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써 본 성적표 가정통신문
여름방학을 맞이하면서 학생들의 성적표에 ‘선생님이 가정으로 보내는 글’을 쓰는 칸에 어떻게 쓸까 고민을 했다. 1학기 동안 참으로 행사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꿈을 키우며 열심히 공부했던 아이들에게 어떤 글을 보내야 하는가. 대개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여 적고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 요구되는 내용을 적기도 한다.
그런데 남들과 같이 평범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색다른 문구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동 특성을 적고 직설적인 언어를 살짝 비유적으로 돌려 보았다. 많이 비유적으로 돌리기도 어렵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읽기 힘들 것이기에 조금씩만 바꾼 것이다.
성적표는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의 학습내용 결과를 받는 것이지만 부모들은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떤 요구가 있는지가 중요한 관심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랫 동안 보관하면서 추억이 되기도 하기에 보다 색다르게 써서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는 / 예절이 바르고 /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는 아이 // 성적이 우수하고 / 늘 자기 관리를 잘하나 / 학원공부에 힘들어 하는 아이 // 학생회 임원으로 /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 외교관의 꿈을 키우기 위해 /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 방학 동안 / 휴식과 학습을 적절히 하여 / 2학기에는 보다 발전하는 / 모습을 기대하는 아이
이 아이는 전교 1등인데도 늘 공부만 한다. 그래서 1등이겠지만 학교 공부도 모자라 학원 공부에 매진한다. 쉬는 시간은 물론 담임 선생님 조회 종례 시간에도 쉴새없이 문제를 풀고 책을 여기저기 뒤져가며 공부를 한다. 중학생이 마치 고 3이나 취업 준비생 같이 공부를 한다. 학급 임원도 하고 학생회 임원도 하며 늘 적극적으로 열심히 생활한다. 이런 학생들을 보면 좀 쉬어가면서 공부하라고 하고 싶다.
○○이는 / 언제나 밝고 환한 우리반에서 / 조용한 꿈을 키우는 아이 // 준법성이 강해 /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 절대 안 하는 아이 // 인사를 90도로 / 전교에서 1등하는 아이 // 어려운 환경 속에서 / 할머니를 잘 챙기는 아이 // 점심을 잘 먹지 않아 / 선생님의 걱정과 근심을 키우는 아이 // 잘 먹고 열심히 공부해서 / 환경을 극복하고 꿈 이루길 바라는 아이
이 아이는 부모님은 안 계시고 할머니와 사는 기초생활보호 학생이다. 도시락을 쌀 수 없는 형편이라 급식비 지원을 받아 급식을 하는데 이 아이는 급식을 먹지 않고 굶는다. 먹으라고 잘 타일러도 먹지 않고 피아노만 열심히 친다. 할머니 말씀을 잘 듣고 할머니를 챙기는 모습이 예쁘고 착하다. 인사를 90도로 해서 언제나 예절이 묻어나는 아이다.
○○이는 / 착하고 예의가 바른 아이 //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 베시시 웃는 모습인 아이 // 과학에 관심이 많아 / 도전하고 상을 타는 아이 // 먼 산을 오르듯 / 부족한 성적 끌어올리고 // 퍼즐 조각 맞추듯 / 자신의 꿈을 찾는 아이 //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하는 / 조용한 불도저 같은 아이
이 아이는 늘 조용해서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학생이다. 말도 잘 안하고 부끄럼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아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가끔 교무실에서 과학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몇몇 아이와 교육청 과학대회에 나가 상도 타온다. 조용하지만 자신이 할 일을 찾아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조각 퍼즐 맞추는 것이 비유를 했고 조용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불도저에 비유했다.
이렇게 36명의 학생을 다 쓰는데 주말을 포함하여 3일이 걸렸다. 학기말이라 할 일도 많고 집에서는 가족들과도 할 일이 많은데 마음 굳게 먹고 써 보았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성적표를 받고 베시시 웃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먼저 마음 뿌듯하다.
첫댓글 존경합니다. 쌤. ^0^
감사합니다. 풍림화산님...
진짜 멋지십니다*^^*
대단하세요.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아... 정말 대단하세요 정말 아이들이 행복해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