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 D.C. 다카포 II OST - 008. 心を開く時
마음이 편안하니 잠도 잘 잤다. 덕분에 7시가 되어도 단잠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오늘도 침대에서 일어나기는 불가능… 했으면 좋겠다. 터벅터벅, 이 시간대만 되면 올라오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 누군지 생각 안 해도 아키코 누나가 뻔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들어온다는 예고와 노크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 구르는 소리도 예전보다 묵직한 소리로 들린다. 내 방에 들어온 사람은 나를 흔들며 자상한 목소리로 나를 깨운다.
"아키라, 아침이야. 어서 일어나야지."
그 대사. 확실히 아키코 누나의 아침 전용 대사였다. 하지만, 어째서 목소리가 굵은 것일까. 그리고, 평소보다 더 따뜻해보이는 목소리, 그리고 계속 듣고 싶을 만큼 어딘가 친근한 목소리. 꼭 내가 갓난 아기 때 부터 들었던 목소리 같았다. 지금 나를 깨우는 사람은 아키코 누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굴까, 나를 깨우는 장본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뜨기 귀찮았던 눈꺼풀을 열고 갑자기 눈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빛 사이에서 나를 깨우는 사람의 모습을 힘들게 찾는다. 흐릿흐릿하다가 점점 실루엣이 보이더니 눈, 코, 입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하였다. 의외의 사람이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에 나는 놀라는 한편, 얼굴이 굳은 나는 제대로 감정 표현을 못해 흐리멍텅한 모습으로 그 사람의 칭호를 부른다.
"으음… 아버지…."
"그래, 나야. 어쨌든, 날 알아보는 듯하구나? 아키코가 어서 일어나라고 했어. 일어나지
않으면 아키코에게 혼날 걸?"
어째서 아버지가 아닌 누나에게 혼나야 하는 것인가. 상대가 아버지 인지라 거부 없이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따르지 않고 내 생각과 정반대로 얼굴을 베개에 파뭍고 이불을 좀 더 위에 까지 덮고 웅크렸다.
"으응… 조금만… 조금만 더 잘게요…."
"얘가 지금 무슨 소리야? 아키코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나
이러는거야?"
"…차라리 아버지에게 혼날래요……."
"하하, 얘가 정말 못할 말이 없네. 자, 이제 농담은
여기서 끝! 지금 내려가서 씻고 옷 갈아입으면 아침 식사 준비 다 되어있을거야. 자 자, 일어서."
그것은 본심이었다. 그 대답은 더 이상 농담 따먹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목성 지하 20Km에 있는 것 같은 철퇴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에 아버지는 아키코 누나 같은 소리를 한다.
"그래그래, 그렇게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아들이지?"
'아들'이라는 칭호만 빼고 모든 말, 강약이 누나의 명대사와 같았다. 이건 정말 뭐라 할까, 그 아버지의 그 딸이랄까. 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장차 생길 내 아들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강요해야지.
정신은 매우 맑았다. 기분탓인지 몰라도 정신이 매우 맑았다. 아마도 어제의 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에
어머니의 분신 같이 나도 흐뭇해서 정신이 맑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제 잠자리가 포근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거기에 더해서
기분도 좋다. 새로운 나날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먹구름 한 점 없는 더러움 없는 깨끗한 마음 처럼 나의 마음 속의 갈등이 변기 물을 내리듯이
빠져나가고 텅텅 빈 듯이 깨끗하다.
아버지는 몇 시간 후에 어머니와 할머니의 일을 도와주러 식당으로 갈 생각인가 보다. 나와
누나는 아버지보다 먼저 집을 나와 등교길에 이르렀다. 어제 까지 만해도 그리 반갑지 않았던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은 오늘은 나를 축복하듯이 보기
좋게 보였다. 발걸음이 가볍고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런 때에 어제 처럼 나의 안부를 물어보는 아키코 누나, 정말 참견이 많다. 그래도
나를 위한 참견이니까.
"아키라 군, 오늘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네? 어제 무슨 일 있었던거야?"
그 대답에서 어제의 대답과 바뀐 것이라면 "매우 나빠 보이네?"가 "매우 좋아 보이네?"로 바뀐 것 뿐이었다. 그에
나의 대답은 어제와 변함 없는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해주었다.
대략, 5분 쯤을 걷자 시호 누나와 만나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시호 누나는 언제나 기운이 팔팔하다. 오랜만에 세 사람과 걷는 등교길, 함께 걷지 않았던 게 길지 않으면서도 길게 느껴졌다. 난 오늘
복권을 당첨될 만큼 운이 좋고 타이밍이 좋은지, 문득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그 말씀은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께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는 것. 곧, 그 말은 나와 나의 친구들도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시호 누나, 오늘 우리 식당에서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길텐데, 누나도 올거야?"
"우옷, 저녁
식사라 말이지? 분명 사람이 많으면 먹을 것도 많을 터! 우후후, 당연히 내가 빠질 수야 없지, 안 그래?"
안 그러는데.
"에헤헷, 나 최근에 엄마하고 다이어트 중인데, 쪼~금만 먹어도 아무런 문제 없겠지?"
'쪼~금'이라고요? '많~이'가 아니고?
여튼간에 시호 누나는 식사에 참여하기로 결정,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시호 누나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어쩌면 나 보다 더한 먹보가 아닐까 싶다. 전에 레스토랑에서 시호 누나와 데이트를 가질 때에도 반도 먹지
못했던 왕 돈까스와 자신이 주문했던 음식을 먹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신발장에서 두 누나와 잠깐의 이별을 나누고 나는 교실로
향했다. 문을 여자, 친구들의 반가운 아침인사가 내게 연달아 날아온다. 그에 나는 상쾌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때마침 친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이에, 친구들을 불러모여놓고 아까 시호 누나에게 들이대었던 질문을 친구들에게도 대답해주었다.
"오늘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친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계획이야. 그렇다는 건, 곧 우리도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어때, 괜찮은 생각이지? 뭐,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오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결정하는 건 너희들 마음이야."
그 대답에 친구들은 망설임 없이 만장일치로 'OK'를 외쳤다. 그렇담, 남은 건 아랫층에 있는 카스미 한 명 뿐인가. 카스미는 점심 시간, 아니면 우연히 복도를 걷다가 만나게 되면 권유하는 것이 좋겠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저녁식사, 점심시간이 아닌 저녁 식사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는 과연 즐거울지 기대가 된다. 어제와 달리 나는 머릿 속에는 저녁 식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공부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어제의 영어 선생에게 걸려 또다시 대량의 숙제를 감사히 받았지만….
점심 시간에는 친구들의 주제가 딱 하나로 통일되었다. 모두들 저녁 식사에 관한 주제를 두고 서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미 모모세 선배도 아키코 누나나 시호 누나에게 소식을 접했는지 꽤 기대하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가운데,
전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카스미는 입을 꾸욱 다문 채 좌우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번갈아 보는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카스미는 우리들에게
대답했다.
"저기… 주제 넘은 질문인지 몰라도, 지금 무얼 그렇게 즐겁게 대화하고 있나요? 만약 괜찮다면, 저도 끼워주시면 안 될까요?"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는 아키코 누나가 하는 말,
"아참, 카스미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걸 깜빡 했구나. 다름이 아니라, 오늘 나의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큰 모임이 있어. 어제 아버지께서 돌아오셔서 오랜만에 아버지의 친구분들과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하셨거든. 거기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거야. 그래서 모두들 오늘 있을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다들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거지. 괜찮다면 카스미도 식사하러 올래? 분명 카스미의 아버지께서도 식사에 참여하실거야."
그에 카스미도 망설임 없이 대 찬성, 이렇게 해서 친구들 모두 식사에 참여하기로 한 것인가. 이젠 카스미도 가담하여 우리와 쉴 새 없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를 중심으로 한 공원 주변은 즐거움의 바다가 되었다.
주욱 기다리던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내 창문은 동쪽에 위치해있어 수평선 아래로 점점 가라앉는 붉은
석양을 볼 수 없지만, 하늘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것을 보아 곧 밤이 되려고 함을 암시해준다. 슬슬 시간이 되자, 사복으로 갈아 입은 나는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아키코 누나도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사복을 입은 것을 보면 채비를 완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아키코
누나는 간단한 집정리를 하고 있는데.
문단속을 잘 하고 식당으로 향하는 나와 아키코 누나. 태양은 머리만 남겨놓고 모습을 건물 뒤로 감추어 버렸다. 뜨겁게 이
땅을 달구던 태양이 점점 지는데도 찝찝하고 덥다. 그런 와중에도 더운 걸 모르고 살아왔는지 곧 있을 저녁 식사 때문에 아키코 누나는 입가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다.
옆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지금의 바다는 석양의 붉은 빛에 푸른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타오르는 듯한 바다의 모습도 석양 못지 않게 황홀하다. 그 바다 근처 또한 해안가지만 동쪽 해안가와 달리 모래가 아닌 자갈과 돌맹이, 그리고
깨진 크고 작은 조개 껍데기가 가득하다. 문득, 그 해안가를 바라보니 아오이 씨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아오이 씨는 그 일 후로 뭘 하고
있을까. 아오이 씨의 그러한 발언에 잘못을 반성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을까. 곧 있을 아버지와
친구분들의 모임, 하지만 거기에는 아오이 씨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모인다고 해도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다 모이는 것은 아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왜 한숨이 나올까. 직접적으로 나에 관한 일이 아닌데도 내 일 처럼 느껴지고
걱정된다.
…마음씨가 좋은 건지, 참견하기가 좋은건지.
아니, 단지 어머니께서 슬퍼하는 것이 싫어서 관여하는
것이다. 어머니 뿐만이 아니다. 누나나 아버지에게도 슬프고 고된 일이 있으면 도와준다. 자세하게 말하면 그런 처지에 처한 가족들을 도우고 싶은
것이다. 가족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것이 전체적으로 가족 모두에게 영향이 간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영향에 미치고 나쁜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영향에 미친다.
아무튼, 이 자리에 아오이 씨도 참여했었으면 좋았을텐데…….
식당에 발을 디뎠다. 입구로 통해 들어오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세 사람 밖에
없는 것을 보니 나와 누나가 가장 먼저 온 모양이다. 손님도 없었다. 그것을 보아 오늘은 미리 가게 영업을 일찍 끝낸 모양이다. 아버지는 바쁘게
식탁을 일렬로 나열하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주방에서 요리 중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분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세 사람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맻혔지만 왠지 표정은 정 반대로 흐뭇해한다.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나와 누나에 이어 시호 누나와 그녀의 어머니 요시모토
유메 씨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에 요리 중이었던 어머니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지만, 가장 반갑게 인사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오랜만에 보는
시호 누나가 반가웠을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유메 씨를 가장 반가워했다. 뭐니뭐니해도 유메 씨는 아버지의 옛 친구이고 몇 달 만에 만나보는
친구이니까. 유메 씨나 시호 누나나 언제든지 팔팔하다.
"에헤~ 아빠 씨, 엄마 씨, 그리고 아키라와 아키코도 안녕?"
입을 양 옆으로 크게 찢으며 통쾌하게 웃는 유메 씨.
"아키라, 아키코 안녕! 내가 남는 음식 없이 깨끗히 먹어주려고 일찍 왔지!"
또한 시호 누나도 통쾌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랄까, 닮아도 너무 닮았다. 붉은 머리카락과 양쪽으로 찢어진 눈이…. 유메 씨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반가운지 아버지에게 다가가 등을 거칠게 치며 반가워한다.
"야야야, 정~말 오랜만이잖아? 왜 그동안 연락 없었냐? 한 건이라도 우리 집에 전화했으면 나쁠 것도 없잖아~! 여튼, 정말
반갑다!"
"아아,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등 좀 그만 쳐."
아버지의 반갑던 얼굴은 어느새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변하였다.
"헤헤, 뭐 어때? 난 네가 무~척이나 반가워서 두둘겨 주는건데~!"
하며 등을 두들기는 것이 속도가 더 빨라지고 힘도 강해졌다. 손이 등을 '팍팍' 치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그 소리는 식당 안에 울려퍼진다.
"아, 아앗, 바, 반가우니까, 등 좀 그만 치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인사보다도 괴롭힘을 더 많이 당하는 아버지를 보고서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어머니는 즐거운듯이
웃으신다. 이건 전 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유메 씨는 아버지만 보시면 꼭 등을 두들긴다. 그 손은 항상 빛의 속도처럼 날아와 원한이 담긴 손
같았지.
거의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려고 할 무렵, 시호 누나와 유메 씨에 이어서 미유키 씨와 마사히로 씨, 그리고 모모세 선배가
왔다. 거의 3분 간격으로 한 가족 씩 모여들고 약속 시간 이내에 만날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 두 사람의
친구분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미미하게, 혹은 통쾌하게 웃으며 대화가 끝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 분들의 모습에는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와 친구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해 우리는 우리끼리 대화하는 끼리끼리 방식이 되어버렸다. 내친김에 집에서 가져온
아버지께서 선물해주신 대용량 MP3를 친구들 앞에 내보이며 자랑하며 자만심을 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유명 전자제품 회사
'Dony'에서 발매한 물건이기 때문에 가슴을 활짤 펼 수 있었다. 친구들은 MP3에 조그마한 글씨로 새겨진 이 MP3의 용량 수에 모두들
놀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런 도중에 나는 내가 만들었다는 듯이 점점 자만하게 되어 점점 코가
길어진다.
그런데, 문득 어른들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오이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우리만 이렇게 즐거운 식사를 나누니까 왠지 아오이에게 미안하네."
그런 대답을 한 건 유메 씨 못지 않게 활발한 세츠카 씨였다. 그 대답에 기분이 가라앉은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시끌벅쩍했던 분위기는 갑자기 침묵의 도가니에 감싸였고 나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그곳으로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우울하게 변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들의 친구분들은 웃는 것을 그만두고 두 사람을 보며 의아해한다. 이에 먼저 물어본 사람은 미유키 씨였다.
"이시다 군, 유미 양, 무슨 일 있어요? 왠지 얼굴색이 안 좋아 보여요."
잘못도 없는 미유키 씨는 아주 조심스레 대답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부러 웃어보려고 노력하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지만, 어머니만은 여전히 구름낀 상태다. 아버지가 아무 일 없는 척해도 모두 티 나는 거짓행세였다는 건 나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아버지의 친구분들도 알기에, 준이치로 씨가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날린다.
"아오이에게… 그리고 이시다, 너에게 무슨 일 있는거지?"
그에 아버지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한숨을 쉬며 양 손 높이 들며 백기를 흔드는 전장의 패배와 같이 모든 것을 다 털었다.
"응, 좀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 일이 뭔데?"
친구분들의 질문은 끊임 없이 날아왔다.
"혹시 아오이와 만난 거에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하지만, 내가 아닌 유미야. 덤으로 내 아들 아키라도. 어제 아키라가 전화로 하는 말이 지금으로 부터 이틀 전,
그러니까 일요일에 아키라가 해변가에서 아오이를 만나고 그 뒤로 유미가 찾아와 아오이를 반겼지만 아오이는 그리 달갑지 않은 모습으로 유미를
뿌리치며 절교 했다나 봐."
"에에? 그럴 리가… 그게 정말 사실이야? 아오이는 절대 그런 애가 아니잖아."
그런 대답을 한 건 노리코 씨였다. 그에 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도 그 애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건 알아. 걔는 그런 말을 입에서 내벹을 용기도 없는 애니까. 하지만, 이건 모든 게 사실이야. 조금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라고. 사실 나도 믿기지가 않아. 그런 애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아오이가 그렇게 했다고 대답한 사람은 아키라야. 아키라라면 아오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더 잘 알겠지."
아버지가 입에서 내 얘기를 꺼내자, 대부분의 친구분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왠지모르게 장난이 아닌 위화감, 그 압박에 나는 몸을 조금 움찔거렸다. 그리고 코코미처럼 순해보이는 그녀의 어머니 츠키노 씨가 내게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데.
"아키라 군, 아오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조금은 알려줄 수 없을까?"
그것은 츠키노 씨의 진지하고도 간절한 부탁이었다. 내가 아오이 씨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츠키노 씨는 물론이고 친구분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심 무섭기도 하다.
"확실히 이틀 전에 아오이 씨를 만났어요. 아오이 씨를 알게 된 건 지난주 일요일, 그때 만해도 아오이 씨가 아버지의 친구분의 친구인지 전혀 몰랐어요. 문득 아오이 씨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어요. 이건 우연이 아니었기에 아오이 씨는 확실히 아버지의 친구였던 것이었죠. 정확히 말해서 그것이 아오이 씨를 알게 된 계기였어요. 그러는 한편 아오이 씨가 정말로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분인가 싶어서 식당에 들려 어머니께 물어봤어요. 아오이 씨라는 사람을 아냐고. 그에 어머니는 갑자기 식당을 뛰쳐나가 바다로 향했지만, 그 때에는 이미 아오이 씨가 없던 상태였어요. 그리고 이틀 전, 일요일 날에 아오이 씨와 다시 만났어요. 그녀가 나와 만나고 싶어하기에 만나러 와 주고 말동무가 되어주었어요. 그 당시 제가 아오이 씨에게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고 권유했어요. 하지만 아오이 씨는 그 제안을 꺼리낌없이 뿌리쳤어요. 그 뒤로 어머니께서 저와 아오이 씨 앞에 나타나셔서 아오이 씨를 보고 반가워 하셨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으니까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오이 씨는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어머니를 보고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가는 거에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오이 씨는 단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이 만나기 싫다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다시는 자기 자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그런 대답을……."
일요일의 사연을 친구분들에게 자세히, 그리고 진지하게 꺼내자, 어느샌가 나의 기분은 저기압이 되어 있었고 그것이 얼굴에 표시되었다. 더 이상 입을 열었다가는 기분이 더욱더 안 좋고 참아왔던 분노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나의 처지도 지금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다. 나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우울 모드. 그런데, 어째서인지 몇몇 친구분들도 썩 좋지 않은 표정이다. 어느새인가 그 침울한 분위기에 따라 내 친구들도 모두 침묵 모드, 시끌벅적했던 식당 안은 암울함과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도 입에서 말을 꺼내지 않고 머뭇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누가 이런 곳에서 아오이 씨에 대한 얘기가 터져 나올 줄은 그 누구가 예상했겠는가, 전혀 계산에 넣지 못했다. 기왕에 이런 말이 나온 거, 이 질문 하나를 아버지께 물어보았다.
"저기 아버지, 이틀 전에 아오이 씨가 한 말 중에서 이런 말이 있었거든요. '4000년 전의 이시다 유우키'라는 말. 그 말이 의미하는 내용이 뭔지 모르겠어요. 아오이 씨가 대답하기를 아버지께서 그 대답의 해답을 알고 있다고 답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가 뭐죠? 아니, 그런 얘기를 꺼낸 아오이 씨의 정체가 뭔가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입을 열까 말까 망설였다. 꼭 해서는 안 될 말인지 아버지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끝내 한숨을 토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우…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도 아오이의 정체를 말 해야 할까. 되도록이면 아오이의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아키라, 이제부터 내가 한 말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맹세 할 수 있겠니?"
"에? 가, 갑자기 웬
맹세…."
"어쨌든, 맹세 할 수 있어, 없어?"
"아아, 이, 있어요…,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아버지께서는 엄청 중대한 말을 할 것 같아서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 자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린애마냥 젓가락으로 접시를 탁탁 두들기며 대답하는데.
"우선 아오이의 정체 부터 말 해줄게. 아오이는 이 섬의 신이야."
아버지의 그런 아무도 속아 넘어 가지도 않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입에서 내벹었다. 그 말은 정말 웃고자 하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리고 왜 그런지 아버지의 친구분들도 그 말이 맞다는 마냥 진지했다.
"…아오이가 신 이라는 것은 믿든지 말든지 아키라, 너 자신의 결정이야. 그리고, '4000년 전의 이시다 유우키'라는 말은 말
그대로 아오이가 4000년 전의 이시다 유우키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야."
"그 말은 즉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인가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몰라. 아오이가 말한 '이시다 유우키'라는 사람이 나 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오이는 그 이시다 유우키를 기다리고 있어. 4000년 전에 아오이는 그 남자를 좋아하고 그 남자도 아오이를 좋아했어.
그래서 그 남자는 아오이와 헤어지기 전에 서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어.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만나겠다는 진하고 끈끈한 약속을…. 그래서 그
이시다 유우키가 죽은 후에도 아오이는 그 사람이 다시 환생하여 자기 자신 앞에 나타나기를 굳게 믿으며 항상 그 바다 앞에서 그이를 기다리고
있는거야. 그것이 아오이가 말한 '4000년 전의 이시다 유우키'라는 말의 진실한 의미야."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서 엿듣고 있던 친구들이 웅성거린다. 나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만. 나는 방금 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한 모든 내용이 반은 믿겨지고 반은 믿겨지지가 않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오이 씨는 이 섬의 신이고 아오이 씨는 이시다 유우키라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혼잣말을 하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대답했다.
"나도 옛날에 아오이가 신이란 걸 믿기지가 않았어. 내가 아오이를 신이라고 믿은 데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거든. 아키라는 아오이가 신이라는 걸 잊어도 좋아. 오히려 잊어준다면 고맙지. 세상에 신 이란 게 정말 존재한다는 게 밝혀지면 세상이 뒤집힐 수도 있으니까."
혹시 아오이 씨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있는 아버지는 아오이 씨가 어째서 어머니를 배반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것만 같았다. 나와 아버지의 대답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내가 입에서 질문을 꺼냄으로써 꼬리에 꼬리를 이어나갔다.
"저, 그럼 아버지, 아오이 씨가 왜 어머니를 배신하고 뿌리친 것인지, 그 이유도 알고 계시나요?"
하지만 이번에 아버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안 좋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어째서 아오이가 그런 말을 입에서 내벹었는지는 나도 감이 안 잡혀. 아무런 복선도 안 깔려 있는데 말야. 하지만, 아마도 아오이는 혼자 있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취한 것 같아. 그것에 대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혼자 있고 싶어서?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아오이 씨는 어머니를 피하고 배신하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는 충고를 한 것일까? 혼자 있고 싶다면 그냥 조용히 사라지면 될 것을, 아오이 씨는 정말로 만나기 싫다는 듯이 행동하고 대답하였다. 혹시 이번 계기로 아버지의 친구분들도 아오이 씨를 배반하는 건 아닐지 내심 걱정되었다. 이제 친구분들도 믿기지 않던 아오이 씨의 행동과 말을 납득하고 수긍했으니까. 이미 대부분의 친구분들의 얼굴 표정에는 그렇게 써져있었다. 그 얼굴들에는 "아오이가 정말 그렇게 했다니… 실망했어.", "아오이가 우리를 모른 척하니 어쩔 수 없이 우리들도 모르는 척을 해야하나."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씌여있는 것 같았다. 실망하고 좌절한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이대로 정말로 아오이 씨처럼 아오이 씨를 배신하고 다시는 아는 척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전적으로 친구분들의 행동을 막을 것이다. 설령 나 혼자 어떻게 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왜냐하면, 친구들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변하지 않는 것이 친구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친구를 간단히 배반하고 버릴 수가 있단 말이냐. 그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친구분들에게 당당히 답했다.
"저기 여러분, 저는 아오이 씨가 여러분을 100% 확실히 배반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아오이 씨에게 있어서 여러분은 옛 적에 함께 즐겁게 지냈던 친구이기 때문이죠. 애초부터 아오이 씨의 행동이 이상해요. 항상 친하게 지내왔고 진하고 끈끈한 우정과 인연을 맺어왔던 친구를 그렇게 간단히 배반할 리가 없잖아요? 만약, 예전 부터 배반할 각오로 있었다 해도 조금은 친구에 대한 인정은 남아있을 거에요. 저는 믿고 싶어요. 아니, 믿어요. 아오이 씨는 완전히 친구들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서 그 때에 어머니의 설득에 아오이 씨가 조금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어머니의 말씀에 조금 동요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그것을 보고 알 수가 있었어요. 아오이 씨는 아직은 완전히 배반했지 않았다고…. 아오이 씨가 그렇게 나온 이유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거에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친구분들도 아오이 씨를 배반하려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이에요."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분들에게 대한 진실하고도 간절한 부탁이었다. 나는 바라고 있다. 또다시 이렇게 친구를 배반해 마음을 속상하게 할 일이 없게 말이다. 이대로 친구분들이 아오이 씨를 배반하게 된다면 친구분들도 아오이 씨와 별 다를 게 없고 전에 아오이 씨가 배신했듯이 그 때의 그 일이 다시 재현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나의 간절한 부탁과 설득에 어른들은 조그마한 신음소리와 함께 깊히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은 몇 초가 지나간 듯하였다. 그 짧은 몇 초가 길게 느껴질 때에 한 명 한 명 씩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아키라 군이 말 한대로 아오이는 우리를 배반할 리가 없어. 아오이가 배반한 이유는 분명 어디엔가 이유가
있을거야."
"응, 맞는 말이에요. 아오이는 순진하니까 그런 용기가 없는 아이잖아요? 아오이가 그럴 리는
없을거에요."
"그래, 아오이가 배신할 리가 있겠어?"
"응, 나도 아오이가 우리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침묵은 어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깨지고 점점 어수선해졌다. 모두들 긍정적인 생각을 입에 담고 있다. 우울해 했던 어머니도, 그리고 아버지도 어느샌가 조금은 밝은 면을 볼 수가 있었고 실망하고 좌절했던 아버지의 친구분들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아버지의 친구분들과 같은 말을 입에 담는다.
"그래, 아오이가 우릴 배신할 리는 없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점점 더 웅성해진 식당 안, 이제 다시는 어두운 면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한 건 해낸 건가?
어른들이 어수선해지자, 자동적으로 침묵상태의 내 친구들도 한 명 한 명 씩 입을 열었다. 모두들 하나의 말로 통일하고, 그 대답을 내게 마구
날렸다. 모두들 나를 붙잡으며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냐 하며 우리에게도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달라며 내게 들러붙어 대답을 캐려고 한다.
진드기처럼 붙는 친구들에 대답하기 귀찮은 나는 억지로 친구들을 떼면서 모른 척하며 외면했다. 그러나, 어찌 그렇게 끈질긴지 바퀴벌레 수명보다도
더 끈질긴 친구들은 나를 간지럽히고 꼬집으면서까지 내게서 정보를 캐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전장의 패배자처럼 두 손 들고 모든 것을
털어주었다. 다만, 아오이 씨가 신이란 것과 '4000년 전의 이시다 유우키'라는 말의 의미는 제외했다. 다만, 아오이 씨가 옛 친구인 어머니를
배반해 이런 저런 일이 있다는 것만 알려주었다. 그런 얘기를 친구들에게 대답해줄 때에 비로소 나는 아오이 씨가 신이라는 걸 인정하고 납득했다.
그러기에, 나는 아오이 씨가 신 이란 말은 입에서 내벹지 않았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니까. 물론,
종교를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에게서 이지만.
덕분에 암울했던 저녁 식사 분위기를 겨우 '퍼니 모드'로 바꾸었고 이 날 모두에게는
슬픔이 없는 즐거움만이 가득하였다. 거의 밤 10시가 되도록 친구들과 어른들은 식 후에도 디저트를 즐기며 대화의 끝을 내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계속 시간을 보냈다. 아오이 씨가 친구들 배반한 건 정말 모르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아오이 씨를 다시 설득함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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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이거 쓰는 데에 푸욱 빠졌달까... 다른 소설도 써야하는데..ㅠ_ㅠ
아악! 시간이 부족하다고!!
첫댓글 왠지 추리소설 삘이 나는...(<) 일단 뭐 , 아오이씨도 유우키군을 좋아했으니- 어쩔수 있겠어요 -3-~
=ㅛ= 이제부터 추리/미스테리 류에 속하는 건가...[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