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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그리고
- 이탈리아 바티칸 모나코 스위스 프랑스 기행
김현호
하늘 길도 로마로 통했다.
인천에서 날아 오른 색동날개가 열세시간 쉼 없는 비행 끝에 로마에 도착했다. 땅거미 지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짐 찾는 게이트에서 각자의 캐리어를 찾아 끌고 공항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로마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밤, 차창 밖으로 낯선 야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로마에 왔구나.
우리 일행은 로마여행 중 사흘 동안 묵을 콜라이아코 퓨지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콜로세움 앞에서
또 하나의 가족
서울에서 온 67세 부부, 부산에서 온 62세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 대구에서 온 줌마렐라 넷, 목포에서 온 세 부부, 삼사십 대 솔로 미녀 둘, 결혼 10개월 차 신혼부부 등 20명으로 구성된 멋진 패키지였다. 우리 팀의 맏형 같았던 67세 형님은 유럽여행의 경험이 많은 분이었다. 현지 가이드가 놓치고 지나는 부분까지도 보충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62세 부산 사나이는 화끈한 성격에 퍼주기를 좋아하는 듯 했다.
우리 부부의 이번 여행은 내 회갑기념으로 세 딸과 세 사위 아들이 뜻 모아 보내준 유럽여행이었다. 아내는 자녀들 부담될까 봐 동남아로 가길 원했다. 하지만 여행 경험이 많은 큰 딸은 나이 더 들면 힘들다고 이번에 유럽으로 다녀오라고 강권했다. 비행기도 오래 타야하고 많이 걸어야 해서 나이 들면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대구에서 온 네 명의 줌마레렐라는 같이 여행을 곧잘 하는 사이로 여행보다도 쇼핑을 더 즐기는 분들 같았다. 목포에서 왔다는 세 부부는 자녀들이 초등학교 친구일 때 만나 종종 같이 여행도 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했다. 정작 지금 대학생인 자녀들은 그리 친하지 않다고 했다. 솔로로 온 사십대 삼십대 미녀 둘은 엄마 아빠라 호칭하며 모두에게 살갑게 대했다. 우리 팀의 막내인 신혼부부는 광주에서 왔는데 모두가 그를 이 서방이라 불렀다. 캐리어를 버스에 싣고 내릴 때 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은 고마운 젊은이였다.
흔히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패키지의 특성상 구성원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지만 이번 여행의 코스며 구성원이 너무 좋다고들 했다.
인솔 가이드 아가씨는 시차적응을 위해 되도록 늦게 자야한다고 했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 했고 크로스백은 항상 앞으로 매야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놓지 말라고 했다. 한 눈 판 사이 남의 것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로마에 유학 왔다가 가이드로 눌러 앉았다는 현지 가이드는 호텔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탈리아 호텔 사용법, 유의사항 등을 세세히 알려 주었다.
유럽에는 무료화장실이 거의 없다는 것, 호텔 화장실 좌변기 옆에 변기 비슷한 게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수도꼭지가 붙어 있는 그것의 용도는 무엇일까?
오래전 어느 여름이었다고 한다. 투어 중에 그것의 용도를 말해 주었는데 순간 남자 몇 사람의 표정이 씁쓸하더란다. 유럽의 오래된 호텔은 동남아 호텔처럼 시설이 좋지 못한 곳이 많다. 미니 냉장고도 없는 호텔, 변기 옆에 깔끔하게 놓여 있는 문제의 그곳에 물을 받아 맥주며 과일들을 담가 두었던 모양이었다.
변기 옆 또 하나의 가족 같은 그 것의 용도는 수동식 비데였던 것이다. 석회수 물이 나는 곳이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비데는 물구멍이 막혀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수도꼭지가 붙은 수동식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화장실 오른쪽 수도꼭지 달린 곳은 수동식 비데
포지타노(POSITANO) 가는 길/애광 김현호
아~말이 필요 없다
아말피 해안 지라레 지라레
포지타노 마을이다
굽이굽이 절경에 놀라고
소형버스 기사
운전 솜씨에 거듭 놀라는
포지타노 오가는 길
낯익은 꽃들이 인사한다
차오
하늘빛 물빛 지중해 윤슬
저절로 흥얼대는
오 솔레미오~
*지라레 girare는 우리말 ‘지랄해’와 발음이 비슷한 이탈리아어로 돌다이다.
쏘렌토를 배경으로
아말피 해변 - 아 말이 필요 없다
본격적인 로마 투어를 시작하는 아침 5시, 모닝콜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고 그라찌에라고 했다. 고맙습니다라는 이탈리아어라고 들었기 때문에 현지어로 고마움을 표했다.
6시에 빵과 베이컨 삶은 달걀 큼직한 요거트로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와아~ 로마에서 맞이하는 첫 새벽은 색달랐다. 이슬비 내리는 하늘이 붉게 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첫새벽 빛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부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유럽은 겨울이 우기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새벽
버스는 이탈리아 남부로 달렸다. 이내 비가 그치고 엷은 구름이 꼈다.
기원전 312년 만들어졌다는 인류 최초의 포장도로 비아 아피아(Via Appia)에 소나무 가로수가 즐비하다. 폼페이 베수비오화산 근처를 지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들렀을 때였다. 이탈리아 남자가 나를 보더니 “웨얼아 유 프롬? 저팬?” 이라고 한다. 캐논 카메라를 메고 있어선지 일본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아엠 코리언 했더니 “꼬레아!” 하며 엄지척을 해 보였다. 지중해 연안 도로를 따라 쏘렌토를 조망했다. 세계 7대 비경 중의 하나인 아말피 해변을 따라 포지타노 마을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소형 버스 기사는 잘도 달렸다.
쏘렌토
포지타노 마을
해안 도로에서 내려다 뵈는 지중해의 윤슬이 장관이었다. 포지타노 초입 전망대에 석류와 붉은 오렌지로 즉석 생과일주스를 만들어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오가는 길가에 핀 꽃들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언덕마다 산마다 올리브나무가 즐비했다. 성경에 감람나무라 번역되어 있는 이 올리브나무는 잎이 은청색을 띠고 있어 멀리서 보아도 알아볼 수 있다. 쏘렌토에서 배를 타고 아우그스투스 별장이 있었다는 카프리섬으로 향했다. 박지성 선수의 신혼 여행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관광 비수기인데도 카프리섬에 인파로 넘쳤다. 우리 말고도 한국 관광객이 많았다.
카프리섬 정상에서
이탈리아에선 도심 이면도로엔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없다. 대신 소형 버스로 갈아타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이탈리아는 소형차의 천국 같았다. 우리나라에선 흔해 빠진 중형차를 이곳에선 구경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경차보다도 작은 장난감 같은 승용차들이 지천이다. 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소형 버스를 타고 비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 한 카페에서 파스타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카프리섬 최고봉 589m 솔라로산에 올랐다. 1인승 리프트를 타고 오른 정상에서 카프섬의 멋진 풍광을 바라볼 수 있었다. 카프리섬 항구를 바라보며 손을 들고 서있는 아우구스투스.
아스라한 낭떠러지 아래로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바위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선명한 수평선이 끝없이 이어져 시원하다.
골목 같이 좁은 길 지나다 마주친 로터리. 떠듬떠듬 한국말 하던 현지인 가이드는 로터리를 가리키며 “지라레” 라고 했다. 우리는 지랄해 지랄해 따라하며 웃었다. 지라레(girare)는 돌다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이다.
카프리섬에서 유람선을 타고 세계의 3대 미항 나폴리를 향해 간다. 구름 낀 날씨라 시야는 그리 좋지 않다. 나폴리 항구로 들어 올 때의 풍광이 아름답다는데 쾌청하지 않은 날씨 탓에 아쉬웠다. 쏘렌토 나폴리 카프리섬을 돌아보는 동안 가끔씩 제주에 온 듯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유럽을 읽다/애광 김현호
교과서에서
혹은 영상으로 사진으로만 보았던
머나먼 유럽
아말피 해변의 절경
진청색 지중해의 물빛을 미리 본다
쏘렌토, 미항 나폴리 카프리섬을 향해
상상의 나래를 편다
로마 콜로세움 시스티나예배당 트레비 분수도 볼 것이다
르네상스 발상지 단테의 생가가 있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꽃의 도시를 바라볼 것이다
베니스 니스해변 모나코 대성당
밀라노에서 고딕건축 양식을
인터라켄 융프라우 산악열차를 타고
우리는 알프스의 만년설을 조망할 것이다
요들송을 들을수 있으려나?
파리의 개선문에서 승리의 찬가를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볼 것이다
몽마르트 언덕을 거닐며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다리 아래로
흐르는
센강을 바라볼 것이다
베니스에선 곤돌라와 유영 할 것이다
에펠탑에 올라 파리 시내를 바라볼 것이다
마로니에 아직 피지 않았겠지만
상젤리제 거리를 거닐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을 가슴에 담고
유럽의 3월과 대면할 것이다
엄마 때 또 보내준다고
가고 싶은 데 미리 생각해 놓으라는
세 딸과 아들 사위들 고맙다
궁하게 기르고 가르친
안쓰러운 아이들
늘 미안한 마음 뿐인데.
2018. 2. 28.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
로마의 휴일 속으로
로마의 중심부를 둘러보아야 할 셋째 날.
봄비가 내린다. 벤츠투어라고 콜로세움 근처에서 승합차에 조별로 몇 명씩 나눠 타고 로마의 중심을 돌았다. 빗속에서 콜로세움과 개선문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남긴다.
팔라티노 언덕, 벤허 경기장,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진실의 입을 보고 지나친다. 긴 줄 때문에 그 입속에 손을 넣어 보진 못했다. 진실의 입은 원래 용도가 하수구 뚜껑이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중심 포로 로마노를 보고 트레비분수 주변 카페에서 젤라토(아이스크림)를 맛 보았다.
베네치아 광장의 하얀 건물 통일기념관을 지나 로마시청을 둘러보고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페인광장을 지나 모든 신을 모신다는 판테온 신전(기원전 27년에 건축)을 보았다. 판테온(라틴어: Pantheon)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화가 라파엘로(1483-1520)의 관을 보았다. 판테온 신전의 돔형 지붕은 직경 8m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빗물이 들어오지 않는 다는 일설이 있지만 비가 들이치는 것을 나는 보았다.
판테온 신전
비수기인데도 바티칸박물관 앞에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2km 쯤 늘어서 있다. 우리 일행은 예약해서 줄과 상관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보안 검색이 삼엄했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서 소지품과 웃옷까지 벗어 x-Ray 검사기를 통과하고서야 바티칸 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테러의 위험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로마 곳곳에서 탄창이 꽂힌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인파에 떠밀리듯 들어간 바티칸 박물관 내부와 전시물들이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남성 조각상들이 있었는데 거시기 부분이 하나같이 이파리 형태의 가리개로 가려져 있었다. 원래 있던 것을 보는 사람이 음욕을 품을 수 있다 하여 잘라내 버렸다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1508년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 천정벽화가 있다. 인파에 밀려 스쳐 지나가기십상인데 5분 동안 쳐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세계 최대 성 베드로성당의 웅장함과 TV에서 보았던 베드로 광장을 실제로 보았다.
바티칸 박물관
로마의 휴일/애광 김현호
열세 시간 하늘길 날았다
콜로세움처럼 둥근 일탈
오드리 헵번 그레고리 펙
엔 공주와 조 기자의 휴일 속으로
색동날개 깃들인다
길토래비 귀띔에도
컵라면 햇반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로마에선 로마의 밥을 따라야 한다
오류와 적폐
개선할 것 무엇인지 개선문은 안다
트레비는 분수를 알아야 하고
진실의 입으로 말해야 한다.
천지창조 - 미켈란젤로 작
피에타 - 미켈란젤로 작
바티칸 성 베드로성당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오르비에토 두오모 성당
슬로우 시티 산위의 요새 같은 오르비에토에 오른다. 미니 열차와 비슷한 푸니콜라레를 타고 성곽이 있는 중턱까지 올라갔다. 소형버스로 갈아타고 두오모 성당 앞에 내렸다. 이 성당은 1290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300년간 지었다고 한다. 주어진 자유 시간 빗속에서 한가로운 골목을 탐방한다. 미로 같은 골목길 잘 못 들어 헤매다가 정한 시간 장소에 오지 못한 사람들 우리뿐이 아니었다.
피렌체
성십자가 성당
단테의 생가에서
가죽공예가 발달한 피렌체 가는 길, 움브리아 평원의 밀밭이 푸르게 이어진다. 이탈리아 예술가 철학자 대부분은 중부 출신이라고 한다. 피렌체 예술을 집대성한 우피치 미술관은 겉만 보고 지나쳤다.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베키오 궁전 옆에 있다.
인구 40만 꽃의 도시 피렌체는 장화 모양을 한 이탈리아의 중간쯤에 있다. 아르노강이 유유히 흐르는 피렌체, 신곡을 쓴 단테의 생가를 돌아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났던 베키오 다리를 보았다.
다비드상
베키오 다리
우피치 미술관 앞에서
자신의 조각 작업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했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1475~1564)도 피렌체 출신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피에타’와 ‘다비드’상을 꼽는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무수한 조각가의 피에타 상 가운데 바티칸 성바오로 성당 입구에 있는 피에타가 가장 아름답고 유명하다. 미켈란젤로가 26세 때 인 1499년 제작한 작품이다.
피렌체 몬디알 호텔을 나서 베니스로 이동하는 동안 창밖의 설경을 보았다. 지난주에 내린 눈이 아직 쌓여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터널 안에서도 추월이 가능하다. 버스기사들이 장시간 운전하지 못하도록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 두 시간 운전에 30분 휴식을 취해야한다. 운행이력이 기록 장치에 저장되고 이를 어기면 200달러 이상의 범칙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계속 적발되면 면허취소까지 이어지는 강력한 법이 적용된단다. 그래서 인지 여행 중에 교통사고 현장을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베네치아 베니스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베니스와 베네치아는 같은 곳이다.
펄 위에 백향목 말뚝을 세우고 벽돌로 기초를 다져 만든 곳으로 118개의 섬을 수로로 연결한 물의 도시이다. 도심을 S자로 지나는 운하를 끼고 있다. 베니스는 곤돌라와 수상택시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가 교통수단이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표현한 산마르코 광장에 산마르코 성당이 있다. 두칼레 궁전과 피옴비 감옥 사이에 탄식의 다리가 있다. 한 번 감옥에 갇히면 나올 수 없어 탄식하며 건너갔다는 다리다.
탄식의 다리
인류 최고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재판에서 5년 형을 선고 받아 피옴비 감옥에 수감 되었을 때, 육체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탈옥을 결심했다. 첫 번째 탈옥은 실패하였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 나도 자유를 찾아 떠나며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탈옥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 후 탄식의 다리가 더욱 유명해졌다.
1720년에 영업을 개시했다는 카페 플로리 안(Caffè Florian)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한다. 괴테, 바그너, 바이런, 토마스 만 등 유명 작가와 음악가들, 그리고 카사노바가 자주 들렀던 곳이란다. 베니스 투어를 마치고 한 식당에 들었다.
한글로 쓰인 「바다 레스토랑」이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우리 딸이 베니스에 식당을 차렸데? 둘째 딸 이름이 바다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 딸의 식당이니 맘껏 드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곳에서 비빔밥을 맛나게 먹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도시 베로나로 향했다.
베로나의 줄리엣
줄리엣의 집
아디제강
베로나는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서 깊은 곳이다. 아디제강이 유유히 흐르고 높다란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다. 아레나 극장이라고도 하는 콜로세움과 비슷한 원형경기장이 있다. 바로 옆에 시청 건물이 있고 그 앞이 브라광장이다. 브라광장에서 화려한 상가 골목을 지나면 시인 단테의 동상이 서 있는 시뇨리 광장이다. 줄리엣의 집이 있는 곳이다. 대문간 양 벽엔 사랑의 고백 등 온갖 낙서들이 가득했다. 대문에서 바라본 줄리엣 오른쪽 가슴이 유난히 반질거렸다. 믿거나 말거나 줄리엣 가슴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으면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당신을 만져도 되나요? 아무 말이 없다. 아 참 한국말은 못 알아들을 테지. Can I touch you? 그래도 대답이 없다. 순서를 기다려 나도 사진 한 컷을 찍고 말았다. 것도 증거가 확실한 사진을 남기다니. 차갑던 줄리엣의 가슴을 기억하며 제노아로 떠난다.
요즘 우리나라는 미투(Mee Too)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무쪼록 이를 계기로 위계에 의하거나 취중을 빙자한 성추행이나 폭행이 근절되어야 하겠다. 남녀 양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평등한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로 발전해 가길 소망한다.
아레나 극장
지중해의 보석 같은 모나코와 니스해변
모나코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는 지중해의 작은 보석 같았다.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모나코는 인구 3만 명의 작은 왕국이다.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휴양지로 모나코그랑프리 자동차경주가 열리는 곳이다. 연평균 16℃ 온화한 지중해 연안의 수려하고 쾌적한 곳이다. 머지않은 곳에 프랑스 니스해변이 있다. 5km에 달하는 해변이 몽돌로 가득했다. 지중해 특유의 청색 파도가 쉼 없이 몽돌을 주무른다. 자그락거리는 몽돌의 아우성. 갯바람이 거세다. 여름이었다면 비키니 차림의 피서객으로 붐볐을 텐데 지금은 한산하다. 앙리 마티스가 살았던 니스의 태양이 강렬했다.
니스해변
밀라노
예술과 패션 쇼핑의 도시 밀라노엔 두오모 성당과 오페라의 전당 스칼라 극장이 있다.
아름다운 쇼핑 거리 엠마누엘레 2세 겔러리가 있는 곳이다. 이른 새벽, 밀라노 멜레그나노 호텔에서 아침식사 도시락을 받아 들고 인터라켄으로 향한다.
밀라노의 밤
엠마누엘레 2세 겔러리
융프라우 산악 열차
융프라우 설경
해발 3,454m 융프라우
스위스엔 빙하수 고인 1487개의 호수가 있다고 한다. 남한 절반 크기의 작은 나라로 국민소득이 85,000달러인 강소국이다.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 옥빛 빙하수 특유의 물빛이 담긴 호수가 많았다. 어디선가 요들송이라도 들려 올 것 같은 풍경이 차창 밖으로 하염없이 지나갔다. 장장 17km의 고타드 터널(1980년 완공)을 지났다. 이윽고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스위스는 시계 산업이 발달한 나라이다. 산악열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시계 숍을 둘러보았다. 삼사십 만원에서 수 백 수천만 원에 이르는 시계들로 가득했다. 요즘 시대에 누가 시계를 찰까 싶지만 고가의 시계들이 꽤 팔리는 모양이다. 드디어 산악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가 눈 덮인 산악을 오른다. 경사진 산비탈에 그림 같은 집, 저기에 사람이 살까?
우리는 와아를 연발하며 차창 밖에 펼쳐지는 알프스의 설경에 환호했다. 온통 하얗게 눈 덮인 설산에서 남녀노유 스키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라우터브루넨, 벵엔, 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 3번 열차를 갈아타고 두 시간여 만에 드디어 융프라우 요흐에 도착했다. 해발 3,454m 만년설로 뒤덮인 융프라우 산에 첫발을 내딛었다. 황홀한 설경에 탄성을 지르며 인증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두꺼운 옷을 입었지만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다. 산악열차 안에서는 더워서 겉옷을 벗어야 했다. 우리 여행팀 20명 중 서울 부부는 아쉽게 융프라우에 오르지 못했다. 심장병 수술이력이 있는 아내를 염려하여 부부가 함께 융프라우 행을 포기하고 마지막 관문 클라이네샤이데크에서 내려 우리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융프라우 요흐는 하늘 아래 첫 기차역 유럽의 정상이다. 산악열차로 오르내리며 4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알프스 산자락이다. 군데군데 얼음조각이 있는 얼음궁전을 둘러보고 7.5유로 하는 한국산 컵라면을 사먹었다. 우리 돈으로 만 원쯤의 값이다. 비싸서인지 수출용이라고 특별하게 만들었는지 라면 맛이 일품이었다.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들이켰다.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하산했다. 클라이네샤이데크에 남았던 두 분과 합류하여 우리가 올랐던 반대쪽 코스로 내려왔다. 올라올 때와 다른 풍광이 펼쳐졌지만 감흥이 덜했다. 융프라우에서 더 멋진 풍경을 많이 보아서일 것이리라.
벨포트에서 파리행 열차를 타다
유럽 호텔에서의 아침식사는 빵이다. 빵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아침이 늘 즐거웠다.
몇몇 분들은 아침식사 때마다 준비해 온 컵라면을 곁들여 먹었다. 우리 부부는 기내식이든 현지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 음식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벨포트 역에서 파리 동부역까지 가는 TIR열차에 올라 예매한 좌석을 찾아갔다. 내 자리에 외국인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내가 잘못 찾아 왔나 싶어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손짓으로 내 자리임을 알렸다. 그가 엉거주춤하더니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 보여 주었다. 아주 작은 글씨라 판독이 어려웠다. 황당한 자리다툼을 하는 동안 마침 가이드가 내게 다가와 “4시간 후에 파리에서 만나요.” 한다. 우린 자초지종을 가이드에게 얘기했고 가이드가 확인해 주었다. 그 젊은이는 I'm sorry! 하며 사라졌다. 차 창밖으로 밀밭인지 초원인지 알 수 없는 풍경을 뒤로하고 열차는 빠르게 달려갔다. 간간히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몇 마리의 말과 양들을 볼 수 있었다. 겨우살이가 까치집처럼 나무에 많이 매달려 있었다.
네 사람이 마주보는 좌석 앞자리에 40대 쯤 되어 보이는 백인 남성이 앉아 있었다. 탑승한지 두어 시간 쯤 지났을까. 어느 역에서 백인 남성이 내리고 그 자리에 검정색 패딩 점퍼를 입은 30대 쯤 되어 보이는 흑인 청년이 앉았다.
파리의 추억
달팽이 요리
이윽고 파리 동부역에 도착했다. 역전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말로만 들었던 달팽이 요리다. 올리브유를 곁들여 구운 달팽이 요리. 우리나라의 달팽이를 생각했는데 겉모양이 예쁜 고둥 같았다. 가이드의 시범을 따라 집게로 달팽이를 집어 들고 작은 포크로 알맹이를 꺼내 먹었다. 약간 고소하고 담백하고 부드러워 먹을 만 했다. 달팽이는 빼먹고 껍질 속에 들어있는 올리브유 소스를 바게트 빵에 발라 먹었다. 1인당 여섯 마리씩 먹을 수 있었다. 알맹이가 작아 목구멍에 넘어가는 건 별로 없다. 이어서 감자튀김을 곁들인 쇠고기 찜이 나왔다. 식후에 버스를 타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동하는 길에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거리를 지나 개선문을 둘러보았다.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이라는 베르사유 궁전과 거대한 정원을 보았다.
베르사유 궁전
약국쇼핑 후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세느강 유람선을 탔다. 파리의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에펠탑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유람선에 탄 수백 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카메라와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유람선이 천천히 세느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연인 마리 로랑생과 헤어지고 난 후에 쓴 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 파리의 야경을 가슴에 담는다. 노틀담 사원, 세느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알렉산더 3세 다리 밑도 지난다. 유람선이 지날 때 강변이나 다리위에 있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기도 하고 소리 질러 화답하기도 한다.
선상 투어가 끝나고 무장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호텔에 투숙했다. 「파리/일드 프랑스 여행자제」 외교부 문자 메시지가 뜨더니 그래서 파리 경찰이 호위했나 보다. 동양인을 상대로 한 테러나 강도의 위험 때문이라고 했다.
로틀담 사원
루브르 박물관
밀로의 비너스
가나의 혼인잔치 - 파올로 베레네세 작
모나리자의 미소 -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사크레쾨르 성당
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가보고 싶었던 루브르박물관 몽마르트 언덕에 오르는 날이다.
호텔을 나서 에펠탑에 올랐다. 1889년 건축가 에펠이 설계하여 세운 탑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27m 높이의 에펠탑 2층에 올랐다. 고층 건물이 없는 파리 시내 전역을 조망할 수 있었다. 에펠탑의 높이는 320m이다.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된 작품을 관람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미소를 최단 거리에서 바라보았다. 쁘렝땅백화점에 들렀다가 하늘빛 유난히 고운 몽마르트 언덕에 올랐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떠가는 멋진 풍광이 경이롭다. 언덕길과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꽉 매운 인파. 성당 옆을 지나쳐 더 가면 거리의 화가들이 있는 몽마르트 언덕이다. 더러는 다가와 초상화 그려가라 호객한다. 카페와 기념품 상점이 즐비했다. 막상 와보니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이 언덕이 왜 그리 보고 싶었는지.
내 어린 때 꿈이 화가여서 그랬을까?
몽마르트 언덕
우리는 몽마르트 언덕에서 파리의 푸른 하늘을 가슴에 담았다. 파리의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9박 10일 유럽여행을 마감해야한다. 여행하는 동안 늘 비소식이 있었지만 신기하리만치 가는 곳 마다 날씨가 개이곤 했다. 가족처럼 배려하고 챙기던 좋은 팀과의 여행이 참으로 행복했다. 드골 공항에서 색동날개를 타고 일상 속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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