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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조선시대에 중앙관직제로서 부윤(종2품)이 조정에서 파견되어 진무사를 겸직하였다 강화도에 설치된 5진7보53개 돈대에는 규모에 따라 첨사(종2품), 만호(종4품), 별장(종9품)이 파견되어 통솔하였다 별장은 전례에 따라 본부에서 결정하였다 각 진,보에는 대체로 150여명의 병력이 유지되고 있었으며, 현재와 비교 검토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다, 진무사를 해병2사단장에 비교한다면 진과보는 각각 사단과 여단쯤에 해당하겠으나 병력수와 화력면에서 너무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진무사를 대대장 정도로 이해한다면 진무사의 위상이 너무 낮아지게된다 당시 종2품이면 현재의 계급으로는 1급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진무사를 낮게 잡는다 하여도 사단장에 해당시켜야되므로 진,보의 첨사, 만호는 연대장, 여단장과 동급이라고 할수 있다 돈대의 기능은 평상시에는 감시초소로서 유사시에는 각 진과 보의 병력이 투입되어 전투를 전개한 작전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대략 규모로 보아 진 - 보 - 돈대의 순서가 아닌가 싶다.
<용진진(龍津鎭)...효종 7년에 쌓았으며 백여명의 병력이 3개 돈대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용진진을 지나면 용당돈대가 나온다. 길따라 가다 왼쪽편 뒷편 윗쪽으로 있어서 자칫 못볼수도 있다. 용진진 소속이다.>
<다시 뚝방길을 계속 걸어간다. 바닷가 풍경이 시원하다. 어제보다 바람도 안불고 날도 따뜻하니 참 좋다.>
계속 내려가면 화도돈대와 오두돈대가 나온다.
점심은 화도돈대앞 '강화도짬뽕'집이나 오두돈대앞 '돈대횟집'을 추천받았는데
출발한지 얼마 안되는 점을 고려해 하도돈대에서 더 걸어가 오두돈대앞에서 먹기로 했다.
<화도돈대앞 강화도 짬뽕집.... 그냥 지나갔다.>
<조금 더 내려가니 오두돈대가 나타난다.... 역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점심은 오두돈대앞 돈대식당에서 먹었다. 작은식당이었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우리는 회덮밥을 시켜먹었다. 우럭회덮밥 8천원... 밴댕이회덮밥은 6천원, 된장찌개는 5천원... 참 맛있다.>
오두돈대 아래에는 전성(塼城)이 있다.
벽돌로 성을 쌓았다는 얘기...
고려 고종때 강화외성을 흙으로 쌓았는데(토성), 영조때 강화유수가 다시 벽돌로 쌓았다고 한다.
<해안으로 한단 내려가보니 전성의 흔적이 보인다. 나뭇뿌리가 캄보디아 유적처럼 벽돌을 휘감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 언덕위가 오두돈대, 그 아래는 장어구이집.. 축대아래가 전성(塼城)이다...>
<걸음을 계속하니 그림같이 펼쳐지는 풍경들.. 갯벌이 참 시원하다~>
<걷고, 또 걷는다. 개펄옆... 다리를 건너고... 뚝방길따라.... 걷는다.>
2코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성보(廣城堡)에 도착했다.
1618년(광해10)에 고려시대 성을 보수하고 설치한 광성보는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표방하면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이 침공하였을때, 어재연 장군이하 전용사가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광성보 정문 안해루(按海樓... >
<안해루 옆의 광성돈대... 광성보의 3개 돈대(손돌목돈대, 용두돈대)중 하나이다.>
<쌍충비(雙忠碑)... 신미양요때 순국한 어재연과 59명의 순절비....>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1871년 신미양요때 전사한 용사들 묘,
어재연형제는 고향에 묻고 군졸 51명을 7기에 나누어 합장한 것이다.>
<광성보의 두번째 돈대.. 손돌목 돈대는 높은곳에 있다.>
<광성보의 3번째 돈대인 용두돈대..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지형 암반위에 설치된 천연교두보이다.>
돈대 바로 아래가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손돌목이다.
청나라가 쳐들어와 강화도로 도망가던 인조임금이 손돌이라는 뱃사공이 임금을 모셨는데 물살이 빠른곳으로 가는게 아닌가?
사공을 의심한 임금은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손돌은 바가지를 띄우며 이것만 따라가면 산다고 말하고는 죽고 말았다.
무사히 바가지를 따라 건넌 임금은 후회를 하였고, 건너편 김포 덕진진에 손돌의 무덤이 있고 목을 친 이곳을 손돌목이라 한다.
해마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는 큰 바람이 부는데 이를 손돌의 한숨이라고 한다는 전설이다.....
<손돌이 건네주었다는 곳인가? 물살이 빠르기가 장난이 아니다.>
<광성보에는 또 포를 설치하기 위한 9좌, 4좌, 3좌의 포대 세곳을 만들었다.... 광성포대라고 한다.>
광성보를 지나 능선을 넘어 나가니 다시 도로를 만난다.
2코스를 거꾸로 걸어간다면 광성보 입장료를 안내도 되는셈이다. ㅎㅎ
어쨌거나 도로에서 다시 해변가로 접어드니 갈대밭 너머 멀리 초지대교가 보인다.
<멀리 보이는 초지대교.... 직선거리는 가깝지만 해안선으로 구불구불 가려면 아직 한참을 가야한다.>
<초지진가지 전에 덕진진(德津鎭)이 나온다. 성문이름은 공조루이다.>
<덕진진 아래 밭에서도 농부가 봄을 준비하고 있다....>
<덕진진에는 덕진돈대와 남장포대가 있다... 남장포대 규모가 제법 크다.>
<덕진돈대... 그 앞으로는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경고비가 있다.>
<2코스 해변은 계속 뻘밭이 이어진다. 정겨워보인다....>
<다시 큰길로 나오니 드디어 초지리... 공사중인 구간이다. 이곳을 지나 초지진까지 인도가 없어 위험하다.>
<마지막 종점... 초지진, 이곳 관광안내소에서 2코스 완주도장을 받았다.... 초지진 입장료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사건등을 겪으며 생겼다는 포탄자국.....>
<흰색으로 표시된 곳이 포탄자국이다.>
2코스 걷기를 마치고보니 이젠 서울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하다.
버스 안내가 참 부족하다. 안내소에 물으니 초지진 앞길 정류장에서 60-2번을 타라는데
정류장이 없다. 사람 한, 두명 서있을 공간도 없고 차들이 씽씽- 달리는 곳에 정류장 간판만 서 있다.
할수없이 초지대교까지 걸어나가서 인삼백화점 앞에서 나오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저 큰 건물이... 의욕적으로 건립은 하였으나 운영이 잘 안되는듯~~ 그 옆 작은건물만 영업중이었다.
노점상에게 물으니 아무버스나 타고 김포로 나가서 갈아타라는 조언의 말씀....
어찌어찌 갈아타고 서울로 돌아오니 어느새 7시가 넘었다.
피곤하고 힘들고 만만치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즐거움, 만족감, 성취감으로 돌아온 1박 2일이었다.
다시 형편을 보아 나머지 코스에 도전하려 한다.
<초지대교 앞... 인삼백화점 공터, 여기서 버스를 기다렸다.>
1코스는 도표에 의하면 모두 17Km... 소요시간 5시간 50분이다.
우리는 구불구불 해안선을 걷고 중간중간 돈대들을 들려서인지 5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러나 거리계산은 1시간에 4Km로 하여 약 20Km로 하기로 했다. (30분은 다소 늦게 걸은점을 감안하여 뺐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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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님의 시선을 따라 걷는 2코스 시원하군요. 작은 인연이 있어선지
10시가 조금 지나 가리산돈대 아래에서 용진진을 향해가시는 님들의 모습을 차안에서 보았답니다.
저희는 6코스인 화남생가 가는 길 정기도보중이었다가 일이 있어 포플러샘의 낭군님차를 타고
두두미마을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거든요. 지금도 여러모로 어설픈점도 많겠지만 나들길 어여삐보시는 맘에 감사를
전해올리며 시골이어서 도시같지 않은교통편은 이해해주셨으면 바래봅니다.
그 불편함속을 그래도 즐겁게 늘 사는 원주민들도 있으니까요. 언젠가 나들길위에서 뵙길 ~~ ^^
교통편이 조금 더 만족스러웠다면..아쉬움이 조금은 줄었을텐데...앞으로 더 많이 생각하고 수정하고..발전할 것입니다.
조금 더 느긋한 마음으로 기댜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니..제가 다녀온듯..ㅎㅎㅎ 눈에 선하네요...
다음 나들길에서 뵙기를 기대해봅니다..수고많으셨습니다.
제가 전기장판의 눈금을 올려주어야 했었나봐요~~~~ 거기까지 신경쓰지 못하여 미안합니다^^ 나들길에서 만나뵐 수
있기를 ^^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두 공감!! 교통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