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천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심사평
주제의 울림에 대한 역동적 형상화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문학은 한 인간을 무엇보다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수필은 물론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과 갈등, 소통이 이루어지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바탕이 성숙하지 않은 사회는 이해관계만을 놓고 다투는 사회를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문학이다.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부천이 부천신인문학상 공모전이 필요한 이유도 그렇다. 문학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문학은 인문학적 가치를 지향한다. 고사 위기에 있는 인문학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간학인 수필을 발전시키고 고급화해야 할 것이다. 2019 부천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은 <풍경소리>와 <어머니의 손>을 쓴 분께 돌아갔다. 우수상은 <연리지목>과 <담쟁이덩굴>을 제출한 분이 차지했다. 다른 수필은 글감은 좋았으나, 좋은 글감을 감동시킬 만한 구조와 미학으로 발전시키는 데 미흡해서 차순위로 밀렸다. 최우수작 수필은 두 작품 모두 묘사력이 좋고 문장력도 탄탄했다. 현재와 과거를 매끄럽게 연결시켰으며, 감정을 매만지는 솜씨가 탁월했다. 무엇보다도 문단쓰기 제목 짓기 등에 있어서 기본기가 다져져 있어서 촣았다.
수필은 진솔한 언어의 문학이다. 내밀한 삶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작업은 자기 치유와 성찰을 낳는다. 이는 나를 이해하고, 또 누군가를 이해하며 나아가서 한 시대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2019년 부천신인문학상에 공모한 글의 높아진 품격은 문학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고 있었다. 바쁜 삶의 여정에도 문학의 끈을 놓지 않은 응모자들의 절절한 글을 읽으며 내내 행복했다. 문학은 예술이기에 ‘품격’과 ‘맛’을 요한다. 창작에 있어서 정해진 어떤 법이라는 것을 굳이 말한다면, 그것은 메시지를 어떤 방법에 의해 미적으로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의미의 조형화다. 문학은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는 측면에서 문학성을 유지해야 한다. 당선작은 심사위원 두 사람으로부터 공히 최고점을 받았다. 당선작답게 이 수필은 다른 응모작에서는 볼 수 없는 미적 울림구조를 확보하고 있었다.
모든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미적 대상임을 전제할 때, 수필작품 속에서 생성된 미의식을 음미하는 것은 작품해석의 최종적인 단계에 해당된다. 그것은 곧 작가가 주제로 형상화해 낸 정서의 빛깔이자, 심오한 성찰 속에서 획득되는 철학적 울림의 멋과 힘이다. 꾸밈이 없는 내면풍경 보여주기는 수필의 생명이요, 최대의 강점이다. 자신의 과거를 잃고 현재에 묻힐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회상을 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바로 세우는 일이 바로 수필적 생활이다. 이 당선작품들은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쉬움을 정조준하여 ‘정의 문학’이라는 수필의 성격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어 감동을 격조 있게 보여준다.
<풍경소리>는 정의적 관계에 있는 아버지와 암소의 내밀한 사랑을 정서적으로 잘 형상화해서 감동을 주었다, ‘밥을 굶는 일이 있을지언정 소를 먹이는 것만큼은 소홀히 하는 법이 없는 아버지의 소사랑이 절절히 녹아있었다. ’풍경소리‘라는 제재를 통해 주제를 겨냥하는 수법도 그렇고, 모든 문단이 소주제들이 전체 주제를 향해 일사 분란하게 응집되고 있는 등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문단 구성 능력도 탁월하다. 상징과 비유 등의 수사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제재를 물화하여 형상화하는 문학적 수법을 통해 독자를 상상과 연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함축과 상징은 우리의 미적 인식을 자극한다. 소리 팔려서 떠난 날 땡그랑거리는 환청소리를 듣는 아버지에 대한 묘사 등으로 해서 독자에게 미적 사유의 세계를 열어준 점이 돋보였다.
<어머니의 손>은 특별한 삶을 살아내었던 시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름 가득한 얼굴은 세상세파에 시달려온 삶의 무늬이고 고통스러웠던 세월의 흔적으로 의미화하면서 희미한 전등불 아래에서 파리한 얼굴로 담배연기를 쏟아내던 40여 년 전의 시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쓴 수필 역시 감동적이다. 여자의 인생은역사의 질곡 속에서 전통이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전통의 맥락 위에서 온고이지신의 사상이 햇살 같이 밝게 빛날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를 향한 건강한 생각이 사과 속의 영양분처럼 문맥에 녹아있다는 점은 이 수필의 가장 큰 매력이다. 과거와 인간적인 만남의 장을 열어주는 수필구조가 가진 그 가공할 만한 힘 때문에 독자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수필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한다. 심층에서 숙성시킨 소재 통찰의 결과를 표층에 끌어내어 미적 구조화를 이루고, 주제의 울림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높은 문학적 안목과 구조화 능력이 만들어 내는 힘이라 하겠다. 벼랑 같이 느껴질 정도의 안타까움이 녹아 든 어구를 적재적소에 놓을 때까지 그녀는 감각의 촉수를 갈고 닦았으리라 본다.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적인 호소 구조의 설득전략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믿음이 토포필리아적 지향성을 섬세하고 세련된 정서로 담아내는 데 기여했다고 하겠다.
우리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가슴 따뜻한 수필작품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품격을 갖춘 수필만이 감동을 줄 수 있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9 부천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된 분께 충심으로 축하를 드리고, 앞으로 더욱 수필문학 발전에 기여해 주시기 바란다. 수상자로 선정되는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다. 수상 이후에도 수상자에게 더욱 좋은 일이 많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