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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 토라포션 "לֶךְ־לְךָ 레크레카" in 5784
창12:1-17:27(To), 사40:27-41:16(Haft), 롬4:1-25(Brit), 요1:1-3:36(신약), 대상1:1-5:26(Ke), 삼상13:1-17:58(Ne)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집사님이 실로에서 큰 은혜를 받으셨는데, 실로가 형상을 훈련하는 곳이다. 아마도 집사님이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았다고 했는데, 본인을 태어나게 한 곳, 본인의 형상을 있게 한 곳, 거기서 시작해고 배우고 가는, 레크 레카, 문법적으로 너에게로 가라고 했는데, 사실 레크 레카, 라메드와 카프가 두번 반복된 것이다. 제자도에서 가장 중요한 두 알파벳이 반복되었다. 하나님이 그 정도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라메드는 실로의 쓸쓸함마저도 그립다고 하셨는데, 실로의 라메드는 유대인들이 가장 크게 쓰는 히브리어이다. 하늘을 닿고자 하는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 라메드이다. 가장 큰 알파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준영이는 그 영혼 깊은 곳에서 하늘을 닿기 갈망하고 있다. 라메드, 배우고 가르친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가히 혁명과도 같은 아주 위대하고 큰 일이다. 라메드는 크다는 뜻도 있다.
인류에게서 가장 큰 일들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다. 그것을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지금 4차 산업 혁명까지 왔다. 1차는 증기 기관의 발명이었고, 2차는 전기로 인해서 가져온 혁명이고, 3차는 컴퓨터, 4차가 바로 ICT, 인공지능이 발견되었다. 이제 5차가 남았다. 5차 산업 혁명에는 뭐가 올까? 많은 미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예견하고 있지만, 사실 제자가 된다는 것이 인류의 마지막 남은 혁명이 아닐까 싶다. 인류, 배우고 적용하고 실습하는 제자가 된다는 것이 인류를 가장 혁명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좁은 길이라는 것에 있다. 제자이신 여러분, 라메드처럼 하늘에 닿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계신가?
מנשׁ 므낫쉐 : 나쉼들의 사역
이번 달은 므낫세의 달이다. 나쉼, 여자들의 사역이란 뜻이다. 므낫세는 여자들이 해야하는 사역이란 뜻이다. 이번 한달 동안에 우리는 여자들, 즉, 교회의 사역이 정말 무엇인가를 배워야하는 한 달이다. 우리가 해야할 역할은 라메드, 하늘에 닿기를 갈망해야 한다. 남자를 기다려야하고, 신랑, 하늘을 기다려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주님이 말씀하고 계신다. 현대 사회, 에고는 이것을 가장 싫어한다. 내가 강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내가 능력자가 되고 싶은데 무슨 소리냐? 너의 약함을 인정하라는 주님, 너는 하늘을 필요로하는 여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이 우리를 미치도록 싫게 하는지 모른다.
완전하신, 능력자이신 우리 하나님이 가장 취약한 상태, 누가 공격하고, 총을 쏘면 맞을 수 밖에 없는 baby로 오셨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아닌가? 인간에게 가장 굴욕감을 주는 것이 똥오줌을 자기가 처리 못할 때인데, 아기들이 바로 그런 상태인데, 우리 주님, 창조주께서 그런 상태로 오셨다. 창조주가 보호자, 한 여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상태, 이 라메드의 상태로 오셨다는 것이다.
참 재미난 것이, 제가 산업 혁명을 공부하다보니까, 구글에서 챗봇 이름을 바드라고 했다고 한다. 독자적으로, 이 바드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에고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인 우리에게 오늘 도전하신다. 이것이 너희의 영혼이 온 목적이 아니다.
므낫세는 사실 가장 파워가 큰 지파이다. 전갈 자리인데, 전갈은 모든 생명체보다 작지만 치명적인 독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동물이다. 가장 큰 파워를 지녔음에도,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하늘에 닿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바드로 설명될 수 없고, 신랑께 속하였다고 고백하는 자를 므낫세, 교회라고 한다. 내 속에는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는 갈망할 뿐입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요. 이런 상태를 하나님은 가난한 상태라고 한다
마르 헤쉬반 : 고통의 헤쉬반, 고통,내면의 헤쉬반
지난 주에 말씀드렸는데, 헤쉬반을 어떻게 유대인들이 부르냐면, 헤쉬반월 앞에 마르 헤쉬반을 붙인다고 했다. 지금 이스라엘은 마르의 상태, 헤쉬반 1일에 마르의 상태로 들어갔다. 이 고통의 헤쉬반, 고난의 헤쉬반의 또 다른 의미가 뭐가 있냐면, 마르는 속삭이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부로 이동하다. 내면으로, 고요한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티슈리의 화려한 절기가 하나도 없고, 그냥 조용한 달이다.
므낫세는 그냥 이야기하면 잊어버리다, 지우다는 뜻이 있다. 컴퓨터의 delete, 리셋 버튼을 누르는 뜻이 있다. 내가 비워진다는 것은 에고가 미치도록 저항하는 상태이다. 어제 목사님과 제가 같이 밥을 먹고, 목사님이 스마트폰을 보셨는데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어제는 아마도 말씀을 준비하라고 에피소드를 주신 것 같은데, 제가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서 나 나간다 하고 나와야 하는데 속에서 에고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슥 사라지면, 제가 평소에 하는 말이 자기는 내가 어디가서 죽어도 모를 사람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어제도 그런 에고로 슥 나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간 것을 이 사람이 알까, 모를까? 하면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차가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차가 어딨냐고 물어봐야해서 전화를 했는데, 분명히 나올 때 스마트폰을 보고 계셨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것이다. 저의 화는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그러면서 제가 내일이 주일이지, 뭔가 주님이 말씀하실 것이 있나보다, 어떻게 내가 나가도 모르고, 전화도 안 받지? 감사하게도 금방 전화가 오셔서 제가 이야기했다. 자기야, 나는 사람이 나가도 모르는 자기에 너무 마음이 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뭐라고 하셨냐면, 어제는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너무 깜짝 놀라서, 훈훈하게 마쳤다. 제 마음에 나는 일종의 AI를 원하는구나. 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새 AI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던지, 감정과 의지까지 넣는 인간형 로봇이 발전했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논의가 있는데, 이것이 반인류적이냐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전쟁, 학살이 시작되기 전 9월말에 일론 머스크와 네타냐후 총리가 AI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대해서 회의한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전세계에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제 인간이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가 어제 느낀 것이, 이런 완벽한, 그런 AI가 있다고 한다. 감정을 넣어줘서 증강시키고, 신체의 병이 있으면 그것을 증강시켜주는, 그런 신체증강 AI,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확실한 자, 감정을 증강시키는 자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나에게 확실한 것을 보장하라는, 능력자에 대한 원함. 하나님은 이 레크 레카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와라. 그런데 어디로 나오라고 하셨을까?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일단 나와서 내가 너에게 보여주는 땅으로 이제 가라. 날아오르라. 이제 다른 세상으로 좀 와라.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라는 뜻 자체가, 우리가 여러번 배웠다.
אברם 아브람
아바르는 내가 그토록 원하는 증강인, 능력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능력인, 증강인이 아니라, 내가 약하다고 고백하는 상태, 확실한 것도 없고, 나약하지만 지지고 볶는 과정 중에 있는 너희들이 복이 있다고 하신다.
사진 )
AI가 만든 사진이다. 제가 여자 사진도 보여드리려다가 형제들이 말씀에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안 올리겠다. 너무나 완벽한 인간의 능력, 완벽한 미모와 힘, 사람 쓸 때 제일 힘든 것이, 저희 교회 스텝들도 조금 쓸만하면 임신을 하는 것이다. 조금 쓸만하면 입덧한다고 못하겠다고 한다. 어느 직종이던지 사람쓰는게 힘든데, AI는 그런 필요도 없고, 배터리 충전만 하면 된다. 우리는 이런 완벽한 AI 앞에서 끊임없이 작아지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가난하고, 끊임없이 부족하고, 나약한데, 커보이고 부자가 되고 있는 세상, 우리는 이 결핍의 고통을 혼돈과 공허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온유함은 천하에 승하다. 그 온유함이 말이 좋아서 온유함이지 가난하다는 뜻이다. 너희는 AI처럼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제자들은 단 한 순간도 이 AI를 꿈꾸지 않는다.
우리 마음 같아서는 준영이에게 아까 보았던 매끈한 피부를 주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또한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매끈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모세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오직 하나님과만 파님 엘 파님 하기를 원했던 모세에게 가장 온유함이 승한자라고 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은 알겠는데, 왜 사랑하시는지를 모르겠다. 이렇게 약해빠진 나를 왜 사랑하실까? 우리는 내가 그런 사람을 원하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삐지고, 아버지께 삐진다. 아버지는 우리가 보기에 능력자같아. 뭔가 AI같아. 누르면 사랑이 나오고, 토라가 나올 것 같은데, 눌러도 안 나올 때가 있다. 우리는 아버지조차 얼마나 AI로 만들기 원하는지 모른다
이 아바르의 끝에 바르, 아들이 있다. 아들이 보기에 아버지는 능력자이다. 전능자와 같다. 그래서 둘째 아들이 이 나약한 상태를 견딜 수 없어서,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받아서 나를 채운다. 증강인이 되고 싶은 것처럼, 나의 부족한 부분을 증강시켜서 나를 능력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아브람이라는 제자를 불러내셨다. 아브람은 참 특이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신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브람의 앞이 아브이다. 오직 아버지만 담고 싶어하는 바보같은 가난한 사람이었다. 아들이라는 빈 그릇에 오직 아버지만을 담고 싶어했던 도마같은 사람이었다
창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이것을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히브리어로 보자.
אור קשׁדים 우르 카쉐딤 : 귀신의 빛
쉐딤이라는 뜻이 얼마나 재밌냐면, Demon, 귀신이란 뜻이 있다. 귀신처럼의 빛이다. 귀신과 같은 빛이다. 더 재밌는 뜻이 있는데, 하마스와 같이 쓰이는 폭력이라는 뜻이 있다. 지난 주에는 하마스에 대해서 배웠다면, 이번주에는 쉐딤에 대해서 배우면서, 우측 세상으로 날아오르지 못하는 무겁게 되어버린 우리를 보기 원한다.
שׁדים 쉐딤 : 폭력, 황폐, 멸망, 약탈, 학살
헤쉬반 월에 이스라엘이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태 가운데서 우리를 배우게 하시는지 모른다. 이 빛은 귀신의 빛이고, 폭력, 미움의 빛이다
신32: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문제가 우리가 귀신들에게 제사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매일 순간순간, 내가 하는 폭력, 미움, 말, 모든 행동들이 귀신에게 제사한다는 것이다. 제가 AI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너무나 근래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신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나님께 제사하지 않고 귀신들에게 한다는 것이다. 귀신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빛이긴한데, 빛이 결핍된 상태이다.
어둠이란 귀신의 특징인데,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빛의 결핍이다. 제자들이 우리집에 와서 풀려고 하다가 우리 앞에서 싸울 때가 있다. 그러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본다. 자기는 나름대로 빛인 줄 알고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눈에는 마치 어둠을 소쿠리로 퍼서 서로에게 갖다붓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스라엘 사태로 전 세계는 그렇게 어둠으로 들어갔다. 반으로 쫙 갈라졌다. 폭력, 어둠, 미움의 빛으로 서로에게 소쿠리로 어둠을 퍼서 쏟아붓고 있다. 우리가 가난한 자, 약자, 하늘에 닿고자 하는 제자임을 잊어버리고, 내가 이기고 말 것이라고, 증강인이 되어서 너를 부숴버리고 말 것이라고 하면서 싸우고 있다
שׁדי 샤다이 : 전능자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전능한 상태, 아무도 날 건드릴 수 없는 가장 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사진 2 )
이 사진은 뉴욕 한 전시회에서 1등한 사진이다. 심사가 된 후에 정말 많은 논란이 있었다. AI가 그린 그림이었다. AI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없어지고, 예술의 영역에도 AI가 침범하게 된 것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쉐딤의 빛이다
원래 AI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볼까? 하면서 5-60년 전에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AI를 전면으로 드러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세돌과 알파고 사건이다. 그때 참 기억이 난다. 이세돌이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떨면서 그런 말을 했다. 이것은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고 말이다. 인간이 AI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간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다. 인간이 AI를 만들었는데 말이다
일론 머스크가 우리는 AI를 반드시 규제해야한다고 하더라. AI가 우리를 삼켜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AI는 무한대에 가까운 빅 데이터를 그 안에 집어넣어서 만들어진다. 소통할 수 있고, 경청할 수 있다. 인간이 얼마나 소통이 안되는가? 웃어야 할 때 안 웃고, 경청 안 해주고, 딴소리하는 것이 우리인데, AI는 기가막히게 소통해준다. 의사, 판사가 필요없어지고, 인류의 모든 시행착오를 집어넣어서 가장 완벽하고 디테일한 것까지 봐줄 수 있다
저는 목사님은 모르겠는데, 저도 사라질 것 같다. 조준호 녹취록을 읽으면서 저는 조합하는데, AI는 저 녹취록은 껌일 것이다. 모든 설교와 모든 이스라엘의 말씀들을 다 조합해서 훨씬 더 설교를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똥을 싸길 하는가, 깨끗하고 냄새도 안 나니 얼마나 좋은가?
AI 중에서도 약한 AI가 있고 강한 AI가 있다고 한다. 레스토랑에 가면 서빙해주는 로봇이 있는데, 강한 AI가 있다. 자의식을 가진 AI이다. 우리가 시켜도 거부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강한 AI가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영혼, 신성, 그것을 담아내는 바싸르, 그따위 필요없다는 것이다.
므낫세는 사연의 사람이다. 그리고 경험과 그 자신의 트라우마,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우리의 바싸르 안에 다 저장해놓는 지파라고 했다. AI에게서 그 경험 정보를 다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 질문을 바꿔보면, 여러분의 경험, 여러분의 트라우마, 유전병, 모든 사연들을 다 빼버린다면 여러분에겐 뭐가 남을 것 같은가? AI에게서 모든 경험 정보를 빼버리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많은 분들에 야드바쉠에서의 은혜들을 나누어주셨는데, 히틀러는 이것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좌측 세계에서 너희들은 그냥 경험과 사연, 너희들의 트라우마로 가득 찬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너희들의 바싸르가 신성을 담는다고? 하면서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몇천년간 쌓인 나의 경험 정보를 다 빼도, 뺄 때에만 우리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케뎀에서 원래 주님과 하나였다는 사실, 그 근원과 연결된 자를 제자라고 한다. 그 하늘과 닿기를 갈망하는 자, 내 안에서 트라우마를 다 빼도, 나는 고철 덩어리가 아니라, 아버지와 신뢰하겠다는 무기를 가지고 이 땅에 내려왔던 기억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신성한 존재임을, 그런 신성한 바싸르임을 말이다. 그래서 완전한 지혜에 도달하는 것을 꿈꿔본다. 준영이의 살을 문드러지게 만들 수 밖에 없는 DNA, 약함, 그 경험 정보가 다 빠졌을 때, 준영이의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 부활의 바싸르를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였던 기억을 찾을지를 꿈꿀 수 있다
이 상태를 infinity, 무한이라고 배웠다. 무한과 무한을 더하면 무한이 나온다. 그리고 무한과 1을 더해봐도 무한이 나온다. 그러면 무한에서 무한을 빼면 뭐가 나올까? 우리가 세 번째에서 걸리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무한을 숫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Lim/x->a, 미적분, 극한, 이런 것을 배웠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질을 원자, 점이라고 하는데, 크기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점은 박 장로님이 많이 연구하셨을텐데, 선을 계속 쪼개면 점이 된다. 무한으로 쪼개면 점이 된다는 것이다. 무한과 점은 같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무한은 숫자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이다. 무한은 레크 레카이다.
하나님이 우르 카쉐딤, 귀신의 빛, 어둠의 빛에서 나와서 이제 우측, 알 수 없는 상태, 무한의 상태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은 가장 작은 점의 상태,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지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고백하는 그런 신뢰의 상태로 들어가지 않겠니? 이런 극한, 무한의 상태로 들어가지 않겠니? 너의 이 바싸르에서, 너의 의식에서 모든 트라우마를 다 빼도, 너는 정말 케뎀, 그 근원과 연결된 가장 신성한 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않겠니?
AI가 너무 위험해서 규제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겸허히 인정해야할 것이다. 이것을 개발하고 발명하게한 내 안의 능력자를 원하고, 내가 그렇게 단독자, 바드로 정말 신이 되고싶어했던 것을 인정하기를 원한다. 참 재미난 것이 네타냐후가 어떤 말을 했냐면,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더라
이 AI시대, 우리에게 개발된 도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네타냐후가 말한다.
신30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AI라는 것이 우리에게 복인지 저주인지를 말씀해주십시요 라고 하면서 일론 머스크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이것이 우리에게 선한지, 악한지를 이야기했지만, 총리가 그 뒤를 안 읽었던 것 같다.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주님이 원하는 것은 복, 저주가 아니라 생명을 택하는 것이다. 똑같이 능력자라고 불려지는 아브람을 불러내셨는데, 이제 생명이 무엇인지를, 너는 그것을 택하라. 능력을 추구하긴 하지만, 생명이신 아버지만을 담기 원하는 아브라함을 원하신다. 내가 지시할 땅을 상상하라고 하지 않고, 레크 레카, 실제로 가라고 하셨다. 그 땅이 어떤 땅인지 아는가?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준영이가 낫기를 기도하지만, 더 기도해야하는 것은 준영이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겠다, 나는 오직 하나님과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을 찾기를 기도해야한다. 돈, 능력, 외모로 채우는 AI가 아니라, 내 살이 문드러졌을지라도, 나약할지라도, 내 영혼이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하는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교회의 메세지는 참 인기가 없다. AI 처럼 예쁘게 만들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약하기 짝이 없어도 신랑만을 받아들여라. 이런 것이다. 제자들이 이것을 안 하는 이유를 알았다. 레크 레카는 유대인들이 이야기하길, 가장 작은 점과 같다고 한다. 인간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회개라고 했다. 그래서 안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하는 제자가 나타난다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그 작은 점과 같은 회개를 카라반이 지나갈만한 큰 길로 만드셔서, 그때서야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장 작은 회개이다. 굉장히 큰 것을 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가장 작은 것을, 레크 레카를 하라고 하신다. 이 과정을 걸어가라. 숫자로 판단하지 말고, 그저 이 무한의 과정을 걸어가라. 그때 내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하신다
לך לך 레크 레카의 숫자값은 100이다. 소망이란 뜻이 있지만, 원숭이라는 뜻도 있다. 원숭이는 흉내내는 존재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끊임없이 흉내내고, 닮아간다.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라, 나 처럼 죽으라고도 하시지만, 예수님은 죽은 후에 부활의 바싸르를 입고, 너희도 나처럼 부활의 육체를 입으라고 하신다. 양자의 세상으로 넘어가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AI보다 더 아름다운 부활의 몸을 선사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때 우리 준영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피부를 가졌는지 보게 될 것이다. 온 인류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피부를 가졌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고통을 받고 있기에, 가장 아름다운 피부를 주실 것이다
사40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한다. 쿠프한다. 여호와를 향해서 레크 레카하는 자는, 여호와만을 소망하는 그 자는 새 힘을 얻게된다. 제자들, 하늘에 닿기 갈망하는 너희들에게 새 힘을 주겠다, 코아흐, 적용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 이것을 제자도라고 한다. 제자들에게 주시는 힘이다. 닮아가는 자, 도마들에게 주시는 힘이다
도마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필 그 자리에 없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꼭 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제자들은 손의 못자국을 다 보고, 너무 아름다운 주님을 맞이했다.
요20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런데 그 자리에 없던 도마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도마는 내가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 우측 세상, 부활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주님이 친절하시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신뢰를 말씀하실 때 절망하고 있는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원한다. 여러분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시는 주님의 손을 잡기 원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준영이는, 나의 모습은 소망이 없는 이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물을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얼마나 사랑이 많은 주님이신지. 도마의 의심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가? 여러분들도 사람을 믿지 못할 때, 밉고, 폭력을 쓸 때, 얼마나 날아오르지 못하게하는 무거움인지 모른다.
사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עף 우프 : 새 / 피곤한 자
피곤한 자, 이것을 יעף 아예프라고 한다. 어근이 우프이다. 새라는 뜻이다. 새란 날아다니면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이다. 이건 천사들이 담당하는 부분이다. 메세지는 너무 거창하고 큰데, 우리의 꿈, 우측 세상에 대한 꿈, 부활에 대한 꿈은 너무 큰데,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마치 지금 준영이의 상태와 같다. 이 간극이 너무 커서 우리는 너무 절망한다. 정말 피곤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 우리에게 오직 레크 레카하는 자, 오직 쿠프, 앙망하는 자, 소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겠고, 독수리의 날개침같은 힘을 주겠다. 새 중의 새는 바로 독수리이다. 새의 제왕이라고 불린다. 여러분이 독수리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가? 요새 너무 치킨을 좋아한 나머지, 닭인 줄 알고 사는 것 같다. 닭도 날개는 가지고 있다. 지금은 그 닭 날개를 먹기만 하지만, 원래 닭도 날 수가 있다. 제주도에 가면 애월에 닭을 풀어서 키우는 동네가 있는데, 구엄닭이라는데, 거기는 제법 닭이 날아다닌다. 그런데 닭이 왜 날지 못하게 되었냐면, 원래 새는 날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깃털로 날개를 가지고 있어야하고, 잘 날아오를 수 있도록 몸이 날씬해야 한다. 닭이 못 나는 것이 치킨을 좋아하는 여러분 탓이다. 뼈 속이 비어있어야 하고, 창자가 짧아서 음식물을 먹어도 곧 똥으로 나와서 배설물로 나와야 한다. 무거워지는 상태가 날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닭을 먹이를 주어 기를 때부터 몸무게가 늘고 무거워졌다
우리는 신뢰의 세상, 양자의 세상, 우측의 세상으로 날아오르기엔 피곤함으로 너무 무거워졌다. 피곤함, 의심, 미움, 폭력으로 너무 무거워졌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찾아오셨을 때 드디어 양자 역학의 힘을 보여주신다.
요20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분명히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섰다고 한다. 드디어 주님이 벽을 통과하셨다. 부활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본 고로 믿어왔다. 믿을만해서 믿어왔다. 준영이를 고쳐주실 것 같아서 여기까지 믿어왔으나,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여기서의 믿음은 우리의 모든 경험 정보와 트라우마, 사연을 다 빼도 너가 신성이었고, 하나님과 같은 자였다는 우측의 아주 무한의 절정 영원을 너는 정말 믿느냐? 너의 눈에 그것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때 도마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라, 당신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완전히 항복합니다. 내가 담은 것은 건강도, 매끈한 피부도 아니고 오직 신랑이십니다. 이것이 므낫세를 완성한 도마, 교회의 사역이었다
도마는 닮아가는 자이다. 끊임없이 닮아가고, 무한대로 변화하기에 정해져있는 고철덩어리가 아니었다. 왜 여호와를 앙망하고 기다리시는가? 능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능력은 이미 다 와 있다.
제가 엊그제 목사님과 단풍 구경을 갔는데, 너무나 예쁜 거리에 해가 져버리고 만 것이다. 너무 예쁜 청평 거리를 드라이브 하는데, 이미 다 졌다. 너무 아름다운 거리란 것은 알 수 있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저는 그 3-40분,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거리, 이미 존재하는, 빛이 비춰질 때, 태양이 떠오를 때 보여질 수 있는 거리를 걸으면서 이게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우리는 완전하고 아름다움에도, 빛이 없기에, 그 근원과 연결되는 기억을 잃어버렸기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살 수 밖에 없구나. 그러나 주님을 앙망하는 자에겐 새 힘을 주신다고 하셨다. 이 힘은 빛이고 성령이고 바람이다.
독수리 날개침에 대해서 연구했는데, 사40장에 우리 주님이 강조한 것은 독수리 자체가 아니라 날개라고 한다. 영어 성경에도 번역하면, soar on wings라고 되어있다. soar은 독수리의 네 가지 비행 중 하나이다. 첫 번째는 수평으로 나는 일반적인 날개짓이 있고, 두 번째는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땅을 향해서 먹이를 발견하면 하강하는 비행이 있고, 네 번째가 독특한 비행인데 soar on, 비상이다. 이 독수리는 자기 힘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바람이 불어올 때 그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고 한다.
상승기류가 있는 산봉우리, 공기가 뜨거워지면 올라가는데, 그런 수직 바람이 있는데, 그 바람이 불어올 때 독수리는 그 바람을 알아채고 수직상승, 비상을 한다고 한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같을 것이라는 표현은, 자기 힘으로 날아오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 오직 수직 바람과 같은 하나님이 불어오시는 성령을 기다리다가, 그것이 오면 딱 타고 비상한다는 것이다. 이런 바람을 타고 싶으신가? 주님을 앙망하고 레크레카하는 무한의 여정을 가는 제자들에겐 주님이 반드시 이런 은혜의 바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심의 무거움, 분노의 무거움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누리호가 연료통을 내려놓아야 비상할 수 있듯이, 우리는 내려놓아야만 비상할 수 있다
므낫세는 동생 에프라임 때문에 참 많이 가리워진 인물이었다. 인류 역사상 형과 동생이 서로 물고, 뜯고, 죽이고, 지금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상태가 벌어졌는데,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므낫세됨을 요구하신다. 므낫세는 동생 에프라임을 위해서 자신을 철저하게 비운 사람이었다. 카인과 아벨도, 마 집사님이 간증하셨을 때 이야기하셨는데, 이스마엘과 이삭, 야곱과 에서도 화해할 수 없는 형제간의 사랑의 티쿤을 므낫세가 이루었다. 다른 사람을 내 생명보다 더 아껴주는 그 사랑을 통해서, 질투심 없이 에프라임의 고유한 선물과 포지션을 이해하는 사랑이 있었기에, 동생을 지원할 수 있었다. 지금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이스라엘에게 므낫세됨을 요구하시며 날아오르라고 하신다
평화가 하나를 보내주었는데, 이 클립은 므낫세와 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사랑하기 원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음악 축제에 허쉬라는 아들이 놀러갔는데, 그 허쉬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날이 샤밭이었기에 그 엄마가 말하길 폰을 잘 안 받은 것이다. 사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되고 폰을 확인했는데, 마지막으로 아들에게서 온 문자 메세지가 있었다.
"I love you, I am sorry".
마지막에 우리가 해야할, 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사랑합니다.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팔이 하나가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었고, 이 어머니가 테러범들의 공격에 의해서 왼팔이 날아가버린채 납치된 아들이 언제 죽었는지, 10일 전에 죽었는지도 모르는 어머니가 유엔에서 연설을 하셨다. 너무나 강력하고 차분하고 아름다운 연설을 하셨다.
여러분, 증오, 미움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너무 편안하고,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습니다.
테러범들에 의해서 테러당하고 납치된 아들의 생사를 앞에 두고 살아있는 모든 자에게 결코 쉬운 길을 가지 말아달라는 호소가 멈추지 않는 울림을 준다고 평화가 메세지를 보내왔다. 증오는 너무나 달콤하고,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하고 쉽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쉬운 길을 가지 마십시요. 그러면서 한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대피소에 있던 경비원이 있었는데, 그가 무슬림이었다. 이스라엘의 적이었던 것이다. 그 경비원이 공의를 선택한다. 여기에 있는 모든 자가 바로 다 나의 생명이라고 고백하면, 용기를 내서 공의를 선택하고 사람들을 구해주는 용기있는 자를 언급한다.
평화가 했던 마지막 문자를 읽어드리겠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지정 능력, 창의력, 통찰력, 지각력을 사용해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을 상상해보는 요즘입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상상하면 안되는 그런 역설적인 것들을 상상해봅니다. 이 전쟁 끝에는 모두가 보기를, 고통과 참혹함 끝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인 것을 깨닫게 되기를.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미움, 무거운 의심, 폭력, 화의 모든 트라우마의 정보를 다 빼도, 우리는 절대 고철 덩어리가 아니라, 근원과 연결될 수 있는 부활의 몸을 가질 수 있는 영혼인 것을 알기 원하면서 이 도마의 찬양을 해보도록 하자
==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우리가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게 하소서.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신뢰의 세상으로 날아오르게 하소서
* 기도
하나님, 지금 이 순간도 고통받고 있을 우리 준영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깨뜨릴 옥합이 없고, 주께 드릴 향유는 없지만, 내 안에 이런 모든 질고와 고통,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빼버려도 나는 고철덩어리가 아니라, 신의 형상인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 준영이에게 새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그 바람, 케뎀의 동풍을 준영이에게 불게하사, 독수리 비상하듯이 날아오르게 하소서.
우리 교회 가운데 단독자의 이기심을 대신해서 지고있는 강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정말 감사하고, 사랑하고, 죄송합니다. 그들의 영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게하시고, 그들이 이 고통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그 때에도, 계속해서 케뎀의 동풍으로 우리를 지원하시는 그 사랑, 네가 믿지 못할지라도 내가 도와주겠다. 그렇게 도마에게 찾아오신 주님, 벽을 통과해서 찾아오신 주님, 이제 그들에게 찾아와주소서. 우리의 모든 장벽을 통과해주셔서 우리에게 찾아와주소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상상하면 안되는 것들이 있지만, 이 모순과 역설을 상상해봅니다. 수많은 참혹함과 고통과 전쟁 끝에 우리가 모두 하나인 것을 깨닫게되는 이 역설을 상상해봅니다. 이 이스라엘에 찾아가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능력자가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미워하고, 그렇게 나를 채우라고, 지금도 무겁게 독수리임에도 닭처럼 살아가는 우리가 이제, 이스라엘이 이제 공의를 찾고 용기를 내게하여 주소서.
능력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추구하며,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AI로 만들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레크 레카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하시는 주님, 이 무한의 과정을 걸어가라. 하늘만을 갈망하라. 제자가 되어라. 진정한 혁명을 일으키라는 주님 앞에 우리가 예스합니다. 우르 카쉐딤, 그 귀신의 빛에서 나와 당신의 세상으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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