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평한 산책로라도 몇 시간 계속 걸었더니만 온몸이 제법 피곤했다.
가랑비 내리는 모란역 전철에서 내린 뒤 모란시장 건너편에 있는 추어탕 집으로 직행했다.
어제 잊어버린 등산모를 되찾으려고.
어제 점심을 먹은 뒤 등산화를 신으면서 등산모는 그 자리에 놔두고 귀가했다.
등산모를 어디에서 분실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혹시 음식점이 아닐까 하고 기억을 더듬던 중 같이 점심을 먹었던 친구가 음식점과 통화를 해서 등산모의 행방을 확인했다. 직장 명칭이 새겨졌기에 나름대로 애착이 어린 모자를 되찾아서 다행이었으며, 재치있게 힘을 써 준 친구한테 고마워 했다.
비가 내리는데도 친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성남시 모란시장으로 나왔다.
송죽추어탕 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가느다란 비 내리는 모장시장을 구경삼아 잠깐 둘러본 뒤에 오후에 등산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친구는, 빗물로 산행의 등산로가 미끄러워 위험스럽다며 대신 안전한 길이 이어지는 탄천변 산책로로 나를 안내했다.
나로서는 처음이다. 모란시장 후편/서편에 위치한 굴다리 밑을 통과한 뒤로는 분당구 이매역과 서현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탄천변 수로의 양쪽 제방뚝은 제법 깔끔하게 조성되었으며, 푹신한 인조블럭을 깔아놓은 인도를 따라서 천천히 산책하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제방 아래 탄천으로 흘러내리는 물 속이 제법 깊어 보였으며, 물살을 가르는 오리떼, 야생 청둥오리떼도 이따금 보였다.
우산을 쓰고도 가볍게 산책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용인지역과 분당지역의 폐수오수가 합산되어서 서울 송파구 탄천변으로 흘러내린 뒤 한강으로 유출되는 한강의 지류이다. 생활폐수와 오수를 자연적으로 정화시키는 수중 걸림돌도 상당히 많이 설치되었으며, 자연발생적으로 사구(沙丘)가 형성되어서, 많은 모래가 쌓여가는 형상을 지닌 곳도 곳곳에서 보였다.
억새와 갈대, 수생식물인 부들과 키 작은 버들나무들이 밀생하여서 자연적으로 오페수를 정화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텃밭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말 많은 내가 주저리 지껄이었고, 사람좋은 친구는 묵묵히 듣고는 이따금 맞장추를 쳐 주어서 덜 심심했다.
나는 퇴직한 뒤 시골로 내려가서 텃밭 농사를 시작했으니 영농경험이 조금은 늘었을 터다. 이런 경험이기에 풀과 나무에 대해서는 내 경험담을 어설프게나마 들려 줄 수 있었다.
탄천로 산책로 양변에는 빈 터가 넓고도 길게 이어졌다.
잔디를 애써 심었으나 외래종인 붉은 토끼풀이 잔디를 뒤덮으면서, 크게 넓게 많이 번성하고 있었다. 비싼 돈 들여서 애써 조성한 잔디밭이 외래종인 토끼풀와 외래종인 질경이들로 망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갈대도 잔디밭을 점령하고 있었다. 모두 캐내서 버려야만이 잔디가 살 수 있을 터.
그러나 나와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잔디를 깔려면 그게 다 예산이며, 잔디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금새 다른 잡초에 먹혀서 잔디 그 자체가 고사한다는 사실을 우려했다. 차라리 잔디를 심지 말고, 생명력이 강한 야생 잡초들을 심어서 이들이 쉽게 변지도록, 빈 터에 가득 찼으면 하는 처방도 이야기 했다.
잡초의 존재 가치는 무진장 많을 게다. 탄천 제방의 유실을 막아주며, 산책로까지 물이 넘치는 장마철 대홍수 때에는 산책로 빈 터흙의 유실을 상당히 막아 줄 수 있기에...
산책로 안길 배수로 투망구에서 붓꽃 몇 포기를 발견했다. 붓꽃 몇 포기가 좁은 산책로 가생이에 설치한 빗물받이 배수로를 막고서 자생하고 있었다. 이들과 잡초의 뿌리가 흙을 모아서,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에 나는 친구한테 꽃삽을 요구했다. 성남시가 운영하는 실버텃밭에 즉시 갈 수 있도록, 그 친구는 텃밭 가꿀 때 필요한 작은 농기구를 베낭 속에 늘 넣고 다니고 있었다.
꽃삽으로 붓꽃 뿌리를 캐면서, 배수로 통로를 막고 있었던 잡초도 함께 걷어냈다. 나로서는 '또랑 치우고 가재 잡는 격'이 되었다.
붓꽃 몇 포기를 친구한테 건네주었다. 친구가 집으로 가져가서 화분에 옮겨 심으면 어쩌면 살릴 수도 있겠다.
잎의 모양새로서는 나는 그게 붓꽃인지 창포인지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없었다. 나중에 꽃을 피우면 그게 붓꽃인지 창포인지를 분별할 게다. 또 어떤 색깔로, 어떤 꽃송이 모습으로 꽃을 피울런지는 모르지만 붓꽃이던 창포이던 간에 이들의 꽃은 화려해서 누구한테나 사랑을 받을 게다.
천천히 산보한다고 해도 장거리를 걸으니까 다리가 조금은 피곤했다. 석재를 반들반들하게 표면을 갈아서 만든 쉼터에서 잠깐 쉬었을 때다.
굴다리 서편 대로변 경사진 제방뚝 한 구석에서 크게 번진 인동 군락지를 발견했다. 제방뚝을 어지럽히는 잡목으로 분류되어서 향후 제거대상이 될 성싶었다. 나는 덩쿨식물을 알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적 박해를 받을 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 자신도 '인동초'라고 불렀다는 숨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친구는 두어 마디 줄기를 잘랐다. 집에서 삽목이 가능한 지를 실험할 게다.
덩쿨식물인 인동초는 금은화(金銀花)라고 부르며, 사계절 꿋꿋하게 잎을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그 추운 겨울에도 잎을 지닌상록수이다. 전초(뿌리, 줄기, 잎, 꽃)는 약재로 쓰인다. 또 꽃잎을 말려서 꽃차로도 활용한다.
오늘 비가 내리는데도 개설된 5일장 모란시장 안에서도 붉은인동을 심은 화분이 제법 많이 나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별호인 인동초는 흰꽃이 먼저 피고 색깔이 점차로 노랑으로 변하는재래종이다. 오늘 줄기를 자른 인동초는 덩쿨색깔과 줄기로서는 외래종이 전혀 아닌 재래종으로 여겨진다. 내 시골 텃밭에는 인동초와 외래종인 붉은인동초가 있기에 나는 이들을 외모로도 식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길섶에서 조금은 특이한 식물을 보았다. 노란꽃이 피고, 줄기와 잎 모양새가 아무래도 눈에 익었다. 고개를 숙여 가만히 들여다 본 뒤에 꽃대를 꺾은 뒤 잠시 기다렸더니만 꺾인 줄기에서 무색의 즙이 흘러나오더니 점차로 색깔이 진한 노랑색으로 변했다. 영락없이 노란똥 색깔이다. 식물도감에서 숱하게 보았기에 눈에 익었던 잡초였다. 애기똥풀이라고 부르던 식물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꽃대를 꺾어서, 처음으로 확인했다. 길섶이나 산자락에서 숱하게 보았으나 그게 잡초에 불과했기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식물은 고개를 숙여야만이 보이고, 내 키를 낮게 낮추어야만이 더 잘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또 배웠다.
탄천변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외래종 클로버를 보았다. 오래 전 잠실 한강로 주변의 빈터에서 붉은 꽃을 피우던 토끼풀을 보았다. 그것을 조금만 캐다가 내 시골 텃밭에서 조금만 재배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닌 적도 있었던 풀이다. 잎 모양새가 크고, 잎에 무늬가 있는, 붉은 꽃송이가 한두 송이 보이기 시작한 크로버는 탄천변의 다른 식물들을 크게 잠식하고 있었다. 해로운 잡초의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 붉은 크로버 가운데에서도 잎에 흰색깔이 밴 변색종도 어쩌다 발견하였다.
붉은토기풀 두어 포기와 변색종을 캐다가 시골 텃밭에 옮겨 심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내 욕심을 눌렀다. 외래종의 크기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만약이 이들이 번성한다면 내 시골 텃밭을 완전히 침투하겠다는 위험을 예상했다. 그만큼 외래종의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붉은토끼풀과 그 변색종을 캘 수가 없었다.
탄천변에는 돌나물(돈나물)도 참으로 많았다. 흔해빠진 잡초인데도 일전 나는 시골 내 텃밭에서 키우는 돌나물을 조심스럽게 캐 서울로 가져 왔다. 친구에게 조금 나눠 주었다. '왜 저런 풀까지도 캐 서울로 가져 와 친구에게 주느냐'고 아내한테 핀찬도 들었다. 나로서는 그 흔해빠진 돌나물이라도 소중하게 재배하면 초화(草花)로 키울 수 있으며, 또 잎을 뜯어서 풋나물로 먹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하찮고 많은 잡초일지라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잡초의 숨은 가치도 사뭇 달라진다는 뜻을 암시하고 싶었다.
용인시 쪽으로 걷다가 분당구 이매역 쪽으로 빠져나왔다.
잠실으로 가는 전철을 타려고 이매역 쪽으로 걸었다. 대도로변을 방호림으로 가린 안길을 따라서 걸었다. 주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대로변에서 보이지 않도록 차단림 역활을 하는 큰 수목(잣나무, 삼나무, 메타스퀘어, 팥배나무로 여겨지는 나무)들이 빽빽히 서 있었다. 자잘한 꽃을 피운 조경수목도 상당히 밀식되어 있었다.
그늘 진 수목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수목 아래에는 새로 조성했는지, 지엽식물인 맥문동이 수만 포기나 될 것처럼 길게 심어져서 한정없이 이어졌으며, 군데군데에는 키 작은 야생화가 여러 종류나 심어져 있었다. 예컨대 은방울, 애기나리, 수호초, 바위취, 비비추, 옥잠화, 초롱 등이다. 이들 작은 초화들이 큰 수목 아래에서, 그늘에서도 오래 살아 남으련지 조금은 의문스러웠다.
서해안 벽촌에서 사는 나로서는 이들 원예조경 사업 규모를 보고서는 성남시 분당구가 무척이나 돈이 많은 자치구라는 인상을 받았다. 돈 많은 자치구에서 살면 구민의 삶과 질이 더욱 나아진다는 것도 또 배웠다.
오늘 탄천변을 걸으면서 나는 조금은 농담을 했다. 애기똥풀과 은방울꽃을 보면서 '속상하면 저 꽃을 뜯어서 먹어 봐'라고 말했다. 말 속에는 그 꽃들이 독성을 지녔다는 뜻을 친구는 알고 있다는 듯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친구와 나는 중학교 동창이다. 졸업 후 수십 년이 흐른 뒤, 서울 삼각지의 직장에서 우연히 상봉했다. 그가 나를 알아보았기에 같은 직장 안에서 수 년간 근무했던 동료이며, 내 인생의 소중한 친구이기에 오늘 내가 슬쩍 농담을 했다. 아마도 친구는 이런 나를 이해해 줄 게다.
2.
모란시장 서쪽에 자리잡은 호떡집에서 오늘도 친구는 호떡을 샀다. 개당 1천 원이면 제법 비싼 밀가루 호떡이었다. 나는 호떡을 먹으면서, 비 내리는 장날에 혼자서도 호떡을 파는 삼대쯤의 여사장한테 물었다. '모란장터에서 장사하려면 장사 터에 대한 임대료를 내느냐'는 질문에 여장사꾼은 '그런 것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전혀 공짜일 것 같지 않아서 재차 확인했더니만 '상인회에 가입하면 된다'로 짧막하게 대답했다. 5일마다 장이 열리는 장터 한 구석을 빌리려면, 상인회에 가입하려면 그 가입비가 얼마쯤인지는 차마 묻지 않았다. 상인회의 위력이 제법 셀 것이라는 추측만 했다.
모란장터에서는 채소류의 모종과 초화 그리고 키 작은 조경수와 과일 묘목도 즐비하게 진열했다. 비 내리는 장날이라서 그런지 빈 자리가 상당히 많았으며. 손님인 장꾼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조금은 쓸쓸한 모습이었다.
화초 가게에서 어성초(약모밀가 진열되었는데 가게마다 조금씩 가격의 차이가 있었다. 어떤 곳은 단 한 포기를 심고도 2,000원을 요구하고, 어떤 곳은 2개를 심었는데도 2,000원을 요구했다. 나로서는 키가 작더라도 모종이 두 개 이상을 선택할 게다.
친구는 어성초(약모빌)의 효능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나한테 어성초가 있으면 한 뿌리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친구한테 어성초의 번식력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경험담을 들었다면서 그도 실험적으로 재배해 보겠다고 내게 거듭 말했다.
그렇게 많이 번질 수 없는 식물의 자람과 성세를 아는 나로서는 차마 그의 기대에 찬 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시골에 가거든 증식이 시작된 약모밀(어성초) 모종 두어 포기를 캐서 서울로 가져와야겠다.
모란장에서는 토종 흰민들레 한 뿌리를 1,000원에 팔고 있었다. 한 뿌리에 1,000원이면 무척이나 비싸다. 아마도 희귀종이라서 그럴까? 내 시골 텃밭에는 노랑색의 서양민들레와 노랑색의 서양왕민들레가 참으로 지겹도록 많다. 흰민들레도 몇 포기가 아직도 살아 있지만 나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토종민들레가 그토록 비싼 이유는 아마도 흰민들레가 지닌 민간요법인 약성(藥性)과 효능을 지나치게 과장한 탓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흰들레와 서양민들레의 외모에 대한 차이점을 친구에게 말했다. 서양민들레는 꽃받침 털(총포)이 뒤로 제껴져 있고, 흰민들래, 토종민들레의 총포는 앞으로(꽃송이 쪽으로) 향한다는 구별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로서는 토종 흰민들레나 서양민들레 간의 약성과 효능은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본다는 사견도 말했다. 어쩌면 장사꾼의 과장된 상술이라고 덧붙였다. 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할 것인지의 판단은 오로지 친구의 몫일 터다.
고추 모종 가격이 점차로 많이 하락하고 있는 중일까? 모종 30개 한 판에 5,000원으로 저렴하게 파는 곳도 있었다. 1포기 당 170원 꼴이다.
자소(검붉스레한 들깨처럼 생겼음) 한 포기에 1000원, 3포기에 2,000원이란다. 누에 번데기 크기의 석잠초 한 포기도 1,000원이다. 이들의 가격이 도대체 왜그리 비싼 거여? 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풀 한 포기 모종 값이 1,000원이라고? 그게 무슨 대단한 약성이라도 지녔나? 희소하기에 호기심을 유발한 덕분일까? 그래도 팔리니까 그런 고가로도 팔고 있을 터.
날씨 맑은 날 모란시장에 재방문해서 봄철 채소 모종과 야생초와 생약초들을 더 살펴보아야겠다. 혹시 구입할 수 있는 품종도 있다면 사서 시골 텃밭에 심고는 관찰하면서 배우고 싶으니까.
2015.4.29.수요일
첫댓글 어이구~
이제는 양재동에서 모란시장으로 꽃모종 사는 곳이 바뀌겠구먼요 ㅎㅎ
흰민들레 한뿌리에 천원이라꼬? 그 거 캐러나 다닐까?
사실이지. 흰 민들레 한 뿌리 캐러다닌다고? 잘 생각했시유.
정형이 캐서 판다면야 까짓것 내가 구입할 터. 비싼데도 사 가는 사람도 있을 터.
정형이 사진 찍으로 산 속을 헤맬 때 보는 그 많은 꽃들? 사실은 다 돈이거든.
어떻게 파느냐가 문제일 뿐...
모란시장에도 여러 번 갔지. 꽃구경이라기보다는 서민구경하려고. 못난이, 늙은이인 나로서는 바람쐬러 나오니까. 나와 엇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허생원 겉운 장돌뱅이도 많고, 신체불구자인데도 물건 파는 장애인장수꾼도 보고... 어쩌면 시골장터를 연상했기에 몇 차례 방문했소이다.
수도권의 명소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