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범님의 칼을 일본 선수들이 무서워하고 자기네들끼리 사범님의
시합 비디오를 교본으로 삼고 연구하는 이유중에 가장 큰 이유가.
(일본 칼과 틀린점이라고 볼수도 있죠)
첫째로 강한 담력을 바탕으로하는 공격성과.
(일본인들이 대체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서. 혹은 기회를 기다려서 공격을
하는것과는 조금 의미가 틀린것이 자기가 아무리 확실한 겨눔으로
상대를 겨눈다고 해도 김사범님의 몸이 뜨면. 그 위압감에 겨눔 자체가
무너진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일본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둘째로 공격 격자 하나하나가 밑에 어느분이 얘기한 우리나라 검도스타일의
문제라고 하신 흩날리는 칼. 격자거리가 아닌데도 막 치는 소모성 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타 하나하나가 일본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치는 회심의 한방보다 더
위력이 있는 칼이 여러개 날라간다고 보시면 이해가 가실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이번 연수원 정모때 김사범님께서 시합을 하시는걸 보신분들은
느끼셨겠지요.
셋째로 김사범님의 타고난 유연성과 힘을 바탕으로 한 공격본능이 남달라서
공격 각도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넓습니다.
전혀 맞을 각도나 기회가 아닌데도 격자부위에 맞추려고 툭툭 건드리는 격자가
아닌 강한 격자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검도 7단에 40의 나이에 아직도 검도스타일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발전적으로요.
이게 가장 무섭다고 볼수 있겠죠.
교토 세계대회때인가? 언젠가 현재 일본에서 검도 명인으로 추대받는 이와호리 선수를
전번대회때도 2대0으로 이기고. 두번째 대회에서(단체전)도 2대0으로 이기고 나서
이와호리 선수가 김사범님에게 와서 그당시에 자기가 쓰던 호구와 죽도 일체를
다 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이와호리의 행동은 일본인들의 정서로 보았을때는 자기의 패배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자기 목숨을 바쳤다는것과 똑같은 의미이지요.
김사범님의 칼에는 일본얘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요소때문에 그 자존심 강한 놈들이
김경남 이라면 "경끼"를 일으키는 한가지 요인이 되는것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나! 검도좀 한다!"고 자부하는 유명한 선수나 사범들인 미야자키, 나베야마
엔도, 이와사 같은 선수들도 일본에 김경남사범님이 "떳다!" 그러면 우리나라말로
"형님" 아니면 지네말로 "센세이"라고 그러면서 비위 맞추느라고 설설 깁니다.
미야자키 마사히로라는 일본 검도의 영웅도 88년 서울 국제 대회때 우리나라 선수들의 시합
스타일을 보고 그것을 벤치마킹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검도스타일을 이루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증거를 대라고 따지지는 마시길....)
일본에서 현재 대한민국 검도라고 하면 박용천 사범님과 김경남 사범님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걔네들이 대하는 행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는 비굴해 보일정도로
모십니다.
그런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단지 세계대회때 몇번 자국선수를 이겼다고 그럴까요?
제가 봤을때는 (일본인들도 그런 얘길 한다고 합니다마는..) 걔네들이 하지못하는 검도를
위의 두분이 하신다는 뜻도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검도에 대한 개인적인 사견입니다만.
어떨때는 체계적 측면으로 봐도.. 기술적 측면으로 보아도 선진화 되어있는 일본검도를
바라보는 시선속에 가지지 않아도 좋을 열등감을 가지고 보는... 경우가 생길까봐
걱정이 됩니다.
일본검도스타일이 좋다고 무조건적으로 그것을 따르고 흉내를 내면서 "한국검도는 이게 문제야!!"
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폄하하는것 보다는 일본놈들이 하는 검도의 좋은 점을 나름대로 우리나라
검도의 장점에 융화시켜.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끌고나가...
나중에는 실력은 물론 검도 철학에 대해서도 일본을 따라잡을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도에 대해
생각하고 수련을 하는것은 어떨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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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검도의 자존심, 김경남(출처:mooto.com)
남세우 기자 (2002/10/28)/추천수:0
85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대 사건이 터졌다. 파리에서 개최된 제 6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서 한국검사로는 최초로 세계대회 개인전 3위의 승전보가 날라 왔다. 한국검도 37년만의 첫 세계대회 입상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했던 이 사건의 주인공 '김경남'현재 부천시 검도팀과 국가대표 코치를 겸임해 맡고 있는 그를 부천시청 검도장에서 만났다
한국최고의 검사(劍士), 일본에 강한 검사(劍士), 머리치기의 달인, 검도인 김경남을 이야기 할 때 항상 그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85년 당시 세계대회 입상을 통해 한국검도계에서 최고의 검사로 이름을 떨치며 검도인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었던 그는 당시 자신의 시합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당시상황을 회고했다.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내가 어떻게 상대를 방어하고 공격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만큼 긴장했었다는 이야기지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순간 순간에 충실했었던 것 말고는..."
"특별한 수련법은 없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어떻게 하면 검도를 잘할 수 있는 질문들을 많이 받지만,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꾸준히 하는 겁니다. 몇 일을 쉬고 그 부족한 운동량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것보다, 꾸준히 2시간 정도씩 죽도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에 죽도의 감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것이죠"
그는 특히 일본선수킬러라는 별칭이 붙어 다닌다. 유독 일본선수들과의 경기에서 강한 면 모를 보였던 그에게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를 묻자 그 역시 별 것 없다고 웃어넘기며, 한국선수들의 실력이 이제는 일본선수들 못지 않고, 일부 한국선수의 실력은 세계대회우승도 가능할 만큼 우수하다며 대표팀 코치로서의 자신감을 표현했다.
"시합에 있어서 일본선수와 한국선수들과의 실력 차는 이제 많이 좁혀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경험과 자신감입니다. 저보고 특별히 일본선수들에 강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일본선수들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한국선수들은 세계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합니다. 소위 말해 주눅이 든다고 할까요? 그것을 극복해야합니다. 아직까지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점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곧 한국에서도 일본의 아성을 깨고 세계대회에 우승을 하는 선수가 나올겁니다."
광명 중.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검도를 시작할 때만해도 운동이라곤 소질이 별로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2가지 재능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순발력과 점프력이었다. 다른 종목의 운동에는 평범했던 그가 왕복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등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재능이 있었다. 그 순발력과 점프력 역시 타고난 것도 있었지만, 그 선천성에 감내 해내기 힘든 수련들이 더해져 오늘의 검도의 달인 김경남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저에게 어떤 자세나 거리, 각도에서도 시원하게 들어가는 제 머리치기 기술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던지곤 합니다. 머리 치기를 잘 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기술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근본적인 것은 기초 체력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시합에서 저의 머리치기의 기술만을 보시지, 그 기술을 위해 쓰러질 때까지 수도 없이 반복해서 수련해왔던 서젼트 점프와 멀리뛰기 수련을 보시지 못할 겁니다. 상대가 크던 작던, 거리가 멀던, 좁던 상대를 가격하기 위해 필요한 순간적인 움직임을 위한 기초체력과 순발력을 길러야 합니다."
얼마 전에 한국 최고의 실업팀 부천시청 코치를 맡게 된 그는 사실상 부천시청 검도부의 모든 선수들의 지도와 검도부 산림을 꾸려나가고 있는 실질적인 감독이다. 부천시 코치를 맡은 뒤 여러 가지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꾸준히 부천시를 설득해 국내 최고의 실업팀 선수들에 걸 맞는 멋진 검도장을 건설을 위한 부지 확보 및 예산을 약속 받았다. 그의 선수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경영능력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정말 갑작스럽게 부천시 코치가 되고 난 후에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선수들 하나하나 챙기고, 같이 호흡하며 운동하고, 또 시와의 여러 가지 안들을 조율하고 하는 역할들을 동시에 해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제 부원들과 대화를 자주 합니다. 문제점들을 대부분 같이 모여 활발한 토론 등을 통해 해결하죠. 서로 어려운 부분과 힘든 부분을 서로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해결점을 찾아나가죠" 검도에서 사범과 제자 관계에 있어 엄격한 수직적 관계는 무도의 예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죠. 저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해내고 싶었습니다."
부천시청내의 막내인 이진기(25)선수는 김경남 사범에 대해 운동을 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엄격하지만, 운동이 끝나면 친형처럼 부드럽고 따뜻하시다며 수직적 리더쉽과 수평적 리더쉽을 동시에 갖춘 김사범의 리더쉽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국가대표와 부천시청 선수들뿐 아니라 온라인 검도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에게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검도를 지도하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듣고 전국에서 부천시청 검도장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도 마다하지 않고 지도한다.
"저는 그냥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제가 검도복을 입고 있는 한 지금 나의 일을 열심히 할 뿐 입니다."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선수에서 지도자로 변신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검사 김경남 사범에게 내년 한국선수의 세계검도대회 우승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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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라이벌(김경남 vs 박용천)
박용천 사범과 김경남 사범은 6월 1일 전국 7단 선수권대회 예선에서 만난 데 이어, 6월 19일에 전국 실업 검도대회 전날 합동연무에 참가해 다시 한 번 칼을 맞댔다. 이 두 번의 대련을 통해 두 사람이 그동안 서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들어 보았다.
지난달에는 라이벌로서 박용천 사범과 김경남 사범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본인들은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들어봄으로써 라이벌로 손색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짚어보았다.
이겨야만 하는 상대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칼을 더욱 견고히 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면서 두 사람은 지난 세월을 살아왔다. 이제 그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과거에 그들이 지녔던 칼과 변화된 칼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서로의 칼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국7단선수권대회에서
6월 1일. 박용천 사범과 김경남 사범은 제2회 회장기 전국7단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두 사람은 A조 10번째 경기에서 만났다. 박용천 사범한테는 첫 경기였고, 김경남 사범한테는 두 번째 경기였다. 경기 결과는 2:0이었다. 김경남 사범이 머리치기 두 판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두 사람한테는 이미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시합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2:0이라는 점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점수를 따기 위해 칼을 내미는 것 역시 의미가 없다. 누가 허점을 더 빨리 간파해, 깨끗한 한판을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한순간만 놓쳐도 언제든 승패가 뒤바뀔 수 있다.
특히 김경남 사범의 칼의 변화가 돋보였다. 김 사범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산처럼 묵직한 자세로 상대를 위압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몸을 흔들면서 상대를 쉴새없이 몰아붙이는 김 사범 특유의 스타일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사범은 진득하게 상대의 허점을 노리면서도 상대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중단세를 시종 유지했다.
박용천 사범과 김경남 사범은 경기 직후 호면을 벗고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박 사범이 김 사범의 변화를 크게 칭찬했다. 박 사범은 김 사범이 그를 이겼다는 것에 기분 나쁠 게 뭐 있느냐는 듯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되려 김 사범의 칼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듯했다. 얼마나 김경남 사범을 염려하고 생각해주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김 사범을 상대로 깨끗한 한판을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기쁨’이었다.
“사실 지난달에 일본 북해도(북해도검도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 갔을 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박 사범은 김 사범 특유의 몸을 흔드는 스타일이 일본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했었다고 한다. 연습경기를 하는 데 김 사범이 일본인과 첫 경기에 나섰고, 박 사범이 세 번째로 경기를 하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김 사범의 스타일을 걱정했다고 한다. 아무리 경기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일본인들조차 인정하는 김 사범의 검도실력이라고 하지만 몸을 흔들며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뜨리는 스타일이 그때까지 박 사범에게는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바른 자세’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른 자세’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한국검도를 얕잡아보게 될 것 같았다.
경기에 나선 김 사범은 박 사범의 걱정을 한순간에 잠재웠다. 김 사범의 칼이 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상대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멋지고 바른 자세로 일본 검도인을 압도해버렸기 때문이다.
박 사범은 김 사범의 변화를 제2회 전국7단대회에 와서 다시 한 번 실감하고 그점을 칭찬했던 것이다.
정읍에서의 합동연무
두 사람이 다시 칼을 맞댄 건 제6회 실업검도대회 전날 합동연무 때였다. 제6회 실업검도대회는 정읍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박용천 사범은 정읍시청 검도실업팀의 감독을 맡고 있어서 실업검도대회 준비로 바빴다. 그러나 김경남 사범이 호구를 착용하고 체육관 마룻바닥에 들어서자 박용천 사범은 기다렸다는 듯 김 사범에게 죽도를 겨누었다.
전국의 실업선수들이 멋지게 한판 어우러질 때 두 사람은 칼을 맞대고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졌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형(박용천 사범)은 정말 멋진 검도를 합니다.” 김경남 사범은 합동연무 직후 박 사범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습할 때나 경기할 때나 박 사범의 칼에는 변화가 없다. 일단 죽도를 들고 상대와 마주서면 박 사범은 진지해진다. 검도와 상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상대의 허점이 나기를 기다린다.
“형이 상대의 허점을 노린다고 해서 소극적으로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 사범은 박 사범과 칼을 맞대고 있을 때면 박 사범을 이기고 있든, 박 사범에게 지고 있든 간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공격 위주의 검도를 하지 않을 뿐이지 한 번 상대의 허점을 잡아 공격할 때는 대단한 공격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공격적 흐름에서 받아치는 스타일로 변화되었다”고 김 사범은 생각한다. 그래서 김 사범이 섣부른 공격을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김경남 사범은 “지든, 이기든 간에 겨루어 보기에 좋은 파트너가 있다”고 말한다. 그 좋은 파트너가 바로 박용천 사범이다. 박용천 사범 앞에서는 더욱 바른 자세로 검도를 해보려고 노력한다. 주위에서 왜 박 사범 앞에서 공격을 못하고 머뭇거리느냐, 그 화끈한 공격력은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일일이 다 말하지 않지만, 사실 박 사범과 칼을 맞대는 김 사범의 내면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형은 내가 좋아하고 배우고자 하는 게 많은 사람이다”, “형과 칼을 맞대고 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최대한 해보려고 노력한다.”
김 사범의 칼이 변화되는데 박 사범의 영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박학진 국가대표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많이 연구한다고는 하지만 김 사범 마음속의 칼은 언제나 박용천 사범의 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망중한(忙中閑)
실업검도대회 첫날 정읍 실내체육관에서 개인전 경기 진행이 점심식사 시간으로 인해 잠시 멈췄다. 실업검도대회에 참가한 부천시청팀을 이끄는 김경남 사범과 정읍시청팀의 감독이자 이번 대회의 진행을 맡은 박용천 사범은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내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야말로 망중한(忙中閑)이었다.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두 사람은 매운탕을 들며 빡빡한 일정에도 한가한 시간을 함께 했다. 책임자로서 선수단을 이끌고 검도대회에 나선 두 사람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을 텐데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칼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달에도 함께 일본 북해도에 다녀온 탓인지 두 사람은 무척이나 친밀해 보였다.
박용천 사범이 김경남 사범에게
“자세가 변화된 걸 보니 정말 가슴 뿌듯해.”
식사도중에 박 사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박 사범은 지난달 일본 북해도에서 일본 검도인들과의 연습경기나 얼마 전 있었던 전국7단선수권대회에서 김경남 사범이 보여준 칼에 대해 다시 한 번 칭찬했다. 오랜 세월 동안 라이벌로서, 때로는 친구로서, 때로는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키도록 자극을 주었던 존재로서 김경남 사범의 변화가 박 사범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듯했다.
“이제 쉴새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가려서 치는 법을 알게 된 듯해.” 박 사범은 시종 여유 있는 미소를 잃지 않고 김 사범의 변화를 설명해나갔다. 전에는 김 사범이 “상대를 압도하는 공격을 했지만, 지금은 쳐야 할 때와 안쳐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게 박 사범의 평가이다. 지난달 북해도에 갔을 때 김경남 사범이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하야시와 친선 경기를 했다고 한다. 김경남 사범은 하야시와 친선 경기를 하면서 하야시에 비해 손색없는 좋은 중단세를 선보여 일본의 8단 선생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박 사범은 이 변화에 대해 “김경남 본인이 정말 많이 생각하고 연구해서 고친 것”이라며, “김경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어느 누구보다 많은 경기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김경남 사범이기에 “스타일을 바꾸어도 경기력이 떨어지는 걸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박 사범은 오히려 김 사범의 경기력이 더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또한 박 사범은 그 많은 경기의 노하우를 후배 대표선수들에게 전수해주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도 이야기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라면서도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하는데, 배우려는 자세가 요즘 선수들에게 부족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김경남 사범이 박용천 사범에게
“사실은 85년부터 자세를 바꾸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김경남 사범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많이 고민해왔음을 털어놓았다. 그때는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자세를 변화시킨다는 게 내키지 않아 미루어왔다. 그래도 조금씩 고쳐나가려고 노력했는데, 그때마다 박 사범이 표본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의 칼에 대해 나는 압니다” 김경남 사범은 그 동안 아끼고 있던 말을 꺼냈다. 김 사범은 박 사범의 스타일이 “받아치는 칼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소극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사범은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박 사범의 칼은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칼이라고 말했다.
“형이 말했듯이 최고의 공격은 칼이 무조건 많이 나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김 사범은 “가만히 서 있는 사람 손목을 치는 ?痼? 초보나 하는 짓”이라고 한 박 사범이 전에 했던 말을 인용했다. 또한 그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는 그의 의견도 덧붙였다. 김 사범은 박 사범처럼 상대의 동작을 유발시켜 허점을 만들어 한판을 쳐내는 것이 진짜 고수의 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박 사범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른 자세로 상대를 압박하며 바늘 같은 손목치기를 한다. 게다가 김 사범이 느끼기에 나이가 들고 단이 올라갈수록 박 사범의 칼에 무게가 실려 함부로 공격할 수 없다.
전국 7단선수권대회에서 2:0으로 박 사범을 이긴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김 사범은 이야기한다. 언제든 그 점수는 뒤바뀌어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상대로 깨끗한 한판을 쳐낼 수 있는가이다. 이점에 대해 김 사범은 두 사람 모두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나온 식혜를 마시면서 박용천 사범이 김경남 사범에 대한 그의 바람을 들려주었다.
박 사범은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검도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큰 사명감을 가지고 더 바른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김 사범에게 조언했다. 아무리 잘해도 지적하자면, 흠을 잡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한 가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아직 존심(存心)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 사범은 김 사범이 스스로 스타일을 변화시키며 거듭났듯이 더욱 좋아진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제나 경기 후에 김 사범이 “형, 나 자세 어때?”하고 묻는다고 한다. 스스로 더 나은 검도를 하기 위한 이러한 김 사범의 노력은 박 사범 자신도 더욱 분발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박용천 사범과 김경남 사범. 두 사람은 과거에도 서로를 의식하며 기량 향상을 도모했던 라이벌이었고, 현재에도 더 나은 검도, 고단자에 걸맞는 칼을 만들어가기 위해 서로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라이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