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5]친구들의 애경사 경조금 “비상”
주말에 1박2일 서울을 다녀왔다. 토욜 오후 2시30분, 오후 6시30분 고교동창 친구의 아들과 딸의 결혼식이다. 문제는 인천 송도와 서울 청담동. 그 편리한 지하철 맵으로 대충 계산해도 환승 2, 3회에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오 마이 갓! 하지만, 안갈 수는 없는 자리. 왕복 4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다보니 만만찮고 질리기까지 한다. 지하철, 대중교통처럼 편리한 것이 따로 없건만 이것도 못할 노릇. 더구나 호적이 2년 늦게 되어 ‘지공족(만65세이상 지하철요금 무료)’도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축하금은 어떠한가? 정년퇴직한 이후 시골생활 중 가장 곤혹스런 일이 친구들과 지인들의 경조사 소식이다. 두 아들 혼사와 어머니 별세때 축의금과 조의금을 받지 안했대도 해야 할 판이고, 받아먹은 처지에서는 ‘미풍양속 품앗이’가 아니던가. 10-11월 결혼식만 7건. 최소 10만원, 모두 70만원이 아닌가. 국민연금 180만원을 받는 친구들이 별로 없으니, 그나마 나의 처지는 다른 친구들보다 나은 셈이다. 매달 25일에 아내에게 그중 100만원을 자동이체하니 ‘나의 몫’은 80만원. 이것이 나의 한 달 용돈인 것을. 쌀농사 지어봤자 소득은 별무別無.
10여년 전에 9살 위 선배가 “후배들이 집으로 찾아오거나 전화가 올까봐 겁난다”고 말한 것이 이제야 실감난다. 연락이 오면 하다못해 삼겹살에 쐬주는 사줘야 할 터인데, 수입이 없는 백수白手 처지인지라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 아파트 벽돌을 하나라도 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허나, 그보다 앞서 숱한 경조사慶弔事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수도권에 꼴랑 내 명의의 아파트 한 채 있으니 매달 납입해야 하는 의료보험비 26만여원은 또 어떤가? 농촌거주 그리고 직영농이므로 최대 50% 할인한 월 13만여원이 다행이라고 치부하지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의료보험비 때문에라도 친구들이 너도나도 ‘제2의 잡JOB’을 가진다고 한다(월평균 35000원 부담). 나도 군청의 기간제 일이라도 찾아봐야 할 것같다.
7학년이 가까워오니, 사실 친구들을 연례행사인 신년하례식 아니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주 친한 친구들이야 정례모임 등으로 우의를 다지겠지만, 서울에 살지 않는 나는 이런 친구들의 경조사 때가 아니면 친구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게 흔치 않다. 보통 30-40여명이 얼굴을 비치는데, 이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어제의 기록은 친구의 부인인 형수 포함 45명, 혼주의 인덕이 돋보였다). 인천친구의 딸은 8년전 내가 주례를 섰다. 아들 둘 낳고 잘 살고 있다니 보기에 좋아, 할아버지가 배춧잎 한 장씩을 쥐어줬다. 흐흐. 혼주를 가운데 두고 찍는 친구들의 인증샷이 반가운 까닭이다. 친손주든 외손주든 유치원 등하원 시키느라 꼼짝 하지 못한다는 친구도 어렵게 시간을 냈다. 취미생활에 쏙 빠진 친구들도 이날만큼은 참석하여 수인사 나누기에 바쁘다. “가을걷이는 끝났을 테니 조금 시간이 있겠구나” 친구들이 다정하게 묻는 안부인사도 고맙다. 아직 아들딸을 에우지(결혼시키지) 못한 친구들의 깊어가는 한숨소리도 들린다. 치명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친구들의 근황도 듣는다.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現役친구는 은근히 뻐기는 것도 같다. 어쩌다가 졸업 47년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제법 있다. 어쨌거나 다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같아 좋다. 뭐니뭐니해도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가 ‘쵝오’인 듯하다. 초교, 중학교, 대학교 친구들도 있건만, 질풍노도시대, 10대 후반을 3년 동안 같이 겪은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 야, 야 하는 말이 편해 좋다. 금세 찢어지는 것이 아쉬워 식사 후 인근 커피샵을 찾아 못다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하지만, 세월이 유수라더니 달구름만큼은 쏜살같다. 두 달이 한 장으로 기록된 달력이 달랑 한 장이다. 벌써 2024년 달력이 나왔다. 새해 첫날 어쩌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일모레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이렇게 빨리 가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언제 가도 갈 것이지만, 아프지 않아야 할 일이다. 자기들 살기도 벅차고 힘들고 바쁜데, 부모랍시고 늘 골골하여 자식들에게 민폐만큼은 끼치지 않아야 할 터인데. 그것이 걱정이다. 그렇다고 노후자금 준비나 돼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걱정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니, 그런저런 걱정 붙들어매고 그저 맘 편하게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상책일까?
아침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인천에서 서울까지 친구 두 명의 혼사에 참석하고, 아내의 집으로 쓸쓸히 귀가하며 중얼거리는 나의 혼잣말이다. 자문自問, 스스로 묻는 말에, 스스로 답하는 자답自答의 말이 마땅치 않다. 그것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