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여배우들은 출석률 최고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남배우들~ 분발하시지 말입니다.
어제 여배우들은 연출님의 어려운 주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부채를 들었다 놨다 해야만 했습니다.
연출님은 지금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여 풍성하게 리딩을 하길 바란다면서 상대방의 대사를 듣지 말고
본인의 대사에 집중하여 주고 받는 대사가 아닌 독립적인 감정 표현을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별을 하는 상황에서 화내는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긴 대사에서도 여러 감정들을 넣어 표현하라는 말에
우리들은 마치 광년이처럼 이 감정 저 감정을 오가며 리딩을 하다가 결국 연출님을 향한 분노가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연출님은 꿈쩍도 하지 않고 끝까지 여배우들의 내재된 감정들을 끄집어내려고 힘쓰는 듯 했습니다.
연출님 혹시 그 상황을 즐기셨나요?
아닐겁니다. 우리의 연출님은 오로지 여배우들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민언니는 본인의 현실적인 성격 때문에 과거 이별에 대해 담담했었다면서 슬픈 이별의 감정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공감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연출님은 이별의 상황을 꼭 슬프게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하지만 기저감정은 깔려 있어야 하니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고민해보자고 했죠.
가인과 경화는 깐족대는 여자1과 짜증나는 여자2를 표현하다가 어색함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경화는 짜증이라는 감정의 뜻은 알겠는데 본인이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감정이기 때문에 표현하기가 어렵답니다.
짜증을 만땅 느끼게 해줄 수도 없고... 참...
항상 즐겁고 밝게 사는 경화의 애로사항입니다.
연출님이 연습시간마다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프로가 아니다보니 배우 개개인의 과거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짓연기가 아닌 진실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내가 경험했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적절한 감정들을 씌워 표현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배우가 작품 속 인물을 공감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겠죠.
연습이 마무리 될 무렵 저는 지민언니한테 ‘다모’라는 드라마를 한번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과거 ‘다모’를 몰아보며 폭풍 눈물 콧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는데 지민언니는 ‘다모’를 봤지만 슬프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시라노연애조작단에 의뢰해 지민언니를 찐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게 해야 할까요? 과연 통할까요? 왠지 아닐 거라는 불안함이...
그 대화의 끝에 우리의 경화는 가장 집중해서 본 드라마가 ‘여명의 눈동자’라면서 제대로 느끼기 위해 재생과 멈춤을 반복하며 일일이 모든 대사를 적었다고 하네요.
대단합니다.
✤ 연출님 코멘트 정리✤
- 인물분석 전까지 이별에 대한 상념을 기록하며 다양한 감정을 시도하며 풍성하게 작품분석을 한다.
- ‘그냥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대사를 즐기면서 인정해야 한다.
- 내 얘기처럼 보여질 수 있도록 경험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잡아놔야 한다.
- 이별에 대한 기저감정(변하지 않는 감정)에 여러 감정을 덮어 기저감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면 안 된다.
- 상대방에게 감정을 받으려는 연기가 아닌 본인 감정으로 연기해야 한다.
첫댓글 감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몸으로 얼마나 진실되게 느끼느냐 입니다. 세상에는 숱한 감정이 산재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 숱한 감정들을 경험하며 살아왔지만, 살아오는 동안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이 어떤 하나의 모습으로 굳어져버렸다고 착각을 합니다. '지금의 성격이 내 성격이야.'라고 말이죠.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렇게 살아오면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해오며 풍부한 감정을 내재시켰으나 표현의 서툼에 익숙해져, 참는 게 미덕이라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표현에 인색하다보니 속에 잠들어 있는 감정들을 표출해내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의 성격이 당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것은 길들여져 있는 모습일 뿐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해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배우로서 무대에 서겠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내 속에 잠들어 있는, 나 스스로 감추고 있는 나를 끄집어내는 데 있어 두려움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시선에, 판단되어질 것에 미리 겁먹지 말고 표현함에 있어 자유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진실한 감정에서 진실한 연기가 비롯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자유로워야만 합니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조금씩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표현하는 데 있어 망설임을 줄여가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곧 작은 자유로움이라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생각은 가급적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다 자신의 모습일 뿐입니다. 낯설어서, 자주 표현하지 않은 모습이라서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 어떤 모습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한정된 감정 또는 표현에 국한시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악한 마음 한번쯤 먹었다면 그 악한 모습도 착한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든 세상의 모든 감정과 모습은 다 내재되어 있습니다.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제약된 감정의 틀에 묶어두지 마시고 열린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풍부한 감정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감정에, 표현에 자유로울 수 있으나 그것을 스스로 한정된 틀에 가두고 스스로 부인하려고 하기에 자유로움을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특히 두려움은 배우에게 있어 최악의 적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표현의 두려움보다 연출님의 코멘트가 더 두려운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