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의 '전세 찾기'는 벌써 3개월째다. 직장이 있는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단지와 서부산권은 대부분 훑었다. 치솟은 전세가도 부담이라는 그는 "정 안 되면 단독주택이라도 알아봐야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4일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한빛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 거래 장부를 보여주던 한철주 소장이 한숨을 내쉰다. "명색이 부동산중개업을 하는데 오는 5월 결혼하는 조카의 전세 아파트도 못 구했어요. 전세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신혼부부들이 있다면 말 다한 거죠." 그의 장부에는 얼핏 봐도 '전세가 나오면 전화를 달라'고 연락처를 남긴 수요자가 10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200m 떨어진 다른 공인중개사의 사정도 비슷했다. 연지·초읍동의 청구·한신·우신그린피아·대우푸르지오 4개 아파트 단지 전세물량은 말 그대로 '0'이라고 한다. 특히 소형 아파트는 나오기가 무섭게 계약이 체결된다. 전세기간이 끝난 세입자는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다른 전세 아파트를 못 구해 오도 가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장은 "옮길 집을 구하지 못해 이삿짐 센터에 짐을 맡기고 여관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부산지역 전세대란이 심화되고 있다. 전세 품귀현상은 매매가 상승을 불러 '내집 마련'의 꿈마저 힘들게 하고 있다. 지난 3일 사직고·동인고·사직여고를 낀 부산 동래구 사직2동 일대. 2947세대나 되는 사직쌍용예가 아파트에는 전세매물이 한 건도 없었다. 전세가도 105㎡(32평)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2000만~4000만 원 오른 1억7000만~2억 원에 이른다.
80㎡(24평) 역시 2000만 원 정도 오른 1억4000만~1억5000만 원에 거래된다. 금성공인중개사 신덕아 소장은 "전세를 구할 수 없으니 아예 융자를 받아 매입하려는 사람이 많다. 자연스럽게 매매가도 들썩인다"고 말했다.
부산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7374세대) 역시 전세가 실종됐다. 메트로공인중개소 이종택 소장은 "현재 32평과 43평 2개만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씨가 말랐다"고 전했다. 전세가도 지난해 1억4000만 원대이던 105㎡(32평)가 최근에는 1억8000만 원까지 뛰었다.
전세난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영산대 부동산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부산의 전세가는 평균 9.9% 뛰었다. 개발수요가 많은 강서·기장·해운대·영도·북·남구는 10% 이상 치솟았다. 그나마 해운대 신시가지는 요즘 전세물량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신학기 이사 수요가 끝나면서 공급과 수요가 차즘 균형을 찾는 추세다. 다산공인중개사 김말숙 소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전세가가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물량이 있어도 망설이는 수요자가 많다"고 말했다. 전세를 월세로 돌리기도 한다. 신시가지에서는 85㎡(24평)의 경우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65만 원을 받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전세난의 가장 큰 원인은 주택 경기침체와 소형 아파트 공급 부족이다. 부산은 지역과 평형을 불문하고 전세물량 자체가 실종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114 이영래 부산지사장은 "오는 7월 신규입주 아파트가 공급되면 다소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소형 물량 공급이 워낙 적었던 탓에 당분간 매매·전세가는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의대 강정규(재무부동산학과) 교수는 "부산도 서울의 보금자리 주택 정책이나 임대아파트 확대 정책을 본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