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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난세(4) 콰콰콰~! 거친 기운이 숲속을 몰아치며 나뭇잎이 시야를 어지럽히며 휘날리고 물보라가 허공 가득 튀었다. 촤르륵! 남궁성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묵직한 기운이 그의 검 끝에 몰려들며 적들을 압박했다. 그가 휘두르는 것은 평범한 삼재검법이었다. 단지 삼재검법만으로도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들을 손쉽게 밀어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만한 검법은 쓰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무비와 흑야화는 소림의 절기를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쿵-! “챠핫!” 거친 진각과 함께 힘차게 앞으로 뻗는 무비의 주먹. 순간 그의 주먹에서 무형의 경기가 일어나며 거칠게 전방을 향해 밀려나갔다. “백보신권?” 자신을 향해 노도처럼 밀려오는 경기에 조광운이 신중하게 눈을 빛내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기운이 마치 무지개처럼 일어나며 무비의 경력과 충돌했다. 콰-아-앙! 순간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돌조각이 튀었다. “어이가 없군. 이게 정말 백보신권이란 말인가?” 조광운이 짜릿하게 울리는 손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백보신권(百步神拳). 말이 좋아 신권(神拳)이지 사실상 오래전부터 유명무실해진 이름이었다. 백보 밖 에서 커다란 바위를 부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가진 권이긴 했지만 기수식과 기를 끌어올리는 예비동작에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어 실전에서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는 권법이 바로 백보신권인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중은 너무나 손쉽게 백보신권을 연이어 펼치고 있었다. 짧고 간결하게 밟는 진각과 재빠르게 돌아가는 허리와 어깨, 그리고 뻗어 나오는 주먹, 그럴 때마다 백보신권이 맹렬히 펼쳐지며 조광운을 압박했다. 때문에 조광 운은 그의 지척으로 접근할 틈을 잡지 못했다. “역시 소림이란 말인가?” 조광운은 검을 휘둘러 연신 무비의 백보신권을 분쇄하며 싸늘히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십자성에 밀려 조용히 잠을 자던 거인이었기에 내심 우습게 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무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계속해서 무비의 경력과 부딪치는 그의 손아귀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꽉! 그러나 이대로 밀리는 것은 조광운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결심을 굳히자 그의 손 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폭발적으로 변한 조광운의 분위기에 무비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한눈에 봐도 무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슈우우-! 순간 마치 빗살처럼 십여 개의 기운이 조광운의 손에서 일어나 무비를 덮쳐갔다. 그것은 마치 십여 명의 조광운이 있어 일제히 검기를 날린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십여개의 검기가 시퍼런 이를 드러내고 무비의 전신을 난도질 할 듯 날아왔다. ‘평범한 수법으론 물리칠 수 없다.’ 무비의 눈이 나직하게 가라앉았다. 검기 속에 숨겨진 진정한 위력을 알아봤기 때 문이다. 순간 무비의 오른쪽 주먹이 기이한 형태를 만들며 오므라들었다. 마치 연꽃과 같 은 형태를 갖춘 무비의 손. “항마제령수(降魔制靈手).” 무비의 입에서 장강의 물결처럼 도도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앞으로 밀려나가는 그의 손, 순간 마치 연꽃이 그의 손에서 피어나는 듯한 환상이 일었다. 콰콰콰콰-! 격돌하는 거대한 기운들. 마치 벽력탄이 터진 듯한 거대한 충격이 일대를 강타했다. 적무강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의 눈은 시야를 가리는 거친 기운을 꿰뚫고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항마제령수······칠십이 종 절기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패도적인 무공이라더니 명불허전이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오직 거칠게 몰아치는 기의 회오리만 보일뿐이지만 적무강의 눈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조그만 움직임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드러난 광경, 조광운의 가슴은 움푹 함몰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무비는 그에게 합장을 하며 불호를 외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무비의 승리였다. 또한 그의 모습은 자애로운 스님의 모습이기도 했다. 적무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확인사살까지 한 주제에 극락에 가라고 염불을 외우는 것인가?’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적무강은 확실히 봤다. 항마제령수가 조광운의 검기를 하나하나 깨부수고, 종내에는 그의 가슴까지 강타하는 것을. 그리고 비틀거리는 조광운의 등 뒤로 돌아간 무비가 손바닥으로 목 부위를 가격하는 것을. 적무강은 아마 그것이 침투경(浸透經)일 것이라 생각했다. 여하튼 그렇게 확인사살까지 한 주제에 극락을 가라고 비는 모습은 역겹게 느껴졌다. ‘죽음은 아무리 미화해도 생명체의 숨이 끊어진 것, 거기에 정당화는 있을 수 없어. 그런 식으로 자기기만을 하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죽였으면 뒤돌아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자에 대한 예우다. 그리고 그것이 적무강의 생각이었다. 적무강은 차가운 눈으로 무비를 바라보다 달려드는 묵운의 칼날을 피해 훌쩍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싸움이었다면 그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싸움이 아니었다. 십자성과 소림의 싸움, 아니 묵운과 무비의 싸움일 뿐 그의 싸움은 아니었다. 때 문에 그는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이런 싸움에서 생사구류도를 펼치는 것은 생사도에 대한 모욕이었다. 무비가 조광원을 쓰러트린 사이 흑야화 역시 이미 십여 명의 상대를 저승으로 보 냈다. 파바바박! 마치 폭풍이 몰아친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흑야화는 두발을 번갈아가며 놀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빠른지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번개가 지나가는 듯한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흑야화의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묵운 소속의 남자들이 어딘가 부러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흑야화가 쓰는 것은 무영각(無影脚)으로 소림의 대표적인 각법 중 하나였다. 무비와 흑야화의 공통점은 오직 한가지였다. 그것은 불문의 무공을 살인을 위해 쓴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소림의 무공도 살인을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남궁성이 검을 펼치다 말고 두 사람이 만드는 핏빛 참극의 현장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 역시 불문의 사람들이 이렇게 지독하게 손을 쓰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핏빛 지옥도는 현실이었다. “도대체·····저들은······.” 그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물론 그 역시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이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남궁세가 의 제왕검형은 충분히 그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만약 적무강이 자신을 숨 기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 역시 이들에게 가차 없이 손을 썼을 것이다. 그때 적무강이 그의 곁에 다가와 말했다. “놀랄 것 없다. 이것이 무림이니까.” “하···지만 저들은 소림의 제자라구요. 모든 불문의 으뜸에 서 있는······.” “하지만 그들도 무인이다. 그리고 소림도 무림의 문파이고······.” “그러나······.” “어쩌면 저것이 소림의 본모습일지도 모르지. 영원히 착한 어른은 없다. 그러니 너무 호들갑 떨지 말거라.” 적무강은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흔히 사람들은 소림이나 구대문파가 고고한 학처럼 깨끗한 이슬만 먹고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본산과 수많은 문파 제자들을 먹여 살리자면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속가제자들을 모아 이권사업을 했다. 물론 진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속가제자들이고, 그들은 뒤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면 알아서 속가제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본산을 지원한다. 물론 속가제자들이 그냥 돈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본산의 이름과 지원,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관계는 끈끈해지고 규모도 더욱 커진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다. 때문에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처럼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같이 공생하였다. 그러나 삼백년 전 그런 공생의 수레바퀴가 깨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십자성과 천왕성의 출현 때문이었다. 두 거대세력의 등장은 구대문파의 속가제자들 중 상당수를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십자성과 천왕성에 몰렸다. 그럴수록 구대문파의 세는 줄어만 갔다. 들어오는 돈이 적어진 만큼 인원수도 적 어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구대문파도 절박했을 것이다. 이대로 더 시간이 흐른다면 영원히 자신들 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림이 파격적으로 살계를 허락한 철혈나한을 탄생시키고, 어울리지 않는 간자까지 파견해 십자성을 염탐한 것이다. 적무강은 충분히 소림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해하는 것일 뿐이지 마음에 든다거나 친해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장내는 곧 정리되었다. 비록 묵운이 강했지만 소림에서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두 사람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미 계곡물은 붉은색으로 물든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묵운에게서 흘러나오는 피였다. 무비와 흑야화는 자신들이 죽인 사람들을 보며 합장을 했다. 자신들이 죽인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무척이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었다. 적무강이 그들을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명복을 다 빌었으면 어서 가자고······하루 종일 여기에 있을 건가? 덕분에 해 떨어 지게 생겼다구.”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피한방울 튀지 않고 깔끔한 적무강의 모습이 보였다. 핏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한 자신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저 남자······.’ 흑야화의 얼굴에 께름칙한 빛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동안 그저 피하기에만 급급했던 적무강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신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 노출되었건만 적무강의 실력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자신들의 명백한 손해였다. “이봐요. 당신······.” “그만.” 흑야화가 적무강에게 뭐라 하려 하였다. 그러나 옆에서 무비가 어깨를 잡으며 만 류했기에 그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묘한 침묵이 그들을 감돌았다. 결국 적막을 참다못한 남궁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흑···야화 소저께서는 언제부터 십자성에 잠입하셨습니까?” “홍수희.” “예?” “흑야화는 암호일 뿐이고 제 이름은 홍수희에요.” “아····홍소저.” 홍수희가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그녀는 잠시 남궁성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전 사문의 명으로 삼년 전에 십자성의 내성에 시녀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본래 의 얼굴을 감추고 이제까지 있었죠.” 그녀의 말에 적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녀가 기억에 없는 이유를 알았 기 때문이다. 분명 외성에 있었다면 한번이라도 마주쳤을 테고, 그랬다면 반드시 기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홍소저께서 입수한 문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남궁공자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서는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소림과 구대문파의 장문인들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서인가 봅니다.” “제 목숨보다 더 중요합니다.” 홍수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무비의 곁에 바짝 붙었다. 마치 무비만이 믿 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듯이. 그녀의 태도에는 적무강과 남궁성에 대한 짙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의 품에 있는 문서를 소림사에 넘겨야 한다는 과도한 사명감을 가지 고 있었다. 과연 그녀의 품속에 있는 문서가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지만 적무강은 굳이 묻지 않았다. 만약 물어서 대답해줄 내용이었다면 남궁성이 물었을 때 대답해줬을 것 이다.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미련을 버리고 앞장을 섰다. 어서 피비린내 나는 이곳을 벗 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적무강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비가 묘한 눈빛을 했다. ‘저자·····결국 자신의 절기가 무엇인지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다.’ 갈수록 적무강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지는 무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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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