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샤넬 결별 석달.."행복한 이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을 비롯해 롯데백화점 주요 점포 7곳에서 샤넬 화장품이 철수한 지 석달이 넘었다.
국내 최대의 백화점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간의 갈등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결별한 지 석달이 지난 후 양측은 모두 현재의 상황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잡화, 보석류에서는 여전히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상대측에 대해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매장 면적, 위치 변경안에 대한 이견으로 지난 1월 29일 롯데백화점 본점을 포함한 잠실점, 영등포점, 노원점, 부산점, 대구점, 광주점 등 7개 점포에서 샤넬 화장품이 철수했다.
4일 롯데백화점과 샤넬에 따르면 샤넬 화장품이 차지했던 롯데백화점 본점 매장에 국산 화장품 설화수 등이 입점한 이후 해당 매장의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샤넬 화장품이 있었던 롯데백화점 본점 매장에 설화수, 케빈어코인이 들어온 지난 2월 1일부터 4월 27일까지 해당 매장의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샤넬 화장품이 올렸던 매출액에 비해 178.9%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고 롯데백화점은 밝혔다.
다시 말해 샤넬 화장품이 빠져 나간 매장의 영업효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으로, 샤넬 화장품의 철수가 롯데백화점의 매출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엔화 강세를 타고 일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크게 늘면서 국내 백화점의 명품 매출 신장률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샤넬 화장품의 자리에 설화수를 배치한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게 롯데백화점의 주장이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본점 1층 화장품 매장의 전체 매출 신장률이 33.1% 수준인 점과 비교할 때도 샤넬 화장품 대신 설화수가 들어선 매장의 매출 신장률 178.9%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 롯데백화점은 샤넬 화장품이 철수한 7개 점포의 화장품 매출신장률이 23.5%(본점 33.1%)로, 전국 점포의 화장품 매출신장률 21.1%를 웃도는 점도 샤넬 화장품의 철수가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았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샤넬 측은 롯데백화점 7개 점포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전체 매출은 늘었으면 늘었지 감소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7개 롯데백화점에서 샤넬 화장품이 철수하면서 인근 다른 샤넬 화장품 매장으로 고객들이 몰리는 ’집중 효과’가 발생하는 등 기대이상의 성과를 얻었다고 샤넬 측은 강조했다.
샤넬은 그러나 매출실적 등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에 따라 롯데백화점 철수 이후의 매출 신장률 등의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롯데백화점 본점에 인접한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샤넬 화장품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샤넬 측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2월 1일부터 4월 27일까지 샤넬 화장품의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1%나 신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전체 화장품 매출 신장률 38%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롯데백화점 본점에 샤넬 화장품 매장이 없어지자 상당수 고객들이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샤넬 화장품 매장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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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화장품 매장이 롯데백화점에서 철수한 후, 경쟁 화장품 브랜드들의 매출이 치솟으며 '샤넬 철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샤넬 화장품은 지난 1월 29일, 매장 개편 문제를 두고 롯데백화점과 마찰을 빚은 후 롯데 본점·잠실점 등 주요 점포 7개 매장에서 철수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샤넬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1층 화장품 매장의 가장 '명당자리'로 규모가 115㎡(35평)에 이르렀다.
샤넬 철수 후 이곳엔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63㎡·19평), 헤라(26㎡·8평), 미국 색조 브랜드 캐빈어코인(26㎡·8평)이 입점, 지난 2월 13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이들 브랜드들은 한 달간 총 13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샤넬이 같은 면적에서 올리던 매출액보다 무려 3배가 많은 액수다.
가장 큰 '반사 이익'을 본 것은 '토종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설화수는 샤넬 철수 전인 지난 1월 매출 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15%였지만 매장 이동 후 지금까지의 매출 신장률이 33%로 훌쩍 뛰었다.
구(舊) 샤넬 매장 주변에 자리 잡은 랑콤과 디올 등 경쟁 브랜드도 샤넬 철수 후 전년동기 대비 각각 46%, 21%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롯데 본점 화장품 매장의 전체 매출도 2% 이상 늘었다. 최근 백화점 전체의 매출 신장세가 주춤한 데 비하면 고무적인 결과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화장품 업계의 다변화'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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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의 대가(代價)
샤넬, 한국서도 세계서도 매출 부진 '수모'
브랜드 자신감 너무 지나쳐 트렌드 변화 읽기에 소홀 다른 명품 업체로 고객 뺏겨
새 수요 창출 못한 것도 화근
샤넬이 수모를 겪고 있다. 지난 1월 29일 매출 부진을 이유로 롯데백화점 주요 7개 점포 화장품 매장에서 '퇴출'당했던 샤넬은 최근 의류, 핸드백 등 패션 용품을 판매하는 부티크 매출 역시 부진한 실정이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샤넬'도 전 세계적인 불황 속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샤넬 프랑스 본사의 '200명 감원(減員)'은 명품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세계 최고 소비자층만을 상대한다"는 샤넬의 자존심이 꺾인 것이다.
◆시장 속도보다 느린 '자존심'
국내에서 샤넬의 최고급 브랜드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샤넬 화장품 부문이 부진을 겪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본래 샤넬은 색조 화장품과 향수 부문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했다.
위기가 닥친 것은 2000년대 초반 국내 화장품 시장의 주력이 색조 제품에서 주름·미백관리 등 기능성 제품으로 넘어가면서. 설화수, 에스티로더 등 경쟁 브랜드들은 한방, 미백 제품 등 기능성 화장품 라인을 보강한 '맞춤형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끌었다. 하지만 샤넬은 '우리만의 전략'을 고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샤넬의 화장품 매출 구조는 색조가 60%, 향수가 30%, 나머지 피부 관련 제품이 10%를 차지한다"며 "물론 샤넬측이 최근 스킨케어 제품들을 보강하기는 했지만 시장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이로 인해 2002년까지 화장품 브랜드 중 매출액 1위를 유지해 왔던 롯데백화점 내 샤넬 판매순위는 지난 2005년 8위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5위로 올라섰지만, 1위 업체인 설화수의 매출액에는 절반도 못 미쳤다. 결국 지난 1월 매장 개편 당시 매장 자리 문제 등으로 마찰을 겪으며 매장 철수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샤넬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의류, 핸드백을 판매하는 샤넬 부티크 부문도 상황이 좋지 않다.
롯데백화점 본점 샤넬 부티크 매출은 루이비통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상황이다.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샤넬의 작년 연간 매출 성장률은 37%로, 루이비통(51%)에 뒤졌다. 올해 신세계백화점 월별 샤넬 부티크 성장률도 전체 명품 업체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매장의 평당 매출도 루이비통의 매출의 40%, 구찌의 58%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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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29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해 있는 샤넬 화장품 매장 관계자들이 롯데백화점과의 충돌로 매장을 철수하고 있는 모습. 이날 기자들이 취재에 나서자 샤넬 관계자들은“철수작업을 하지 않겠다”며 완강히 버티다 백화점 영업시간이 끝나고 한참 후에야 철수 작업을 진행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폐쇄적인 내부 구조, 지나친 '고급화 전략'이 화근
전문가들은 샤넬의 부진 원인을 '폐쇄적인 내부 구조'에서 찾는다. 한양대 홍성태 교수는 "샤넬은 정보를 극도로 제한, '신비주의 이미지' 브랜드 전략을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샤넬의 전략은 철저한 '고급화'에 치중해 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전문점 판매는 하지 않고 입점할 백화점도 엄격하게 제한한다. 업계 관계자는 "샤넬이 이러한 '오만함'에 빠져 본인들이 타깃으로 한다는 주요 고객들이 루이비통과 에르메스로 넘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명품 업체들은 현지화 전략으로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다양한 '엔트리 아이템(처음 명품을 사는 고객들이 고르는 비교적 저렴한 제품군)'을 만드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예를 들어 에르메스는 전 세계 운영 매뉴얼을 통일시키지 않고, 지역별로 재량권을 부여한다. 매장 쇼윈도도 전 세계적인 테마는 통일시키더라도 표현은 지역별로 독자적으로 하고 큰 규모의 행사는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반면 샤넬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한국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샤넬 제품을 찾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심지어 샤넬은 도쿄나 홍콩에는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면서, 서울은 제외하는 등 한국 시장을 차별하고 있다.
부진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말 샤넬 본사는 200명의 직원을 감원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의 가디언지는 "샤넬이 '불황 속에서도 우리의 매출은 끄떡없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샤넬마저 부진의 늪에 빠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고급화에 치중해 미래의 소비자를 키우지 않았던 게 화근이 됐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5개 수입 화장품 브랜드들이 업계에 절대적인 장악력을 보여온 데 비해, 최근 다양한 특색을 갖춘 브랜드들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그만큼 넓어진 것이라는 얘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