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성장정체 상태다. 주력산업의 부진 때문이다. 전체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주력수출품목의 수출증가율은 최근 급속히 하락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13대 수출품목이 차지한 비중은 평균 5.3%로 2011년 5.7%보다 0.4%포인트 떨어졌다. 13대 수출품목은 반도체·자동차·선박·무선통신기기·철강·가전·컴퓨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일보 DB
우리나라 13대 수출품목의 세계시장점유율은 감소한 반면 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중국 점유율은 2011년 15.2%에서 지난해 18.3%로 상승했다.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1년 6.8%에서 지난 해 5.2%로 줄었다. 세계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약진으로 한국 주력산업의 입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기술적 측면에서 이미 추격을 넘어 우리나라를 추월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가격경쟁력에서 한국보다 높고 일부 업종에서는 품질과 기술력에서 근접했다. 자동차·조선 등 기계분야에서는 중국의 품질과 기술이 75~85% 수준인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중국 기술이 우리보다 10%가량 앞섰다.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삼성전자가 세계 1위인 인텔을 추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중국이 한국보다 이미 앞서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한한국 기업의 품목은 8개로 전년과 같았다. 중국 기업의 1위 품목은 8개로 우리와 같았지만 전년의 6개보다 2개 늘었다. 일본은 9개에서 11개로 2개 증가했다.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중국은 약진하고 일본은 더 전진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기존 주력산업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출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기획한 한·중·일 5대 신성장산업 비교에서도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대상에 포함된 5개 신성장동력은 로봇·드론·바이오·자율주행차·3D프린팅이다. 정부가 선정한 9대 미래성장동력 중 한·중·일 3국이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5대 분야를 선정했다. 각국이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선정, 국가의 미래를 걸고 있는 분야다.
이들 산업에 대한 종합분석 결과, 우리나라는 5대 산업 분야에서 일본과 중국에 뒤처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2년에 가까웠다. 중국과의 경쟁에서는 자율주행차·바이오·로봇 분야에서 비교우위에 있었지만 드론과 3D프린팅 분야에서 크게 뒤져 전체적으로는 중국이 근소하게(0.3년) 앞선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문제는 4년 후인 2020년에도 일본과 중국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에 확실히 서지 못한다는 점이다. 2020년 일본과의 격차는 1.7년으로 소폭 줄었지만 중국과는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중국은 현재 3개 분야에서 한국에 열세지만 10년 이후에는 모든 업종에서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2년 114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하는 드론시장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상업용 드론시장은 중국의 1.7~2.5%에 불과하다. 제조기술은 중국의 80%에 근접하나 핵심 소프트웨어 분야는 절반 수준이다. 한국의 드론 기술은 일본 수준에도 못 미친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방위산업팀장은 “중국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의 규제와 핵심기술에 대한 저조한 R&D 투자 등이 원인”이라며 “드론 관련 규제를 최소화하고 드론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韓 자율주행차 기술 투자, 日의 30분의 1
3D프린팅 시장도 비슷한 처지다. 연평균 87%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3D프린팅 시장의 규모를 보면 미국이 세계시장의 38%를 차지한다. 그 뒤를 일본(9.4%), 중국(8.8%) 등이 쫓고 있다. 국내 3D프린팅 시장 규모는 전 세계의 2.2%에 불과하다.
시장의 규모는 인구가 많은 미국이나 중국이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제조기술 수준이다. 미·독 등 선진국과 한국의 기술 수준차는 현격하다. 우주항공·자동차 등 최첨단 산업용 3D프린터는 미국과 독일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의 관련 기술은 특허로 묶여 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국내 업체들이 섣불리 산업용 3D프린터 제작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다.
일본은 정부와 기업, 대학이 손잡고 차세대 3D프린터 개발에 나섰다. 특히 일본은 3D프린팅 기술을 통해 의학 기술 발전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도쿄대 등은 귀의 연골을 3D프린터를 이용해 만드는 등 재생의료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 업체의 추격도 맹렬하다. 중국은 2014년부터 정부 주도의 진흥 정책에 3D프린터 활성화 계획을 포함시켰다. 중국 3D프린터 기업‘윈선 데코레이션 디자인 엔지니어링’은 거대 프린터를 이용해 10채의 집을 지어 난민시설 등 주거가 부족한 곳에서 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경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업체들의 제품이 시장에 밀려들어올 경우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국내시장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기술은 일본에 뒤지고 중국엔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안전기술을 구현하는 시스템 능력은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지만 주변상황인식 센서 등 핵심부품 기술력이 미흡했다. 국내 도로에서 시험주행이 가능한 국산 자율주행차량의 센서에 국산부품을 사용하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다. 카메라의 경우 이스라엘의 모빌아이에서 가져다 쓰고 레이더는 일본 덴소 제품 등을 쓴다. 기술격차는 일본과는 0.4년 뒤처져 있고, 중국에는 2.7년 앞섰다.
국내 자율주행차 R&D 투자는 저조하다. 일본은 업계에서만 올해 2조8000억엔(약 30조원)가량을 투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대·기아차(5000억원)와 일부 부품 업체 등의 투자를 합쳐도 1조원이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투자규모에서 보면 앞으로 국내 기술이 경쟁력을 갖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의 원천기술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율주행차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우리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中 26개 기업, 바이오 세계 100대 기업에 포함
무궁한 잠재력의 로봇산업 역시 우리보다 중국·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로봇시장이 2020년 429억달러(약 47조원)에서 2025년 669억달러(약 74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로봇기술 수준은 일본엔 뒤지고 중국엔 앞선다. 글로벌 산업용 로봇시장은 독일의 쿠카와 스위스의 ABB, 일본의 야스카와, 화낙 등 4개 업체가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일본과 중국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로봇산업 부흥을 챙기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로봇산업 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로봇 혁명 실현회의’를 출범시켰다. 지난해 1월에는 중소기업의 로봇 도입을 지원하고 설치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로봇 신전략’을 내놨다. 일본은 이를 통해 서비스업, 의료, 인프라 건설, 농림수산업 등 55개 업종에서 로봇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2014년 말 칭다오를 ‘로봇자동화 생산기지’로 지정해 총 115억위안(약 1조90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중국 정부가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로봇산업은 매년 10~30% 성장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20년까지 세계 로봇시장점유율 4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2004년 ‘지능형 로봇’을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선정했지만 성과는 더디다. 일본에 비해 기술수준이 떨어지고 후발주자인 중국의 추격이 거세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평가다. 유병규 산업연구원 원장은 “일본은 탄탄한 기초 기술력 등 특유의 기술적 우위를 적극 활용해 로봇, 자율주행차뿐만 아니라 바이오, 농업 등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응해 신산업을 선점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바이오 분야 기술수준은 일본에 한참 뒤지고, 중국이 바짝 추격하는 양상이다. 특히 최근 중국 기업이 약진을 거듭하는 동안 한국 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10~2014년 전 세계 제약기업 대상 인수·합병(M&A)은 총 1938건이다. 이 중 인수기업 기준으로 미국 기업이 24%, 중국 기업이 11%, 일본 기업이 6%를 차지했다. 한국 기업은 3%에 불과하다. 한국의 바이오 분야 R&D 투자 역시 미미하다. 바이오 R&D 규모는 2005년 1조4000억원에서 2014년 4조8000억원으로 연평균 14.6%씩 증가했다. 그러나 IT(21조9000억원), 나노기술(8조4000억원) 등과 비교하면 투자 규모가 작다.
바이오 부문에서 한국은 세계 1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중국은 헬스케어 장비 부문 6개, 제약 부문 20개 기업이 포함됐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바이오와 생명과학 등의 부문에서는 적자를 감수하고 대규모 R&D 투자를 추진하는 해외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이 보다 과감하게 연구개발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간에 기술적 장벽을 넘을 수 있고 지적재산권 확보도 가능한 M&A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를 통해 세계가 놀랄 만한 고속성장을 일궜다. 하지만 지금 우리 기업의 혁신속도는 중국에도 뒤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업체 300여개사를 대상으로 ‘우리기업 혁신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국 기업이 시속 100km를 달릴 때 한국 기업은 시속 70km로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병규 원장은 “중국은 드론 등의 급성장에서 엿볼 수 있듯 선진국형 산업의 전환이 의욕적이고, 투자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에 힘입어 신산업 성장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우리 경제의 10대 산업은 정보기술(IT), 자동차, 철강, 화학 등이 주류를 이뤘다. 이러한 구성은 지금까지 변화가 거의 없다.
세계가 디지털경제를 넘어 공유경제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우리는 기존의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마저도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도 갖춘 중국에 속속 추월을 허용하는 반면, 새로운 원동력이 될 엔진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신성장산업 분야에서 중·일에 뒤처지는 요인은 무엇일까.
시장 수요에 맞추지 못하는 연구개발(R&D)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외견상 R&D 대국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2014년 기준 4.29%로 이스라엘(4.11%), 일본(3.47%)을 제치고 세계 1위다.
“성과 없는 R&D와 정부규제 없애야”
그러나 시장 수요에 맞춰 R&D를 잘하느냐를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투자비 대비 기술료 수입인 R&D 생산성은 2012년 기준 2.89%로 미국(10.73%)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돈을 쏟아부어도 나중에 투자한 만큼 수입을 챙기지 못한다는 얘기다.
바이오 분야의 경우, 정부가 투입하는 R&D 예산은 올해 2조2384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예전부터 공들였던 R&D가 상용화로 이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다.
온갖 규제 역시 우리나라의 신성장산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자율주행차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의 경우, 사실상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자율주행센터 내 건물에 대해서도 정부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은 규제 걸림돌이 많지 않아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우리 기업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시스템”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한국만의 새로운 선진국 모델을 만들지 못하면 경제·산업의 경쟁력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유병규 원장은 “기초기술이 축적되지 못한 상태에서 신산업 육성정책이 지나치게 응용기술 개발 투자에 집중하고, 산업화를 추구하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고 있다”지적했다. 그는 “산업환경의 변화 속도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신성장산업 기업들은 급변하는 산업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선제적으로 갖추는 데 역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