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2]작가 김진명의 소설, 소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작가 김진명. 1993년 펴내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더니, 30주년인 올해까지 600만부가 팔렸다한다. 참, 대단한 기록이다. 이유가 뭘까? 그의 작품을 10여권 읽었으니 제법 본 셈인데, 잘 모르겠다. 57년생, 나와 동갑내기, 이 친구 ‘이빨’과 소설의 구성이 장난이 아님은 알겠다. 임실도서관에서 5권을 빌려 1주일새 통독했다. 최근 『글자전쟁』을 읽은 여파였다. 소감 한마디 쓰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건만,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을 맺을지는 모르겠다.
먼저 『몽유도원 1, 2』(2010년 새움 발간, 2020년 27쇄)를 읽었다. 95년에 펴낸 『가즈오의 나라』의 제목을 바꿨다한다. 일본의 역사부도를 보고 화딱지가 나서 일필휘지 갈겨댄 작가의 애국심이 놀랍지만, 일단 술술술 읽히며 재미 만빵이다. 흥미진진, 조마조마, 설마설마, 탄식이 절로 나오다 환호성이 나오는 소설, 마치 무슨 추리소설같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재주가 있을까? 안견이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를 아시리라. 완벽한 국보國寶 문화재인 것을, 언제 어떤 경유로 현해탄을 넘어 일본의 한 대학이 소장하고 있을까? 2019년 ‘국립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실제 그림이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한다(명백한 사실이다). 애걸복걸, 일본에서 빌려온 것이다. 국보인 까닭은 안평대군이 꾼 꿈의 내용을 그린 후, 난다긴다하는 집현전학자들이 명문의 발문跋文을 썼기 때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러듯. 정말로 원통복통할 일이지만, 돌려달라는 한마디 말도 못하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미술평론가인 일본인 여성과 재일 한국인강사의 우정으로 풀어내는 역사퍼즐 맞추기는 광개토대왕비 탁본과 해석을 둘러싸고 절정에 달한다. 허나, 모두 진짜인 것같고, 모두 허구인 것같아 마냥 헷갈린다. 각색脚色은 이래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아무튼, 6학년 후반인 자들이여! 억지로 시간을 내어서라도 읽어보시면 좋겠다.
두 번째 작품 『1026』이다. 암호나 작전명 같지만, 금방 유추할 수 있다.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을 맞아 다음날 ‘대통령 유고’라는 큰활자의 호외를 뿌리게 한 날이다.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실세 권력은 왜 유신의 심장을 쐈을까? 그 이야기가 한국인인 미국 정보요원의 죽음을 통해 시종일관 흥미롭게 펼쳐진다. 대통령을 거세하라고 시킨 것은 ‘확실히’ 미국인 것같다. 거사 이후 김재규에게 등을 돌린 것도 ‘확실히’ 미국이고, 갑자기 육사11기 전두환을 무작정 밀어준 것도 ‘확실히’ 미국인 것같다. 숨막히게 펼쳐지는 정보전쟁의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가 어찌 이렇게 좋은 소재를 가만히 두겠는가? 더구나 애국자인 것을. 미국은 지금도 ‘전세계의 경찰’을 자임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제美帝, 미제국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구한말부터 우리의 현대사를 조금만 공부해보면(한두 권 책만 읽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궁금해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게 못내 궁금하다. 조선 500년 명, 청나라 사대事大를 그만큼 하고도 모자라, 이제는 미국에 볼모가 되어있다. 작가는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 실상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갸륵한 마음으로 이 소설을 긁은 것같다. 고맙다. 그런데 진짜일까? 의심은 여전히 남는다.
세 번째 작품 『예언PREDICTION』(2017년 새움 발간)이다. 기억하시리라. 1993년 9월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전투기의 미사일을 맞고 격추된, 전대미문의 사고가 발생했다. 당연히 무고한 민간인 승객 269명(한국인 105명, 미국인 62명, 일본인 28명 등 16개 국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40년이 흘렀지만, 아무도, 어떤 나라도 그 원인을 모른다.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은 미제未濟의 사건. 작가가 한 고아남매를 통해 풀어내는 역사의 비밀은 사실일까? 스토리텔러에 능수능란한 작가조차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 『예언』이라는 소설 한 편을 남겼을 뿐이다. “허허”그것 참, 역사의 뒤안은 왜 그렇게 알 수 없는 문제투성이들뿐인가? 실제와 허구의 경계에 섰다지만, 이거야말로 완전한 소설같아.
마지막 작품 『THAAD』(2014년 초판, 2019년 30쇄 발행)이다. ‘샤드’를 모르시는 국민은 없으리라. 미국은 왜 악착같이 한국의 한복판에 샤드를 설치하려 하는가? 중국은 왜 그렇게 한국과 미국을 겁밗하는 걸까? 작가가 하나씩 풀어주는 그 비밀에, 우리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약소국의 설움을 이런 대중소설로라도 알아야 하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일 터.
하여간, 작가의 모든 소설은 너무나 그럴 듯하다. 소설은 반전反轉에 묘미가 있다지만, 숱한 우연의 일치가 너무 많다. 늘 전문가를 뺨치는 허무맹랑한 듯한 전개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민족民族’을 앞세운 창의적인 발상들은 글에서 눈을 못떼게 한다. 『직지』1, 2권을 보라.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기도 한다. 『철도원』『러브레터』『천국까지 100마일』등을 쓴 일본의 대중소설가 아사다 지로 보다는 훨 나은 것같고, 『인간시장』등을 쓴 어느, 대중소설가의 작품보다 울림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 속도감 나는 소설도 드물 듯하다. 하지만, 이제 작가의 소설은 그만 읽을 생각이다. 재미로 시간을 너무나 뺏는다. 어쨌든, 김진명은 아주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글꾼인 것같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