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없이도 구원 받는다’는 로마가톨릭교회
만인보편구원주의
-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전 고신대 교수)
로마가톨릭교회는 예수 없이도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태인과 무슬림도 구원받고, 미지의 신을 찾는 사람들,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는 ‘만인보편구원주의’를 표방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의 으뜸가는 차이는 구원론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행위구원 교리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표방한 만인보편구원주의가, 심각한 교리로 대두되어 있다. 역사적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 고백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화해자라고 믿는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개신교회는 다만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개신교회 안에도 만인보편구원주의 사상을 가진 교회들이 있다. 자유주의 신학에 개방적인 진보계 교회들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이 사상을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과 능력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만인보편구원주의와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것들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전혀 다르다. 예수를 믿어야 할 까닭,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1. 구원의 길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현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를 확정지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가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의식 변화를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 공의회는 교회의 자각과 쇄신, 신앙의 자유, 종교와 정치의 제 역할 찾기, 개별 민족과 사회 존중, 세계 평화,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 타종교와의 대화, 예전 개혁 등 로마가톨릭교회의 현대화를 촉구했다. 한국천주교회의 조상 제사 수용, 각국의 토착화된 성모상 등장, 미사 집전 때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 사용, 평신도 역할 부상 등의 변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일어났다. 만인보편구원주의는 이 같은 변화의 물결을 따라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연구·토론·결정한 4개의 헌장,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 담겨 있다.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바티칸이 제정한 <가톨릭교회교리서(1997)>도 중요한 문서이지만, 공의회 문헌은 가장 권위 있는 원 자료, 1차 자료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은 교황이 지배하는 로마가톨릭교회를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과 로마가톨릭교회를 일치, 등식화한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 곧 로마가톨릭교회 안에서 인간과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제14항).
‘교회헌장’은 자기 탓이 아닌 까닭으로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고, 구세주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바란다. “아직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타종교인들이 “가진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그것들은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제16조)”이라고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비그리스도교 선언’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기원이며, 그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고 한다(제1항). 힌두교는 신에게 귀의하여 인생고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한다. 불교는 자기 노력으로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그 밖의 전 세계 종교들도 교리와 생활 규범과 신성한 예식 등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이들 (타)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 양식과 행동 방식 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교회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제2항)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무슬림과 유태인들도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 따르면 무슬림은 살아 계시고 영원하며 자비롭고 전능한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유일신을 흠숭하며,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이며, 또 마리아를 공경한다. 모든 사람을 부활시켜 공정하게 갚아 주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제3항). 유태인들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 계획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 “그들의 조상 덕택에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롬 11:28-29)”이라고 한다(제4항).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유태인의 책임과 관련하여, 공의회는 당시의 모든 유태인 생존자와 그 후손에게 그 책임을 차별 없이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예수를 죽인 책임은 그 사건에 가담한 유태인 당사자들에게만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유태인들이 하나님의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인 것처럼 표현함은 잘못이라고 한다(제4항).
2. 비그리스도인의 구원
로마가톨릭교회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따라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한 무지, 불가피한 무지를 조건으로 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바티칸은 로마가톨릭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비로마가톨릭 신자들과 “타종교의 추종자들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주님이신 예수님, 2000, 제22항)”고 선언한다.
개신교회 신자들, 비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정교회, 성공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교회 분열의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당사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닌 경우, 곧 개신교회나 정교회 가정에서 태어나 로마가톨릭교회가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만 ‘불가피한 무지를 조건’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교회헌장, 제14항-제16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따라 신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한다(제16항).
정리하자면, 예수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래와 같다. ①유태인: 조상 덕택으로 구원을 받는다 ②창조주를 알아 모시는 모든 사람들: 신을 믿는 모든 종교인들 ③이슬람 신도들: 아브라함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 ④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미지의 신을 찾고 있는 사람들 ⑤진실한 믿음으로 신을 찾는 사람들 ⑥양심의 명령을 따라 신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⑦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등이다.
3.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로마가톨릭교회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교회와 무관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지 않는다.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세 부류의 사람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로마가톨릭교회라는 제도와 교회 조직 안에 있는 사람 곧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된 사람일지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 있는 사람”(교회헌장, 제14항)이다. 다시 말하면 온전한 마음을 다하지 않는 형식적인, 명목상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우신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제14항)이다.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 교의신학자나 역사신학자가 이 부류에 속한다.
셋째,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 허황된 생각에 빠지거나, 진리를 거짓과 뒤바꾸고 피조물을 섬기는 자, 하나님 없이 살다 죽어가는 극도의 절망에 놓인 사람이다(제16항).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다가 사탄에 미혹당한 악인들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황청은 2000년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와 로마가톨릭교회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내용의 교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그 이후의 신학 선언들의 위험을 감지하고, 종교적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진보적 로마가톨릭 신학자들과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주교들을 겨냥한 경고였다(주님이신 예수님, 제22항). 이 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딤전 2:4)”고 한다(제13항, 제22항). 만인보편구원주의 구원론과 예수 구원 유일성을 모호한 방식으로 결부시킨다(제13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로마가톨릭교회 밖에서 하나님을 찾고 양심대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위 교서는 “교회 밖에서 영위되는 종교적 믿음(belief)은 여전히 다만 절대적 진리를 찾고 있는 종교 경험”(제7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원관은 이처럼 야누스적이다.
4. 로마가톨릭 신학자들
타종교인들의 구원에 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적 천명은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의 만인보편구원주의와 일치한다.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의 죄 때문에, 자원하여 고난과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도록 했다. 따라서 교회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표지이며 온갖 은총의 원천으로 선포해야 한다(비그리스도교 선언, 제4항)”고 한다.
칼 라너(Karl Rahner, 1886-1968)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에서 가톨릭 신학을 가르친 신학자였다. ‘익명의 그리스도론(Anonymous Christology)’으로 유명하다. 라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만인보편구원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신학의 핵심은 배교적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며, 이 땅에는 많은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너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총 아래 있다는 관점으로 기독교의 구원과 일반종교의 구원을 연계시킨다.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타종교들도 하나님이 자유롭게 주시는 선물인 초자연적 은총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종교들 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한다. 라너에 따르면, 모든 인류는 ‘익명의 그리스도’를 거쳐 각자 자기 나름대로 구원을 받는다. 타종교인들은 ‘익명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다(칼 라너, “익명의 기독교와 교회의 선교적 사명,”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 김승철 편저, 서울: 나단, 1993, 112). 하나님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능가하는 크고 위대한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은 기독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원의 보편적 가능성을 창조행위 안에 존재론적으로 부여했다.
라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으며,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타종교인들에게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인다. ‘익명의 그리스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으로 라너가 의도하는 바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구원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라너는 ‘하나님은 온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말로써,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익명의 우주적 그리스도, 보편적 구원자로 변형시킨다.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은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 ‘익명의 그리스도인론’을 ‘신학적 기만’으로 단정한다. 라너의 이론에서 기독교의 역사성은 전부 어디로 갔느냐고 지탄한다. 라너의 사고가 하나의 변증법이며, 그러므로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밖에는’, ‘없다’, ‘교회’, ‘구원’ 등 이 모든 개념들을 마구 섞어 놓으면, 결국엔 정반대의 말도 할 수 있게 된다. 곧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 많은 구원받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니다. 라너는 이들이 모두 당연히 ‘익명의 로마가톨릭교인들’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는다. 라너가 로마가톨릭교회 사제의 신분을 포기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이렇게까지 까놓고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한스 큉,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서울: 한들출판사, 1998, 111).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 1918-2010)는 스페인 출신 로마가톨릭교회 사제이다. WCC의 탈기독교적 신학 방향 설정에 이바지한 신학자이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 신자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종교 경험을 바탕으로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펼쳤다. 파니카는 ‘보편적 그리스도’와 ‘특수한 예수’를 나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 밖에도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고 한다(Panikkar, 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 Maryknoll, NY: Orbis, 1984, 168).
파니카가 말하는 ‘보편적 그리스도’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힌두교의 라마(Rama), 크리쉬나(Krishna), 불교의 석가, 이슬람교의 마호메트, 유교의 공자 등이 역사적 인물로 나타난 그리스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무하마드 그리스도, 공자 그리스도, 모택동 그리스도, 김일성 그리스도 등 수많은 ‘그리스도’가 있다는 뜻이다.
파니카에 따르면, 일곱 가지 다양한 색깔이 모여 무지개를 이루듯 세계의 각 종교는 한 개의 ‘궁극적 신적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문화, 역사의 반응이다. 역사적 종교들은 빛이 스펙트럼을 통과하면서 발생시킨 파장들에 지나지 않는다. 각 종교의 고유소(固有素)는 타종교의 그것들과 더불어 신적 실재를 더욱 완전에 가깝게 드러낸다고 한다(파니카, 종교 간의 대화, 서울: 서광사, 1992, 26-27).
로마가톨릭교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보편주의 목소리와 신학자 칼 라너와 라이문도 파니카의 사상에 담긴 종교다원주의 사상은 세계교회협의회(WCC) 신학 안에 메아리치고 있다. 특히 ‘바아르 선언문(1990)’과 지난해 부산에서 일방적으로 선포한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2)’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5. 분석과 질문
기독인과 비기독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종국에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면, 왜 하필이면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죄 사함, 중생,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구원 활동이 기독교 밖에도 있다면, 고난과 박해를 받으며 예수를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당위성이 없다. 한국과 같은 다양한 종교 사회에서, 태국과 같은 불교 국가에서, 이라크와 같은 이슬람교 국가에서, 중국과 북한과 같은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나라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꼭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인보편구원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전도(顚倒)시킨, 뒤틀린 신학 이론이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본류에서 벗어난 신념이다. 신(神)의 보편적 부성(父性)인 사랑을 강조하여 모든 영혼이 조건 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의 고백과 성경적 진리에 반(反)하는 이단 교설(敎說)이다. 만인보편구원주의와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필요성을 상대화하는 결정적인 함정에 빠진다.
바울은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길이 여럿 있다고 하는 발상을 거부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4-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둔 것 외에는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2:10-11)”. 바울의 이 같은 언명에는 ‘익명의 그리스도’,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 ‘보편적―우주적 그리스도(Universal Christ)’, ‘숨겨진 그리스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복음 전도는 거짓 신들을 버리고 참 하나님인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초청이다.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은 성육(成肉)한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뿐이라고 호소하는 활동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졌지만 모든 인간이 자력으로, 양심이나 바른 삶이나 미지의 신을 추구하는 행위로 구원을 얻을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다. 구원의 길은 인간으로 강생한 하나님의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보여준 계시는 모든 인간적·종교적·사변적 노력을 허물어뜨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선언은 독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행 4:12),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계시한 진리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만인보편구원주의 사상을 배격했다. 종교의 다원적 존재를 거부했다. 타종교에 대항하고 싸웠다. 타종교와 우상숭배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엡 4:4-6; 롬 1:20-22; 고전 8:4).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5-6)”.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아테네 사람들에게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Unknown God)’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고 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면, 왜 바울 사도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외쳤겠는가? 어떤 종교든지 결국 같은 신을 섬기고 그 종교들이 구원의 길이라면, 왜 그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 “천지의 주재”,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이”를 소개하며 그 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회개하라(행 17:30)”고 외쳤겠는가? 바울이 믿었던 신은 왜 이미 신들을 믿고 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바울을 보내어 무자비하게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고난을 감수하도록 허락했겠는가?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유일성을 명확하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안에서만 하나님의 구원이 있음을 선포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여러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보통명사가 아니다. 약 2000년 전 이 땅에 인간으로 강림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명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만 붙은 독보적 이름이다. “옛날 임금 다윗 성의 낮은 마구”에서 태어나고, 나사렛이라는 시골 동네에 살고, 서른 세 살의 나이에 골고다 언덕에서 인류의 죄 문제 해결을 위해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고, 죽고 부활한 예수, 그분이 유일무이의 구원의 길이다.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 뿐”인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는 유일의 구원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예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 곧 로마가톨릭교회의 만인보편구원주의를 폐기한다고 선언할 용기가 없는가? 이단 사설(邪說)을 버리지 않겠는가?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선전포고’를 취하하고, 성경과 사도적 복음에 충실한 역사적 개신교회와 일치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마리아를 중보자로 믿는 로마가톨릭교회
마리아 숭배
-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전 고신대 교수)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구원의 중보자로 믿는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는 두 길이 존재한다. 예수와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올라 있다. ‘성사위일체(聖四位一體)’라 불릴 정도이다. 마리아는 신앙과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살았고 원죄가 없으며, 자범죄도 범하지 않았고, 죽자마자 육체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믿는다.
마리아 교리는 구원자-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을 격하시키는 이단 사상이다. 마리아 숭배 행위는 우상숭배이다. 성경 어느 부분도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 교리와 ‘성모 숭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마리아 숭배는 지중해 세계에 만연한 이교의 여신숭배 사상 및 행습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1. 일평생 동정녀 교리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마리아가 일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는 교리를 로마가톨릭교회의 진리로 확정했다(교회헌장 제52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499조). 공의회 ‘교회헌장’은 약 4분의 1 분량을 마리아 교리 서술에 할당한다(제52-69항).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의 형제들이라는 야고보와 요셉(마 13:55)”은 어떤 관계인가?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들이 “예수의 한 제자인 다른 한 마리아의 아들들(마 28:1)”이라고 한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형제들’이란 구약시대의 표현 방법이며, “예수의 가까운 친척을 일컫는 말(가톨릭교회 교리서 제500조)”이라고 풀이한다.
마리아가 일평생 동정녀로 살았다는 교리의 배후에는 이원론적 헬라주의 사상과, 고행주의를 미덕으로 여기는 세속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성(性)을 경멸하는 이방 세계의 시각이 로마가톨릭교회를 통제한다. 교회는 플라톤주의 이원론과 고행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교리를 발전시켜 왔다.
성경은 요셉과 마리아가 여러 명의 자녀들 두었다고 증언한다.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했으나,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와 같이 자지 않았으며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마 1:25)”고 한다. 성령으로 잉태된 첫 아들을 낳은 뒤, 다른 자녀들을 낳았음을 시사한다. “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마 13:55-56)”. “이 일이 있은 후에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내려갔으나 거기에 여러 날 머물러 계시지는 않았다(요 2:12)”. 이 구절들은 마리아가 성생활과 무관하지 않으며, 여러 자녀들을 낳았음을 시사한다.
예수께는 최소한 두 명 이상의 ‘누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마 13:56)”. 위 번역문은 평양판 <성경전서(2010)>에서 옮겨왔다.
2. 원죄 없음 교리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마리아에게 불멸의 영혼이 주입된 후, 그녀는 윈죄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은혜를 입을 수 있었고, 또 은혜를 입었다. 마리아는 원죄 없이 태어났다”고 했다(John Trigilio Jr, Catholicism for Dummies, 2003, 265).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다는 교리는 19세기에 이르러 공식 교리로 등장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가 원죄의 오염 없이 아이를 잉태했다고 선포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다(The Catholic Encyclopedia, VII, 674)”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마리아의 평생 무죄설을 확정했다. 평생 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라고 한다(교회헌장 제56항). 로마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그녀의 전(全) 지상 생애 동안 어떠한 종류의 죄도 범하지 않았다. … 일평생 모든 자기 죄(자범죄)에 물들지 않았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411조, 제508조)”고 한다.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는가? 자범죄와 무관한가? 이 교리는 마리아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아닐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3. 중보자 마리아 교리
교황 베네딕트 15세(1914-1922)는 마리아의 ‘구원 협력설’, 곧 중보자 마리아 교리를 선언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를 확정했다. “복된 동정녀께서 사람들에게 미치는 모든 구원의 영향은 사물의 어떤 필연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의에서 기인하고, 또 그리스도의 넘치는 공로에서 흘러나온다(교회헌장 제60항)”고 한다.
마리아는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아들과 함께 수난을 겪었다. “영혼들의 초자연적 생명을 회복시키고자 온전히 독특한 방법으로 구세주의 활동에 협력했다(제61항)”.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인류 구속 역사에 참여했다. 구원사역에 협력했다. 마리아는 승천한 뒤에도 구원사역 임무를 계속한다.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주신다. … 그 때문에 복된 동정녀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중보자)라는 칭호로 불린다”고 한다. “하나님의 유일한 신성이 피조물들 안에서 실제로 갖가지 모양으로 퍼져 나가듯이, 구세주의 유일한 중개도 피조물들 가운데에서 그 유일한 원천에 참여하는 다양한 협력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불러일으킨다(제62항)”고 한다.
중보자 마리아 교리는 하나님이 마련한 구원의 길 밖에 또 다른 길, 다른 중보자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유일한 중보자(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엄과 능력을 침해한다. 유일한 구원자-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을 모독하고 격하시킨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실제로 구원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자들은 마리아에게 직접적으로 기도한다.
4. 마리아 승천교리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가 죽는 순간에 승천했다는 교리를 선포(1950)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녀였던 하나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를 마친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계시된 신앙의 진리이다(The Catholic Encyclopedia, XIII, 185)”고 믿는다. 성경은 마리아의 죽음에 관해 침묵하지만, 교회의 ‘전통―성전(聖傳)’은 그가 천국으로 들리어 올라갔다고 가르친다고 한다(Catholicism for Dummies, 265-266). “마리아가 지상 생애의 여정을 마쳤을 때 몸과 영혼은 하늘 영광으로 올림을 받아 주님에 의하여 만물 위에 여왕(Queen)으로 존귀하게 되었다.” 마리아가 “주님께로부터 만물의 여왕으로 추대받았다(교회헌장 제59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966조)”고 한다.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치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했다고 하지 않는다. 만물 위에 여왕으로 등극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능성을 떠올리는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가 마리아에게 부여한 ‘하늘의 여왕’이라는 칭호는, 원래 바벨론 신전의 여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이교 명칭을 마리아에게 부여하여, 만왕의 왕 만유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찬탈하는 불경죄를 범하는 격이 되게 했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하늘의 여왕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왕권 일부를 찬탈한 범죄자이다. 대역죄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종래의 마리아 교리와 교황 비오 12세의 선언들을 고스란히 추인했다. 마리아는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티 없이 깨끗한 동정녀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져, 주님들의 주님이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인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교회헌장 제59항)”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향한 기도를 장려한다. 마리아는 하늘에서도 우리의 ‘변호자’로서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한다. 그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중보자)라는 칭호로 불린다(제62항). 모성애로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스도는 효성이 지극하기 때문에 어머니 마리아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다(제62항). 그래서 신자들은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님! … 이제와 저의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하고 기도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신도들에게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는 길은 둘이다. 신자들은 중보자(중재자, 중개자) 마리아 조형물 앞에 촛불을 켜놓고, 그 상을 향하여 손으로 십자가 표시를 하고 합장으로 예를 올리며, 절을 한다. “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는 성경의 계명에 역행하는 종교 행위를 한다.
5. 우상숭배
마리아는 가장 복 있는 여인이다(눅 1:42). 참으로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성육신 과정에 자발적으로 수종을 들었다. 구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나님의 귀한 쓰임을 받은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인간이다. 예배, 기도,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원죄가 없다거나, 자범죄가 없다거나, 승천했다거나, 인류 구원의 중보자, 중개자라는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미신과 이교신앙과 광신과 교회 권력의지의 결과이다.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통치 이후에 교회 안에 들어온 이교는 서방교회의 미신적 교리를 부추겼고, 마리아 교리와 마리아에 대한 우상숭배 행습을 가져왔다. 에베소공의회(431)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神母)’라고 규정했다. 이 결정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에서 정통신앙으로 수용되고 있다.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뉘앙스를 지닌 이 칭호는, 본디 마리아를 높이는 표현이 아니라 그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 위격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마리아에 대한 로마가톨릭교회의 흠숭, 공경, 상경은 실제 교회 생활에서 인간숭배로 자리잡았다. 신자들은 마리아 상을 향하여 절을 하고 공경의 예를 표한다. 십계명의 제2계명에 저촉되는 경배, 예배, 숭배 행위를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십계명에서 우상숭배 금지 계명, 곧 제2계명을 배제한다. 열 번째인 탐심에 관한 계명을 둘로 나누어 열 가지 계명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우상숭배에 대한 계명을 제1계명에 포함시켜 그 명령을 축소, 마비시킨다.
로마는 성상숭배, 성유물숭배, 성인숭배를 하고 있다. 또 일제 말기 정치적 동기로 일본의 신사참배, 중국의 공자숭배, 한국의 조상제사를 허용했다. 여러 해 전 김수환 추기경은 유생 김창숙 선생의 묘소에서 제물을 바치고 몇 차례 큰 절을 하고 술을 따라 바쳤다. 한국 천주교회 사제 문규현 신부는 국토를 남북으로 통과하는 삼보일배 행사의 출범식을 하는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산신령 화상을 향하여 불교 승려와 함께 큰절(사제서품 때처럼 바닥에 완전히 엎드리는 형식)을 하고 제물과 술잔을 바쳤다.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불교 사찰의 템플스테이 행사에 참여하고, 불교의 108 참회기도문을 외우며, 불상을 향하여 절을 하기도 한다. 십계명에서 제2계명을 빼버린 결과는 다양한 형태의 우상숭배 활동으로 나타난다.
6. 이교 배경과 관련성
마리아 교리와 행습의 배후에 있는 이교 배경과 관련성은 성모에 대한 공경, 상경, 흠숭 또는 숭배 행위가 우상숭배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뒷받침한다. 마리아론이 로마가톨릭교회 안에서 그토록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마리아가 ‘하늘의 여왕’으로까지 숭상되는 까닭은 이교 풍습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 끝난다. 기독교회가 박해를 받고 있는 기간과 그 뒤 얼마 동안,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없었다. 4-5세기까지도 마리아 축제라는 것이 없었다. 마리아에 대한 기도가 없었다. 마리아를 칭송하는 신학 이론도 없었다.
핍박기가 끝나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391 AD)되면서, 기독인들 사이에 마리아 숭배 행습이 나타났다. 창검의 힘과 위협에 눌려 형식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이교도들, 중생 체험이 없는 자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옛 종교의 여신들(female deities)을 예배하는 자신들의 풍속을 기독교 안으로 가져왔다. 마리아를 ‘항구적 동정녀’로 생각한 암브로시우스, 제롬, 어거스틴도 마리아에 대한 공경심이 자칫 이교의 모신(母神) 숭배 신앙과 동일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모신숭배 행위는 고대 근동의 여러 종교들에서 나타난다. 아르테미스(Artemis), 더메터(Demeter),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와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다이아나(Diana), 세레스(Ceres), 비너스(Venus) 등 여성 신 개념은 바벨론에서 왔다. 바벨론은 이 땅 ‘최초의 왕’의 아내인 이스타르(Istar)를 ‘위대한 어머니’로 숭배했다. 서양 세계에 기독교가 번영하면서 바벨론의 여신 숭배 사상은 마리아 공경과 숭배로 대체되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경고한 바벨론의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렘 7:18; 44:17)’이 기독교의 ‘여신 마리아’로 바뀌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으로 섬기던 여신 아스다롯 숭배(삼상 7:3, 4; 왕상 11:5, 33; 삿 2:13, 10:6)가 기독교 형태로 옷을 갈아입었다.
어느 로마가톨릭교회 학자는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 에베소라고 주장한다. 에베소는 마리아에게 아주 특별한 도시이다. 에베소공의회(431)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 교리를 다루었고,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규정했다. 이는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에베소는 여신 아데미(행 19:27, 35)에 대한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곳이었다.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예수의 위격(位格)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러나 당시 에베소에 번창하던 헬라주의 여신 개념이 반영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에베소공의회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부여하자마자, 열성적인 이교 출신 기독교 신자들은 당장 “위대한 하나님의 어머니, 찬송받을지어다” 하는 송영을 올렸다. 그들은 정치적 동기 또는 형식상 기독교로 전향한 자들이었다. 송영 형식은 에베소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에 대한 칭송과 같았다. 이스다롯(Ishtar, Ishtarot), 퀴벨레(Cybele) 여신 숭배 개념과 이교 여신숭배 신앙 행습이 곧장 ‘하나님의 어머니’에게 적용되었다.
웅장한 교회당 모자이크는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묘사했다.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기오레대교회당 벽화는 마리아를 이교 여성 모신(母神) 형태로 표현한다. 마리아상에는 이교 여신들의 옷과 장식이 달렸다. 바벨론 여신과 동일한 모습의 하늘의 여왕으로 묘사되었다. 바벨론 어머니와 아기에 대한 예배 형태가 기독교 안에서도 나타났다. 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함께 묘사한 그림들은 모자(母子)를 그린 이시스와 호루스, 퀴벨레와 아티스 그림과 동일한 형태였다(Erich Bruning, Project Einheit, 2004, 40-41). 여신을 숭배하던 종교 건축물들이 우뚝 솟은 것처럼, 큼직큼직한 마리아교회당, 마리아 기념 채플이 건축되었다.
주후 5-6세기에 이르러 서방교회는 마리아에게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마리아를 계시록 12장 1절의 ‘열두 별의 관을 쓴 여자’로 해석했다. 마리아를 성부, 성자, 성령과 동격으로 간주할 정도로 높은 공경을 바쳤다. 마리아에 대한 공경 의식은 5세기에 나타났다. 마리아 축제는 7세기, 마리아 무흠(無欠) 잉태설, 곧 원죄가 없다는 사상은 12세기에 각각 등장했다. 마리아 승천교리는 15세기 신학논쟁의 주제였다. 동정녀 마리아의 우주적 권위는 그가 지상의 생을 마칠 때 몸과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신앙에서 극대화되었다. 그 무렵 마리아에 대한 기도가 등장했다. 서양 중세인들은 사실상 마리아를 포함한 ‘성사위일체(聖四位一體)’를 믿었다. 마리아는 존경, 흠숭, 공경의 차원을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서양 중세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했다. 십자군 원정을 치를 서방세계의 신앙은 더욱 감정적으로 변하여, 인간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 구원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라 마리아였다. 어머니와 그 아들의 이야기는 대단한 호소력을 지녔다. 죄인을 위해 마리아가 아들에게 동정적 탄원을 하면, 그 어떤 무서운 죄와 비열한 허물도 모두 용서한다고 믿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청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직자와 수도사만이 아니라 왕, 기사, 농부도 마리아의 도움을 간청했다. 성모는 낭만적 망상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리아를 위한 전승 기념물로 건축되기도 했다. 그 시대 농부들은 그리스도의 피가 섞인 땀방울 뿐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유방에서 짜냈다는 젖을 지역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대와 그 이후, 마리아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19세기에 105차례, 20세기 430차례 나타났는데, 모두 여성의 환영(phantom)으로, 광명―빛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였다고 한다. 성경은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난다고 한다(고후 11:14). 유럽연합 기(旗)에 새겨진 12별의 왕관은 열두 별이 달린 왕관을 쓴 ‘하늘의 여왕(계 12:1)’, 곧 국가와 종교와 세상의 통합을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다.
유럽연합 기(旗) 초안에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초안이 거절되자, 유럽위원회 문화성 수장 폴 레비가 현재의 것을 만들어 승인을 받았다. 벨기에인 레비는 유태교에서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어느 날, 마리아 상에 비치는 햇빛에 반사된 푸른 하늘에 나타난 장엄한 황금 왕관에서 유럽연합 기 모양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연합이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 여황’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그녀를 지극히 공경함을 상장한다.
마리아 신앙은 이처럼 이교의 텃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부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은 로마교회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Regina coeli)’, ‘공동 구속자(Coredemtrix)’,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gratiarum)’ 같은 칭호들로 치장하는 행위를, 그릇된 신앙심의 결과이며 궤도를 이탈한 무절제한 짓이라고 본다(Rene Laurentin, Kurzer Traktat der Marianischen Theologie, 1959, 101).
7. 마리아 교리와 교회일치운동
한국 천주교 교의학자 심상태 교수(수원가톨릭대)는 에큐메니칼 운동 맥락에서 마리아 교리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마리아 숭배 또는 공경의 타당성을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한 구원사적 기능을 수행한 데서 찾는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성육신 사건에 어머니로 참여했고,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자의적으로 적극 협력했으며,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順命)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했다. 따라서 교회가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께 바치는 공경인 흠숭지례(欽崇之禮)보다 낮으나 일반 성인들에게 바치는 공경지례(恭敬之禮)보다 한층 높은 상경지례(上敬之禮)로 마리아를 각별히 공경함이 지당하다고 주장한다(심상태, 가톨릭의 교회 일치적 마리아론, <사목> 244, 1999.5., 21-55).
심상태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그리스도를 잉태했으며, 사망 즉시 승천했다고 하는 로마가톨릭교회 교리는 공의회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교황이 ‘특수 교도권’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했다고 말한다. 이 지적은 마리아 교리에 대한 심상태의 부정적 관점을 암시한다. 그는 마리아에 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비판적인 아래 글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인용한다.
“하나님의 모친 마리아가 교회를 위해서 전구한다 할지라도 죽음을 물리쳐야 하고, 사탄의 어마어마한 힘과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다. 마리아가 이를 행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마리아는 온갖 최고의 찬미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똑같이 간주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신앙과 겸손의 모범을 따를 것을 원한다. 그런데 마리아에 대한 과장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서야 할 자리에 마리아가 대신 들어서게 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마리아 교리를 문제 삼지 않은 채 사실상 인정하는 형태로,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시적 교회일치를 추구해 왔다. WCC 역사에서 마리아론이 쟁점으로 전면에 부각된 적이 없다. 마리아론을 부정적으로 다룬 문서도 없다. 더구나 마리아 교리에 우호적이다. WCC의 ‘하나의 신앙고백(1990)’은 에베소공의회(431)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한 것과 관련해 “마리아는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완전한 의탁, 그녀의 활동적 신앙의 반응, 그리고 그녀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가 교회의 유형(typos)과 모범으로 여겨져 왔다”고 말한다.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와 관련하여 회원교회들에게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 숭배 행위를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론을 옹호한다. 고대 교회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규정했고, 개신교회, 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가 모두 성육신의 신비에 신앙을 두고 강조하므로 “마리아 숭배가 미신이 아니냐고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Rita Turner, Mary in the Ecumenical Movement, 1991, 668)”고 한다.
WCC 관련 문서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마리아론’은, 마리아 교리에 대한 이 단체의 우호적인 태도와 신념이 “로마가톨릭교회와 대화를 한 결과”라고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마리아가 유용한 촉매 역할을 하며”, 이로써 “상호 두려움이 잠재워졌고, 공동의 광장이 움터 나왔다”고 말한다. 동방정교회가 나름의 마리아 전통을 주장하지만, 서방교회 경우처럼 교리적 공방의 대상이 되지 않는 바 마리아론을 특별히 공식적으로 교리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실제로 에큐메니칼 토론에서 제기되는 논쟁점은 마리아론 자체의 내용보다, 오히려 그와 관련된 계시의 정통성 문제, 그리고 교황의 절대 무류성에 관한 교회의 권위 문제”라고 지적한다.
WCC는 마리아 교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해방신학과 여성신학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숭배는 강렬하다고 말한다. 여관 주인에게 거부당한 임산부 마리아의 모습, 폭력에서 도피하는 장면, 자신의 아들을 조용히 어른으로 키우는 여인, 그의 학대와 고난을 증거하고 그의 승리에 동참하는 모습 등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WCC의 교회 일치 패러다임을 대변하는 위 글은 이밖에 여러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믿음과 일치의 표본인 마리아는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라고 한다. 마리아론이 WCC가 추구하는 세계교회 일치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리를 계급화한다. ‘더 중요한 교리’와 ‘덜 중요한 교리’로 나눈다. “가톨릭 교리의 여러 진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이루는 관계는 서로 다르므로,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일치교령 제11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90조)”고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는 높고, 연옥설이나 마리아론은 낮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이형기 교수는 로마가톨릭교회와 WCC의 외형적 교회일치를 긍정적으로 본다. 가톨릭대(가톨릭신학회)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쓴 논문(2009)에서 로마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진리들의 위계’를 근거로, 로마가 개신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계급이 낮은 일부 교리들을 포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를 가장 높은 꼭지점에 두고, 비(非)로마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개신교회)이 고백하는 교리와 불일치하는 연옥설, 마리아론 같은 위계가 낮은 자리에 있는 교리들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다(이형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로마가톨릭교회의 에큐메니즘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연구: 종교다원주의 맥락에서 WCC의 ‘신앙과 직제운동’에 비추어서, <신학사상> 64, 2009 겨울, 236).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낮은 계급에 해당하는 교리라도 이를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진리들의 위계’에 대하여, “모든 계시된 교의는 같은 신적 신앙으로 믿어야 할 것이다(교회에 대한 오류를 반박하는 가톨릭 교리 선언, <사목> 34, 1974.7., 125)”라고 못 박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일치교령’은 진리들의 위계질서에 대한 배타적 원칙을 담고 있다. 진리들의 “서열은 어떤 교의가 다른 교의에 의거하거나 다른 교의에 의해 설명된다”고 한다(일치교령 제11항; 앞의 글 125). 마리아에 대한 흠숭, 상경, 공경이라는 위계로 구분되는 교리들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마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과 관련하여,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의 순수성을 손상시키거나 흐리게 하는 ‘거짓 평화주의 일치운동’을 경계하라고 명한다. 에큐메니칼 운동 파트너에게 모든 가톨릭 교리를 명확하게 온전하게 제시하라고 한다. 개신교 신자들에게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설득시킬 표현과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바티칸은 진리들의 “서열은 어떤 교의가 다른 교의에 의거하거나 다른 교의에 의해 설명한다(앞의 글, 125)”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가 표방하는 교리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장로교 에큐메니스트 이형기와 그가 이끌어 온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학의 지나친 순진함과 오판이 드러난다.
맺음말과 질문
마리아는 마리아 교리에 크게 진노하리라. 그 교리는 그리스도의 독보적인 구속사역을 격하시키며, 그러한 오류를 범하는 방식으로 마리아를 모독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행위, 곧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죄는 우상숭배이다.
마리아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마리아 교리와 숭배는 로마가 세속적 권력을 장악하려고 묵인, 수용, 교리화한 이교 사상이며 미신적 행습이다. 화체설, 희생제사 이론, 연옥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성인숭배 등과 더불어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는 교리이며 종교행위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마리아 교리를 폐기하고 그를 숭배하는 종교행위를 금지하노라 선언할 용기가 없는가? 미신적인 이단 사설(邪說) 마리아 교리를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개혁하지 않겠는가? 성경과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에 충실한 역사적 기독교와 일치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교황무오 교리
-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이 무오(無誤)하다고 믿는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무엇을 결정·선포할 때 그에게 오류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교황이 결정하고 성명·선포한 것은 교회가 동의할 사안이 아니다. 타인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그 내용은 바뀔 수 없다. 후대의 교황이 바꿀 수 없다. 교황무오교리의 유효성은 하나님의 계시와 동등하므로 절대적이며 불변하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준 최상의 교도권(敎導權)이므로 비판·항의·거역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황무오교리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교리는 역사적·성경적 근거가 없다. 정당성 입증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기록되지 않은 성경’이라 일컫는 전통론과 더불어, 지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교황제국을 떠받쳐 온 권력지향적·배타적·독선적 기둥이다. 교회개혁을 방해한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고 금하는 것을 교황이 상반되게 선포해도, 그 명령에 항거하지 못하게 한다. 무조건적 순종·복종·맹종을 요구한다. 교황이 무오하다는 발상은 교황직을 신성불가침 영역에 두어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계급주의 제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이단적 발상이다.
1. 기록되지 않은 성경
교황무오교리는 사도직 계승론, 교계제도, 교황수위권 교리와 더불어, 로마가톨릭교회론의 바탕인 전통론에 기초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론을 이해해야 교황무오교리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다.
로마는 전통(傳統, tradition)을 전승(傳承), 성전(聖傳), 유전(遺傳), ‘기록되지 않은 성경’, ‘기록되지 않은 전통’, ‘전승되는 하나님의 말씀’ 등으로 표현한다. 무오(無誤)와 무류(無謬)는 같은 뜻이다. 개신교회는 전자를 로마는 후자를 선호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 초기부터 눈에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도 않고 실체 없이 전승되는 무엇이 교황에게, 교황과 더불어 주교단에게 계시로 주어진다고 믿는다. 교회 초기부터 전승되어 오는 교훈과 실천 관행과 구전(口傳)으로 전달되는 가르침을 일컬어 ‘거룩한 전통’, 곧 성전(聖傳)이라고 한다. 이것이 방치되지 않고 사도직 계승이라는 방법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되었다고 한다. 교황, 그리고 교황과 함께 하는 공의회가 이를 전유(專有), 독점하고 있다고 본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성경’을 모두 진리의 원천이라고 하면서도, 이 두 가지가 병립(竝立)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통과 성경이 나란히 있지 않고, 전자가 후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기록되지 않은 성경(전통)’이 수위(首位)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기독교 신앙에 구속력을 가진 전통, 성경, 교황의 교도권(敎導權)은 교차 관계에 있다. 독립적이지 않다고 한다.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뒤에 모인 트렌트공의회(1546)는 성경과 전통이 모두 하나님의 계시라고 선언했다. “진리와 규범이 기록된 책들만 아니라 사도들이 그리스도 자신의 입에서 받아들이거나 혹은 사도들에게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 기록되지 않은 전승들 안에도 보존되어 있다(제1차 회기, 제1교령, <보편공의회문헌> 3, 663)”고 했다. ‘전통’의 계시를 따라 위경 7권을 구약성경에 포함시켰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성경은 73권이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도 전통의 계시성을 강조했다. “초자연적 계시는 기록된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에 담겨 있는데, 이 전통은 그리스도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와 사도들에 의해 수용되었거나 성경의 영감에 의해 그 사도들이 손에서 손으로 전수하여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앞의 문헌 806)”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1965)’은 복음과 전통을 논하면서 기독교 전체를 묶는 하나의 복음 전통이 있음을 인정한다. “전통과 성경은 밀접히 같이 매여 있고, 서로 공통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곧 성전과 성경은 하나님의 꼭 같은 샘에서 흘러나오며, … 같은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제9항)”라고 한다.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가시적 교회일치를 목적으로 고안한 ‘전통론(1963)’을 일부 수용한 결과이다.
‘계시헌장’은 “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제9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82조)”라고 한다. “성전(聖傳)과 신구약 성경은 거울과 같아서 하나님을 참 모습 그대로 얼굴을 맞대고 뵈올 수 있을 때까지 지상의 순례하는 교회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관상하며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받고 있다(제7항)”고 한다.
그리고 성경과 전통은 교회 또는 교황의 교도권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전승되는 ‘하나님 말씀’―전통은 모두 다 하나님의 계시이다. 베드로의 열쇠를 가진 자만이 이것들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열쇠와 교도권은 로마 교회의 수장에게 맡겨져 있다고 한다(계시헌장 제8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20조). 로마는 성경의 독립성·완전성·충족성을 부정한다. 성경과 전통과 교도권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계시의 영역이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권위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이 전통의 진행·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정경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은 전통―성전(聖傳)을 가진 자에게 있다고 본다. 전통의 산물인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현실화시키는 데는 전통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전통과 성경을 분리하거나 독립시키면 성경이 갖는 본래의 가치와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성경은 ‘항상 살아 있는 거룩한 전통’ 안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교황무오교리와 직결된 ‘성경과 전통’ 주제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사이에 가로놓인 루비콘 강이다. 진리의 원천은 하나인가 둘인가?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만이 교회와 신앙에 구속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만이 진리의 유일 원천이라고 믿는다. 성령의 직접적인 간섭과 영감 안에서 기록된 성경 66권만이, 신앙과 교리의 최종적인 척도이며 표준이라고 확신한다.
2. 교황무오교리
교황무오교리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 문헌 ‘영원한 목자’에 처음 나타난다. 당시의 교황 비오 9세(1846-1878)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행위로 선포할 때, 오류가 없다고 선언했다. “로마 교황이 권위를 가지고 말할 때, 곧 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자와 교사로서 자기의 직무를 수행할 때 그는 전(全) 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신앙교리 또는 도덕 문제들을 규정한다. 이때에 교황은 복된 베드로 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때문에 무류하며 결과적으로 로마 교황이 내린 정의들을 변경할 수 없다(Infallibility, The Catholic Encyclopedia VII, 1907, 796)”고 했다. 교황은 우주적 권력을 가진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직책상 완전한 최상의 전권을 가졌고, 믿음과 도덕, 그리고 교리 문제에 대해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교황을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만들어진 주교단도 무류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교도권 교리를 모든 신자가 굳게 믿어야 할 것”으로 재천명했다(교회헌장 제18조). “교황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기 형제들의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할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무오성을 지닌다(제25항)”고 한다.
‘교회헌장’은 교황무오교리가 신성불가침의 진리라고 선언한다. 교황이 결정 선언한 신앙(교리)과 도덕에 관한 것은 바뀔 수 없다. 교회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어느 누가 어떠한 이의제기도 할 수 없다. 상소의 대상이 아니다. 교황무오교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위탁이 펼쳐지는 그 만큼 펼쳐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891조)”. 성경과 전통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교리이다. 변개할 수 없다. 교황이 공적으로 결정·성명·선언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는 나중의 교황, 공의회가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교회헌장’은 주교단도 교황이 지닌 무오성과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교황과 더불어 결정할 때”라는 제한 조건을 붙인다.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고 교도권을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제25항)”고 한다.
교황무오교리에 대한 신성불가침 선언은 교황 제국(Papal Monarchy) 건설에 몰입하던 중세기 교황이 선언한 ‘우남상탐(Unam Sanctam, 1302)’을 연상시킨다. 지상에서는 하나의 거룩한 권력(One Holy)만 존재한다. 한 목자 아래에 한 양떼가 있을 뿐이다. 세상 권력은 영적 권력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영적 권력의 오류는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한다고 했다. 교황과 교회의 탐욕스런 세속적 야망을 담은 ‘우남상탐’은 교황 인노센트 3세(1198-1216)가 저지른 신앙과 교리의 오류였다.
예수께서는 로마가 ‘첫 번째 교황’으로 간주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이라고 꾸짖었다(마 16:23). 자신의 대속사역 곧 신앙 교리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교황 바오로 5세(1605-1621)와 우르반 8세(1623-1644)는 천동설이 교회의 해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 목록에 올리고, 갈릴레오를 고문하고 종교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교황이 저지른 교리적 오류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세인들을 고려하여 교황무오교리에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 그르침이 없다(교회헌장 제18조)”는 단서를 붙였다.
교황무오교리의 심각성은 그리스도와 교황을 동격화하고, 나아가 교황, 교황좌, 교황과 주교들로 구성된 교계(敎階)를 신격화, 절대화하는 데 있다.
기독교 전통 가운데는 신빙성이 있는 것들도 있지만(살후 2:15; 고전 11:23; 고전 15:3-11), 그렇지 않은 것들(마 15:2-3, 골 2:8)도 있다. 장로들의 유전인 손 씻는 규례, 할례, 철학, 신화, 민담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과 동격(同格)의 권위를 가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은 성경해석을 독점할 권위를 가진 신성불가침의 인물이나 교회를 허락한 적이 없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성경을 해석하는 정확하고 무오한 법칙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새로운 계시 또는 인간의 전통 등 그 무엇도 기독교의 성경 66권에 첨가할 수 없다고 한다(제6조). 로마가톨릭교회가 앞세우는 배타적 교도권이나 ‘거룩한 전통’은 필요하지 않다고 명시한다(제5항).
3. 역사의 반증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스 큉 교수(1929-)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과 교황무오교리를 비판하다가 가톨릭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했다. 큉은 이 교리가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했다. 교황, 주교단, 공의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보존하고 그릇되지 않게 해석할 수 있는 오류 없는 교도권을 부여받았다는 교리의 증명 불가능성을 입증했다.
큉의 <과연 무오한가?(1970)>는 로마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오류들, 교황제도의 폐해, 교황, 공의회, 주교단이 저지른 오류들을 소개한다. 로마가톨릭교회 바깥에서 이 교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안에서도 의심스럽고 모호한 교리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황무오교리의 오류, 곧 ‘교황의 교도직 수행의 오류 없음 교리’의 불합리하고 어두운 면들을 아래와 같이 열거한다(Hans Kung, Infallible?, 1994, 27 이하).
제9세기의 교황 니콜라오 1세(858-867 재위)가 동-서방교회 분열의 책임자로 매도된 포티우스를 파문한 것은 오류이다. 이 파문을 추인한 제4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869-870)의 결정은 오류이다. 1054년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미카엘 세룰라리우스를 파문하고 정교회를 일방적으로 정죄한 일도 교회(교황, 공의회, 주교단)의 오류이다.
교회의 교도권을 가진 자들(교황, 주교)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했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차례 타협을 했다. 이들이 가르침을 바꾼 것도 오류이다. 교황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를 단죄한 사건은 신앙적 오류이다. 큉은 교회가 인도, 중국, 일본에서 새로운 형태의 예배 형식과 조상제례를 둘러싼 갈등을 비난하고 정죄한 바, 이것은 로마가톨릭 선교를 실패하게 한 큰 규모의 실수였다고 말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 때까지 로마가 시행한 정죄 또는 출교 결정권은, 교황의 중세기적 지상통치권을 떠받쳐 온 수단이었다. 교회는 20세기 초 성경 각 권 저자들에 대한 비평-역사 방법론을 사용한 신학자들을 정죄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역사와 문학 장르 연구를 단죄했다. 교의학의 현대적 발전에 이바지한 학자들을 처벌했다. 금서 목록을 만들고 내용을 정밀 조사했다. 모두 교황의 그릇된 결정이다. 이 과정에서 신학은 교권을 도왔고, 교권은 신학에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 하나가 교황무오교리이다.
교황들이 회칙과 교령을 빌미로 많은 신학자들을 처단한 일은 교황무오교리가 성립 불가함을 반증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에 프랑크 지방 주교관의 문서고에서 850년경에 발견된 ‘이시도리아 법’이라는 위서(僞書)를 가지고 로마교회 주교의 수위권(Supremacy)을 증명하는 데 사용했다. 교황무오교리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입증한 사건이다. 이 가짜 문서는 교황 수위권에 관한 내용이다. 교황이 홀로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고, 최고의 판단자이며, 교황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주교를 파면할 수 없으며, 전 세계에 권한을 행사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공 피임법을 불허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1968)’은 교황무오교리가 성립 불가함을 입증한다. 교황청은 시기를 조절하는 자연적 피임법이 ‘자연법’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허용하면서도, 인공적 수단을 사용하는 피임법은 불허했다. 교황의 가르침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을 구분하는 바,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스토아주의-고행주의에 바탕을 둔 중세기 발상이며, 성(性)에 대한 인간의 생물학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경험과 사상에 불일치한다. 기독교 진리가 아니라 마니교적 유산이다. 지금부터 약 350년 전의 갈릴레오 정죄 사건의 재현이다.
교황청이 인공 피임금지를 명하면서 이를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특별한 직무(magisterium extraordinarium)에 호소하지 않고, 그르칠 수 있는 일상적 직무(magisterium ordinarium)의 권위로 지시한 것도 오류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고 무죄한 자를 살해하는 행위를 잘못이라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특별한 직무에 속한다. 그러나 산아제한 문제는 일상적 직무이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제25조가 명시하는 주교직의 특별한 직무에 대한 정의와 불일치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은 “각각의 주교들이 무류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제25항)”라고 한다. 주교들이 사도들의 계승자라면, 그리고 교황무오교리가 정당하다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그것을 즐기고,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25항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신앙과 도덕의 사항들을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주교들이 하나의 의견을 확정적으로 고수하여야 할 것으로 합의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류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는 진술로 연결된다. 인공적 피임금지가 정당화되려면 자연법이 아니라 하나님 계시의 말씀(성경)에 부합해야 한다. 성경은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사실상 ‘장식 기능의 역할’을 할 뿐이다. 모세오경에 자연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로 산아제한을 금지한 회칙은 성경이 주장하는 결혼의 존엄성과 불일치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선포한 교황무오교리는 신학적 논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 아니므로, 신빙성이 없다. 강압적 분위기에서 중세기적 교황 권력에 매력을 느끼며 옛 로마가톨릭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열정을 가진 교황 비오 9세가 정치적 동기로 결정했다. 공의회가 모이기 전, 반계몽주의와 반합리주의적 낭만주의 정신을 가진 복고파 운동이 광범위하게 교회와 가톨릭 교회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통치 동안 혼란을 겪은 유럽은 평화와 질서를 바랐고, 정치적·종교적 안정을 유지한 기독교 중세기를 그리워했다. 교황보다 그것을 더 그리워한 사람이 있었겠는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은 전통주의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성직주의는 반성직주의를 부추겼다. 성직자들은 신학자들의 과학 방법론 도입과 쇄신파 운동에 변증적 자기 방어 자세로 대응했다. 교황무오교리는 이러한 강압적·정치적 풍토에서 만들어졌으며, 교황이 교도직을 잘못 사용한 결과이다.
4. 성경의 반증
큉은 교황무오교리가 성경이 뒷받침하지 않음을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Hans Kung, Infallible?, 63 이하). 첫째, 교황무오교리는 성경이 보증하지 않는다. 교황무오교리는 ‘교황의 그르칠 수 없는 교도직’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교황, 주교들, 신학자들은 성경이 아니라 당대 일반 문화에 적합한 이성적 표본에 따랐다. 로마가톨릭교회도 개신교회처럼 성경을 신앙의 규범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이 제공하지 않는 것은 전통―성전(聖傳)이 제공한다고 본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전통을 계시에서 파생된 성경과 동등한 계시 영역으로 간주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경, 전통, 교도권의 불가분의 관계를 말한다. 공의회는 교회의 갱신을 위한 궁극적인 규범, 수위적 규범(supreme norm)이 무엇인지 논의했고, 새로운 공적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명시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와 마찬가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교황무오교리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았다. 성경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도, 밝히지도 않았다.
둘째, 교황무오교리는 로마 감독을 포함한 주교들만이 사도직의 계승자들이라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의 무오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사도단이든 사도 개인이든 어떤 형태든 간에, 누구도 오류 불가능성을 말한 바 없다. 사도들은 기본적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자로 보냄을 받았다. 그들은 무오성을 선언할 만큼 영웅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 연약한 인간, 보배를 가진 질그릇(고후 4:7),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요 15:5)라고 했다.
복음서들은 베드로, 요한,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 전과 후에도 연약하고, 어리석고, 인간적이며, 실수 많은 사람이라는 특징을 예증(例證)으로 삼고 있다. 베드로는 실수가 많았다. 신속하게 해야 할 사도적 임무 수행(mission)을 지체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 사도들은 인간 이상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바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형제들에게 위로와 중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엡 2:20; 고전 12:28; 계 21:14)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인 의미에서나 직무상으로나 자신들의 무오성을 말한 바 없다. 실수나 오류의 불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없다.
셋째, 교황무오교리는 로마교회 주교가 사도직의 계승자라는 교리에 기초한 바, 이 주장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주교들이 사도들의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의미의 계승자들이라는 근거가 없다.
넷째, 교황은 주교가 교회의 교도직임을 맡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교리는 성경적으로 입증 불가능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 바울은 사도, 선지자, 교사를 통합하는 단일화 경향을 공박했다(고전 12: 28). 공의회가 교황무오교리를 뒷받침하려고 내세운 성경구절들은 로마가 베드로 교구의 법적 수위권의 근거로 삼는 데 무리하게 사용해 온 본문들이다. 성경은 교황의 수위권(Supremacy)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인용되는 성경구절 가운데 어느 하나도 베드로의 계승자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교회의 주교직, 교황직 또는 교황의 무오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은 교황무오교리의 근거인 전통―성전(聖傳) 교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로지 복음의 영(靈) 안에서 이루어진 목회와 교도(敎導) 활동의 연속성을 말할 뿐이다. 로마교회의 주교가 아니라 베드로 개인의 영적·카리스마적 사역을 언급한다. 로마가 가지고 있는 문서 중 어느 것도 교황무오성을 말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 바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황무오교리를 확신시킨 로마가톨릭 신학자는 아무도 없다.
큉의 비판을 조리 있게 반박한 신학자는 없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 칼 라너 교수가 “큉이 과연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인지 의심스럽다(Karl Rahner, ‘Kritik an Hans Kung,’ Stimmen der Zeit 1970, 12)”고 궁색한 비난을 한 정도였다. 큉은 신학교수직을 해임당했으나 사제직을 유지하고 있다.
5. 세계교회협의회의 태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전통론과 교황무오교리를 사실상 인정해 준다. 신앙무차별주의와 래티튜디나리안주의(latitudinarianism)를 표방하면서, 한 통 안에 물과 기름을 함께 담으려 한다. ‘오직 성경’ 원리와 기타 중요한 개신교회 신앙의 정박지를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 교리들을 묵인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에 가로놓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WCC는 로마와 가시적 교회일치를 꾀할 목적으로 전통론(1963, 몬트리올보고서)을 만들었다. 기독교 전체를 일컫는 ‘전통’을 강조하면서, 성경과 전통이 하나의 샘, 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온다고 한다. 하나의 복음 전통(Tradition)에서 성경과 여러 가지 유형의 교회 전통들(traditions)이 나왔다. 계시의 유일의 원천인 하나의 복음전통(Tradition) 또는 기독교 전체로서의 전통에서 성경과 전통들 곧 각 교회, 교회 전통들(traditions)이 유래했다. 새 세대대로 전달되는 복음 그 자체를 의미하는 ‘전통(대문자 T)’과 그 하나의 전통에 대한 교회들의 다양한 표현들을 의미하는 ‘전통들(소문자 t)’은 구분된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계시의 전통(the Tradition of his revelation)’을 등장시켰고, 거기서 여러 유형의 교회들, 교회 전통들이 파생했다고 한다(WCC, Scripture, Tradition and Traditions, 1963, para.42, 42-63 참고).
WCC 전통론에 따르면, 16세기 종교개혁기로부터 쟁점이 되어 온 성경과 전통의 관계, 그리고 그것에서 발견되는 모순과 불일치는 하나의 주변적인 무엇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과제는 성경 가르침이 아니라 기독교 안의 전통들(소문자 t)과 유일한 복음전통(대문자 T)을 구별하고 이 두 가지의 관련성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WCC 전통론을 작성한 신앙직제위원회 몬트리올대회는 로마가톨릭교회가 파송한 신학자들을 옵서버로 참가시켰다. 이들은 WCC 전통론 고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은 기존의 두 원천 이론과 달리 전통과 성경이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나와 …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계시헌장 제9항)”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전통이 하나의 원천―복음전통(대문자 T)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성경과 전통(소문자 t)들이 모두 한 전통(대문자 T)의 산물이라고 한다(계시헌장 제7항).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전통들’이라는 복수 용어를 사용한 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통’이라는 단수용어를 사용했다.
WCC 전통론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교회라는 인간 제도의 전통(소문자 t)과 대등한 위치에 둠으로써, 특별계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종교개혁 운동이 강조한 ‘오직 성경’ 원리를 버린다. 성경이 분명히 제시하는 것도 상대적인 무엇으로 해석하게 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그 교회의 전통―성전(聖傳)이 유효하다고 인정해 준다. 교황무오교리, 사도직 계승교리, 교황 수위권교리, 계급주의 교회제도, 교황 중심적, 법률적, 패권주의적 전통을 묵인·인정한다. 가경들을 정경에 포함시킴을 비판할 수 없게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만이 ‘기록되지 않은 성경’을 가졌다는 주장을 묵인한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성경과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개신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복음 안에서의 진정한 하나됨을 방해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WCC에 일부 가담하면서도, 교회 교리를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교황권 권위에 추호의 의구심도 표출하지 않으며, 로마의 교리 규정에서 한 걸음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 로마가 기존의 교리를 양보, 포기하면 교황무오교리가 옳지 않음을 입증하는 격이 된다. 로마가톨릭교회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의 버팀목을 빼버리는 행위가 된다.
6. 프로테스탄트 정신
교황무오교리 논의의 신학적 핵심 요지는 교회, 교황, 공의회의 결정, 가르침, 교도권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히’ 위배될 때 신자는 이에 항의(protest), 거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로마는 인간인 교황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가두고 신자들에게 무조건 순종할 의무만을 강요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교회를 상대로 목숨을 건 혈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까닭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교회, 공의회, 교황이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많은 오류를 범해 왔으며, 성경과 상반되는 결정, 지시, 교리를 공표할 경우 기독인은 교회, 교황, 공의회에 항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개신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나치독일 치하에서 독일 국가교회는 ‘우상숭배’를 했다. 당대 독일의 유명한 지식인, 신학자, 목사, 지도자들은 앞장서서 ‘히틀러 만세’를 외쳤다. 독일교회는 살인 행진에 열성적으로 동참했다. 일제 말기 한국장로교회도 우상숭배를 행하기로 결정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우상숭배를 할 것을 공적으로 결정한 예는 전무후무하다. 교회는 순종하지 않는 신자들을 출교시켰다. 평양노회는 주기철 목사가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그의 목사직을 파면했다.
예장 고신교단이 가진 교회론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친 것에 상반되는 교리·고백·실천을 교회가 명했을 때 기독인은 이에 항거(protest)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지식산업사, 2000)>이 상론한다. 네덜란드개혁교회 헌장 제31조는 중세기적 교권과 사악한 교회로부터의 해방 또는 자유(liberation)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교황무오교리는 인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황은 인간이며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아니다. 비록 성령이 함께하며 그 안에서 역사하지만, 교회는 인간 집단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교회·교황·공의회는 수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기독교 역사를 ‘범죄사’로 규정하는 교회사가도 있다. 한때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였던 카를하인츠 데쉬너(K, Deschner)는 자기 일생을 헌신하여 6권의 교회 기독교 범죄사를 저술했다. 기독교회의 역사는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이다. 동시에 인간들의 오류·추문·범죄의 역사이기도 하다.
맺음말과 질문
교황 바오로 2세는 새 천년기가 시작되는 2000년 3월 12일, 바티칸 베드로대교회당에서 ‘용서의 날’ 미사를 집전했다. “기억과 화해: 교회의 과거의 과오들(2000)”을 발표했다. 가톨릭교회가 교회가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고, 정복주의 야욕을 채웠으며, 성경적 진리를 신봉하는 자들을 죽인 과거사를 참회했다. 유태인과 무슬림에게 특별한 용서를 구했다. 한글 번역문은 필자의 <양심선언과 역사의식(2000)> 부록에 실려 있다. 바오로 2세의 참회고백은 교황들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도권 행사에 그릇됨이 많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무오교리를 변함없이 신봉하고 있다. 모순(矛盾)은 이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어느 교회당 고백실에서 이름 모를 사제에게 무릎을 꿇고 참회고백했다. 자신이 죄인임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역사적으로도, 성경적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교황무오교리를 폐기처분한다고 선언하지 않겠는가? ‘전통’을 계시로 여기는 그릇된 교리를 과감히 버리고, 로마가톨릭교회를 성경이 보여주는 초기교회의 모습으로 개혁하지 않겠는가? 로마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의 일치의 시대를 열지 않겠는가?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