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야카는 어제와 달리 평범한 사야카로 돌아와 있었다. 어제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 처럼 말이다. 어제만해도 사야카는 곰인형을 사지 못해서 무척이나 우울했었는데 오늘은 왠지 밝아 보이는 모습. 뭐, 그렇다면 다행이랄까. 마리아 씨에게 줄 큰 거북이 선물, 왠지 학교로 운반하는 데에 힘이 들 것 같아서 마리아 씨에게 줄 것이 있다며 집으로 오라고 부탁을 할지, 아니면 그냥 선물을 학교 까지 가지고 가 그 장소에서 바로 줄까 생각 중이다. 그렇게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교복을 갈아 입고 있었다가 끝내는 선물을 직접 학교로 가져가 거기서 바로 주고 그 장소에서 용서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것을 지니고 학교로 운반하던 도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아 많이 부끄러웠지만 겨우 운반했다고 해야할까, 나와 인형이 든 선물은 교실 안에서의 친구들에게도 주목을 받게 된다. 몇몇 친구들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려버린다만, 그런다고 포기할 친구들이 아니다. 죽어도 내게서 정보를 케겠다는 친구들, 마침내는 담임 선생님께 줄 선물이라고 틀린 말을 해버렸다. 그 일 이후로 며칠 동안 나와 담임 선생님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마리아 씨는 복도에서, 옥상에서의 점심 시간에도, 부활동 때에도 만났었지만, 선물을 줄테니 어디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입에서 내벹지 못했다. 고작 그 한마디를 입에서 내벹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용서 받지 못하면 내일로 미뤄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애써 힘들게 가져온 이 무거운 선물을 주지 못하면 헛수고로 돌아간다.
부활동이 끝난 시간, 히사카와 선생님은 모두들에게 미소를 보여주며 학생들을 보낸다. 나 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가는 마리아 씨, 오늘도 나를 두고 갈 셈이다. 그때 '용서 받을 기회는 지금 밖에 없다'라고 생각한 나는 말을 더듬으며 마리아 씨를 불렀다.
"저, 저기, 마리아 씨……."
"뭐에요."
여전히 딱딱하고 부드러움이 없는 말투, 조금은 질투심과 공포심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냥 아무 일 아니라고 대답할까 했지만, 막 마리아 씨를 불렀는데 그냥 아무 일 아니라며 넘겨버리면 마리아 씨는 나를 더 싫어할테고 이 선물도 주지 못한다. 말 하기 싫어도 말 해야 한다.
"저, 저기 말이죠… 지, 지금 저와 대화 하실 수 있을까요…?"
"무슨 대화인데요."
마리아 씨는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에 나는 뭐라고 대답 해야 할지 고민된다. 선물을 주고 싶다고 대답하기가 부끄럽다만, 그걸 대답하지 못하고 다른 얘기를 내벹다가는 마리아 씨가 그냥 가 버릴 것이다.
"서, 선물을 주고 싶은데요… 아, 안 될까요?"
"선… 물?"
'선물'이란 두 글자에 귀가 솔깃해지는 마리아 씨, 게다가 말투도 조금 부드러워 졌다. 결국은 마리아 씨도 선물에 혈안이 된 사람일까나. 하지만 다시 차가운 말투로 변한다.
"선물이라면 그냥 여기서 줘도 되잖아요."
"에? 에에, 하, 하지만 저어… 할 얘기가 있어서… 할 얘기가 있는데, 여기서 말 하기가 부끄러워서……."
"…알았어요. 따라갈게요."
일단은 마리아 씨에게 허락을 맡았다고 해야할까나, 체육관 뒷 쪽에서 만나기로 생각한 나 보다 먼저 두 걸음 앞선 마리아 씨. 내가 어딜 가는 줄 알고서나 앞서 가는 것일까.
체육관 뒷 쪽, 아무도 없어서 마음 놓고 마리아 씨에게 할 말을 털 수가 있게 되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우물쭈물 거리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저기, 우선은 선물이요……."
그 큰 선물을 마리아 씨 앞에 내밀었고 마리아 씨는 아무 말 없이 그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딱딱한 표정이다.
"저어, 하고 싶은 얘기란 건요… 저, 절 이제 용서 해주실 수 있나요? 그 때의 일은 지나간지 오래고, 이제 저도 많이 반성 했으니까, 이제 그만 용서 해주세요."
그 대답에 아무 대답 없는 마리아 씨. 마리아 씨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긴장 되어 가슴이 쿵쾅거린다. 알았다고 할까? 아니면 싫다고 할까? 둘 다 아니었다. 마리아 씨의 입에서는…
"…저도 미안해요, 카에데 군."
"에?"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전혀 몰랐다. 왜 갑자기 자신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때에는 마리아 씨의 표정은 죄를 지은 죄인의 표정 처럼 약간 슬픈 표정이었다.
"카에데 군은 반성 많이 하고 있는데… 카에데 군은 그렇게 큰 잘못이 없는데… 그런데도 저는 정말 바보네요. 이제 충분히 카에데 군을 용서 해줄 수 있는데, 아직까지도 그 때의 일이 떠올라 카에데 군이 바보 같고 미워서 용서 해주려 해도 용서 해줄 마음이 없었어요. …계속 이렇게 사이가 나쁘면 우리 두 사람에게 좋은 진보가 없겠죠?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카에데군. 이런 저를 용서 해주실 수 있겠나요?"
"에, 에에……."
어쩐지 상황이 역전 된 것 같은 느낌이… 도리어 내가 마리아 씨에게 사과를 받고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 하고, 마리아 씨는 마리아 씨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니, 도대체 누가 용서를 받아야 하고 누가 잘못을 인정해줘야 하는 걸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내가 먼저 마리아 씨를 용서해준다.
"그럼요. 전 언제라도 마리아 씨를 용서 해줄 수 있어요. 마리아 씨가 나쁜 짓을 했든, 저를 미워하든, 언제라도 마리아 씨를 용서 해줄 거에요. 전에도 말씀 드렸잖아요, 언제든지 용서 해줄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마리아 씨에게 잘못은 없어요. 오히려 저에게 잘못이 있죠."
"아, 아니에요! 카에데 군이 잘못이 있다뇨, 사람은 실수도 하기 마련이죠. 그때 카에데 군이 잘못 골랐었더라도 카에데 군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제대로 못 고를 수도 있는 거죠. 오히려 겨우 그런 걸로 카에데 군에게 화를 낸 제가 더 미안하죠."
서로는 서로에게 잘못이 없다며,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나와 마리아 씨의 대화의 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자, 나는 마리아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우리 악수로써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앞으로 좋은 관계로 지내기로 약속해요."
나는 악수로써 지금 까지의 모든 갈등과 잘못을 잊으려고 했다. 지난 일의 갈등을 깨끗히 잊고 다음 부터는 갈등 없이 하루 종일 좋은 나날을 보내기 위해……. 마리아 씨도 내가 손을 내민 의미를 알았는지 마리아 씨는 내게 흐뭇한 미소를 보이고 마리아 씨도 손을 내밀려고 하려고 했으나…
"우웃!"
손이 맞붙은 대신에 입술이 맞붙어 버렸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마리아 씨는 내가 내민 손을 잡지 않고 내게 다가와 입술과 입술을 대고야 만 것이다. 정말로 예상 외의 일인지라 나는 깜짝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심장은 더 격하게 뛰었다. 부디 우리가 입맞추고 있는 시간이 빨리 지나길 원했다만, 시간은 나를 골탕 먹이는 건지 빨리 지나가지 않았다. 겨우 마리아 씨는 내게서 멀리 떨어지고, 나와 마리아 씨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마리아 씨는 이 이상한 기분을 억제하려는 듯이 통쾌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 아하하하, 왜, 왠지 이러는 게 조금 묘하네요, 아하하…. 이, 이게 시라카와 마리아의 방식의 약속이에요. 아, 앞으로는 정~말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요…!"
"네, 네에…."
뒤에 이어서, 여전히 홍당무가 된 마리아 씨는 질문을 한다.
"이 안에 무슨 선물이 들었어요? 한번 풀어봐도 될까요?"
"네, 물론이에요."
"그럼, 한 번 들여다 볼게요."
천천히 선물 포장을 뜯는 마리아 씨. 묶인 리본을 풀자 접혔던 포장지가 살짝 펼쳐지고 그 위에 분홍색 물체가 들어있었다. 분홍색 거북이 인형이다. 마리아 씨는 그 선물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심 궁금하다. 선물 포장지에서 선물을 꺼낸 마리아 씨는 그 선물을 보자 그리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변하였다. 얼레, 선물이 잘못되었나?
"후훗, 카에데 군, 여전히 바보네요."
"네, 네에…?"
"제가 거북이를 무척 싫어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사 왔을까요? 난 거북이라면 딱 질색인데."
그 말을 듣자, 나의 머릿 속은 헝클어지기 시작하였다. 거북이가 딱 질색이라니, 그렇담 마리아 씨에게 줄 선물 이벤트는 실패로 돌아가고야 만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신중히 고를 걸…….
"하지만, 왠지 이 인형은 마음에 드네요. 내가 거북이를 싫어하는 이유가 초록색에 징글징글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싫은 건데, 이 인형은 양털 처럼 부드럽고, 게다가 색깔도 분홍색이잖아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 대답에 나의 마음은 다시 기운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마리아 씨가 마음에 든다고 하니, 그것 만으로도 온 천하가 내 손아귀에 들어온 것 처럼 기분이 좋았다. 다행이다, 마리아 씨가 마음에 든다고 하니까…….
그때 문득 생각 난 것, 그것은 지난번 사야카의 대답이었다. 여자친구의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쯤이라면 기본 적으로 알아 두어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걸 지금 알아 차린 나는 선물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마리아 씨에게 물었다.
"저어… 마리아 씨…?"
"네?"
"마리아 씨는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싫으세요? 그리고 잘 하는 것이나 취미 같은 것도…. 그런 걸 알아야 다음 번에 마리아 씨에게 선물을 사 줄 때에 좋은 걸 골라주죠."
"헤에… 드디어 카에데 군이 제 사생활에 침해하려고 들이대는 군요?"
"에? 아, 아니에요! 저, 저는 절~대 그런 짓 안 해요! 사, 사야카가 여자 친구의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등을 미리 조사해두면 좋다고 해서……."
"흐음, 그래요? 시노하라 씨가 그런 말을…. 좋아요, 이 얘기는 집으로 가면서 얘기하죠."
"집으로요? 누구 집에요?"
"그야 당연하잖아요, 카에데 군네 집으로."
당연하다듯이 대답하는 마리아 씨, 어쩐지 지금의 마리아 씨는 평소에 따뜻하고 다정한 마리아 씨로 돌아왔다고 해야할까. 조금은 장난끼가 넘치는 마리아 씨로……. 우리들은 지난 며칠 간에 대화하지 못했던 분량을 모두 토해내듯이, 나와 마리아 씨의 대화는 학교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데까지, 그리고 집 안에서도 우리들의 대화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리아 씨를 마리아 씨네 집 까지 데려다 주고 왔다. 역시 남자라면, 여자 친구를 집 까지 바래다 줘야 한다는 것을 여러 매체로 통해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한 두번 마리아 씨네 집을 왔다 갔다 해서 이제는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힘들게 집으로 들어온 나, 내 방에 들어가 방정리를 하고 있을 때에 사야카가 찾아왔다. 나는 그런 사야카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 사야카, 무슨일이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말이야. 특히 너 같이 정신이 멍청한 애한테 하기 좋은 방법이지!"
저기… '멍청한'이라는 단어는 빼 주면 안 될까?
"그래? 그 아이디어가 뭔데?"
"너에게 끝이 없는 지루한 이론을 하기가 귀찮아서 말이지, 역시 사람은 직접 행동으로 옮겨 봐야 확실히 몸소 익힐 수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내가 너의 가상 데이트 상대가 되어서 데이트 연습을 하는 거야. 어때, 좋지?"
"에, 에에에에?! 사, 사야카하고… 데, 데이트…?!"
순간 나와 사야카가 서로 팔장을 끼며 한 손에는 서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하하호호 웃으며 길거리는 걸어다니는 모습이 절로 상상이 되었다. 그 생각에 내 얼굴은 순식간에 홍당무가 되었고 이상한 상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런 상상을 하는 바람에 기분 나빠 하는 사야카는 내 머리를 후려 쳤다.
"이 바보, 뭘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너한테 말로 해서 되는 놈이 아니잖아! 그래서 나도 입이 닳기가 싫어서 몸소 연애 방법을 보여주는 거야. 뭐, 싫다면 안 해도 돼. 나도 너하고 데이트 같은 거 하는 것도 그렇게 달갑지 않으니까 말야. 하지만 네가 마리아 씨에게 차이는 상상만 하면 '우리 집에 이런 바보가 있을까'하고 한탄스러워 지거든. 우리 집에 잡벌레가 기생하고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거든."
잠깐, 혹시 잡벌레는 나를 뜻하는 거니?
"아, 아니야! 저, 절대 싫지 않아. 오히려 이런 걸 제공해주는 사야카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걸!"
"단, 데이트 때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네가 내."
"……네."
뭐, 어쨌든 결정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사야카는 내일 부터 실행에 옮기자고 한다. 나도 그 의견에 불만은 없었다.
어두운 방에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사야카와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마조마 하고 심장 박동 수가 빠르기 때문이다. 진짜 데이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형식은 데이트니까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 그렇게 나는 기대감과 긴장감을 함께 품으며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다.
첫댓글 저러다가 마리아양한테 들키면 아작 나는 거지..
B형 여자가 가장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