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의 폭우는 아침까지 계속 됐다. 보통 아침엔 비가 소강상태에 들기 마련인데 심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진다. 텐트는 이미 물에 젖어 난리도 아니었고 매트를 펴놓은 곳만 겨우 빗물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오리털 침낭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몸이 으슬으슬거려 침낭을 둘둘 말아 누워 좀 더 눈을 붙였다.
다시 일어났을 때 역시 계속되는 폭우, 언제쯤 멈추려나? 아침밥을 해먹고 급격히 소화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일단 누웠다. 어느새 매트도 서서히 젖어가고 있다. 그렇게 누워 멍하니 텐트 천장만 보고 있는데 햇살이 드리우는 것 같았다. 지퍼를 열어보니 구름이 싹 걷히고 강렬한 햇볕이 내리쬔다.
이제 더 이상의 비는 내리지 않을 것 같다. 후라이를 걷고 햇살에 짐들을 말리기로 했다.
짐들을 말린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말랐다. 종전까지 계속되던 폭우는 온데간데 없고 강렬한 햇살만이 내리쬔다. 이것이 열도의 더위인가!
짐 정리를 마치고 공원을 나와 오이타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마트에 들려 식빵, 밀크커피 그리고 찬거리를 구입했다.
마트 앞 의자에서 식빵과 밀크커피를 먹고 다시 출발!
오이타현에 입성,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습도가 높았지만 괜시리 기분이 좋다.
▲실성한 여행자의 동영상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실성이라도 한 걸까?
곧 나타난 이정표에 미야자키가 나타났다. 앞으로 261km, 3일 정도면 미야자키에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오이타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리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엄청난 비구름이 대기하고 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분위기다. 아까 공원에서 나올 때 비가 그친 것 같아 우중모드로 짐 정리를 하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역시나 장대비가 나를 강타했다. 1분도 노출되지 않았는데 홀딱 젖고 겨우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우중모드로 전환했다. 비가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다시 출발했다.
산 중턱에서 다시 시작된 장대비, 잠시 식당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산 중턱에 왠 식당인가 했는데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랜지 잡초도 여기저기 보였고 가게 안도 휑했다. 빗속에서 미끄러운데 무리하게 페달을 굴리는 바람에 슬리퍼 끈도 망가져있다. 아쉬운 데로 케이블 타이로 고정했다.
장대비는 한동안 그렇게 쉬지 않고 퍼부어댔다. 손바닥을 살포시 갖다 대보니 따끔거릴 정도로 쏟아진다.
원래 비가 오는 날 주행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힘들지 않고 즐겁다. 어렸을 때 비가 오면 괜히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첨벙거리고 놀았는데 오늘은 나도 철군과 함께 물웅덩이에 괜히 빠졌다 나왔다. 빗물이 튀어 바지를 적셔도 얼굴에 튀어도 그냥 마냥 신난다.
비록 기어변속도 안 되는 철군과 함께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에 빗속을 질주하는 난 즐겁다.
오늘 목적지가 벳부(Beppu)였으나 이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어 히지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다행히 어느 건물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는데 건물에 몇 번이나 노크를 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어떤 건물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히 수도가 있어 빨래도 하고 세면도 할 수 있었다. 빗물에 젖은 비닐을 벗겨내서 씻겨내서 말리고 야영준비에 돌입했다.
텐트 안에서 오늘 구입한 찬거리를 펴봤다. 카레, 햄, 생선 통조림 그리고 김치! 우리나라에서처럼 익힌 김치는 아니지만 충분히 감격적이다.
예전에 사둔 참치를 이용해 김치참치찌게를 끓여 저녁을 먹었다. 삿포로에서 미카상의 집에서 먹은 김치 이후론 처음인데 김치 한 조각을 입안에 넣자 아삭거리며 그 동안 잊고 있던 고향생각이 확 밀려왔다. 고향의 맛, 가족, 친구 그리고..
어제 내가 입성한 곳은 히지인데 한자로 日出(일출)이다. 짧은 지식으로 봤을 때 일출이라면 해가 뜨는 것을 나타내는 한자인데 히지는 일출이 꽤나 멋진 곳이라 도시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거라 생각했다. 위치상으로도 동쪽으로 바다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바다에서 멋지게 해가 차오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오늘 아침이 맑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는 내리고 내가 야영했던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흐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푸념하며 아침식사를 하고 짐 정리를 했다.
떠나기 전 철군 점검을 했다. 빗길 내리막에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수시로 잡았는데 그것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가 많이 달았다.
브레이크 패드의 간격을 좁게 잡아주고 녹이 슨 체인과 기어에는 급한 데로 식용유를 발라줬다. 그럭저럭 반짝반짝 거리는 게 믿음직스럽다.
이제는 건물 주차장을 나서야 할 때,
주차장을 벗어나 10번 국도를 따라 계속 내려갔다.
벳부를 지나 타노우라 해변에 닿았다.
왠지 인공적인 느낌이 나는 곳이지만 며칠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쉬운 데로 점심도 먹고 일기도 쓰며 시간을 보내고 해변을 나섰다.
오히타에 들어서는 길은 해안을 끼고 자전거 도로가 꾸며져 있는데 그 폭도 넓었고 거리도 꽤나 길다.
오이타에서는 특별히 어디를 들리고 싶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스쳐 지났다.
오이타 시가지를 지나 외곽의 어느 마트에서 식빵과 밀크커피를 구입해서 먹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식빵을 먹어줘야 달릴 수 있도록 길들여져 버렸다.
이후로 강을 건너고
산을 오르는 행보가 계속 됐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산 정상의 휴게소에 닿았는데 휴게소 식당은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먼저 텐트를 치고 화장실 건물로 들어갔다. 왠지 으슥한 기분이 들었지만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수를 통해 샤워를 하고 빨래도 했다. 영업은 저녁시간이라 안 한다고 하지만 지나가는 차량들이 한 대도 없었다. 사람들이 없어 편하게 샤워는 했지만 조금은 무섭다.
빨래를 널고 식사 준비를 했다.
밥이 익어가며 냄새를 풍기자 어디 숨어있다 나타났는지 고양이가 패거리로 몰려든다. 얼추 세어봐도 열댓 마리는 되어 보인다. 어떤 놈은 식탁 위에까지 올라온다. 내가 또 그런 건 못 봐주기 때문에 쫓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고 밥 먹는 내내 기웃거렸다. 녀석들은 내가 나 먹을 것도 모자란 사람이란 걸 모르나 보다. 고양이들도 생각하겠지, ‘요정도하면 웬만한 놈들은 같이 나눠 먹던데? 독한 놈’
여행기간: 090725~090726/ 일본여행 63일차
이동지역: 쓰이키 → 히지 → 우메
경유지: 쓰이키의 어느 공원 → 히지의 어느 건물 주차장 → 우메의 어느 공원
이동거리/누계: 185.6km/ 5,168.2km
한화지출/누계: / ₩139,450
엔화지출/누계: 밀크커피 ¥85 + 식빵 ¥69 + 잼 ¥299 + 생선통조림 2개 ¥138 + 햄 ¥89 + 김치 ¥99 + 카레 2개 ¥158 + 식빵 ¥98 + 밀크커피 ¥98 + 전화 ¥300 = ¥1,433 / ¥70,587
첫댓글 우와~ 대단하십니다 자전거로~! 고생은 하시겠지만 평생 잊지 못하시겠어요~! 힘내세요 ㅎ
예~ 감사합니다!! 힘내서 마무리 잘 하겠습니다^^
후기로 쓰신 거였군요^^ 전 그것도 모르고 계속 비가온다고 해서리 ㅎ ~ 7월~8월까지 장마기간이 맞네요. 아무튼 사진한장 한장마다 땀과 추억이 뭍어있어 보는저로서는 항상 설레이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계속해서 좋은 후기 기대해봅니다^^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내서 여행기 마무리 잘 하겠습니다~!
10번국도만 따라가면 벳부가 나오는 걸로 생각해서 온천이라도 하실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시군요...
온천을 할 형편이 안되기에.. 다음에 관광여행 가면 즐기며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며 여행해야죠~!
이런사람 또 봤네^^ 타사 사이트에도 이런 사람 보았는데^^ 대단한 도전정신입니다^^
헤헤, 이런 사람 많이 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정말 평생에 기억에 남겠어요 잘 봤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꺅. 이번편도 잘 보고 갑니당. 어익후 고양이.... 무섭...지 않으셨는지요ㅜ 열댓마리.. 후덜덜.. !
한번에 덤볐다면 큰일 날 뻔 했지요 ㅎㅎ
대한건아 박수^^ 끝까지 완주하고 무사히 귀국하세요^^
옙! 감사합니다!
대단하세요 ^^^^ 진짜진짜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63일차;; 이미 귀국.. 하지 않으셨나여? ㅎ 삿포로쪽 후기 본지가 얼마 안된거 같은데 벌써 큐슈라니~
귀국은 했구요.. 여행은 후기성 여행기입니다^^
벳푸를 그냥 지나치셨네요. 하기사 온천지옥 가려면 산을 엄청 올라가야하니 그냥 지나치신 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다음편 기다릴께요... 잘 읽었습니다.
벳부에 온천지옥이란 곳이 있군요.. 왠지 노보리베쓰의 지옥계곡이 연상되네요 ㅎ
달리면서 동영상은 어떻게 찍으셨는지...
한손은 핸들, 한손은 동영상이요^^
진짜로 달리면서 찍기란 힘든건데 사고날 위험도있고. 그래도 멋지십니다 대단하십니다.. 또 달리자구요 하시레 ~~
조심 조심 찍었지요 ㅋ^^ 끝을 향해 달립니다!
고양이,,,,집요하군요
예,, 많이 굶어서 그런지 말이죠 ^^
실성한 여행자의 동영상보고 웃겨 죽는줄 알았어요....ㅋㅋㅋㅋㅋㅋ오늘도 감사하게 보았습니다^^
ㅎㅎㅎ 웃음을 주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ㅋ
도전해보고 싶은 여행입니다( -ㅅ-)b 즐거워보이시기두 하구요 ㅎㅎ
멋져요 멋져!! 동영상 캡짱!!
미야자키를 야간기차를 타고 갔었는데,,이렇게 자전거로 가신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존경 그 자체입니다, 전 기차안에서도 죽는줄 알았는데 허허
방랑자신군의 후기를 재미있게 보는 딸래미둘 가진엄마에요. 사윗감으로 욕심나네요.ㅎㅎㅎ
자전거여행의 묘미를 알것 같습니다..부럽습니다...ㅎㅎ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고, 여행기 기다려지네요~~대단하세요^^*
방낭시인 김삭갓이 생각이 나네요.방낭자는 늘외롭고 쓸쓸하지요.허나 무언가 목표를 설정하고 다닌다면 즐거움이 가미가 되여 행복이 따른 담니다. 행복이 넘치는 여행기 잘~보고 갑니다. 감사히~
우와- 대단하시네요. 전 제주도자전거여행도 몇년째계획만 세우고있었는데...와----
동영상이 참 행복해 보이셔서 보는 저두 기분이 좋아졌어요^^
완전 멋지다...부럽기도 하고...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한 당신.. 앞으로의 삶도 무서울게 없겠어요.화이팅^^
동영상.정상에서 약간 벗어난듯한.......ㅎㅎ 넘즐겁게 봤구요.저도 그기쁨알것같아요.신군 대단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오타루 에서도 동영상 을 본듯한데........어째뜬 감사 감사
동영상.. 마지막의... ^.~ 이거에 쓰러졌습니다... ^^
저까지 엔돌핀이 팍팍 솟네요,,친구와 다퉈서 기분 많이 다운됐었는데,,님의 동영상 보면서 행복해진 기분입니다...역시 웃음은 전염이 되나봐요,,*^^*
우리 신군님의 밝고 환하고 기분좋은 동영상을 보고.. 저까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멋진 청년~신군~! 풋풋하고 신선한 젊음이 아름답습니다~ ^^
http://www.cyworld.com/bicycletour/328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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