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헌속의 무궁화이야기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최초의 기록으로 언급되는 《산해경(山海經)》이 무궁화 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산해경》은 일정한 방위 개념에 입각한 각지역에 대한 조사 기록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는 지리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수록된 내용은 해당지역의 민속·종교·구전신화(口傳神話)등 원시적 세계 관을 반영하고 있기에 신화서적인 성격 또한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산해경》에 대한 해석은 얼마간의 지리서적인 성격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신화연구 방법들을 적용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통적으로《산해경》의 저자를 우(禹) 임금과 백익(伯益)이라 고 한다.
(퍼온이주: 요임금->순임금-> 우임금)
우(禹)임금이 위(位)에 있었던 것이 기원전 2183∼2175년의 9년 동안이므로 [동작빈(董作賓)의 연표학(年表學)에 의함]
《산해경》은 지금으로부터 4,200여 년 전 우리나라 상고의 단군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이러한《산해경》에 우리민족, 특히 무궁화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대목들이 들어 있다.
《산해경》의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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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國在其北衣冠帶劍食獸使二大虎在旁其人好讓不爭有薰華草朝生夕死
군자국재기북의관대검식수사이대호재방기인호양부쟁유훈화초조생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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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나라가 그 (해외동(海外東) 즉 한반도) 북방에 있는데, 그들은 의관을 정제히 하고 칼을 차며
짐승을 기르고, 큰 호랑이 두마리를 양 곁에 두고 부리며,
겸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싫어한다.
그 땅에는 훈화초(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 라 하였는데,
훈화초 (薰華草)의 주(注)를 보면
곽박(郭璞 276∼324)은 "어떤 판본에는 '근(菫)'으로 되어 있다" 했고,
학의행( 懿行 1757∼1825)은 "목근(木槿) 혹은 근(菫)은 일명 순(蕣)이라 고도 하는데 순(蕣)과 훈(薰)은 발음이 상통한다." 하였다.
또《예문유취(藝文類聚)》 권(卷)89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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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之國多木菫之華人民食之去瑯야三萬里
군자지국다목근지화인민식지거낭야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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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백성들이 그것을 먹는다. 낭야로부터 3만리 떨어진 곳이다. 라고 하였다.
《예문유취》는 당(唐)나라 구양순(歐陽詢)557∼641)등이 칙명을 받들어 편찬한 중국 유서(類書)의 하나로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의 간행본이 전한다
중국문헌에 드러난 무궁화
무궁화라는 꽃이름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중엽이후 우리가 만들어 쓰게 된 한국 한자어이다.
(퍼온이주: 우리 사서들이 거의 다 없어져서 그렇지
무궁화라는 이름이 고대로부터 이어왔을 가능성이 많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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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삼경중 '시경' 에)
有女同車顔如舜華
유녀동거안여순화
···<중략>···
有女同行顔如舜英
유녀동행안여순영
수레에 같이 탄 아가씨, 얼굴이 무궁화 꽃 같다...
함께 가는 아가씨 얼굴이 무궁화 꽃 같다 ...
순화·순영은<시경>전(傳)과 소(疏) 및 그밖의 서적의 목근(木槿), 곧 무궁화를 일컫는 것이다.
<시경>의 전(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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舜木槿也
순목근야
순목은 목근(무궁화)이다.
라고 되어 있고
또 소(疏)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陸機疏云舜一名木槿一名 一名 齊魯之間謂之玉蒸今朝生暮落是也
육기소운순일명목근일명츤일명단제노지간위지옥증금조생모락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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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육기 261∼303)의 소(疏)에 이르기를 순(舜)은 일명 목근·츤·단이고,
제나라와 노나라에서는 옥증이라 하는데, 지금의 조생모락은 곧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퍼온이주: 조생모락朝生暮落 -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진다...무궁화의 특징.)
위기록들에서만도 우리는 우리의 무궁화에 해당하는 중국의 화명(花名)이 순·순화· 순영·목근·츤( )·단( )·옥증(玉蒸)·조생모락(朝生暮落)등 임을 알게 된다.
일본(日本)문헌의 고증
일본에는 많은 종류의 무궁화가 분포하고 있다.
(퍼온이주: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등에서 계속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문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무궁화도 가지고 가서 신성한 꽃으로 숭상했던 것으로 보임.)
일본의 대표적인 무궁화 육종가인 다치바나(立花吉茂)가 지은《무쿠게(むくげ)》라는 책이 있는데,
무궁화의 유래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무쿠게(ムクゲ:목근, 무궁화)는 옛날부터 정원수로서 친숙해 왔다.
꽃이름인 무쿠게 (ムクゲ)는 한자명(漢字名)의 木槿(목근)이 사투리로 발음되어 모쿠킨( モクキン), 모쿠키(モクキ), 모쿠게(モキゲ), 무쿠게(ムクゲ)로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을 국화(國花) 로서 귀중히 여기는 한국(韓國)의 무큐게(ムキュウゲ:無窮花)가 무쿠게(ムクゲ)로 되었 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중략>···무궁화가 옛날부터 관심을 끌었다는 것을 상상할수 있다.
무궁화는 또 관상용만이 아니라 나무껍질은 섬유로 이용하고,
꽃은 약용(藥用)으로 사용하는등 귀중한 자원 식물이기도 하다.
위의 글로 보아 일본에서는 무궁화가 예로부터 정원수로 이용되었음을 알수있는데, 현대에는 차(茶)로도 이용하고 있다 한다.
지금은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무궁화를 '무쿠게(ムクゲ)'로, 나팔꽃을 '아사가오(アサカ オ)'로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무궁화를 '槿'으로 쓰고 '무쿠게'로 읽고 있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무궁화의 일본 이름인 아사가오[朝顔:アサガオ](아침의 얼굴)는 아침마다 신선하고 화려하게 피어남으로 해서 아침을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이름 지어지게 된것이고,
또 그 이름이 널리 민중의 공감을 얻어 쓰여져 온 것으로 믿어진다.
그런데 나팔꽃도 또한 매일 아침에 피었다가 곧 시들므로, 이전에 불리던 이름인, 牽牛字가 차차로 '아사가오'로 바뀌어 불려지게 됨에 따라
'무쿠게(무궁화)'와 혼동하게 되면서,
'무쿠게'는 차차로 '아사가오'라는 이름 에서 벗어나 무궁화의 일본명인 '무쿠게(ムクゲ)'로 정착하게 된다.
우리의 예상외로 일본에는 무궁화가 예로부터 널리 심어졌다.
일본 역사상 대표적인 시인인 바쇼오[芭蕉]의 '길가의 무궁화는 말에
뜯겨 먹히는구나' 라는 시는 당시의 시골 풍경을 읊은 명시의 하나로 남아 있다.
무궁화 명칭의 고찰
무궁화에는 많은 다른 이름들이 있다.
무궁화(無窮花, 無宮花), 목근(木槿, 木菫), 훈화초(薰華草), 근화초( 菫花草, 槿花草), 권황화(權黃花), 단( ), 츤( ) 순(舜,蕣), 옥증(玉蒸), 화노옥증(花奴玉蒸), 일급(日及), 조균(朝菌), 학자화( 子花), 조개모락화 (朝開暮落花), 조생모락화(朝生暮落花), 흡용(洽容), 애로(愛老), 번리초(藩籬草), 일화 (日華), 주순(朱蕣), 홍근(洪槿), 적근(赤槿), 백근(白槿), 조근(朝槿), 조화(朝華), 조순 (朝蕣), 조생(朝生), 모근(暮槿), 명근(暝槿), 조춘(朝椿), 시객(時客), 황한(皇漢), 목화 (木樺), 불상(佛桑), 부상(扶桑)등이 그것이다.
이들 이름들에는 주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지는 이 꽃의 생태와 관계되는 이름들이 많다.
또 이들 이름들은 거의가 중국(中國)의 것이다 앞선 무궁화의 많은 이름들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다른 모든 것들의 전거(典據)가 모두 중국인데 반해 유독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이름 무궁화(無窮花, 無宮花)의 두 명칭만은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위 《산해경》에서 근 4천년 전에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많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꽃에 대한 순우리말 이름이 과거부터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과도 연결된다.
무궁화란 명칭이 나타나는 문헌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하여 실린 그대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o 槿 也今俗呼木槿무궁화 《사성통해(四聲通解)》, 1517년 간행
o 槿 무궁화근 俗呼木槿花 《훈몽자회(訓蒙字會)》, 1527년 간행
o 槿 무궁화근 《운회옥편(韻會玉篇)》, 1536년 간행
o 木槿 무궁화 《동의보감(東醫寶鑑)》, 1613년 간행
o 木무槿긴花화, 무궁화 《역어류해(譯語類解)》, 1690년 간행
o 木槿花 무궁화 漢 木무槿긴花화 淸 모오연일하 倭무궁계노하나 《방언류석(方言類釋》, 1778년 간행
o 槿花 무궁계노하나. 《왜어류해(倭語類解》, 1786년 추정
o 木槿花 無窮花 朝華暮落 《사류박해(事類博解)》, 1829년 간행
o 槿 - 무궁화근, 木槿, 朝華暮落, 赤可食 白日 赤日 , 蕣, 舜 《자류주석(字類註釋)》, 1856년 간행
o 木槿(근)一名 一名 一明日及一名증一名무궁화 玉篇 木槿 朝生暮隕 木槿華
《신자원(新字源)》,1920년 3판 간행
위는 무궁화의 명칭이 나타나는 조선조의 기록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흥미있는 사실은《사류박해》에서만 '無窮花(무궁화)'라고 한자표기를 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말 표기로 '무궁화'로 적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도 '무궁화'(혹은 이와 비슷한 소리)란 이름이 먼저 있었고,
이것이 뒤에 한자(漢字)로 옮겨졌다는 암시를 강하게 받을수 있다.
특히 《벙언류석》, 《왜어류해》등 당시 일본어 교재에 보이는 '무궁계노하나'란 표기는 무궁화의 어원을 찾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 : http://www.mugunghwahongcheon.go.kr/main/main_al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