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tenham Hotspur F.C.
창단년도:1882년
연고지:런던
홈구장:화이트하트 레인(36,214)
프리미어리그우승:2회
FA컵우승:8회
UEFA컵우승:1회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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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레전드
피터 맥윌리암(1913~1927,1938~1942)
빌 니콜슨(1938~1955)
대니 블랜치플라워(1954~1964)
팻 제닝스(1964~1977,1985~1986)
스티브 페리맨(1969~1986)
글렌 호들(1975~1987)
레들리 킹(1998~)
더비전
북런던더비: 토튼햄 VS 아스날
클럽소개
토튼햄핫스퍼 FC(이하 토튼햄)은 축구클럽으로 창단된게 아니라, 원래는 크리켓 클럽으로 창단되었다. 1403년 시루 버리에서 전사한 핸리 퍼시(별명:해리핫스퍼, 세익스피어의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를 기리기 위해서 1880년 창단된 크리켓 클럽이었다. 하지만 1880년대에는 많은 축구클럽이 잉글랜드 내에 생겨났고, 토튼햄도 이에 따라 1884년 토튼햄 핫스퍼 축구클럽을창단, 크리켓 클럽도 이에 흡수된다. 토튼햄의 리그 우승기록은 단 2회밖에 없다.
하지만 이 기록으로 토튼햄을 평가하는건 옳지 못하다. 토튼햄의 FA컵 성적을 보면무려 8회나 된다.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1회), 아스날(9회)를 제외하면 잉글랜드 내에서 3위라는 대단한 성적이다. 토튼햄의 클럽 역사상 가장 빛나는 1960/61시즌은 `명장` 잭 니콜슨의 지도력과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리그와 FA컵을 우승하면서 더블을 이룩한다.
프리미어리그 클럽중 더블을 이룩한 경력이 있는 몇 안되는 클럽중 하나이다. 그리고 62년에도 다시 FA컵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토튼햄의 역사상 두 번째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1980년대는 화려하다. 1981년과 1982년에 FA컵을 다시 연속으로 거머쥐었고 1983/84년에는 1971/72시즌에 이어 클럽 역사상 두 번째로 UEFA컵을 거머쥔다. 토튼햄의 수상경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잭 니콜슨이 지휘봉을 잡았던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다. 이처럼 토튼햄은 저력을 가지고 있는 클럽이다.
*토튼햄의 골잡이로 활약한독일의 '월드컵 영웅' 위르겐 클린스만
90년대에는 토튼햄이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다. 90/91시즌 클럽 역사상 8번째인 FA컵우승을 이룩한 것이다. 잉글랜드 클럽중<최초로 8번 FA컵을 차지한 것이다. 이후 토튼햄은 우리에게도 너무 유명한 스타들을 영입하면서 클럽의 전력을 다진다.
90년 독일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자 90년대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위르겐 클린스만'을 비롯해 잉글랜드의 테디 셰링엄등을 영입해서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막강한 전력에 힘입어 리그 7위를 기록하지만, 클린스만의 뮌헨이적으로 커다란 전력손실을 입었고 잦은 감독교체로 인한 혼란이 겹쳐 이렇다할 성적을 보이지 못한다.
*역적 솔 캠벨
2001년 무너져가는 토튼햄을 수습하는데 히든카드로 나선건 바로 다름아닌 98년에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글렌 호들. 글렌 호들이 지휘봉을 잡은뒤 새로운 감독의 영입으로 부풀어 오른 팬들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은 바로 토튼햄 수비의 핵인 솔 캠벨이 라이벌 아스날로 이적을 한 것이다.
순식간에 캠벨은 영웅에서 역적으로 변신하였고 지금까지 끝없는 토튼햄팬들의 협박과 비난에시달리고 있다. 02/03시즌 글렌 호들 체제가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고 01/02시즌에 약점으로 남았던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골잡이 로비킨을 영입하고 전력 보강을 한 토튼햄
. 03/04시즌 글렌 호들이 부진을 이유로 경질 된 이후 전 프랑스 대표팀 감독인 자크 상티니를 사령탑에 임명하면서 새로운 체제를 갖추고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기록하던 도중, 감독 자크 상티니가 개인적인 이유로 사퇴를 한 뒤 코치였던 마틴 욜이 감독직을 맞게 되었다. 이런 잦은 감독 교체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전력을 갖춘 토튼햄의 미래는 지켜볼 만하다. 05/06시즌에는 PSV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한국의 이영표가 새로이 영입되었고, 2005년 한국에서 열린 피스컵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에 매우 친숙한 클럽이 되었다.
*북런던더비
연고지의 팀끼리 경기를 가지는 더비매치, 전 세계에는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더비들이 많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더비와 로마더비, 스페인의 마드리드 더비와 클래식 더비(이 경우는 같은 연고지는 아님)..그렇다면 잉글랜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더비는 무엇이 있을까 리버풀VS에버튼의 머지사이드 더비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맨체스터 시티의 맨체스터 더비, 그리고 아스날VS토튼햄의 북 런던 더비..이 더비매치들은 언제나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북런던 더비의 경기결과를 보면 현재 통산 146전 61승 36무 49패(2004년 10월 기준, 아스날의 기준으로 본 결과)로 아스날이 우세한 편이지만,북 런던 더비는 그 어느 클럽도 압도적이라고 할 수 없다. 언제나 아스날이 최강의 자리를 달려오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강한 라이벌로 세월을 보낸 것에 반면, 토튼햄은 FA컵에서의 명문이지만 리그에서는이렇다할 성적을 보이지 못하고 중상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두 클럽이 더비매치에서 만나면 마치 한일전에서 양국이 보여주는 모습에 흡사한 모습을 보이며 대등한 경기를 펼친다
언제나 치열한선수들간의 감정싸움, 거친 태클과 파울이 난무하고 양 팀 서포터의 경합과 야유가 경기장을 떠들썩하게만든다. 언제나 그라운드 주변에는 경찰병력들과 경기장 스태프들이 늘어서서 관중들의 경기장 난입을 막느라 정신이 없다. 두 클럽 선수들간의 감정싸움도 심하지만,특히 양팀 서포터들의 감정의 골은 너무나도 깊어서 두 팀의 응원가를 자세히들어보면 서로를 비아냥거리는 가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북 런던 더비에서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서포터간의 갈등은 경기장이 아닌 실생활에서까지 이어지는데 일설에 의하면토튼햄 서포터들 사이에서는 붉은색은 저주를 뜻하고 아스날 서포터들 사이에서는 '토튼햄'또는 '스퍼스'라는 말은 욕으로 통하고 두 단어를 꺼낼 때는 거의 없으며 욕을 할 때만 꺼낸다고 한다. 근래에 들어와 더욱 감정싸움이 심해진 아스날vs토튼햄 두 팀의 끝없는 경쟁의 한복판에는 몇 명의 선수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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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팀 스쿼드
2001년 여름 잉글랜드는 충격에 휩싸인다. 토튼햄에서 92/93시즌부터 줄곳 활약해오던솔 캠벨이 토튼햄을 저 버리고 라이벌인 아스날에 입단한 것이다.캠벨이 이적을 할 것이라는건 거의 확실시 되던 일이었다.
2001년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으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클럽들에서 끝없는 러브콜을 받았던 캠벨이었지만, 하필이면 그가 선택한 카드가 아스날이라는 것에 팬들은 분노했다. 2001년 여름 토튼햄팬들 사이에서는 안티-솔캠벨 운동(?)이 벌여졌으며 '아스날팬들은 캠벨이 오죽하면 친정집을 버리겠냐'라며 토튼햄을 비야냥거리면서 캠벨을 환영했다. 이러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북 런던 더비가 지금의 분위기가 된 것이다.사실 캠벨이 토튼햄에서 아스날로 이적하는 '금기'를 깨고 이적한 첫 번째 선수는 아니었다. 골키퍼 팻 제닝스가 77년 토튼햄에서 아스날로 이적을 했던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제닝스는 아직도 토튼햄의 영웅으로 남은 반면에 캠벨은 역적이 된 이유가 있다. 제닝스가 자신의 커리어 전반부였던 60년대 말~70년대 전반 토튼햄에서 UEFA컵을 비롯, FA컵, 리그컵 등을 골고루 차지하는 일에 혁혁하게 공헌한 뒤 아스날로 옮겨갔기 때문. 반면, 캠벨은 프리미어쉽에서 '그저그런' 팀이었던 토튼햄이 클럽의 경영권자가 바뀌는 한편(Enic Group으로) 80년대 강력한 토튼햄을 이끌었던 주역 글렌 호들을 새 감독으로 영입하여 재도약을 꿈꾸기 시작했던 '바로 그 순간'에 클럽을 등졌기 때문이다.
수비력에 구멍이 있던 아스날에 캠벨이 이적하면서 프리미어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는 더블을 이룩했기 때문에 토튼햄 팬들로서는 더욱 배가 아플수밖에 없다.
글렌 호들이 토튼햄의 지휘봉을 잡았던 2003년 까지 북 런던 더비는 '사제 대결'의 의미가 있었다. 오랜 기간 토튼햄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아르헨티나의 1978 월드컵 스타 오시 아르딜레스와 더불어 막강한 미드필드를 구축했던 글렌 호들은 선수 생활 말엽인 1987년 당시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끌던 AS 모나코로 이적, 벵거 감독의 모나코가 88년 프랑스 타이틀을 차지하는 데에 공헌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 이때부터 벵거 감독은 호들 감독의 중요한 '정신적 스승'이었다.
글렌 호들 감독이 경질된 이래 토튼햄은 임시 체제로 나아가다 유로2004가 끝난 뒤 프랑스대표팀 감독이었던 자크 상티니가 지휘봉을 잡았으나 상티니가 개인적인 이유로 감독직을 사퇴했다. 상티니가 사임한 이후 코치였던 마틴 욜이 감독직을 맞게 되었다. 토튼햄은 이러한 잦은 감독 교체로 혼란을 겪고 있으나, 탄탄한 전력을 갖춘 토튼햄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언제나 전쟁을 방불케하는 북 런던더비. 매 시즌마다 프리미어리그의 묘미를 더하는 북 런던더비를 주목하시길!
2004년에 부임한 네덜란드 출신의 마틴 욜 감독은 그동안 무게감이 떨어졌던 토트넘 축구를 단기간 내에 빠르고 강하며 창의적인 팀으로 탈바꿈시켰고, 2005/2006 시즌에 토트넘을 우승권을 넘보는 다크호스로 성장시켰다. 이집트 출신의 스타 미도와 잉글랜드 대표와 아일랜드 대표 공격수 로비킨-저메인 데포를 중심으로 한 공격진과 웨인 러틀르지, 아런 레넌, 앤디 리드와 같은 젊은 윙플레이어들, 더불어 다비즈-이영표로 이어지는 네덜란드 커넥션은 마틴 욜 감독의 구상을 프리미어쉽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화이트하트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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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지어진 유서깊은 경기장으로 현재는 36,200여명을 수용함.
북런던 더비를 이루는 아스날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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