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가봅시다. 필자, 예전에 <무한도전> 리뷰 비스무리한거 쓴 적 있다. 이걸 봐야 또 이 글이 이해가 빠를테니 못 보신 분들은 요오기 와서 함 보시라.
예능계의 독보적인 주자 <무한도전>에 최대치로 접근한 프로그램을 고르라면 <1박2일>이 될 수 밖에 없겠다. 최근 연일 상종가를 치며 <무한도전>의 아성에 도전하는 일명 '야생 버라이어티'.
본격적 리뷰 들가기 전에 '생계 버라이어티'를 내건 <라인업>부터 한번 돌아보자. <라인업>은 시작할때부터 <무도>를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이경규, 김용만, 김구라 등 몸값 좀 나가는 예능인들을 모아놓고 대책없이 일단 시작하고 본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아직도 <라인업>은 <무도>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A. 김용만과 이경규의 티격태격이 <라인업>의 줄거리다. 근데 이거, 오래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건강보감>, <대단한 도전>에서 수 없이 봐오던 설정이다.
B. 김용만, 이경규, 김구라등은 캐릭터의 조합이 아니라, 말개그로 웃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말이 '생계'지 <무도>나 <1박2일>의 '처절함'이 극히 결여되어 있다. 진흙에 빠진다고 처절한게 아니다.
C. 이동엽, 조원석등 인기나 지명도가 떨어지는 캐릭터는 피도 눈물도 없이 퇴출시킨다. 상을 당한 최코디를 보듬거나, 대한민국 엠씨 1인자에게 꼬박꼬박 개기는 미소코디를 띄워주는 따뜻함을 지닌 <무도>, 처음 촬영에 임한 VJ가 피곤함에 넉다운된 모습을 보이는 <1박2일>에 비하면 상업적 냄새가 너무 난다.
벌써 몇 번째입니까?
이렇게 '리얼 버라이어티'의 아류를 아직은 벗어나지 못한 <라인업>에 비해, <1박2일>은 기본적으로 <무도>의 컨셉위에 출발하기는 했지만, 조금씩 차별화를 보이며 캐릭터 구축에 성공,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2. 살아있다. 시청률이 극히 부진했던 초반의 <무도>시절부터 '무도빠'였던 필자, 다른 프로그램들이 <무도>의 컨셉을 흉내내던 것을 마구 비난하곤 했다. 그런데 유독 한 프로그램 만큼은 비난이 애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로 <1박2일>. '야생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며 전국 곳곳의 숨겨진 풍경을 1박2일 동안 소개하는 그런 코너 였다.
처음엔, 별 재미 없었다.
사실 해피선데이는 <불후의 명곡>을 보기 위해 접했었다. <1박2일>은 곁다리일 뿐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1박2일>이 슬슬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 것은 김C, 이승기가 들어오고 나서부터였다. <무도>와 캐릭터가 겹치는 노홍철, 강호동과는 왠지 코드가 맞지 않았던 지상렬이 빠지고, 외모부터 야생인 김C, 외모부터 전혀 야생이 아니었던 이승기가 훨씬 상황극 설정에 어울렸던 것이다.
무뚝뚝한 남잔 줄 알았던 김C의 환한 미소는 2002 월드컵에서 웃으며 날으던 홍명보의 미소와 닮았고, '허당'이라는 공전절후의 캐릭터를 얻은 이승기. 그리고 '까나리 액젓 원샷'의 기행을 선보인 엠씨몽. 그들은 기존멤버 강호동, 이수근, '초딩' 은지원과 어우러져 거의 <무도>를 위협할 정도의 캐릭터 조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들의 사소한 내기, 복불복, 생존을 위함 몸부림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었고, 잘 썰어진 회가 아니라 살아서 펄떡대는 생선의 신선함을 우리는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얼마전 은초딩을 제압한 상근이.
3. 리얼리 리얼리티? <무도>가 표방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핵심은 무엇일까? (중간에 시츄에이션이 살짝 붙는 다는 것도 잊지 말자.)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인들을 '막' 대하는 스텝진에게 그 해답이 있다. 국내 최정상, 1인자 유재석을 비롯해, 치킨CEO, 거성, 하찮은 형, 쿨거성 등 캐릭터 창조의 달인 박명수, <하이킥>으로 상종가를 쳤던 정준하, <개콘>의 주역이었던 정형돈, 떠오르는 노홍철과 하하. 그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예능인들이었다.
그러나...태호피디는 그들에게 쫄을 입고 얼음속에서 바나나를 캐게 만들었으며, 자기 손으로 담근 김치를 먹게 만들었고, 유전에서는 잠도 재우지 않았고, 뭐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 시도때도없이 멤버들을 긴장시켰고, 거의 매주 속이려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밥 안주는 프로그램'이라는 금맥을 찾아낸 것이다.
<1박2일>의 핵심도 이거다. 유재석에 필적하는 유일무이한 엠씨인 강호동을 비롯해 나름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인기인들을 모아다가 식비로 딸랑 몇 천원씩 집어 주고, 눈밭에서 텐트치고 자게 만들고, 새벽에 게잡이 시키려 강제 연행하기도 하고, 하다못해 기차정거장에서 버리고 가기까지 한다.
이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작용한다. 망가지는 연예인을 보면서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또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라인업>은 이게 부족하다. 설정이건 대본이던 매우 자연스럽게 '막' 대하는 상기 프로그램들에 비해 어색하고 어거지로 보이는 건 필자만일까. 그들이 좀 더 분발하길 '바래' 본다.
1박2일을 이끄는 쌍두마차, 은초딩과 허당선생
4. 리얼 휴머니즘 그러나 <무도>가 그렇듯이, <1박2일>은 단순히 캐릭터 상황극에, 몸개그 말장난에, 망가지는 것만은 아니다. 시골의 이웃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먹거리를 얻어 먹으며, 그들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정'을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개성도 다르고 복잡한 군상들의 사소한 내기에 목숨을 걸고, 힘을 합쳐 한명을 바보만들고, 우기고 노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우리가 노는 그런 모습들이다. 그래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1박2일> 방송이 끝날 때 느껴지는 아련함. 그리고 뿌듯함. 그것은 필자도 마치 같이 여행을 다녀와 노곤한 심신을 침대에 뉘였을때 드는 그런 기분이다. 그들에게 같이 고생한 것 같은 동지애 마져 느낀다.
5. 박수칠 때 돌아보라 그러나 <1박2일>에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은 포맷의 단순함이다. 이것은 <무도>에 비하면 제법 작지 않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무도>처럼 자유자재로 포맷을 변환하지 못하면, '1박2일 로드쇼'가 식상해지는 그 순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공산이 크다.
<무도>는 판을 내고, 춤을 추고, 서커스를 하고, 밴드를 결성했지만 <1박2일>은 단지 잘 놀 뿐이다. 이 것은 작은 차이일지 모르나, 캐릭터 입체화에서 <무도>에 밀리는 현상을 보일지 모른다.
끊임없이 새로운 등장인물을 발굴하는 <무도>. 최코디, 정실장, 미소코디, 융드옥정, 노홍철의 형, 듬직한 주연씨에 이어, 최근에는 노홍철의 새 매니저도 '핑계대는 뚱보'의 캐릭터를 잡았다. 그러나 <1박2일>은 산적PD 빼고 부각되는 '장외멤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