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kinews.com%2Fnews%2Fphoto%2F201701%2F101306_48634_3148.jpg) | | ▲ 활동보조인으로 만난 우천화(왼쪽), 박춘길씨는 어느덧 단짝이 됐다. |
"활동보조인 처우 개선을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하냐고요? 인도 만들고 도로 만드는 사람들이 대전 신탄진 견학을 다녀왔으면 해요. 거긴 경사로 다 돼 있어요. 휠체어로 다니기 얼마나 쉬운지 몰라요."(우천화씨)
"저희가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것도 참 좋아하는 데 경사로가 없는 식당이 많아서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어요. 식당들도 조금 신경을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박춘길씨)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한지 만 3년을 꽉 채웠다는 박춘길(51, 옥천읍 장야리)·우천화(59, 이원면 지탄리)씨는 어느덧 인권활동가가 다 됐다. 활동보조인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을 물으니 장애인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애인들의 활동이 편하면 활동보조인의 처우는 자연스레 개선된다는 것.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수진 인권활동가의 활동보조인으로 각종 교육 활동, 투쟁 현장 등을 다니며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게 많다. 무엇보다 장애가 있는 수진씨와 월 250시간 이상을 함께하며 지낸 시간들 속에서 맞닥뜨리는 장애인 자립 문제의 현실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들이 많다.
"둘 다 관련 일을 한 적이 없어요. 수진씨와 인연이 처음이죠. 저는 수진씨의 직전 활동보조인의 소개로 왔어요. 활동보조인이 해야 할 일은 말 그대로 장애를 가진 이용자들이 본인의 의지대로 생활할 수 있게 활동을 보조해 주는 거예요. 낮 시간대를 제(박춘길)가 맡고, 저녁 시간을 우천화씨가 맡고 있습니다."(박춘길씨)
박춘길씨와 우천화씨는 각각 월 250시간씩 3년을 수진씨와 보냈다. 그 사이 겪었던 다양한 일들은 한 권의 책을 내도 될 정도.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이 있었던 광화문 농성 현장은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광화문 가면 우리는 수진씨랑 조금 떨어져 있어요. 경찰들이 활동보조인들 신상을 알아 간다고 수진씨가 떨어져 있으라고 해서요. 지켜보고 있다가 필요한 게 있다 싶으면 가서 보조해주곤 하지요. 한 여름에 거리 행진하면 땀이 줄줄 흘러요. 그러면 보고 있다가 쫓아가서 아이스 커피 한 잔 미리 주문 해 놓고 기다리다가 지나갈 때 건네고 그래요."(우천화씨)
"휠체어는 장애인들의 신체 일부인데 경찰들이 들어서 옮기는 경우도 허다하고, 휠체어 바퀴가 조금만 돌아간다 싶으면 바로 제지하고 이런 것들이 뉴스에는 다 안 나와요. 집에 돌아간다고 하면 딱 길을 터주고 차량 타는 곳까지 따라오면서 감시하고 이런 게 일상이죠. 의경들이 그러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닐 거예요. 제 아들도 의경 나왔거든요. 그 때 시기가 딱 겹쳐서 한 번은 농성장 같이 못 따라갔었죠."(박춘길씨)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활동보조인은 모두 30명이다. 29명의 장애인 이용자가 있지만 활동보조인은 30명이 전부. 이용자에 비해 활동보조인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군내 활동보조인이 부족한 이유는 여러 가지 사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일단 고령화된 농촌지역에서 활동보조인을 할 20대~50대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노동 강도가 높은 점, 그에 비해 생활임금으로는 부족한 시급이 활동보조인을 꺼려하는 이유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kinews.com%2Fnews%2Fphoto%2F201701%2F101306_48633_3148.jpg) | | ▲ 이수진 인권활동가(앞)와 박춘길(뒷줄 왼쪽), 우천화 활동보조인이 강릉 바다여행을 기념하는 사진을 남겼다. |
정부가 활동보조인 시급으로 지원하는 금액은 9천240원. 여기에는 활동보조인이 속해 있는 기관의 몫이 포함돼 있다. 활동보조인 관리 및 운영비로 25%가량을 기관이 가져간다. 실질적인 시급은 6천930원인 셈. 얼핏 보면 올해 최저임금인 6천470원 보다 높아 보이지만 월급으로 따졌을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주휴수당이 빠져있기 때문.
근로기준법상 1주일 동안 규정된 일수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이 바로 주휴수당이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받을 수 있다. 하루 8시간씩 5일을 근무하다고 하면 유급휴일(8시간)을 더해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최저임금 기준 한 주 노동가치는 31만560원(48시간*6천470원)이다. 주휴수당이 없는 활동보조인의 임금은 27만7천200원으로 3만3천360원을 덜 받게 되는 것이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활동보조인 평균 임금은 85만원 가량에 불과했다. 올초에는 생활임금이 부족해 활동보조인 활동과 신문배달을 병행하던 청주의 한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런 사정에 다수 장애인 인권 단체에서는 활동보조인 수당이 1만원을 넘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올해 시급 인상분은 145원으로 최저임금 인상분(440원)보다 낮다. 활동보조인의 노동 여건을 개선하고 그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급을 인상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희도 이제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일이 힘들어져서 주말 활동보조인을 따로 구하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막상 구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어요."(우천화씨)
250시간 이상을 함께하다 보니 종종 싸우는 날도 있단다. 눈이 퉁퉁 불 때까지 울기도 울었다. 하지만 이용자인 수진씨와 서로 배려 해 가며 그들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불만 있으면 서로 앞에서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사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가 이용자가 나갈 일이 있으면 나가야 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제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 싶으면 이야기를 해요. 수진씨는 그러면 이해를 해 줘요. 가끔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 이상으로, 너무 감정적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친해진다고 소장님께 한 소리 들을 때도 있지만 이게 저희들 스타일이에요."(박춘길씨)
"우리 셋이 참 잘 맞는 게 있어요. 가방이 필요하다 그러면 같이 인터넷 쇼핑해서 색깔만 다르게 살 때도 있고, 어쩔 땐 색깔도 같은 걸 살 때가 있죠. 체험홈에서 완전자립할 때 집도 저희가 골랐어요. 옥천에 엘리베이터 있는 집이 워낙 없어서 오래 고민하지 못하고 바로바로 결정해야 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수진씨도 좋아했고요. 저희 셋은 지금처럼 이렇게 재밌게 살렵니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구경 다니고. 정을 나눈 가족입니다."(우천화씨)
박춘길씨와 우천화씨에게 이수진 인권활동가가 한 마디 전한다. "활동보조 시간 이외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도와주실 때가 많아서 항상 고마웠습니다. 특히 이런 활동을 지지하고 이해하고 응원해 주시는 박춘길·우춘화 선생님 남편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 고마워요."
습관처럼 닮아버린 모습에 웃음짓다 박춘길 활동보조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우리의 처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끔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면 웃음이 난다. 수진씨와 대화시간을 가지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많이도 웃었지만 때론 다투기도 했다. 언제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한데 의견이 맞지 않아서 말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많이 울었다. 수진씨가... 내 입장에서는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수진씨는 속상했는지 말을 하면서도 울었다. 그 이후에는 서로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수시로 얘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혼자 결정하지 않고, 서로 의견을 말하다보니 상처 주는 일도, 받는 일도 줄어드는 것 같다. 한 조각, 한 조각 맞추어지는 퍼즐처럼.
3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순간 습관처럼 닮아버린 모습들도 발견하곤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다른 환경에서 지내온 우리의 비슷한 면을 발견할 때면 웃음이 터진다. 숨이 막히도록 웃고 지내는 날이 늘어났다. 그래서 지금 나는 수진씨와 만나는 매일이 행복하다.
참! 이렇게 행복한 내게 또 하나의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수진씨의 오후 활동샘(보조인)이다.
초기에는 나만 모르는 삐걱거림이 있었다. 인수인계 시간에 만나지 못한 채 따로따로 일을 마치고 시작하곤 했는데 서로 마주치지 못한 이유가 알고 보니 나 때문이었다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말해주었다. 내 말투가 사감선생처럼 딱딱해서 텃새 부리는 줄 아셨다고…. 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완전히 고치지는 못했다. 조심한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도 이해하고 예쁘게 봐주는 오후샘은 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리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먼저 왔다는 이유로 나에게 선택권을 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말을 함부로 하지도 않고 매사에 배려를 해준다. 오후샘을 보며 나도 그런 배려를 배우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려 노력한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성숙해져 있을 나를 기대하며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수진씨와 오후샘과 함께 만들어 갈 추억을 상상한다. 이렇게 오늘도 난 웃음꽃을 피운다. 매일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함께했던 추억을 회상해 본다면 다시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의 인연이 이어지는 그 날까지……. |
< 저작권자 © 옥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첫댓글 멋진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