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여태 없었다. 산악 전문 사이트로 지리산 날씨를 확인해보니 D-Day로 꼽은 날은 물론,그 전날도 그리고 그 뒷날도 연속 맑음이다. 즉 연 사흘이 연이어 맑음이었다. 지리산 산행으로 택일한 날은 5월 16일 화요일이었는데 월요일과 수요일도 동반하여 맑음인 것이다. 그런데 왜 사흘 연속이 중요할까? 왜냐면 그동안의 경험과 통계상 가운데 날이 맑음이라고 하더라도 그 전날의 날씨가 그 다음날까지 이어지기 일쑤였고, 또는 그 뒷날의 날씨가 그 전날로 당겨지는 것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날이나 뒷날의 비가 산행으로 꼽은 날짜로 밀리거나 또는 당겨지는 등이다. 가뜩이나 지리산은 높고 그리고 아주 긴 산. 지리산은 두 자리 수 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커다란 산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다른 산보다 더 자주 그리고 많이 일어났다.
어차피 날씨는 변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일주일 전부터 지리산 산행 날 주변의 날씨를 미리 확인해 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주일 전부터 날씨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고 그곳에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얕은 생각이다. 그건 지리산에 대한 모독이다. 비록 날씨가 미시적으로 그리고 시시각각 변할지라도 거시적인 날씨 상황은 미리 체크해 두어야 한다. 어쩌면 생존에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행일로 꼽은 날 일주일 전부터 매일매일 그곳의 날씨를 체크했다. 지리산은 길기 때문에 산의 한 곳만의 날씨를 체크해서는 오류가 생길 수도 있어서 출발지인 노고단 근처 날씨와 천왕봉 부근의 날씨를 동시에 체크했다. 두 곳은 지리적으로도 다른 곳이다. 노고단은 전남, 그리고 천왕봉은 경남.
그런데 이것이 웬 횡재일까? 마음 속으로 찍은 출발일이 점점 가까워져도 세 쌍둥이 맑음은 변하지 않았다. 빙고~ 이건 계시였다. 무조건 출발하라는… 그런데 마음에 살짝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하필이면 중간 날에 기온이 확 오르는 것이었다. 영상 13도. 체감 기온 7~9도. 사실 이 기온이 산 위가 아니라 땅 아래면 더할 나위 없이 걷기 좋은 날씨다. 약간 쌀쌀하긴 하지만 걷노라면 따뜻하게 몸이 덥혀지는 온도랄까? 덥혀진다고 하더라도 몸이 구워질 수준은 절대 아니고.. 또한 갈증을 많이 느끼지도 않고..
첫날은 둘째날과 달리 예상 가능한 지리산의 기온이었다. 음~ 첫날의 기온이 중간 날까지 그대로 이어지만 딱인데…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였다. 더구나 미세먼지도 없고 맑으니, 산에 올라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망무제가 가능한 날. 날씨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출발. 정말 날씨가 좋았다. 그 동안 수 차례 간 지리산 산행 중에 가장 날씨가 좋았다. 멀리 보이는 산. 흘러가는 구름도 하늘로 용솟음치는 구름은 물론, 안개도 없었다. 또한 미세먼지도…
그런데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구름이 없었기 때문에 태양의 직사광선이 머리와 몸 위로 바로 꼽혔다. 특히 태양 빛이 가장 작열하는 시간에, 세석 대피소를 지나 거의 열려진 공간을 걸어야했다. 세석평전, 촛대봉, 연하봉, 정터목 대피소, 제석봉과 천왕봉 오르는 길까지.. 정말 하늘이 뻥 뚫려 있는 길이었다.
지리산의 햇볕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산 아래 산청의 기온도 32도였다. 날 자체가 더운 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더운 공기에 바람도 별로 없었다. 체감 기온이 기온보다 아래면 바람을 예상했었는데, 그 바람이 없었다. 결국 더위에 대한 준비가 약했었다.
더위의 후유증은 단순히 더위를 느끼는 것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계속 선글라스 앞면 유리에는 김이 서리고 땀은 머리부터 줄줄 흘러내리며 가끔 땀이 눈 속에 들어가 눈이 따가웠다. 찐한 소금기가 눈에 들어 갔으니 눈이 온전할 리가 없다. 그리고 또다른 불청객이 있었다. 땀 냄새를 맡았는지, 치밭목 대피소 아래부터 유명마을까지 도보 중에 계속 얼굴 앞에 날벌래가 날라다녔다. 햇볕 아래는 더웠고, 그늘 속에는 벌레가 얼굴 앞에서 윙윙거렸다.
그런데 무엇보다고 가장 심한 것은 갈증이었다. 어떤 산행 때는, 물 300ml 한 병이면 한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갈증이 심해서 대피소만 찾았다. 그리고 물을 찾으면 물을 너무 빨리 마시는 바람에 가슴이 턱턱 막혔다. 물을 많이 마시면 온 몸의 세포속으로 물이 채워질 줄 알았는데 배만 불러왔다. 그래서 조금만 걸으면 금새 갈증이 다시 찾아 왔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건 몸 속의 수분 문제가 아니라, 더위를 먹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더위에한참 노출되다 보니 더위를 느끼는 감각 기준점이 원래보다 한참 내려간 느낌이랄까? 그래서 예전에는 “쾌적”이라고 느끼던 온도도 “더위”라고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걸었다. 뭐가 되었든 그리고 어찌 되었든.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걷기에 최적이라는 날씨라는 것. 그리고 최적의 기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동안 산행을 하는 차원에서 최적의 개념은 그냥 맑은 날이었다. 그저 푸른 하늘. 구름 한 점이 있으면 최적-1, 구름이 송송 박혀 있으면 최적-3 등등. 그런데 이번 산행을 통해서 지리산 산행에서의 최적 날씨라는 것은 “그저 맑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적당히 구름이 낀 날이 더 최적의 날씨였었다. 그래서 회고해보니 그 동안 걸었던 그 시간들이 최적의 시간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이런 것이 어찌 산행 뿐일까? 지금의 매 순간이 어쩌면 인생의 가장 최적 그리고 최고의 순간일지도 모를 것이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시간인 것처럼.
지리산은 그런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 역시 지리산이었다….. 하산 길은 말 그대로 징글징글하게 “지리”했지만, 결과적으로 분명 "智異"山이었다…………………..###
첫댓글 산행을 시작하면서 일기예보를 들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습니다. 요즈음 날씨가 낮에는 덮지만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때 이른 더위에 물 때문에 고생 많이 했군요. 예전부터 물 조정을 단디했지요. 배낭 무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루 산행에 물 1리터와 포도쥬스 같은 종류로 1리터로 산행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능선산행에 맑은 날씨도 좋지만 구름이 낀 날씨가 최고지요. 유평으로 내려서는 너덜길에서 고생 많이 했나봅니다. 어떻튼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겼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맹물만 마시고 다니나 봅니다. 다른 분들은 나름 단디 준비를 하고 다니시는데요. 앞으로는 산행 시 고려하겠습니다. 간식도 물도..감사합니다.
지리산 종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날씨와 일기예보이지요.
저 같은 경우는 1박2일 산행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지요.
더구나 여름 휴가철이 여서 소나기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어느 해인가 세석을 2km정도 남겨두고 멀쩡하던 날씨가 갑작스런 폭우에
생 고생을 한 적이 있었지요.
지리산의 변화무쌍하다는 날씨를 몸소 체험한 경우였지요.
배낭에서 우산과 비옷을 꺼낼 틈도 없이 뇌성과 폭우에 바가지로 퍼붓는 것 같은
강우에 신발은 물론 팬티까지 다 젖은 몸으로 캄캄한 밤중에 세석 대피소에 도착하는
사건도 있었답니다.
갈아 입을 옷도 없고 젖은 옷을 입고 마루 바닥에서 그대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였지요.
새벽에 나와보니 비는 계속 내리고, 마른 양말을 갈아 신고 그 위에 비닐을 신고 물이 질척한 등산화를 신고
03시도 안 되어 촛대봉을 올랐던 기억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천왕봉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고, 우리 부부 두 사람 뿐 비 오고 강풍이 부는 천왕봉을 전세 내어
인증사진도 찍어 보았습니다.
세석에서 천왕봉을 오는 도중 팬티는 습하고 아직도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천왕봉을 올랐지만 고생은 말이 아니였지요.
19.8/3사진
지리산 정상은 하늘과 가까워서 땅 아래 평지와는 기후 패턴이 다른 것 같습니다. 막 용솟음치는 구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선생님이 비에 고생하신 이야기를 들으니, 움찔 해집니다. 그리고 여태 운이 좋았구나도요. 두 번째 지리산에 갔을 때 비가 오는 와중에 우산을 들고 산행을 시작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니 무모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비가 오는 와중에는 산행을 싫어했었는데, 정말 그냥 자석에 이끌리듯이 비가 오는 와중에도 산으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부슬부슬 내려 무사히 연하천 대피소까지 갔었고, 그 이후로는 잠잠, 그리고 천왕봉으로 가까워지면서 그곳은 오히려 상고대를 보여 주었었습니다.
지리산의 변화 무쌍함을 경험했었는데, 1박2일 여정이라면 날씨의 변화를 더 심하게 경험하셨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비에 대한 내용은 차지하면, 푸른 하늘의 풍경 하나는 정말 끝내주네요. 그런데 사람이 너무 없으면 조금은 겁나던데요. 어느때는 조금 오싹해지기도 합니다. 이 깊은 산속에 나만 덩그러니 있다고 생각하면… 사모님하고 같이 계셔서 그런 생각은 드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며칠 지나면 또 생각나는 지리산이였지요.
지금은 체력이 바쳐주지 못하니 지리종주는 희망 사항인데, 다시 한번 도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아내의 체력이 걱정되어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성대 종주를 하시며 고생하신 것은 날씨 때문에 더 힘드셨고 징그런 대원사 하산 길 너덜겅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거 같습니다.
또 물로만 배를 채우면 혈액이 물거져 좋지 않지요.
적당한 염분 섭취와 이온 음료를 마셔주면 반드시 좋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당일 종주를 계획대로 해내셨으니 얼마나 뿌듯하고 기쁘셨을까요?
자부심과 자신감에 큰 도움 되셨을 듯 싶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
다음 산행도 무사 완주를 기원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2019년 8월3일 세석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오며 찍은 폭포입니다.
아직 백무동으로 산행 또는 하산을 해보지 않았는데, 계곡이 정말 멋지네요. 칠선 계곡은 너무 경쟁이 심해서 감히 도전을 못하고 있고요. 집에서 가까운 동서울터미널로 이동을 하다보니 늘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백무동으로 하산 또는 산행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지리산 탐방로 중 가장 긴 곳이 유평과 천왕봉 사이라고 하네요. 도대체 왜 이렇게 길어? 하고 찾아보니, 지겨웠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탐방로의 난이도 (경사도 등 고려)가 아니라 지리하게 끝없이 이어진 탐방로가 산객을 지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산행 대비 이제는 하산길이라고 마음은 일찍 놓아버리는 것도 힘들게 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이제 알았으니, 혹시 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재도전 하게 된다면 이번 보다는 훨씬 수월한 산행이 될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