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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נֹחַ 노아흐" : 10월 셋째 주 토라포션 in 5784
창6:9-11:32(To), 사54:1-55:5(Haft), 마24:36-46,벧전3:18-22(Brit), 눅4:1-13(신약)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
3주만에 돌아왔는데, 인질로 잡혀있다가 풀려난 것 같이 환영해주셨다. 다시 단에 설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은혜 찬송 2절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다는 찬양이 절절하게 불러졌었다. 그렇다고 살아돌아온 것이 은혜란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야하고, 그곳에 우리의 가족이, 본향이,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수콧 기간에 읽었던 말씀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이것을 제목으로 잡았다. 누구든지이다. 어떤 아담이던지. 유대인이던지, 팔레스타인이건, 하마스건, 헤즈볼라건, 한국인이건 상관없이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나에게 나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여기에 명절 끝날이라고 한다. 이번 명절 끝날에 전쟁이 터졌다. 국가 대 국가가 싸워야 전쟁인데, 법도 없는 그냥 학살이 일어났다.
저희가 목숨이 왔다갔다 할 때,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버지는 참 좋은데 계시는거라고 이야기했다고 할 때, 당시에는 참 철이 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와보니까 정말 거기가 좋은 곳이더라. 거기는 죽음을 실제적으로 만질 수 있고, 목숨이 왔다갔다하기에 그냥 깔끔하다. 그런데 와보니까 정말 우리 에고의 아담이 아닌 짐승의 모습으로 서로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 안타깝기도 하고, 그 전쟁의 실마리를 어떻게 푸느냐는 여기에,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저희가 떠나기 전날 베이트 에하드에서 평화네와 현정 선교사와 함께 나눔을 할 때, 우리 친구 Ann, 전생에 한국인이었고,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친구가 수콧 내내 함께했는데, 연락이 온 것이다. 지금 방금 옆집에 폭탄이 떨어져서 너무 놀랜 나머지 연락을 했고, 너무나 씩씩했던, 그동안 전쟁 소식으로 함께 기도할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한나 현정 선교사가 사랑하는 친구의 놀람과 두려움의 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쏟더라. 그리고 저희는 요르단으로 나왔고, 나온 그 날, 은혜 선교사님이 다윗이랑 다미를 데리고 마트를 갔다가, 베이트 에하드가 있는 동네가 말카, 소금의 땅이란 동네인데, 그 소금 옆에 길로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폭탄이 떨어져서 은혜가 급하게 세탁소 방공호로 뛰어들어갔다. 그것도 모르는 다윗이 다미는 즐겁게 세탁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천진난만하게 사는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안전하고, 학교도 다시 재개할 예정이고, 다윗이는 어린이집에 정상적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요새 계속 뉴스를 보시면서 도대체 어떤 뉴스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고, 여러 혼란 속에 우리는 빠져있다. 우리 에고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다. 그것을 에고는 가장 두려워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의 최절정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겐 제일 두려운 일이다. 그것을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강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너무 무서워서 죽음을 잊어버리고 버려버린다. 그래서 마치 안 죽을 것처럼 싸우고 있다.
모든 것이 죽지 않을 줄 알고 싸우고 있다. 저희가 오자마자 장례 예배를 치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죽음 앞에서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고, 화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우리가 짐승 짓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여기에 나와있다.
צמה 짜마 : 목마르다 = 의에 대해서 굶주린 자
이스라엘에 가면 목사님이 세계 최고의 가이드이신데,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목마르기 전에 물을 조금씩 드셔야한다고 한다. 목마를 정도까지 가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말이다. 목이 마르다는 것은 물을 먹고 싶다는 것이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엄청난 물이 우리의 뱃 속에서, 영혼에서부터 흘러나와서 지금의 전쟁도 해결하고, 온 인류에게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목마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시42에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쫓겨서 얼마나 마음이 녹아버렸을지, 정말 목마른 자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하다. 이것은 산속 옹달샘의 풍경이 아니라, 사슴이 목마를 때 하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이것을 생생하게 전달해드리려고 영상을 찾아봤는데, 못 찾았다. 크게 표효하듯이 찾아헤멘다고 한다. 중동의 뜨거운 태양과 건조하고 마른 초원을 가로지르면서 간절하게, 절박하게 물을 찾아서 헤메인다고 한다. 우리에게 이런 절박함이 다가왔다. 눈 앞이 캄캄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는, 문제는 무고한 피, 특히 아이들의 피가 흘려진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에 있을 때, 자고 일어나면 서로 묻는 것이다. 밤새 무슨 일 없었어? 유투브에 나오는 뉴스가 아니라, 진짜 뉴스를 좀 전달해달라.
지금 이 일이 언제 일어났냐면, 명절 끝날에서부터 헤쉬반월에 일어나고 있다. 므낫세의 달이다. 헤쉬반 월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이후부터 마르-헤쉬반이라는 말로 칭한다. 이 달의 이름 자체가 마르, 괴로운 헤쉬반, 쓴 헤쉬반이란 것이다. 지금 아주 쓰고, 괴로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일을 생각할 수도 없고, 가슴이 답답한 상태, 그러나 그곳만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 사시는 여러분 안에 이런 숨막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남모르는 불안으로 잠을 설칠 때,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우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루아흐 아도나이 알라이, 후렴에 이런 가사가 있다. 라쑴 레아벨레이 찌욘, 타하트 에벨, 이 모든 것이 쓴 상태의 마음의 표현이다. 내 영혼이 정말 물이 없어서, 크게 소리지르면서 절박함으로 뛰어다니는 사슴처럼 괴롭습니다. 불안합니다.
시42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저는 참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신을 믿을 수 있겠는가? 8살 딸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축복이라고 고백하며 절규하는 아버지를 보았다. 우리 마음이 계속해서 낙망하고, 절망하며, 마음의 고통이 너무 쌓여서 주체를 못하는 상태, 그 영혼이 포로에 잡혀있는 상태이다. 참 놀랐다. 이번에 가서 저희는 인티파타, 팔레스타인 봉기가 났을 때 선교 사역을 했기에 굉장히 긴장감이 있는 예루살렘에 살았었다. 그런데 우리가 철수하고 여기서 교회를 하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간 그 땅은 너무나 편안한 것이다. 비자국을 통과할 때도, 학교를 갈 때, 마트를 갈 때, 항상 우리 짐을 샅샅히 조사했던 풍경이 아닌, 너무나 편안해지고, 저는 이스라엘에 헌신한지 25년만에 헤브론을 처음 가봤다. 그동안 꽉꽉 막혀있던 헤브론을 처음 가는 편안하고 샬롬한 이스라엘을 누리다가, 갑자기 홀연히 이런 전쟁으로 들어왔다. 예루살렘에서의 모든 편안한 삶이 다 송두리째 빼앗겨버렸다. 이럴 때 더 절망적인 것이 있다.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너의 하나님이 어디있느뇨? 라고 한다. 너가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있냐고 조롱한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내 자아가 고백한다. 너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 우리에게 이 목마름이 없다는 것, 어떤 한 제자가 사업을 하는데 한 랍비에게 찾아갔다고 한다. 도대체 말을 시냇물까지는 끌고 올 순 있는데, 물을 먹이기가 어렵다고 고백했더니, 그 랍비가 했던 말이 있다. 너가 할 일은 끌고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목마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마음의 고통과 절망은 내가 목마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도 목마르다. 사마리아 여인도 목마른 사람이었다. 사슴이 목마르듯이 말이다. 그러나 세상과 여러분이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세상도 불안해하고, 우리도 불안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낙망 때문에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야한다. 마음이 불안할수록, 하나님을 향해서 더욱 달려가야한다는 것이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고 불안해하는고,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우리가 자연, 사슴을 본받기 바란다. 물 아니면 안되는, 집요하고 절박한 사슴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스라엘 다녀온 많은 분들이 비나의 물, 물에 대해서 간증하고, 주님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면 너의 배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하마스의 모든 불을 꺼뜨릴 수 있는 그런 놀라운 Final solution이라고 이야기하신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물이 해답일까?
루아흐 아도나이의 가사가 있다. 너희들은 의의 나무, 시냇가의 심은 나무로 자라나게 하신다는 말이 있다. 인류는 나무이기 때문에 물이 그토록 필요하다. 우리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농부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물이 그렇게 필요하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내가 절박하다는 것을 부르짖고, 세상과 다르게 그때마다 하나님을 찾을 때 말이다. 세상에 왜 전쟁이 일어나고 목마름, 위기를 주실까?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을 절박하게 가지게하기 위함이다. 주님 없이는 안된다고 말이다. 이번 전쟁 기간 때 그렇게 절박하게 부르짖어 보셨는가? 시42편을 정말 절박하게 담은 노래를 한곡 하기 원한다. 많이 아실 수도 있을텐데, 이스라엘과 아랍 형제들을 기억하면서 절박한 여러분들의 갈라진 마음을 기억하면서 부르도록 하겠다.
==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
하나님이 이번 전쟁을 통해서 우리의 여행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 있었다. 야드 바쉠도 가고, 전쟁을 겪으면서, 너는 내가 믿을만하기에 그동안 너를 에덴으로, 토라의 물로 인도해왔기에 나를 믿느냐? 라고 심각하게 주님이 도전하시는 것이다. 믿음과 신뢰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믿음은 주님이 우리에게, 리더가 우리에게, 아버지가 우리에게 믿을만한 것을 주셨기에 믿는 것이라면, 지금 시기는 그런 시기가 아니라, 믿을만하지 않고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내게 물이 없고 죽을 것 같을 때도 나를 믿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여기까지 여러분을 인도해주시기 원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절박함을 가질 때까지, 이것 아니면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하실 때까지 하나님은 그 신뢰의 사람, 한 명을 얻기까지 여기로 인도해오신 것이다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나오면서 평화, 은혜, 현정을 두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겠는가? 아니다. 너무 그들이 부러운 것이다. 정말 좋겠다. 우리 고 목사님이 저희를 거의 협박으로 나오게 하실 때, 말씀하신 것이 있었다. 평화, 은혜, 현정은 걱정하지 말아라. 그들은 주님이 그 땅에 뿌리내리게하신 나무와 같은 자들인데, 당신들은 아니니까 빨리 나오라고 하시더라.
אהבה תנצח 아하바 테네짜흐, 사랑이 강하다. 많은 분들이 사랑이 강하다라는 대자보인데, 네짜흐는 진짜 강한 것이다. 강한 다리로 우뚝 서 있는 그런 상태를 이야기한다. 진짜 이기는 자이고, 진짜 승리하는 자이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이기는 자에게, 강한 자, 네짜흐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신다. 감히 제가 말하는데,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린, 이스라엘 땅에, 요르단 땅에 깊이 뿌리내린 선교사님들이 있기에, 우리는 여기서 그 열매를 먹고 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있다. 생명나무는 모든 인류를 살게하는 것이다.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리더, 정당 이름이다. 팔레스타인은 좋다. 그러나 부분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나무는 부분이 아니라, 단순히 가자지구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 전체를 살게하는 진정한 이기는 자, 풍요로움, 강함, 진정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강함이 무엇인가? 사랑이 이기리라하면 사랑이 강함인데, 고린도전서에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온유하다. 시기 안 하고, 자랑 안 하고, 교만 안 하는게 강자인가? 바보, 병신 아닌가? 우리의 강자는 폭격하고 화나면 다 죽여버리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다. 생명나무처럼 보이는 짝퉁으로 살고있는 상태이다. 비슷한 생명은 줘도 진정한 생명을 줄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초막절 끝 날, 명절 끝날의 이 전쟁은 6일 전쟁, 욤 키푸르 전쟁도 수콧을 겨낭한 전쟁이었는데, 이제는 수콧이 아닌 뒤쪽, 호산나 라바와 쉐미니 아쩨레트, 심카 토라를 겨냥한 전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이 학살의 제목을 달았다.
" טבח שמחה תורה 베타흐 심카 토라 "
테바흐, 학살하다는 것이다. 이 교회가 노아의 방주 컨셉으로 지어졌다. 범람하는 홍수 속에서, 하마스가 알 악사 홍수 작전이라고 했는데, 그 홍수 속에서도 안전한 것, 비나의 물 안에 있는 형상이다. 그 방주 안에 들어와계신 것이다. 그런데 욤 키푸를 전쟁, 심카 토라를 겨냥한 전쟁의 이름을 테바흐 심카 토라라고 유대인들이 명명했다. 심카 토라, 토라를 기뻐하는 자들, 바로 여러분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인류 유사 이래로 이런 학살은 계속되어왔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기에 대해서 그렇게 당황해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바보 병신같은 짓을 해왔고, 온유하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그 의를 잃어버릴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큰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창6: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다고 한다. 그냥 직역하면 하마스가 덮고 있다고 지금 노아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חמס 하마스 : 폭력, 부당하다(부당한 대우를 하다), 해를 끼치다, 포악하게 다루다
제가 이번에 제자들의 삶을 보니까 하마스, 폭력이 왜 일어나는가? 부당함에 대한 느낌 때문에 일어나더라. 참 재미있는 하마스가 쓰인 성경 구절이 있다.
창16: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갈이 자기를 무시하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받는 모든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다. 사라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마스가 알레이카, 너의 위에 있다. 내가 받는 이 하마스, 부당함은 다 너의 탓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부당하다. 하마스가 지금까지 참고 참고 또 참아서, 노리고 노려서 이런 평안한 샬롬을 깼다. 이 부당한 모든 책임을 이스라엘에게 돌리고 있다. 하마스,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느꼈던 부당한 역사는 우리가 이해, 논리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에서 나와서 임재 선교사님에게 갔는데, 저희를 픽업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오늘 물이 안 나온다고 말이다. 그분에게는 그게 일상인 것이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좋은 곳만 가셔서 그렇지, 사실 전 처음 이스라엘을 밟았던 99년도 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지역에 갔다. 그때 여자는 페트병 3병, 남자는 2병을 줬다. 이걸로 샤워하고, 머리감고 다 하라고 말이다. 그 정도로 자기가 마땅히 인간으로서, 아담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차단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 쌓여간다. 못해먹겠다. 너무나 공정하지 않다. 왜 너만 누리냐? 왜 너만? 이스라엘편도 마찬가지이다. 너만 폭격할 수 있냐?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힘이 없어서 못하는 줄 아냐? 이렇게 싸우고 있다
미리, 현천이 싸우는 것 보니까 너만 나갈 수 있냐? 나도 나갈 수 있다. 다행히 미리암이 진정 강자를 배워서, 폭격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버틸 수 있는 것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강자이다. 꺽을 수 있는 상태, 굴욕감을 버티고 꺽어주는 상태를 진짜 강함이라고 한다. 우리는 극강의 강자의 마음을 느끼고 싶어하고, 극강의 우월감을 갖고 싶은 것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죽어도 꺽기 싫은 상태, 내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하는 상태가 바로 우리의 상태이다. 그러나 다 죽일 수 있는 것이 강자가 아니라, 지켜주고, 보호하고, 책임져주는 것이 강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내가 쎄냐? 너가 쎄냐? 절대로 굽히지 않는 그런 상태가 강함이 아니라, 버티고 버텨서, 굽히고 굽힐 수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진정한 왕은 하인도 될 수 있다.
여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가봐야겠지만, 쌍둥이 키우는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기 키울 때 똥 치워주고, 기저귀 갈다보면 오줌 세례도 맞는데, 엄마가 내가 너 때문에 고생한다고 하는 것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이다. 내가 너 때문에 내 시간도 없고, 브런치도 못 먹고, 밤 잠도 못 잔다고 했을 때, 정말 엄마의 마음에는 강한 마음이 다 사라지고, 약자짓, 수치를 떠는 짓을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강자는 행복하게 종노릇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사랑의 마음에서 약자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약한 자가 아니다. 상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때, 그것은 왕의 마음이며, 가장 행복한 마음이며, 진정으로 하늘과 같은 다 가진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강자는 그렇게 힘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참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노아처럼 말이다. 노아가 힘이 쎘다? 니므롯의 용사 같았다는 말씀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다. 400년 동안 수치와 조롱, 너의 하나님이 어딨냐고 했을지라도, 묵묵히 방주를 지었던 버티는 힘이 강했던 자가 우리의 아보트이다. 지배를 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내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 것, 진짜 강한 자는 칼을 쥔 사람이 아니라 칼자루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남자가 사랑에 빠졌다. 음녀의 유혹이 빠졌다. 그래서 그 여자가 이렇게 말한다. 너가 날 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줘. 너의 엄마의 심장을 나에게 갖다줘. 그랬더니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엄마를 살해하고 심장을 꺼내서 돌아오는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심장이 또르르 굴러간다. 엄마의 심장이 하는 말이, 아들아, 괜찮니? 진짜 강한 마음은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주면서도, 버티고, 인내하는 그런 진정한 티프에렛의 마음, 약자에게 져줄 수 있고, 죽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강자는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힘이 쎈 사람이 아니라, 내 뜻대로,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맞아서, 최고의 이기는 자이신 그분과, 그분이 통치하는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강자는 종이 될 수 있다
하마스가 이번 학살을 통해서 전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약자였다고 하면서, 약자됨을 이용해서 강자에게 사랑받고자 하고 있다. 차라리 우리가 약하다고 바짝 엎드리면 좋을텐데, 절대로 그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하마스는 약자가 아니라 가해자, 짐승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강한 사람, 아하바 테네짜흐, 진정한 네짜흐의 사람은 끊임없이 용서할 수 있는 자이며, 그분의 생명을 위해서 이미 용서해있던 것, 생명을 줄 수 있는 강함, 이래도 신뢰할 수 있겠냐고 물으실 때, 내가 목숨을 내어드릴때까지 사랑하겠다고 하는 강함이다. 계2장에서 강한 사람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약속을 주시고 계신다
계2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땅에서는 너희가 목숨을 잃어도, 영원한 죽음, 둘째 사망은 받지 않을 것이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수없이 이기는 자에 대한 통치권을 약속하신다. 기꺼이, 진짜 강자셨기에 굴욕감으로부터 자유롭고 버티셨던 분이 십자가의 우리 주님이시다. 그 십자가의 강자를 끝까지 지켜왔던 신뢰의 여인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였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줄을 기꺼이 내어주신 진정한 네짜흐의 사람을 끝까지 옆에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이 여인이 어떤 여인이었는가? 그의 과거는 악취나는 과거였고, 군대 귀신이 들어갔던 과거였다. 그러나 그분을 만나서 새 사람이 되었고, 오직 절박하게 나는 당신밖에 없다고, 그분 아니면 죽음이라고 쫓아갔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분이 맥없이 한없는 약자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처음으로 맞이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가? 주님이 맥없이 가장 약한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옆에 있었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마리아의 마음이 어땠을까? 우리와 같았을까? 물에 초가 녹듯이 마음이 녹았을까? 마리아는 진짜 강자 옆에서 진짜 강함을 보았던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무릎쓰고 무덤을 향해 달려갈 용기가 있었고, 그런 오른 다리가 있었다. 가서 보니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같이 갔던 여자들은 다시 절망하고 돌아갔으나,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신뢰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주님의 시체라도 보아야겠다는 절박함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바위를 움켜쥐고 흐느낄 이때,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절박한 이때, 주님은 부활의 몸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는 생각보다 환난 날에 주님을 부르지 않는다. 생각보다 내가 고통받을 때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보다 우리의 머리를 굴린다던지,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처럼 환난 날에 주님을 부르는 강함을 가졌을 때 주님이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계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 강한 사람이 생명나무인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진짜 강자를 보고 정말 생명나무를 얻은 것이다. 여기에 생명나무의 기능이 있다. 여러분의 뱃속에서 터져나오는 생수가 길 가운데로 흐르고,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다. 지금 온 땅이 기도하고, 추구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겠는가? 만국을 치료해주는 것, 만국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바로 생명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힐링, 화해, 샬롬을 구하지만, 뭐가 있어야 샬롬이 오는지 모르는데, 생명나무, 진짜 강한 자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생명나무, 풍요로움, 강함을 얻지 못하면, 그냥 나 내 가족, 한국 사람정도 기도하면서 살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단독자의 사고이다
요르단에 가니 하윤이, 하선이, 하나, 하임이가 있어서 맥도날드 아이스크림을 사주러 갔다. 맥도날드 매장에 들어갔더니, 작년에 가신 분들은 알텐데, 국왕의 초상화의 가족 사진이 붙어있는 것이다. 물어봤더니, 요르단은 어딜 가던 왕의 사진이 붙어있다는 것이다. 요르단은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서, 극빈층과 극부유한 층으로 나뉘고, 중산층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극빈자에 속하지만, 가장 강하고 풍요로운 분으로 임재 선교사님은 살고 있다. 왕족은 럭셔리한 옷을 입지만, 요르단 백성조차 풍요롭게 못하는 상태이다. 요르단 경제의 가장 큰 재정의 포션이 국가들의 원조로부터 온다고 한다. 국가들을 다니면서 원조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정도의 풍요로움이 아니다. 부분적인 풍요로움이 아니다
하마스 지도부들이 카타르 5성 호텔에서 항상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부분적 풍요로움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만국을 치유하며 번성케하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풍요로움은 누구든지 목마른 자들에 대한 해결 방법이다
보혜가 진짜 강자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지금까지 솔직히 임재, 승혜 선교사님이 요르단도 이스라엘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속으로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번에 하나님이 전쟁을 통해서 얻게하신 가장 큰 열매가, 저희 교회에 요르단을 주셨다는 것이다. 이 이스라엘의 동편을 우리에게 주셨다. 더 이상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자로 우리를 세워가시는 것을 느꼈다. 제가 오늘 임재 선교사님 이야기할 줄 어떻게 하시고, 아침에 기도편지가 날아온 것이다
젊었을 때 임재 선교사님이 실제로 십자가 나무를 지고 걸어가셨던 것으로 유명하셨다
하염없이 목놓아 우는데 나를 향해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를 나도 지고 싶어 바로 옆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왔습니다. 주님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는것이 이 나무십자가가 아니라는걸 알았지만 그때 뭐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99년 그해 여름 저는 혼자서 무일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길을 며칠을 십자가를 메고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2023년 여름 다시 주님은 저에게 똑같은 음성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아닌 주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이 땅 아랍의 영혼을 위해 지셨던 그 십자가, 이들을 먹이시고 온전한 회복으로 이끄시는 그 십자가였습니다.
이번에도 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합니다. 이땅 아랍의 우리형제들을 위해 주님 지신 십자가를 나도 지고 가 보려고 합니다. 우리 회심한 무슬림형제들의 자립과 이 아랍땅에 생겨나고 자랄 회심자들의 교회를 위한 식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식당의 이름을 베이트 아칼이라고 지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화해의 키는 먹고 먹히는 것 밖에 없다. 아칼,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먹히는 것만이, 기꺼이 서로에게 내가 너의 음식이 되어주겠다고, 기꺼이 먹혀주겠다고 하는 강한 마음만이 이것의 해결점이라는 것이다
저에게는 이번 이일이 이땅의 영혼들을 위한 십자가와도 같습니다. 처음 십자가를 만들어 메고 집을 나서려할때 막연함과 두려움에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막연함과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할일임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가려합니다. 기도해주세요. 돕는 사람들과 필요를 채우시고 또 저희가정에 힘주시길 기도해주십시오. 십자가는 승리합니다 죽는것이 생명을 낳고 풍성케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번에 집을 사셨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선교의 판도가 바뀌었구나. 나 때는 선교 사역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치고 빠지는 최정예 특공 부대같았다면, 하나님이 이제는 그 땅에 뿌리내리는 나무로, 루아흐 아도나이 알라이에 나오는 가난한 자들을 향해 기름부음받은 자들로 의의 나무로 심겨진 그 나무를 얻게 하시고, 버티게 하시는구나. 그래서 평화도, 현정도, 절대 나올 생각이 없다.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면 절대로 응답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은 그 땅에 뿌리내렸고, 그 땅과 함께 숨쉬고, 함께 죽기를 간구하고 있다
참 험악한 세월을 보낸 야곱과 같은 것이다. 갔더니 요르단에서 마지막 돌아오는 날 병원 폭격 사건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온 아랍 땅이 애도하고 있었다. 요르단도 말이다. 요르단이 아칼의 땅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찌나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지 말이다. 커피숍도 많고, 카페도 그렇게 많고, 커피는 세계 최고로 맛있다. 마지막날 커피숍에서 달달한 케익을 안 팔길래, 오늘 폭격 사건이 있었기에 달달한 것을 팔지 않고, 온 요르단 땅에 학교도 닫고, 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이 사진을 보게 되었다.
요르단 카페에 이 지도가 있었다. 원래 이스라엘이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자리에 이름이 팔레스틴이라고 적혀있다. 온 아랍은 그냥 이스라엘을 없는 나라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밀어버려야 하는 나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마스의 약자짓에 대해서 기꺼이 굴복하고 약하다고,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하마스는 온 세계를 힘들게하고 있다. 자신의 두려움과 약함을 이용해서 온 세계를 두렵게하고 있고, 또 자국의 민족 또한 극빈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 약자, 정말 열등한 우리의 에고는 참 나쁘다. 이용해먹으려고 한다. 나의 부당한 권리, 누리지 못하는 권리로 저 사람을 이용해먹고 싶다. 나도, 강자도 이용해먹고, 가장 나쁜 것은 우리의 아이들, 민간인들을 이용해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강자와 약자의 문제가 아니라, 순식간에 이용해먹는 약자는 짐승,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런 분열과 이런 갈라짐 속에 우리는 뿌리내린 그런 한 사람, 그런 야곱과 같은 사람을 얻기 원하신다. 우리 하나님의 의도는, 그런 생각을 안 하시는가?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종류의 고통을 줄 수 있을까? 아기들이 잡혀서 죽고, 여자들이 강간당하고, 아이들이 학살당하는 어떤 이런 고통 속에서 신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의 의도는 있다. 여전히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그 절박함으로 하나님을 부르짖는 그 한 사람, 한 야곱, 한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얻기 원하신다
다 알다시피 야곱을 거꾸로 하면 바카아, 갈라지다라는 뜻이다. 갈라졌을 때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갈라졌을 때, 너와 내가 갈라졌을 때, 원수같은 저 인간과 내가 갈라졌을 때 어떻게 우리는 서 있어야하고, 어떻게 우리는 버텨야 하는가? 사탄이 여자의 후손을 공격할 때, 에케브, 야곱을 공격한다. 그 이야기는 이 바카의 원리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너랑 나랑 이제 갈라졌구나. 너랑 나랑은 이제 화해할 길이 없구나. 너랑 나랑은 정말 안되는구나. 그러나 이 바카의 중앙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여러분이 되고 싶지 않으신가? 이것이 갈라진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이스라엘 전 땅은 이 바카로,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다
야곱이란 이 세상에 있는 현상은 바카의 원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결국 하나였기에 갈라져나온 것이구나. 우리는 이 바카의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출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동풍이 밤새도록 밀려온다. 케뎀의 바람, 케뎀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팔레스타인이 원래 하나였다는 바람을 불게할 그 자이다. 여기서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신다. 바다가 갈라진다는 표현이 아니라, 물이 갈라진다는 표현이 있다. 바이크우 하마임이다. 바카 하마임이다. 토라에서 물은 비나이고 토라 자체이다.
잠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사망의 그물에 우리는 갇혀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떻게 나와야 할지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하신다.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해답은 물이 갈라져야 한다. 이 토라의 물이 갈라져야한다. 물이 갈라졌다는 역사의 처음은 창세기에서 주님이 윗물과 아랫물을 바카하셨다고 되어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세계가 존재해야한다고 이야기하신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 존재해야한다고 이야기하신다
보혜가 정말 놀라운 말을 했다. 샤밭 때,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을 위해서 항상 쓰임받는 민족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했다. 바카의 원리를 아는 야곱인 것이다. 두 세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여기에 있다
출14: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오늘 여러분의 손이 바다 위로 향하여지길 축복한다.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해야한다. 물을 가르고 이제 하나였던 그들이, 원래 하나였다는 케뎀의 동풍을 불게함으로 물을 다시 솟게 해야한다. 이런 계시를 가진 야곱이 출현해야만 한다. 이스라엘에 뿌리내린 평화의 가정, 요르단에 뿌리내린 임재 선교사님의 가정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시고, 보혜, 영인, 말씀을 들어보니 10년 전에 이스라엘에 두 형제 자매가 갔을 때 기름부으셨다고 하더라. 은혜와 반석, 보혜를 위해서 아버지께서 아랍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셨다고 한다. 언젠가는 갈 것이다.
제가 이스라엘을 떠날 때, 베이트 에하드 식구들이 정말 비장한 눈물을 흘리면서 같이 기도하면서 했던 말이 있었다. 이것의 해결책이 과연 존재할까? 절대 존재할 수 없을거야. 그러나 우리가 이 몸뚱아리가 나라고 생각하고, 지금 사는 이 세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절대 화해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있지 않니? 그러면서 다윗이와 다미를 봤다
다미, 이름 자체가 너무 쎄다. 나의 피란 뜻이다. 우리는 피만 조금 봐도 쓰러지는데, 이름 자체에 그 데스티니를 가지고 있다. 가장 강한 자로 일어서서, 하마스와 사랑하고, 하마스에게 먹힘당할 수 있는 강한 자, 그렇게 우리는 일어날 것이다. 다음 세대와 함께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몇십년 전만 해도 흑인과 백인이 하나된다? 흑인이 대통령이 된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꿈꿀 수 있다. 독사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와 함께 노는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이것이 진짜 풍요로움이며 진짜 강한 모습이다
사41:18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이것이 가장 강한 하나님의 역사이다. 좌우, 아랍과 이스라엘이 다른 것을 발견하셨는가? 그러니 이 사진이 다르게 보이더라. 골짜기를 지나가니까 다르게 보인다. 뭔가 아는구나. 지도 너머의 원리가 보이시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내가 굳이 이스라엘을 쓰지 않아도,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을 써도, 우리가 하나였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지도가 또 있을까? 이 지도를 다시 보면서 너무 마음이 벅차더라. 물이 갈라지는 역사를 만들고, 여러분이 이스라엘, 야곱의 후손으로 서게 된다면, 하나님이 물이 갈라지는 현상들을 보여주실 때, 우리가 가는 곳마다 케뎀의 동풍이 불어오고, 하나였다는 사실이 불어올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손양원 목사님이 가장 강한 사람으로서, 요새 말로는 하마스와 결혼한 것이다. 하마스를 아들삼은 것이다. 이런 진정한 강함의 사랑들, 여러분이 그런 강함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아랍어와 히브리어와 영어, 한국어를 같이 섞어서 올려드리고 싶다. 아랍어는 히브리 민족을 죽이려는 원수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아들 삼고, 며느리 삼고, 먹고, 먹혀야 할 사랑의 언어임을 기억하면서 주님 앞에 올려드리도록 하겠다.
우리를 위해 바카되신, 친히 바카가 되신 그분 앞에 그분의 후손으로 우리 모두 다 서기를 기도한다.
== 모든 영광과 존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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