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캐런 앨리엇 하우스 지음)라는 책을 읽다가 알 힐랄 구단주 이야기가 나와서 공유하고자 옮겨봅니다. 누가 뭐래도 지난 세기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팀 중에 하나이니 관심이 가더군요.
(조금 깁니다.)
"서둘러서 미안합니다.” 압둘라 왕의 조카인 압둘라 반 무사드 왕자가 허둥지둥 서재에서 현관으로 나를 배웅하며 양해를 구했다. "제가 오늘은 좀 일찍 끝내야만 합니다. 축구의 날이라서요.” 그러더니 손님 접대 가미훔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덧붙였다. “괜찮으면 밤 10 시에 다시 와주십시오.”
보통 사우디인이 말하는 축구는 국가 대항전으로서의 축구다. 사우디 국가 대표팀의 경기가 있을 때만 사우디인들은 소리치고 기쁨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압둘라 왕자가 말하는 축구는 왕자의 개인적인 열망인 미식축구를 뜻한다. 책상 뒤에는 왕자가 열광하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사인이 담긴 축구공과 헬멧이 놓여 있다. 미식축구 시즌이면 매주 일요일 친구들 수십 명을 리야드 저택으로 초대해 지하실에서 네 대의 초대형 TV 스크린으로 미식축구 시합 생중계를 함께 보곤 한다. 미국과 사우디 간 시차 때문에, 이 모임은 밤 10시경부터 월요일 이른 아침까지 이어진다. 왕자에게 미식축구는 오락의 일환이지만, 경기를 통해 자국 사회의 무사안일주의 에 대한 교훈을 얻기도 한다.
“미국에서 ‘시도했다'는 찬사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도보다 실패에 더 신경을 씁니다. 사우디 인은 위험을 감수하려 들지 않아요. 실패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성취란 없습니다”
왕자는 위험을 무릅썼지만 실패를 맛봤다. 그는 사우디 최고의 축구팀인 ‘알힐랄'을 전면 개편하여, 수익성이 좋은 명문 구단으로 만들 려는 꿈이 있었다. 이를 통해 중동 전역에서 종교 지하디스트가 아닌 사우디의 다른 수츨픔으로서 찬사를 받고자 했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축구는 사우디의 유일한 오락거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최고의 리그 를 보유하고 거 대한 수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 아랍권 청년들 에게 다가가야 해요.” 왕자는 알힐랄의 대표로 취임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성공한 미국 구단주의 현대식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차용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독점 연고권을 소유하고 있는 왕족 친척들은 그들의 권리를 조금도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왕자는 좌절하고 체념했다. 대신 판타지 풋볼을 즐기고 미식축구 강팀들의 경기 관람을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변화를 모색하는 수많은 다른 사뮤디 인처럼, 왕자는 국가의 미래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또한 왕족이 아닌 일반인들처럼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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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사랑하는 왕자
압둘라 왕자는 열렬한 축구 팬으로, 초대 국왕의 손자들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가족에게 일어난 두 번의 비극 때문에 왕자는 자립할 수밖에 없었다. 1965년 왕자가 태어났을 당시, 삼촌이었던 파이살 국왕은 욍국에 텔레비전을 보급하려고 했다. 형 칼리드는 이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얄궂게도 오늘날 압둘라 왕자와 친구들은 이 최첨단 혁신을 통해 축구를 즐기고 있다.
십 년 후, 전례 없는 국왕 시해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또 다른 형인 파이살이 파이살 국왕을 암살한 것이다. 암살 원인은 국왕의 해외여행 금지에 대한 분노, 혹은 형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추정된다. 파이살 은 시찰 나온 고위 관료와 국왕 사무실을 방문했다. 국왕이 그를 맞이하러 나오자, 작은 권총으로 숙부를 세 번이나 쏘았다. 순식간에 체포된 파이살은 1만 군중 앞에 세워졌다. 두 아들을 잃고 나자, 아버자인 무사드 왕자는 은둔 생활을 했다. 암둘라 왕자는 살아남은 아들 중 첫째로서, 왕가 의회에서 가족을 대표했다. 또한 압둘라 왕 서거 시, 왕국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중요한 위원회에 참석할 것이다.
왕자는 현재 40대 중반으로, 리야드 교외에 위치한 사유지에서촌 용하게 살고 있다. 벽으로 둘러싸인 사유지는 잘 관리 되어 있으며, 황량한사막 언덕 위에는 진흙색의 저택이 세워져 있다. 저택은 크지만 호화롭지는 않고 남부 캘리포니아 부호의 저택과 비슷하다. 외국 노동자들이 바쁘게 관리하는 화단에는 화려한 색채가 번져 나와, 주위를 에워싼 집과 언덕의 단조로운 갈색빛이 사뭇 대조를 이룬다.
왕자는 아버지로부터 자금을 융통할 수 없었기에, 1991년 은행 융자를 받아 재활용 사업을 시작했다 왕자의 사우디 제지 그룹은 정부에 서 폐지를 받아 재활용하여 되판다. 10년이 지나고 사업이 견실해지자 왕자는 싫증을 느끼고, 그의 진짜 열정이 향해 있는 축구로 눈을 돌렸다. 정부가 알힐랄을 사우디 최고의 축구 명문으로 만들려던 왕자의 계획을 수포로 만들고 난 후, 왕자는 미식축구를 시청하며 미식축구팀 경영을 꿈꾸고 있다. 이 특별한 일요일 저녁, 왕자와 친구들은 4개의 커다란 평면 텔레비전이 달린 벽을 마주한다. 두 개의 화면에는 사우디 리그 축구 경기가, 나머지 2개에는 해외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동시 에 이 현대적인 사우디 왕자는 친구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컴퓨터를 올려놓고 판타지 풋볼을 한다. 친구들은 소파에 널부러져 맥주를 마시며 TV나 보는 부류와는 다르다. 대부분 삼십 대 중반이며. 맨머리에 사우디 전통 토브를 걸친 상태로 콜라를 홀짝일 뿐이다. 하인들이 음식과 음료를 내오면, 스스로 챙겨서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왕자 또한 맨 머리 에 운동복을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알 사우드 왕자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왕자는 대중 앞에 나서길 저어하는 왕족이지만, 독특한 야망을 새로이 품고 있다. 바로 미국과 사우디의 스포츠를 비교해 책으로 쓰는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스포츠가 국가 성격에 미치는 영향과 국가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설명하고자 한다. 왕자는 자신이 내놓은 주요 차이점 대부분에서 사우디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왕자가 주장하길, 미국 스포츠 선수들은 실패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국 선수들은 상대팀이 우세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요. 그런데 우리는 핑계를 대거나 팀이 통제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해도 비난하죠. 불공정한 심판처럼 말입니다." 또한 미국 선수들이 고된 훈련을 통해 기량을 향 상시켜서 팀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사우디 사람들은 힘든 일은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해요. 그러니 연습도 노력도 열심히 하는 법이 없죠.” 왕자는 아직 책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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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간되면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