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말씀 묵상 (1베드 5,5ㄴ-14) (이근상 신부)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 베드로 5,5ㄴ-7)
여기서 겸손과 교만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겸손이란 하느님 앞에 작은 자로서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맡기는 태도, 삶의 선택을 뜻한다. 교만이란 그 반대말로 자신의 계획과 힘에 의지하여 용을 쓰는 삶을 뜻한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는 겸손한 자인데, 말은 멋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자를 뜻한다. 그러니 교만한 자는 아직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자.
오늘 우리 세상은 자신감을 가지고 힘써 노력하는 행위에 지고의 가치를 둔다. 다른 사람이 존중하거나 말거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존감이라고도 부른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자가 어찌 남을 존중하랴는 말도 있다. 서로 서로 애써 달려나가기를 권고한다.
그러나 문제는 벽이다. 젊거나 아직 뭔가를 이루어가는 이들이 다다르지 않은 벽. 사람은 앞서거나 뒷서거나 결국 벽에 다다르는데, 대부분 벽이란 갑작스러운, 예고 없는, 계획을 한참 배반하는 사태로 다가온다. 뭘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이 황망한 사태. 그제서야 깨닫는 현실은 그 벽이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삶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었다는 사실. 자존감이니 자신감이니... 결국 잠정적인 수단들. 아무리 갑옷을 입고 사다리를 준비해 놓았어도 소용없는 날이 온다.
물론 벌써 그런 날을 떠올리며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참 자존감이란 자신감이란 아무 것도 아닌 존재, 하느님 앞에 참 작은 존재가 다 맡기고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 그리고 감사하며 주어진 모든 것을 향유하는 것. 힘찬 투쟁 속에서도 다 맡기고 있기에 좌절할 이유가 없다. 내가 달성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 맡긴 자의 자유는 쉼없는 질주 속에서도 자유롭기에 무서움도 부끄러움도 없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75z6CbUegwf18eWT3WMRz4SbhdJLVbTVHyBCYE1vJHeiC41vv3wXUE85rD4GNe6P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