋지게 정리를 해주셨네요
정운님 또한 리더자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본보기의 대상이기도....항상 부지런하시기까지*^^*
아 이런... 가만 앉아서 현장 강의를 듣고 온 듯한 느낌입니다 고맙습니다^^
정운님 감사해요. 열심히 하시는 모습 존경합니당
아이고...역시 우리 서울지부장님^^ 짱이십니다. 함께해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이렇게 요약까지....앞으로 더욱 잘 모시겠습니다.
작년에 전적지 답사하신것 아주 요긴하게 잘 쓰셨겠어요.
멋지십니다.
바로 메모에 돌입했습니다.
지금 우리모두에게 필요한 요소들이 압축되어 있네요.
역시~~^^ 정말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사천해전 유적지 가 "없음"이라고 되어잇는데요,유적지란 어떤 유적지를 말씀하시는지요..??/
관련된 유적지는 모자랑포가 있고, 선진리성내 해전도가 그려진 충무공 승첩비,그리고 모자랑포 건너 모충공원내에는
이은상시인의 시비로 이충공비로 구성이된 모충공원이 있지요...
섭섭해 하지 마시옵소서. 물론 선진리성 내 해전도, 승첩비도 사진으로 보여드렸고, 모자랑포의 기념비옆에서 찍은 사진도 거기에 쓰여진 장계와 일기까지도 보여드렸습니다. 다만 사천해전도는 선진리 왜성 안에 있었고 정작 왜성입구에는 사천해전에 대한 안내도가 별도로 없어서 아쉬웠다는 얘기였고, 또 사천해전은 거북선이 처음으로 출전했던 해전이고 이순신이 총상을 입어 상당기간 고통을 입었던 해전인데도 오히려 패전했던 사로병진의 왜성이 부각된 느낌이고, 왜선을 13척이나 분멸시키며 승전했던 사천해전에 대해서는 옥포나 당항포 같은 별도의 기념관이나 사천해전을 부각시킬만한 특별한 것이 없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정말 잘 지적하셨군요. 항상 느끼는 사항이었는데 아주 예리하게 보셨군요. 주와 종이 바뀐 느낌이 자주 들었죠. 거북선은 거제도 지세포항에 있을 것이 아니라 사천에 보내야 할 것 같죠? 언젠가 사천시청에 건의해야 할 것 같아요.ㅎ
올해 시청에서 추진 사업 중에 사천해전 전시관 및 사당 건립,
거북선 최초 출전지 수상 테크 설치, 기념공원 조성 등이 들어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천에 한 시민으로 또 이배사의 회원으로 하루 빨리 이뤄지길 기대해봅니다...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역사는과거를 돌아봄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함입니다.
1.의 "여천선소"는 "순천부선소"로 고쳐 불러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제 힘은 미력하기만 합니다.
아픈 역사도 역사이고 그런 아픔을 되새겨 더이상의 아픔이 없어야하는데도 "여천선소"로 불려지는것은 안타까움입니다. 고서에는 "순천부선소"로 되어있고 문화재청에 문화재 등록은 "여천선소"로 되어있는데 얼마전까지의 표지석엔 "여수선소"로 되어 있었답니다. 문화재 정화사업으로 "여수선소" 표지는 없어졌지만 정비후 또 어떻게될지....문화재 명칭 명명 숸서를 따른다면 "여수선소"로 될듯
제가 소개하기로는 본영선소, 돌산도 방답진선소, 순천부 여천선소로 말씀 드렸는데 역시 잘못된 것인가요? 당시 전라좌수영은 순천부 오동포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더 정확한 내용을 알고 계시면 가르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현재의 "망해루" 자리에 "진남관"의 전신이라고 할수있는 "진해루"가 있었다고 하던데 그 당시의 "망해루"는 그럼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1900년 초 기록 사진에 보면 "진남관"이 있고 바로 앞에 "남문"이 있으며 "남문"앞은 바로 바다로 되어 있어서 그 당시엔 "망해루"가 있었는지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데 "망해루"에서 출정 간언을 했다고 하니 당시의 "망해루"가 어디쯤에 있었을지 고민하고 찾아봐야하는 숙제가 생겼네요
진남관은 남쪽을 진압한다보다는 "임금이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봐야한다는 견해들이~~~북쪽이나 서쪽, 동쪽에도 진남문이 있는것을 생각해본다면...
비격진천뢰님..진남관 입구에 세워진 2층 누각 망해루는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철거가 되었다가 1991년 4월에 복원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확인하여 주실래요?
:::망해루:::
망마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망해루는 임진왜란때에는 왜군들의 동태를 살피던 초소였으나 1890년대경에 허물어져가는 건물이 있었다고 전하며 망마산 정상에 심어져 있는 한 그루 동백은 이충무공께서 수군들과 기마병들을 훈련시키며 말채를 꽂으면서 이 말이 살아 있으면 나의 영혼도 같이 살아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전설이 전하며 망마산 중턱에는 기마병 훈련터가 현재도 남아 있음. 두곳 중 어느곳이 진짜인지 헤갈리네요..
옥포해전에 첫출전하기 전날인 5월3일 밤, 망해루에서 작전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여수해설사 전장길님 한테 들은 사실입니다. 혹시 여수에 계시다면 어디에 기록인지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장길 해설사님께서 많은 수고를 해주셨는데 이미 여러번 전화로 문의한바 있고 또 전화해서 확인한다는게 마치 추궁하는 거 같아서요. 녹도만호 정운의 출전 간언 즉 "우수사를 더이상 기다릴 수 없고, 이미 왜적들이 한성가까이 다가가니 더이상 출전을 늦추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 내용은 난중일기의 내용이구요. 저는 망해루와 진해루 자리가 지금의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은 몰랐습니다.확인되시면 저에게도 알려주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