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5 행 1:22-26 누가 이 일을 대신하리오 / 한빛교회 윤 석 목사
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주연 배우가 열심히 연기하다가 어떠한 사고가 생겨서 출연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그 영화를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감독은 바로 그 자리를 대역 배우가 맡기어 그 영화를 완성하도록 만듭니다.
이때 대역 배우가 주연 배우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내면 그 대역 배우는 주연 배우의 대우를 받으며 그 위상이 높아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계선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열두 제자를 택하여
복음 전파의 일을 맡기셨는데
그 중의 한 사람 가룟 유다가 배신하여 결원이 생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스승을 대제사장에게 은 삼십냥을 받고 팔아 넘긴 것입니다.
그는 결국 자기의 잘못된 판단을 깨닫고 대제사장을 만나서 일을 되돌리려 했지만 이미 어크러진 물을 담을 수 엇었고
결국 그는 나무에 목을 메어 자살했으니 그곳 이름을 아켈다마라고 부릅니다
1:18-19절을 보면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켈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라고 기록된 것을 통하여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의 죽음을 성경을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초를 당하실 때 제자들은 모두가 유대인이 무서워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니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모두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의 주검 아래서 장례를 치를 제자가 한 사람도 없는 상태에 처해있었는데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주검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었으니
그 당시 제자들은 유대인을 얼마나 많이 무서워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 잠시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고
제자들만 남아있으니 그때 있던 군중은 다 어디에 갔는지
120문도만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두려움에 쌓여있던 제자들은 스승이 아니계신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은 어떻게 진행되
그 후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제자들은 이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데 그 수가 120여명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1. 하나님의 일은 계속하여 이루어집니다.
열한 제자는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가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그 자리를 채워줄 대리인을 세울 필요를 느낍니다.
베드로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보충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시 69:25절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 그의 직분을 타인에게 취하소서 의 말씀과
마 19:28절의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1) 14절을 보면 그들은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2) 먼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과 승천하신 것을 모두 보아서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3) 그리고 제비 뽑기의 방법으로 둘 중의 한 명을 정하기로 논의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구약에서 지금까지 많이 실행되어 왔던 방법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방법입니다.
잠 16: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구약에서 제비뽑기의 밥법을 사용한 곳은
죄를 범한 아간을 색출할 때였고
요단 서쪽 지역을 점령한 후에 각 지파에게 분배할 때도 사용한 것을 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사도행전 1장에서 제비뽑기 방법이 기록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성령께서 그 일을 대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11: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성령께서 우리의 일을 보살피시고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요셉과 맛디아가 후보로 거론되었는데
요셉은 바사바 또는 유스도라고도 소개된 것으로 보아 사람들의 관심이 그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맛디아는 별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투표의 결과 맛디아가 뽑혔으니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맛디아의 뽑힘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맛디아라 함은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맛디아에 대한 내용은 사도행전 1장 말고는 성경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학자들은 과연 그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맞는가? 라고 말하지만
초대 교부 이레네우스의 증언에 의하면
맛디아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활동했고 에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신 사실을 목격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제사장의 무리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또한 야고보 사도의 순교 사건이 있던 때라서
12사도의 자리에 들어가는 일은 헌신하는 마음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디아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이행한 제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맛디아는 에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유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함으로 사도로서의 생을 마감한 인물입니다.
누가 나의 이름을 알아주던지 안알아주던지
나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던지 기록되지 않던지 /
그는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만 열중하다가 사명을 다 한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일에
2. 누가 이 일을 대신하리오
예수님의 열두 번째 제자로 맛디아가 뽑혀서 맡은 직분을 감당하였지만2312
그의 이름이 부각되었다면 복음 전파의 사역은 완료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추어져 있는 이유는 아마도
복음 전파의 사역이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눅 14장을 보면
16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제자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2인칭인 너희라는 명칭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열두 번째의 자리를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지 않으시고 공석으로 남겨두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스데반도
에디오피아 내시 간다게와 사마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빌립도
기독교를 대적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복음으로 다시 살아가던 바울도 포함되는 것이고
선교사들에 의하여 전하여진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전수받아서
2023년도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 영역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3. 이 모습을 본 우리는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세상에서 어떠한 이익이나 권리를 내세워서는 안될 것입니다.
출 38: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수종을 든다’의 ‘차바’는 ‘전쟁을 수행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부정한 여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막에 관계되는 일을 성실하게 감당한 여인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인들이 물두멍과 받침인 놋의 재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가진 값비싼 거울을 바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여인들의 허영심을 극복한 경건의 승리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재물을 탐하는 본능을 이기게 하고 헛된 욕심을 구하는 정욕을 억제하는 힘이 있습니다.
물두멍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여인들이 거울을 들여다 볼 때에는 자신들의 얼굴이 보였지만
지금은 그 것을이 물두멍이 되어 있으니 여인들이 물두멍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의 영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가룟 유다의 주머니에서 화려하게 들려오는 은화 부딪히는 찰랑찰랑 소리에 도취되어 걸어가고 있지만 그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공동체는 누군가의 헌신을 통하여 만들어져 집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헌신은 물론이요 경건에 의하여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자리는 지금도 열려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천국에서는 상급이 주어지는 명예가 주어지지만
이 땅에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사도행전 29장은 열려있는 줄을 믿고 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