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술아재의 탄식인지 위로인지 모를 물음에 노파가 한숨을 섞어 대답했다.
“아니라우. 그 놈때문이라우! 죽일 놈!”
백발노파는 뒷산에서 목매단 딸이 죽기까지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응급처치로 살아나긴 했으나 후유증으로 3년을 시름시름 앓다 죽은 딸의 사연을 듣자 판술아재도 분개했다.
“세상에 그런 나쁜 놈이 오데 있노? 약혼자를 차 삐고 다른 년과 눈이 맞아 도망친 그런 똥개 같은 놈을 그냥 뒀심니꺼? 내가 알앗씨몬 다리몽생이를 뿐질러삐릿을낀데. 다리 몽생이가 뭐꼬 모가지를 확 삐틀어삐리야재.”
사지를 흔들어대며 지나치게 분개하는 판술아재를 멀거니 쳐다보던 노파가 물었다.
“그런데 운전기사양반이 왜 그리 설치누? 남의 일인데?”
노파의 말에 머쓱해진 판술아재가 어색하게 웃었다.
얼른 노파의 손을 마주 잡았다.
“하이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렇심니더. 내가 이런데 어르신의 심정이야 오죽했겠심니꺼? 그래도 이제와서 우짜겠심니꺼. 어르신이라도 몸조리 잘하이소. 간 사람은 어차피 갔고, 산 사람은 몸이라도 챙겨야지예.”
노파가 잔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쨌거나 고맙소.”
판술아재는 귀혈주 몇 잔에, 매사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본성이 도졌다.
오로지 제사상에 마음이 더 가 있었다.
“그렁께 오늘이 저 처자 제삿날이네예?”
백발노파가 탄식처럼 말했다.
“몸도 성치 않아 잘 걷지도 못하는 년이 그냥 기일이라면 왔겠수?”
판술아재가 깜짝 놀라 노파를 쳐다봤다.
“예? 아직 안죽었심니꺼?”
“안죽었는데 이렇게 상을 차렸겠수? 저승가기 전에 이 어미하고 작별하고 가려던 모양이구려.”
“예에?”
판술아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파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면 오늘이?”
노파가 무겁게 대답했다.
“그렇수, 오늘이 저년 49제라우.”
귀혈주 몇 잔에 알딸딸했던 취기가 확 달아나 버렸다.
노파의 49제라는 말이 도끼처럼 뒤통수를 강타했다.
판술아재는 숨이 탁 막혀 노파를 쳐다봤다.
49제가는 귀신을 만나면 3년을 못 넘긴다는 속언을 믿고 있던 판술아재였다.
‘이럴 수가!’
낙담한 판술아재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다. 노파와 액자 속의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 무슨 낭패인가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노파가 훌쩍이며 말했다.
“살아서 걷지도 못하더니 죽어서도 못 걷는구나. 에고 불쌍한 것.”
판술아재는 좀비처럼 자리에서 비실비실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완전히 넋이 빠져 액자 속의 딸을 향해 푸념하는 노파를 입을 벌린 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에고 에고, 아가. 네가 가더라도 이 운전수양반 평생 잊지 말거라. 어느 누가 이 한밤중에 태워주었겠느냐?”
판술아재는 한시라도 더 머물 수 없었다.
택시비가 문제 아니었다.
49제가는 귀신과 스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차에 태워주었으니 어쩌면 3년도 못살지 모른다는 체념과 좌절에 비실비실 일어났다.
노파도 따라 일어섰다.
“벌써 가시려우?”
이미 판술아재의 귀에 노파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겨우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비실비실 걸었다.
“잠시 기다리시우. 차비는 받아 가야재.”
간신히 운전대에 앉았다.
노파가 황급히 따라와 처녀가 생전에 사용했음직한 색동주머니를 운전석에 던져 주었다.
판술아재는 거의 빈사상태가 되어 간신히 읍내에 도착했다.
훤한 불빛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자 차츰 안정을 찾았다.
노파가 던져 준 색동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 속엔 몇 개의 보석과 택시비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죽은 여자의 노잣돈이란 생각이 들자 머리끝이 쭈뼛 섰다.
지난 세월과 남은 세월이 교차되어 비통했다.
핸들을 쥔 체 윈도를 내다 봤다.
건너편에 유난히 빛나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춘자옥.’
판술아재는 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이왕지사, 몇 년도 못살 놈이라면 술이라도 한잔 더 하고 가야재.”
남해아줌마가 말했다.
“그래서 아재는 읍내서 퍼져버렸지예?”
찔레네가 한술 더 떴다.
“노잣돈이 술 돈 됐는데 보나마나 아이가? 참새가 방아깐 지나는거 봤나?”
무안댁의 양볼 따귀가 부풀어 올랐다.
“보나마나 술집여자하고 잤지라? 나가 안 봐도 그 쌍통 훤혀!”
씨락아지매 목소리에도 독이 잔뜩 묻었다.
타깃은 판술아재가 아니었다.
무안댁을 향한 독설이었다.
“사내들이 여자끼고 자는기 무신 대수라꼬 니가 따지노? 차비로 받은 돈이 뭉치라고 안했나? 돈 있겄다 벌떡거리는데 몬하는기 병신이재. 앙그렇소? 판술아재? 내말이 맞지예?”
판술아재가 손을 내저었다.
“그 참, 아직 이바구도 안끝났는데 와이라요? 이바구 다 안들을끼요?”
판술아재의 말 한마디에 네 여자는 자라목을 했다.
판술아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다음날 아침, 술을 깬 판술아재는 집으로 오려다 여우재로 택시를 몰았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지만 여우재의 어젯밤 그 집이 궁금했던 것이다.
첫댓글 49제 가는 귀신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린이날
티끝 하나 없는 착한 어린이가 잘자랄수있도록 해야 하겠슴니다
ㅎ, 근데 선물은요?
요즘 세상이 너무 탁해 저 같은 어린애는 큰일인데 선물이라도주신다면...ㅉㅃ
기달께욤.
판술 아제 야화 잘보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네 편한밤되십시오.
야화소설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네 고운밤되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