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2대 총선이 끝나고...
총선 결과에 보수의 한사람으로써 유구무언이다. 글도 쓰기 싫고 밥도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뒤늦은 개화에 벌써 ‘벚꽃 엔딩’이다. 해와 벚꽃은 질 때가 아름답다. 봄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벚꽃비’는 봄날의 피날레이듯 장관이다.
제22대 총선 레이스도 벚꽃 엔딩과 함께 막을 내렸다. 앞서 공천과 본 선거 과정은 화창한 봄날이 무색하리만큼 혼탁했다. 벚꽃이 화려하게 우리네 '설렘 지수’를 끌어올렸다면, 구태를 되풀이한 점치는 ‘싫증 지수’를 높였다.
○ 돌아보니...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지난 3월 26일까지 검찰과 경찰이 적발한 선거 사범만 각각 474명, 895명에 달한다. 허위 사실 공표 흑색선전 사범이 이례적으로 40%대를 넘길 정도로 유언비어가 판친 셈이다.
사전투표 때도 조작, 부정선거 음모론이 또다시 제기되며 ‘피곤한 결말’을 예고했다. 최근 가짜뉴스 등으로 인해 자신의 기존 신념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확증 편향’도 심해져 유튜버나 일반 시민까지 시끄러운 결말을 부추기는 꼴이다.
○ 루소는...
'일반의지'라는 이론을 통해 투표 행위에 있어서 개개인의 선택은 불합리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모인 합은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개개인은 후보자의 역부족이나 자질을 알면서도 이런 저런 사유나 인연 또는 진명 때문에 투표할 수도 있으나 그 결과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의지가 반영된다는 것이라서 이번 선거 결과의 의미를 하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선거는 가장 치열한 경쟁이기에 선거에 패배한 사람들이 당하는 심적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선거에서 낙선하였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된 인물들은 국내외에서 여러 명 있다.
○ 국내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6번의 낙선을 한 뒤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4번의 낙선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 해외에서는...
20세기 세계를 움직였던 처칠, 드골, 닉슨도 선거에서 여러 번 패배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실패를 극복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존경받는 분들이지만 이분들도 선거 패배 후 상당한 좌절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22년 만에 낙선한 처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사무실도 잃고, 의원직도 잃고, 당도 잃고, 맹장까지 잃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당시 그의 측근 중 한 사람은 처칠을 만난 뒤 "그는 너무도 의기소침하여 저녁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세상은 끝났고, 적어도 정치 생활은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닉슨도 비슷한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다. "두 번씩이나 패배의 쓴잔을 마셔 본 나로서는 그 패배의 참담함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 친구들은 말한다, '책임을 벗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마음대로 여행하고, 낚시도 가고, 어느 때고 골프를 칠 수 있고... 그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인가?' 이에 대한 내 대답은 물론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주일을 못 넘긴다'인 것이다. 그 이후에 엄습하는 공허함은 낙선을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드골의 선거 패배 후유증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으나 그도 12년 동안 야인생활을 한 후 재기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닉슨은 "드골이 12년 동안에 걸친 야인생활을 통해 그의 개성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처칠은 이 시기에 책도 여러 권 썼고, 그림도 그렸고, 국내외 문제에 대해 강력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드디어 65세의 처칠은 수상으로 재기하였고 그의 취임 연설에서 "나는 피와 땀 눈물 이외에는 바칠 게 없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바 있다. 닉슨도 7전 8기의 정치인이다. 오히려 자신의 정적이던 에드워드 케네디가 여비서 익사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닉슨은 그에게 "사람은 패배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라는 위로의 글을 보냈다. 드골도 국민들로부터는 버림받는 신세가 되었으나, 12년 후에 그는 재기했다.
선거에서의 패배는 전쟁에서 입은 상처보다 더 크고 깊지만 나폴레옹 시대에 활약했던 정치가인 탈레랑의 말대로 전쟁에서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나 정치에서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죽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탈감에 빠진 이 시대에 맞서 제22대 국회가 곧 출범한다. 당선자들은 제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공약을 외면하는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낙선자들도 그들이 하루빨리 민생과 지역 현안 해결에 집중하도록 패배의 아픔을 머금고 한발 물러서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선거 과정에서 본 낙선자들의 열정과 진정성을 쉽게 잊지 않는다. 아름다운 벚꽃 엔딩은 끝이 아닌 다음 개화를 위한 또 다른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인간사 그 한줌의 무상이 아니더냐 온 종일 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